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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둘이 아니다
1. 菩提煩惱不二(보리번뇌불이)
보리와 번뇌가 둘이 아니다.
衆生不解修道(중생불해수도)
중생은 도를 닦을 줄 모르니,
便欲斷除煩惱(변욕단제번뇌)
곧 번뇌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
煩惱本來空寂(번뇌본래공적)
번뇌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하니,
將道更欲覓道(장도갱욕멱도)
도를 가지고 다시 도를 찾으려 한다.
一念之心卽是(일념지심즉시)
한 생각 그 마음이 바로 이것인데,
何須別處尋討(하수별처심토)
무엇 때문에 딴 곳에서 찾아야 하는가?
大道曉在目前(대도효재목전)
큰 도는 눈 앞에 밝게 드러나 있지만,
迷倒愚人不了(미도우인불료)
뒤집혀 헤매는 중생은 알지를 못하는 구나.
佛性天眞自然(불성천진자연)
불성은 천진하고 자연스러우니,
亦無因緣修造(역무인연수조)
닦아서 만들 인연이 없다.
不識三毒虛假(불식삼독허가)
탐진치 삼독이 헛된 가짜임을 알지 못하고,
妄執浮沈生老(망집부침생노)
망녕되이 집착하여 생노병사를 따라 흘러다닌다.
昔時迷日未晩(석시미일미만)
옛날 어리석을 적에는 아직 늦지 않다고 여겼는데,
今日始覺非早(금일시각비조)
오늘 비로소 깨달으니 일찍지가 않구나.
2. 持犯不二(지범불이) 지키고 어김이 둘이 아니다
丈夫運用無碍 (장부운용무애)
대장부는 움직이고 씀에 막힘이 없으니,
不爲戒律所制(불위계율소제)
계율에도 제약받지 않는다.
持犯本自無生(지범본자무생)
계율을 지키고 어김이 본래 생겨남이 없는데,
愚人被他禁繫(우인피타금계)
어리석은 사람이 그 규칙에 묶이는구나.
智者造作皆空(지자조작개공)
지혜로운 자에게는 짓는일이 모두 공(空)이지만,
聲聞觸途爲滯(성문촉도위체)
성문(聲聞)은 부딛히는 족족 막히는구나.
大士肉眼圓通(대사육안원통)
대승(大乘)의 선지식은 육안으로도
두루 통하지 않음이 없지만,
二乘天眼有 (이승천안유예)
소승(小乘)의 이승(二乘)은 천안(天眼)으로도
막혀서 보지 못하네.
空中妄執有無(공중망집유무)
공(空) 속에서 망녕되이 '있음'과 '없음'에 집착하여,
不達色心無 (부달색심무애)
색(色)과 심(心)에 막힘이 없음을 알지 못한다.
菩薩與俗同居(보살여속동거)
보살과 속인이 함께 있음에,
淸淨曾無染世(청정증무염세)
깨끗할 뿐 더러운 세속은 없네.
愚人貪著涅槃(우인탐착열반)
어리석은 사람은 열반을 탐하고 집착하지만,
智者生死實際(지자생사실제)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생사(生死)가
곧 실상(實相)이다. (究竟)
法性空無言說(법성공무언설)
법성(法性)은 공하여 언설이 없고,
緣起略無人子(연기약무인자)
인연으로 일어나는 경계에 사람의 아들은 없네.
百歲無智小兒(백세무지소아)
백살을 먹어도 지혜가 없으면 어린아이고,
小兒有智百歲(소아유지백세)
어린아이라도 지혜가 있으면 백세 노인과 다를 바 없다.
3. 佛與衆生不二(불여중생불이)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衆生與佛無殊(중생여불무수)
중생과 부처는 다름이 없으며,
大智不異於愚(대지불이어우)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네.
何須向外求寶(하수향외구보)
어찌하여 밖에서 보물을 찾으려 하는가?
身田自有明珠(신전자유명주)
자신 속에 본래 밝은 보배구슬 있는데.
正道邪道不二(정도사도불이)
바른 길과 삿된 길은 둘이 아니고,
了知凡聖同途(료지범성동도)
범부와 성인이 같은 길을 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迷悟本無差別(미오본무차별)
미혹과 깨달음이 본래 차별이 없고,
涅槃生死一如(열반생사일여)
열반과 생사(生死)가 같구나.
究竟攀緣空寂(구경반연공적)
마침내는 인연에 따름도 텅 비고 고요한데도,
惟求意想淸虛(유구의상청허)
오직 의식으로 생각하여
깨끗하고 빈 것을 찾는구나.
無有一法可得(무유일법가득)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법(法)도 없어서,
翛然自入無餘(소연자입무여) 無爲
자재하게 스스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네.
선시 지공(誌公) 화상(和尙) 불이송(不二頌) 4
4. 事理不二(사리불이) 사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다
心王自在翛然(심왕자재소연)
마음은 자재하고 재빠르며,
法性本無十纏(법성본무십전) 纏 얽힐 전
법성(法性)에도 본래 아무 묶임이 없다.
一切無非佛事(일체무비불사)
모든 것은 불사(佛事)아님이 없는데,
何須攝念坐禪(하수섭념좌선)
어찌 마음을 거두어 좌선(坐禪)해야만 하겠는가?
妄想本來空寂(망상본래공적)
망녕된 생각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니,
不用斷除攀緣(불용단제반연)
인연에 따름을 끊어 물리칠 필요가 없다.
智者無心可得(지자무심가득)
지혜로운 자에게는 얻을 마음이 없으니,
自然無爭無喧(자연무재무훤)
저절로 싸우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는다.
不識無爲大道(불식무위대도)
할 일 없는 대도(大道)를 알지 못하면,
何時得證幽玄(하시득증유현)
어느 때에 그윽한 진리 깨달을 수 있을까?
佛與衆生一種(불여중생일종)
부처와 중생이 같은 씨앗이니,
衆生卽是世尊(중생즉시세존)
중생이 곧 세존(世尊)이다.
凡夫妄生分別(범부망생분별)
범부는 망녕되이 분별을 내어,
無中執有迷奔(무중집유미분)
없음 속에서 있음을 붙잡고
어지러이 헤매 다니네.
了達貪瞋空寂(요달탐진공적)
탐진치 삼독이 텅 비고 고요함을 분명히 알면,
何處不是眞門(하처불시진문)
어느 곳인들 진리의 문 아니겠는가
[5] 靜亂不二 : 고요와 어지러움은 둘이 아니다
聲聞厭喧求靜(성문염훤구정)
성문은 시끄러움을 싫어하고 고요함을 구하니,
猶如棄麵求餅 (유여기맥구병)
마치 밀가루를 버리고 떡을 구하는 것과 같다.
餅即從來是麵(병즉종래시맥)
떡은 본래 밀가루인데,
造作隨人百變(조작수인백변)
조작함에 사람따라 백 가지로 달라진다.
煩惱卽是菩提(번뇌즉시보리)
번뇌가 곧 보리이며,
無心卽是無境(무심즉시무경)
마음이 없으면 바로 경계도 없다.
生死不異涅槃(생사불이열반)
생사는 열반과 다르지 않고,
貪瞋如焰如影(탐진여염여영)
탐냄과 성냄은 불꽃 같고 그림자 같다.
智者無心求佛(지자무심구불)
지혜로운 사람은 부처를 구하는 마음이 없지만,
愚人執邪執正(우인집사집정)
어리석은 사람은 삿됨에 집착하고
바름에 집착한다.
徒勞空過一生(도로공과일생)
헛수고로 일생을 헛되이 지내며,
不見如來妙頂(불견여래묘정)
여래의 묘한 정수리는 보지 못한다.
了達淫慾性空(요달음욕성공)
음욕의 본성이 공임을 밝게 안다면,
鑊湯鑢炭自冷(확탕로탄자냉) 가마확.줄여=쇠붙이를 쓰는 연장
가마솥의 끓는 물과 화로의 숯이
저절로 식을 것이다.
6. 善惡不二(선악불이) 선과 악이 둘이 아니다
我自身心快樂(아자신심쾌락)
나의 몸과 마음은 상쾌하고 즐거워,
修然無善無惡(소연무선무악)
자재하게 선도 없고 악도 없다.
法身自在無方(법신자재무방)
진리의 몸은 자재하여 정해진 곳이 없으니,
觸目無非正覺(촉목무비정각)
눈에 보이는 것마다 바른 깨달음 아닌 것이 없다.
六塵本來空寂(육진본래공적)
여섯 가지 대상이 본래 텅 비고 고요한데,
凡夫妄生執著(범부망생집착)
범부는 망녕되이 집착을 한다.
涅槃生死平等(열반생사평등)
열반과 생사는 평등하니,
四海阿誰厚薄(사해아수후박)
세상에서 누가 대근기이고
누가 소근기이겠는가?
無爲大道自然(무위대도자연)
할 일 없는 대도(大道)는 스스로 그러하니,
不用將心劃度(불용장심획도)
마음을 가지고 나누고 헤아릴 필요가 없다.
菩薩散誕靈通(보살산탄영통)
보살은 이리저리 제멋대로
굴어도 신령스러이 통하니,
所作常含妙覺(소작상함묘각)
하는 것이 늘 묘한 깨달음을 머금고 있네.
聲聞執法坐禪(성문집법좌선)
성문(聲聞)은 법(法)에 집착하여
좌선(坐禪)을 하니,
如蠶吐絲自縛(여잠토사자박)
마치 누에가 실을 토해내어
스스로를 묶는 것과 같다.
法性本來圓明(법성본래원명)
법의 본성은 본래 두루 밝으니,
病愈何須執藥(병유하수집약)
병이 나았는데 약에 집착할 필요가 어디 있나?
了知諸法平等(요지제법평등)
모든 것들이 평등함을 밝게 알면,
翛然淸虛快樂(소연청허쾌락)
자재하고 맑고 텅 비어서 유쾌하고 즐겁다.
7. 色空不二(색공불이) 색과 공이 둘이 아니다
法性本無靑黃(법성본무청황)
법의 본성에는 본래 푸르고 누런 것이 없는데,
衆生謾造文章(중생만조문장)
중생이 거짓으로 문장(文章)을 만드는구나.
吾我說他止觀(오아설타지관)
아집(我執)으로 남에게 지(止)와 관(觀)을 말하지만,
自意擾擾顚狂(자의요요전광)
스스로의 생각은 어지럽게 미쳐 날뛴다.
不識圓通妙理(불식원통묘리)
두루 통하는 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니,
何時得會眞常(하시득회진상)
어느 때에 참되고 영원한 것을 알 수 있으리오?
自疾不能治療(자질불능치료)
스스로의 병은 치료하지도 못하면서,
却敎他人藥方(각교타인약방)
도리어 남의 병에 약을 처방하네.
外看將爲是善(외간장위시선)
겉을 보면 이 사람을 좋다고 오해하지만,
心內猶若豺狼(심내유약시랑)
마음 속은 승냥이나 이리와 같다.
愚人畏其地獄(우인외기지옥)
어리석은 사람은 저 지옥을 두려워 하지만,
智者不異天堂(지자불이천당)
지혜로운 사람은 천당과 다르다고 여기지 않네.
對境心常不起(대경심상불기)
경계를 대하여 마음이 한결같아 움직이지 않으면,
擧足皆是道場(거족개시도량)
걸음 걸음이 모두 도량(道場)이네.
佛與衆生不二(불여중생불이)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데,
衆生自作分張(중생자작분장)
중생이 스스로 나누어 어그러뜨린다.
若欲除却三毒(약욕제각삼독)
탐진치 삼독을 없애고자 한다면,
迢迢不離災殃(초초불리재앙) 멀초
재앙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智者知心是佛(지자지심시불)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지만,
愚人樂往西方(우인요왕서방)
어리석은 사람은 서방정토에 가기를 좋아한다.
8. 生死不二(생사불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
世間諸法如幻(세간제법여환)
세간의 모든 것들은 환상과 같아,
生死猶若雷電(생사유약뢰전)
삶과 죽음도 천둥이나 번개와 같다.
法身自在圓通(법신자재원통)
진리의 몸은 자재하게 두루 통하니,
出入山河無間(출입산하무간)
산과 들을 출입함에 틈이 없구나.
顚倒妄想本空(전도망상본공)
뒤집어진 망녕된 생각은 본래 공(空)이고,
般若無迷無亂(반야무미무란)
반야의 지혜에는 어리석음과 혼란이 없다.
三毒本自解脫(삼독본자해탈)
탐진치 삼독이 본래 그대로 해탈인데,
何須攝念禪觀(하수섭념선관)
무엇 때문에 생각을 거두어
선관(禪觀)을 행할 필요가 있나?
只爲愚人不了(지위우인불료)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從他戒律決斷(종타계율결단)
저 계율을 따라 결단한다.
不識寂滅眞如(불식적멸진여)
적멸의 진여를 알지 못한다면,
何時得登彼岸(하시득등피안)
어느 때에 피안에 오를 수 있을까?
智者無惡可斷(지자무악가단)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끊어야 할 악이 없고,
運用隨心合散(운용수심합산)
움직여 씀에 마음을 따라 합치고 흩어진다.
法性本來空寂(법성본래공적)
법의 본성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여,
不爲生死所絆(불위생사소반)
삶과 죽음에 매이지 않는다.
若欲斷除煩惱(약욕단제번뇌)
만약 번뇌를 끊어 없애고자 한다면,
此是無明癡漢(차시무명치한)
이 사람이 바로 밝음 없는 어리석은 자이다.
煩惱卽是菩提(번뇌즉시보리)
번뇌가 바로 보리(菩堤)이니,
何用別心禪觀(하용별심선관)
무엇 때문에 마음을 달리하여
선관(禪觀)을 할 것인가?
實際無佛無魔(실제무불무마)
실제에는 부처도 없고 마구니도 없으며,
心體無形無段(심체무형무단)
마음의 본체에는 모양도 구분도 없다.
9. 斷除不二(단제불이)
끊어 없앰이 둘이 아니다.斷常不二
* 단견 : 세상만사가 무상하듯 사람도 한번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 공무(空無)로 돌아간다는 그릇된 견해
* 상견 : 세계나 모든 존재, 인간의 자아가
실재로 영원히 존재한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
丈夫運用堂堂(장부운용당당)
대장부의 움직여 씀은 당당하여,
逍遙自在無妨(소요자재무방)
오고 감에 자재하여 막힘이 없다.
一切不能爲害(일체불능위해)
어떤 것도 방해가 될 수 없으니,
堅固猶若金剛(견고유약금강)
굳기가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다.
不著二邊中道(불착이변중도)
두 가장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가운데 길을 가며,
소然非斷非常(소연비단비상)
자재하여 끊어짐도 아니고 이어짐도 아니다.
五欲貪瞋是佛(오욕탐진시불)
다섯 가지 욕망과 탐내고 성냄이 바로 부처이며,
地獄不異天堂(지옥불이천당)
지옥과 천당이 다르지 않다.
愚人妄生分別(우인망생분별)
어리석은 사람은 망녕되이 분별을 내어,
流浪生死猖狂(유랑생사창광)
삶과 죽음을 흘러 다니며 어지럽게 미쳐 날뛴다.
智者達色無碍 (지자달색무애)
지혜로운 자는 색(色)에 통달하여 장애가 없으나,
聲聞無不恛惶(성문무불회황)
성문(聲聞)은 혼란스럽게 헤매고 있다.
法性本無瑕예 (법성본무하예)
법(法)의 자성(自性)에는
본래 허물과 장애가 없는데도,
衆生妄執靑黃(중생망집청황)
중생이 망녕되게 집착하여 푸르니 누르니 하네.
如來引接迷愚(여래인접미우)
여래는 어리석은 중생을 이끌기 위해,
或說地獄天堂(혹설지옥천당)
지옥이나 천당을 말하기도 하지만,
彌勒身中自有(미륵신중자유)
미륵불이 자신 속에 본래 있는데,
何須別處思量(하수별처사량)
어찌 딴 곳에서 헤아릴 필요가 있는가?
棄却眞如佛像(기각진여불상)
본래 있는 그대로의 부처의 모습을 버렸으므로,
此人卽是顚狂(차인즉시전광)
이 사람이 곧 뒤집어져 미쳐버린 것이다.
聲聞心中不了(성문심중불료)
성문(聲聞)은 마음 속에서 깨닫지 못했으므로,
唯只진逐言章(유지진축언장)
오직 언어 문자를 뒤쫓을 뿐이다.
言章本非眞道(언장본비진도)
언어 문자는 본래 참 도가 아니니,
轉加鬪爭剛彊(전가투쟁강강)
싸움만 더욱 거세게 만든다.
心裏蚖蛇蝮蝎(심리원사복할)
마음 속에 살모사와 독사가 있으니,
螫著便卽遭傷(석착변즉조상)
쏘아 붙이면 바로 상처를 입는다.
不解文中取義(불해문중취의)
글자 속에 있는 뜻을 취할 줄 모르면,
何時得會眞常(하시득회진상)
어느 때에 참되고 영원한
진리를 알 수 있으리오?
死入無間地獄(사입무간지옥)
죽어서 무간지옥에 들어가,
神識枉受災殃(신식왕수재앙)
정신과 의식이 헛되이 재앙을 받는다.
10. 眞俗不二(진속불이) 진리와 세속이 둘이 아니다
法師說法極好(법사설법극호)
법사(法師)는 설법을 지극히 잘 하지만,
心中不離煩惱(심중불리번뇌)
마음 속에서 번뇌는 여의지 못하고,
口談文字化他(구담문자화타)
입으로 문자를 말하여 남을 교화하지만,
轉更增他生老(전갱증타생노)
오히려 그들의 생로병사만 더욱 증가시킨다.
眞妄本來不二(진망본래불이)
진심과 망상은 본래 둘이 아닌데,
凡夫棄妄覓道(범부기망멱도)
범부는 망상을 버리고 도를 찾는다.
四衆雲集聽講(사중운집청강)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모여 강설을 듣고,
高座論義浩浩(고좌논의호호)
높은 강단에 서서 뜻을 논의하는 것이 드넓지만,
南座北座相爭(남좌북좌상쟁)
남쪽 강단과 북쪽 강단이 서로 싸우고,
四衆爲言爲好(사중위언위호)
사부대중은 말하기도 하고 좋아 하기도 한다.
雖然口談甘露(수연구담감로)
비록 그렇게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心裏尋常枯燥(심리심상고조)
마음 속은 늘 매말라 있네.
自己元無一錢(자기원무일전)
자기에게는 원래 한 푼도 없으면서,
日夜數他珍寶(일야수타진보)
밤낮으로 남의 돈만 헤아리고 있구나.
恰似無智愚人(흡사무지우인)
바로 지혜 없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아서,
棄卻眞金擔草(기각진금담초)
진짜 금은 버리고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다.
心中三毒不捨(심중삼독불사)
마음 속에서 탐진치를 버리지 못하면,
未審何時得道(미심하시득도)
어느 때에 도를 얻을지 알 수가 없다.
11. 解縛不二(해박불이) 풀리고 묶임이 둘이 아니다
律師持律自縛(율사지율자박)
율사(律師)는 계율을 지켜 스스로를 묶는데,
自縛亦能縛他(자박역능박타)
스스로를 묶는 자는 또한 남도 잘 묶는다.
外作威儀恬靜(외작위의염정)
밖으로는 행동거지가 조용하고 고요하지만,
心內恰似洪波(심내흡사홍파)
마음 속은 마치 큰 파도가 치는 것 같다.
不駕生死船筏(불가생사선벌)
생로병사의 뗏목을 타지 않고,
如何度得愛河(여하도득애하)
어떻게 애욕의 강을 건널 수 있으랴?
不解眞宗正理(불해진종정리)
참된 근본의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하면,
邪見言辭繁多(사견언사번다)
삿된 견해와 말만 어지럽게 많을 뿐이다.
有二比丘犯律(유이비구범율)
두 비구가 계율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便却往問優波(변각왕문우파)
곧 우파리(율사)에게 가서 묻는다.
優波依律說罪(우파의율설죄)
우파리는 계율에 따라 죄를 설하지만,
轉增比丘網羅(전증비구망라)
비구의 번뇌만 더욱 증가시킨다.
方丈室中居士(방장실중거사)
좁은 방 안에 살고 있는 거사(居士)인,
維摩便卽來訶(유마변즉래가)
유마(維摩)가 곧 와서 꾸짖으니,
優波默然無對(우파묵연무대)
우파리는 입을 다물고 대답 못하고,
淨名說法無過(정명설법무과)
유마의 설법에는 허물이 없다.
而彼戒性如空(이피계성여공)
저 계율의 자성(自性)은 허공 같아서,
不在內外娑婆(불재내와사바)
안팎의 사바세계 어디에도 있지 않다.
勸除生滅不肯(권제생멸불긍)
권하노니 생멸을 제거하여 긍정치 말라.
忽悟還同釋迦(홀오환동석가)
문득 깨달으면 진실로 석가모니와 같을 것이다.
12. 境照不二(경조불이) 경계와 비춤이 둘이 아니다
禪師體離無明(선사체리무명)
선사(禪師)는 몸소 무명(無明)을 벗어났으니,
煩惱從何處生(번뇌종하처생)
번뇌가 어디에서 생길 것인가?
地獄天堂一相(지옥천당일상)
지옥과 천당이 하나의 모습이고,
涅槃生死空名(열반생사공명)
열반과 생사가 헛된 이름이다.
亦無貪瞋可斷(역무탐진가단)
끊어야 할 탐진치도 없고,
亦無佛道可成(역무불도가성)
이루어야 할 불도(佛道)도 없다.
衆生與佛平等(중생여불평등)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니,
自然聖智惺惺(자연성지성성)
자연히 성스런 지혜가 뚜렷하구나.
不爲六塵所梁(불위육진소염)
육진 경계에 오염되지 않으니,
句句獨契無生(구구독계무생)
마디마디 홀로 무생법(無生法)에 계합한다.
正覺一念玄解(정각일념현해)
바르게 깨달으면 한 생각에 현묘한 뜻을 이해하니,
三世坦然皆平(삼세탄연개평)
과거 현재 미래가 고르게 모두 평등하다.
非法非律自制(비법비율자제)
법에도 매이지 않고 율에도 매이지 않고 스스로 주관하니,
翛然眞入圓成(소연진입원성)
자재하고 진실하게 원만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絶此四句百非(절차사구백비)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단절하면,
如空無作無依(여공무작무의)
허공과 같이 만들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
* 사구(四句) : 사구분별(四句分別) - 존재에 관한 네 가지 분류법. 사물의 존재방식을 나누는 네 종류의 범주. 有 (있다) 無 (없다) 亦有亦無 (있으면서 없다) 非有非無(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백비(百非) : 수 많은 부정(否定). 사구(四句)를 근본으로 세워지는 비(非)의 범주. 또는 고정된 견해를 깨기 위해 끝없이 부정을거듭해가는 일. 영원한 부정.
13. 運用無 (운용무애) 부리고 씀에 막힘이 없다
我今滔滔自在(아금도도자재)
나는 지금 두루 두루 자재하여,
不羨公王卿宰(불선공왕경재)
왕후(王侯)와 장상(將相)도 부러워 하지 않는다.
四時猶若金剛(사시유약금강)
사시사철 금강석 같이 변함 없고,
苦樂心常不改(고락심상불개)
고통과 즐거움에도 마음은 한결같아 변함이 없다.
法寶喩於須彌(법보유어수미)
진리의 보물은 수미산 같이 크고,
智慧廣於江海(지혜광어강해)
지혜는 강이나 바다 같이 드넓다.
不爲八風所牽(불위팔풍소견)
어떤 바깥 인연에도 끌려가지 않고,
亦無精進懈怠(역무정진해태)
정진(精進)함에 게으름이 없다.
任性浮沈若顚(임성부침약전)
본성따라 자재하게 뜨고 가라앉으니
마치 뒤집힌 것 같지만,
散誕縱橫自在(산탄종횡자재)
이리 저리 종횡으로 막힘 없이 자재하다.
遮莫刀劍臨頭(차막도검임두)
설령 칼날을 목에 갖다 대어도,
我自安然不변 (아자안연불변)
나는 그대로 편안하여 분별이 없다.
14. 迷悟不二(미오불이) 헤맴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다
迷時以空爲色(미시이공위색)
헤맬 때에는 공(空)을 색(色)이라 여기지만,
悟卽以色爲空(오즉이색위공)
깨달은 때에는 색을 공이라 한다.
迷悟本無差別(미오본무차별)
헤맴과 깨달음이 본래 다름이 없으며,
色空究竟還同(색공구경환동)
색과 공이 결국 같은 것이다.
愚人喚南作北(우인환남작북)
어리석은 사람은 남쪽을 가리켜 북쪽이라 하지만,
智者達無西東(지자달무서동)
지혜로운 사람은 동쪽과 서쪽이 달리 없음을 잘 안다.
欲覓如來妙理(욕멱여래묘리)
여래의 묘한 이치를 찾고자 하는가?
常在一念之中(상재일념지중)
늘 한 생각 가운데 있도다.
陽焰本非其水(양염본비기수)
아리랑이는 본래 물이 아닌데,
渴鹿狂趁怱怱(갈록광진총총)
목마른 사슴은 미친 듯이 쫓아가느라 바쁘다.
自身虛假不實(자신허가불실)
스스로가 헛되이 진실 아닌 것에 의지하니,
將空更欲覓空(장공갱욕멱공)
공(空)을 가지고 다시 공을 찾으려 한다.
世人迷倒至甚(세인미도지심)
세상 사람들은 헤매고 뒤집힘이 지극히 심하여,
如犬吠雷哄哄(여견폐뢰홍홍) 짖을폐
개짖는 소리가 우레 같이 크게 들린다.
1. 無相頌(무상송)
◈ 선시 육조대사 무상송(無相頌) 1. 無相頌(무상송)
1.
說通及心通(설통급심통)
말에도 통달하고 마음에도 통달하니,
如日處虛空(여일처허공)
마치 태양이 허공에 떠오른 것 같구나.
唯傳見性法(유전견성법)
오직 본성(本性) 보는 법(法)만을 전하여,
出世破邪宗(출세파사종)
세간에 나타나 삿된 가르침을 부순다.
2.
法卽無頓漸(법즉무돈점)
법에는 돈(頓)과 점(漸)이 없는데,
迷悟有遲疾(미오유지질)
어리석음과 깨달음에 따라 느림과 빠름이 있구나.
只此見性門(지차견성문)
다만 이것은 본성을 보는 문일 뿐인데,
愚人不可悉(우인불가실)
어리석은 사람은 다 알지를 못한다.
3.
說卽雖萬般(설즉수만반)
말로 하면 수만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合理還歸一(합리환귀일)
이치에 계합하여서는 하나로 돌아갈 뿐이다.
煩惱暗宅中(번뇌암택중)
번뇌의 어두운 집 속에는,
常須生慧日(상수생혜일)
늘 지혜의 태양을 밝혀야 한다.
4.
邪來煩惱至(사래번뇌지)
삿됨이 오면 번뇌도 오고,
正來煩惱除(정래번뇌제)
바름이 오면 번뇌는 사라진다.
邪正俱不用(사정구불용)
삿됨과 바름을 모두 쓰지 않으면,
淸淨至無餘(청정지무여)
깨끗함이 지극하여 남김이 없다.
5.
菩提本自性(보리본자성)
깨달음이 본래 스스로의 본성인데,
起心卽是妄(기심즉시망)
마음을 일으키니 바로 거짓된다.
淨心在妄中(정심재망중)
깨끗한 마음은 거짓됨 속에 있으니,
但正無三障(단정무삼장)
단지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가 없다.
◈ 선시 육조대사 무상송(無相頌) 2
6.
世人若修道(세인약수도)
세속의 사람이 만약 도를 닦으면,
一切盡不妨(일체진불방)
일체가 조금도 방해되지 않는다.
常自見己過(상자견기과)
늘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보면,
與道卽相當(여도즉상당)
도(道)와 서로 딱 들어맞게 되리라.
7.
色類自有道(색류자유도)
중생들에게 본래 도(道)가 있으니,
各不相妨惱(각불상방뇌)
각자가 서로 방해하고 번뇌하지 않는다.
離道別覓道(리도별멱도)
도를 버리고 따로 도를 찾으면,
終身不見道(종신불견도)
죽도록 도를 보지 못할 것이다.
8.
波波度一生(파파도일생)
바쁘게 허둥되며 일생을 보내지만,
到頭還自懊(도두환자오)
결국은 스스로 괴로워하게 된다.
欲得見眞道(욕득견진도)
참된 도를 보고자 하는가,
行正卽是道(행정즉시도)
행함이 바른 것이 바로 도(道)이다.
9.
自若無道心(자약무도심)
스스로 만약 도를 향한 마음이 없다면,
闇行不見道(암행불견도)
어둡게 행동하여 도를 보지 못한다.
若眞修道人(약진수도인)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不見世間過(불견세간과)
세간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
10.
若見他人罪(약견타인죄)
만약 타인의 잘못을 본다면,
自罪却是左(자죄각시좌)
스스로의 잘못이 도리어 그 증거이다.
他罪我不罪(타죄아불죄)
타인은 잘못하고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我非自有過(아비자유과)
나에게 스스로 허물이 있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선시 육조대사 무상송(無相頌) 3
11.
但自却非心(단자각비심)
다만 돌이켜 스스로를 비난하는 마음이 되면,
打除煩惱破(타제번뇌파)
번뇌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憎愛不關心(증애불관심)
싫어하고 좋아함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長伸兩脚臥(장신양각와)
두 다리 쭉 뻗고 누울 수 있다.
12.
欲擬化他人(욕의화타인)
타인을 교화하고자 한다면,
自須有方便(자수유방편)
스스로 방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勿令彼有疑(물령피유의)
그가 의심을 가지도록 하지 않는다면,
卽是自性現(즉시자성현)
곧바로 스스로의 본성이 드러날 것이다.
13.
佛法在世間(불법재세간)
불법(佛法)은 세간에 있으니,
不離世間覺(불리세간각)
세간을 버리지 말아야 깨친다.
離世覓菩提(리세멱보리)
세간을 버리고 깨달음을 찾는다면,
恰如求兎角(흡여구토각)
마치 토끼에게서 뿔을 찾는 것과 같다.
14.
正見名出世(정견명출세)
바른 견해를 일컬어 출세간이라 하며,
邪見是世間(사견시세간)
삿된 견해를 일컬어 세간이라 한다.
邪正盡打却(사정진타각)
삿됨과 바름을 모두 물리쳐 버리면,
菩提性完然(보리성완연)
깨달음의 본성은 완전하여 흠이 없다.
15.
此頌是頓敎(차송시돈교)
이 게송은 돈교(頓敎)이며,
亦名大法船(역명대법선)
또 큰 진리의 배라 부른다.
迷聞經累劫(미문경누겁)
어리석은 자가 들으면 오랜 세월을 거치겠지만,
悟卽刹那間(오즉찰나간)
깨닫게 되면 찰나 사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