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회 동서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늙은 뱀 이야기
후두둑! 빗방울이 서더니 이내 굵은 유리막대 같은 빗발이 흙마당에 박히고 있다. 아침녁에 하늘이 무겁게 내려오고 제비들이 자맥질을 했다. 제비들은 마당을 스칠 듯 내려왔다 빙글 돌며 위로 솟구쳤다. 오후로 들어서자 비가 시작되었고 이제 빗발은 흙을 튀기며 땅을 후벼 파고 있다. 송씨는 아랫채 부엌에서 불씨를 살리고 있다. 아궁이 속 도톰한 재언덕 속에 묻어 두었던 불씨를 아이가 동무를 불러내듯 가만 가만 불러낸다. 재를 헤치고 나즉하게 입김을 불어 불꽃을 키운다.
옅은 황토색 모래마당이 한지처럼 젖어든다. 대문간에 서 있는 배롱나무는 빗발의 성화에 잎을 떨구며 추레하게 서있다. 나무는 늦은 봄에서 여름의 끝자락 까지 새색시 입술처럼 섬세한 붉은 꽃을 뭉텅뭉텅 피워 올렸었다. 비를 피하려 낮선 집 처마를 찾아드는 남루한 길손 같은 저 나무에 언제 그런 화려한 날이 있었을까.
열어 놓은 대문으로 암록색 승용차가 젖은 흙을 짜작짜작 눌러 밟으며 느릿하게 들어온다. 차는 익숙하게 후진하여 배롱나무 아래 멈춰 선다. 차가 움직이는 기척에 젖은 잎들이 우루루 떨어진다. ‘끼이익!’ 사이드를 채우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우산도 켜지 않은 미향이 긴 머리를 출렁이며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송씨가 있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온다. 올굵은 감색 가디건에 빗방울이 가득하다.
미향은 솔가리들을 한 곳으로 모은 뒤 그 위에 풀썩 앉는다. 아궁이 속 불꽃이 펄럭 날아 오른다.
“야…… 따뜻하네! 엄마 불 때고 계실 줄 알았어.”
“젖은 채로 바닥에 앉으면 어쩌냐, 겉옷이라도 벗고 앉지……”
아궁이 앞에 가늘고 흰 열 개의 손가락을 활짝 펴고 불을 쬐는 미향의 얼굴에 불그림자가 닿는다. 불그림자는 미향의 얼굴과 연기윤이 검게 오른 천정과 벽을 너울너울 오르내린다.
“엄마, 진대는?”
“그 아이도 나이가 드니 비오는 날은 움직이기 싫은가…… 어제 저녁부터 안 보이네. 옆
집을 갔는가……”
송씨의 오래된 집은 도시 한 가운데 있다. 완만한 오르막을 감아 도는 6차선의 도로를 가운데 두고 맞은편은 유명브랜드의 대단지 아파트가 있고 집 뒤로는 산언덕이 이어져 있다. 산은 사열하는 군인들처럼 꼿꼿하게 선 편백나무들로 가득하다. 편백숲은 두 개의 산능선을 넘어 수목공원과 닿아있다. 사정을 모르는 채 도로를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공원으로 가는 굽은 길의 어귀일 뿐이고, 조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위세당당한 어느 가문의 부속절이 있는 정도로만 안다.
미향이 초등학생이던 이십여 년 전, 산 중턱에 있던 작은 절 화지사는 송씨의 집 앞쪽으로 옮겨 앉았다. 애초에 재실관리를 겸해서 세워진 절이라 문중의 결정에 따라 속세로 한발 더 내려온 것이다. 도로와 접한 곳에 육 층짜리 종친회관이 세워지고 넓은 주차장이 확보되었다. 주차장이 끝나는 곳에서 얼마간의 길을 지나면 크고 웅장한 두 채의 재실이 있고, 진입로 좌우로 늘씬한 편백이 서 있다. 재실이 가까워지면 낮은 키의 불두화와 푸른 수국이 편백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덕분에 재실 대문은 한층 높고 견고해 보인다. 가슴에 커다란 태극을 그려 넣고 가문의 위세는 제 한 몸으로도 충분히 말할 수 있다는 듯 자못 당당하다. 반면 뒤에 있는 화지사는 아담하고 정갈한 세 동의 건물이 낮으막하게 엎드려 있다. 올망졸망한 모양새가 마치 재실의 부속건물처럼 보인다. 그 뒤로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 화자사 담장을 따라 이어져 있고 길이 끝나는 곳에 기억자형의 기와집이 산을 등지고 있다. 위치상으로는 화지사 담장을 넘으면 곧바로 송씨의 집이지만, 재실에 가리고 절 뒤에 숨어버린 이 집은 세상과 멀어진 오지가 되어 산그늘에 잠겼다.
비가 오는 날이면 ‘조선천지에서 비 오는 풍광은 우리집이 최고’라며 이 산기슭 집으로 미향이 들어서곤 했다. 암록색의 작은차를 몰고 흙탕물을 튀기면서. 송씨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며 말한다.
“나가자. 차 한 잔 마셔보자, 비가 오는구나.”
송씨는 사그라진 불더미에서 빨간 숯덩이 몇 개를 모아 도톰하게 재를 덮고 몽당비로 부엌바닥을 싹싹 쓸어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다시 물바가지를 들고 아궁이 앞을 빙 돌아가며 물을 찍어 뿌린다. 차 준비를 하러 안채로 건너가는 미향의 등 뒤로 혼잣말을 하는 송씨의 목소리가 닿는다.
“옛날어른들이 그랬다. 단정치 못한 여자가 이웃으로 불씨 얻으러 다니고, 정갈치 못한 여자가 재 간수를 잘못해 부엌 태우고 헛간 태운다고, 불씨도 생명이라…… ”
이제는 물려받을 이 없는 불씨를 여전히 간수하는 늙은 엄마, 미향의 마음은 물속의 녹말처럼 가라앉는다.
받침접시 없는 머그잔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아랫채로 나오던 미향은 부엌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뒤안으로 넘어가는 부엌 뒷문에 뱀이 한 마리 보인다. 한 뼘이 채 안 되는 낮은 문지방에 굵은 뱀이 몸을 걸치고 있다. 누르스름한 빛깔에 등을 따라 연한 쑥색의 얼룩무늬가 이어져 있고 머리가 뭉툭한 낮 익은 뱀이다. 몸을 두 겹으로 접어서 머리와 굽은 허리를 부엌 쪽으로 늘이고 있다. 미향은 빙긋이 웃는다.
“엄마 진대 저기 있네, 부엌 뒷문에”
그사이 쪽마루에 나와 앉은 송씨는 무심히 말한다.
“날씨가 서늘하니 따뜻한 곳을 찾아 왔겠지.”
그들 모녀가 진대라고 부르는 이 구렁이는 얼마나 오래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미향이집을 떠나기 전 부터 이 집 마당식구로 함께 살고 있다. 개나 소처럼 곰살맞게 사랑을 받는것도, 먹을 것을 주어 키우는 것도 아닌, 그저 한 집에서 서로에게 성가시지 않고 제 편한대로 살아오고 있었다. 뱀은 여기뿐 아니라, 이웃한 화지사와 인적 없는 재실, 집 뒤의 산언덕까지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지만 송씨의 집을 제 집 삼은 듯 어디를 갔다가도 꼭 여기로 돌아오곤 했다.
집이 자리한 곳이 산기슭이라 미향에게 뱀은 익숙한 동물이었다. 그렇지만 친근한 동물도 못 되었다. 어릴 때는 이 긴 짐승과 엄마가 말을 주고받는 것이 싫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알면 중세처럼 마녀사냥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조바심도 났었다. 절집아이라는 학교친구들의 놀림도 싫었다. 미향은 고등학생이 되자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을 가면서 집을떠나왔다. 어머니 송씨 역시 성장한 딸이 산기슭 외딴집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팍팍한 하루일과를 마치고 혼자 사는 아파트로 돌아가노라면 바람에 흔들리는 시누대가 생각났다. 여름밤 산언덕을 뽀얗게 감싸 안던 천리향 향기도 그리웠다. 흘러내리는 기와장 사이로 와송이 솟아오르는 낡은 집도, 얼굴만큼 큰 꽃을 툭툭 터트리던 목단도, 마당을 천천히 기어가던 뱀의 뭉툭한 얼굴도 모두 그리웠다.
하지만 진대가 모두에게 친근한 존재는 못되었다. 큰 올케는 뱀을 처음 보고 비명을 지르며 기겁을 하였고, 마루 위를 기어가는 진대의 모습을 본 작은 올케는 아예 그 자리에 까무러쳤다. 뱀을 영물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러한가, 명절이나 휴가에 올케들이 오게 되면 진대는 그들이 갈 때 까지 흔적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오래 전 부터 진대를 보아온 미향이나 송씨가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당 한 가운데 배를 짤짤 끌며 기어가기도 하고, 돌담에 너부러진 채 해바라기를 하고 있기도 했다. 화지사 스님들도 제 친구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절 마당을 구불구불 기어 다녔고, 양지바른 요사채 마루에 올라앉았다가 스님들이 보는 앞에서 아래로 툭 떨어지기도 했다. 어느 해 가을인가는 시래기를 삶거나 물을 데우는 허드레 무쇠솥 안에 몸을 감고 있었다. 스님들은 그 모양을 보고 진대처사께서 추위를 타신다며 껄껄대고 웃었고 그 이후로 솥을 사용하고 나면 솥뚜껑을 적당히 열어놓아 진대가 마음대로 들고 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가끔씩 진대는 온기가 남아 있는 솥 속에 슬그머니 들어갔다가 솥이 식을라치면 느릿느릿 기어 나오곤 했다.
빗발은 여전하다. 모녀는 커피를 마시며 굵게 떨어지는 낙수를 보고 있다. 오랜 세월 사람에게 밟혀 온 모래마당에 자박하니 물이 차 있다. 얇게 고인 빗물 아래 금모래알들이 아른아른 흔들린다. 지붕처마를 따라 옴팍옴팍 파인 낙수받이 홈도 헐거운 구슬목걸이처럼 이어져 있었다. 지붕은 칠이 벗겨진 기와가 느슨하게 이어져 있고 곳곳에 희끄무레한 와송들이 탑처럼 삐쭉삐쭉 솟아올랐다. 처마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에는 바늘로 찌른 듯한 좀구멍이 가득하고, 서까래는 고깔모양의 말벌집을 등롱처럼 달고 있다. 회를 바른 벽도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붉은 황토살이 보인다. 모녀가 찻잔을 놓고 앉은 마루만이 살아 있는 듯 나무결이 반들거린다. 반면, 남향으로 서 있는 안채는 유리가 끼인 스텐새시를 말끔하게 달고있다. 새시 안쪽으로 폭 좁은 소나무판자로 길게 마루가 깔린 것은 예전 그대로지만, 나머지는 모두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송씨는 안채를 수리하며 말했다. ‘아랫채는 그냥 두자. 불때는 아궁이를 하나는 남겨 두어야지, 방바닥 밑으로 물호수가 깔리는 것도 반갑잖아. 나야 천주님 믿는 사람이라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옛날사람들은 집터나 묘터를 잡을 때 밑에 물이 있나 없나 살피고 마른땅을 명당이라 쳤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부러 물을 깔고 있
으니, 세월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만……’ 그래도 송씨는 꼼꼼히 챙겨가며 집을 고쳤다. 이제는 현대식이 익숙해져버린 자식들 불편하지 말라고, 무엇보다 시집 온 며느리들이 고생할까 부엌을 시작으로 화장실까지 말끔하게 바꾸었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송씨는 대부분의 생활을 아래채에서 했다. 밤이 되면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까맣게 자리가 탄 아랫목에서 잠을 자곤 했다.
이끼옷을 입은 돌담장은 비를 머금고 더 무거워 보인다. 담장 아래는 생기를 모두 소진해버린 맨드라미며 금숭화 따위의 여름 화초들의 웅숭거리며 떨고 있다. 제철인 당국화만 가느다란 목 위에 꽃송이를 달고 있다. 팥죽색과 청보라색의 꽃들이 빗발에 고개를 잘랑잘랑 흔들며 서 있다. 추워 보인다. 언제까지고 정물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마당으로 우산을 받쳐 든 스님이 들어선다. 디딤돌을 밟고서 곧장 모녀가 앉은 아래채로 온다. 회색승복 안에 몸이 들어있기나 할까. 대님을 맨 발목이 한 줌도 안 돼 보인다.
“하하! 모녀가 다도를 즐기고 계셨구랴.”
“다도는 무슨 다도, 그저 커피 한잔 마시고 있는 중이지요.”
송씨는 들이킨 커피를 목울대를 눌러 급히 삼키고는
“아이고! 저놈의 우산 금방 다시 젖을텐데 털기는 왜 터시는지……”
죽담 위에 올라서서 우산을 터는 스님에게 역정을 낸다. 이웃한 화지사의 정운스님이다.
미향을 보는 정운스님의 눈이 가늘가늘해진다.
“집으로 가려는데 미향이보살 차가 보이기에 들어 왔지요.”
미향도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며 말했다.
“스님도 커피 드려요? 아니면 녹차를 드릴까요?”
“아무래도 같은 향에 취하는 게 좋을 것 같구만 핫하.”
미향은 차를 준비하려 건너가며 아래채 부엌을 들여다본다. 진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자세로 걸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한없이 불편한 자세인데 뱀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경우에 따라 몇 시간이고 그냥 있기도 했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수가 투명한 유리발을쳐 놓았다. 발 너머로 보이는 스님과 엄마는 무언극을 하고 있다. 진대는 들리지 않는 풍경을 감지해 내려는 듯이 혀를 널름대며 여전히 부엌 턱에 몸을 걸치고 있다.
“미향이 보살은 비 덕분에 또 왔는가?”
딸깍! 받아 든 찻잔을 마루에 놓으며 정운스님이 말한다. 쟁반을 들고 선 미향을 올려다
본다. 눈가에 잔주름이 모이고 홀쪽한 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김보살님은 좋겠구랴, 이렇게 비가 오면 따님과 티타임도 하시고오……”
“아이고 스님! 우린 보살이 아니요. 나는 천사요 천사, 저 아이는 미카엘라고요!”
송씨는 고함을 치듯 자신들의 영세명을 정운스님 귀에 외친다.
“보살이 달리 보살이요? 중생을 귀히 여기니 보살이지요. 게다가 보살님들 묵주 굴리는
것과 우리네 염주 굴리는 게 무슨 차이가 있소? 맞지, 미카엘라보살?”
오래 전, 미향의 아버지는 커다란 등에 조그만 미향을 붙여 업고 정운스님을 찾아 화지사로 오곤 했다. 어린 미향은 얼굴을 온통 덮어 내리는 노릇한 잔머리 속에 까만 눈망울이 반짝이는 귀여운 아이였다. 통통한 작은 손으로 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 정운스님을 바라보며 방긋이 웃었다. 미향을 절 마당에 내려놓고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었다. 미향은 마당을 자박거리며 철따라 감꽃을 주워 먹기도 하고 떨어진 단풍잎을 모으기도 했다. 여름이면 자주닭개비의 꽃몽오리를 콕콕 눌러 꽃물을 짜며 놀았다. 절식구들은 손과 옷을 파랗게 물들이고 노는 미향의 작은 입에 간식거리들을 넣어 주곤 했다.
미향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떴다. 친구가 떠나자 정운스님도 화지사를 떠났다. 칠팔 년을 떠돌던 정운스님은 문중절인 화지사로 다시 돌아왔고, 그 해 가을 먼저 간 친구를 대신해 미향의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를 따라왔다. 정운스님은 미향의 손을 잡고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손목에 찍어주는 별도장도 미향과 같이 받아 찍었고, 공책 두 권을 주는 줄 앞에도 나란히 서서 기다렸다. 정운스님은 소매자락 아래 자기손목을 만져본다.
“약공양하고 오시오? 이 우중에?”
송씨는 정운스님의 상념을 툭 깨어버린다.
“약공양은 무슨 약공양, 보살님이 저기 저놈의 진대를 잡아서 고아 주면 그때나 약공양을 들까. 하지만 중생을 귀히 여기는 안젤라보살이 진대를 고아줄리 만무하니 아무래도 내 평생에 약공양은 틀렸지 싶소!”
“스니임…… 진대 듣겠네, 저기 부엌 문지방에 아직 있는데.”
미향은 새까만 눈썹을 미간 사이로 모으며 찡그렸고 송씨는 퉁명스레 되받았다.
“스님이야 약공양 안 하셔도 신수가 훤 허시니 괜찮소 괜찮아. 나 같은 안늙은이가 걱정
이지…… 하기야 뭔 걱정이 되겠소? 이제는 가는 것도 반가운데……”
송씨의 말꼬리가 아련하다. 언제부터인가 그랬다. 흐릿한 새벽안개 속에 잠이 깨어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혼자 누웠노라면 그랬었다. 이제는 땅 위의 수고를 그치고 싶었다. 운동을 겸해 마른삭정이를 주우러 산을 오를라치면 좀 떨어져 누운 남편에게 가보곤 했다. 아스팔트가 녹 듯 찐득하게 가슴이 녹아나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이제는 무심하고 담담했다. 그때 정운스님이 남편의 자리를 잡아 주며 이러저러하니 여기가 정처사 신후지지로 적격입니다 하고 말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이유들에 마음이 기울지는 않았지만 근자에 와서는 남편의 누운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찻잔을 쥐고 있던 미향의 손이 가만히 정지해 있다. 눈으로는 비 내리는 마당을 보고 있지만 귀는 두 노인의 이야기에 쏠려 있다.
“그러니까 스님! 말 난 김에 얘기하리다. 내가 천당 가고 나면 이 집을 헐어주시오. 스님도 그랬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말해 왔잖소? 우리 집이 양택자리로 명당이라고, 나야 그런말에 별 신경이 안 쓰이더라만…… 여하튼 헐어서 칸 수 많은 집을 지어 주시오. 좋은 터에 여럿 살면 그것도 보시 아니겠소? 하기는 올 사람이나 있을런지. 누가 나처럼 절 뒤에 갇혀살고 싶겠소? 문중에서 승낙을 할 것 같지도 않소만…… 그래도 모를 일이니.”
“보살님은 아직 까딱없으시니 그런 걱정일랑 나중에 해도 늦잖소. 가실 준비를 벌써 하오? 애틋한 정도 없으실텐데 정처사에게…… ”
“아이고오! 정운스님은 득도 하시려면 아직 한참 남은 모양이오. 평생 봐 온 사람 신수도 모르시니 여태 목탁은 뭐 하러 치셨을꼬?”
“득도요? 산속으로도 아니가고 이렇게 대로변에서 자동차소리를 노래삼아 밤낮 듣고 있으니 득도는 애초에 생각지도 않았지요. 엇허! 그리고 정처사는 극락에 있고 보살님은 천당에 가실테니 가봐야 만나시지도 못하오!”
“극락이나 천당이나, 염주나 묵주나…… 어찌되던 간에 나중 일이나 부탁 좀 해 놓읍시다.”
“엄마는 별소리를 다 하시네, 노망이라도 하실라나 봐!”
미향은 발끈하며 송씨를 흘겨본다.
“저런 저런…… 이럴 때는 영락없이 제 아버지 얼굴이지! 굵은 눈썹 꾸불거리는 것 봐라. 아이고 그 험한 세월들! 골골대는 남편에 아이 넷에 마누라는 고생으로 날이 새고 시름으로 날이 지는데, 정작 본인은 어찌 그리 편하시던지…… 지금 저 아이처럼 눈썹 꾸부리고 앉으면 몇 시간이고 바둑판만 들여다 보시지.”
미향은 빈 찻잔들을 챙겨들고 부엌으로 향한다.
“그러니 정운스니임! 그때나 지금이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지요…… ”
두 노인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녹아든다. 불을 땐 부뚜막은 따뜻하고 손때에 절어 반들반들 하다. 미향은 찻잔들을 씻어 놓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문지방에 걸터 쉬던 진대는 정운스님의 약공양타령에 화가 났는지 가고 없다. 부지깽이를 찾아 쥐고 재무덤 속을 이리저리 헤친다. 숨어있던 불씨가 빨간 맨살을 드러낸다. 입김을 훅 불어 넣고 솔가리를 한웅큼 아궁이 속에 뿌려 넣는다. 짜그르르…… 마른 솔잎들은 이내 타 들어간다. 잠시 뒤 송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향아! 여기 스님 가신단다.”
옷을 털고 일어서는 미향 앞에 정운스님이 먼저 와 있다. 머리를 깎았지만 대머리가 확연하게 표 나는 정운스님을 보며 미향이 빙그레 웃는다. 귀 뒤편으로 짧은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인다.
“거 보세요 스님! 진대가 저기 있었는데 스님이 약공양 타령하시니 도망가고 없는거……”
미향이 손가락으로 부엌 뒷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가면 어딜 갔을라고, 여기가 제 집인데. 그리고 그 노래 부른지는 십 년도 넘었으니 걱정말아라.”
“스님, 엄마가 하시는 말 마음에 담아두지 마셔요.”
정운스님은 끙 하고 돌아선다.
“미향이도 집에 오고 진대도 제 구멍으로 들어갔으니 나도 내집에 가야겠구나.”
돌아서서 우산을 펼치며 덧붙인다.
“우리집에도 언제 한번 오너라.”
잠시 뒤 고동색 체크무늬 우산이 담장 너머로 느릿느릿 흔들리며 내려간다.
도무지 살가워 보일 것 같지 않던 그 흉물스런 짐승이 송씨에게 다가왔다. 한여름 더위가 정점에서 꺽이고 장독대 옆 돌배나무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풋배가 열릴 때였다. 송씨의 가슴 밑바닥에 잠긴 굳은 눈물을 천천히 풀어내며 뱀은 그렇게 다가왔다.
송씨의 집은 산언저리의 지형 그대로 터를 잡고 지은 집이라 안채 뒤편으로 얕으막한 언덕이 담장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곳에는 쪽파와 풋고추 상추, 근대 등의 푸성퀴를 심는 작은 채전이 있고, 반대편 귀퉁이에는 모과나무도 두 그루 서 있다. 담장 아래 습한 곳에는 노랑창포와 자주빛붓꽃이 무성하게 자라 올랐다.
붓꽃이 한창 피는 여름, 쪽파를 뽑으려 채전으로 향한 송씨는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붓꽃 무더기 아래서 커다란 뱀을 본 것이다. 놀란 마음에 쫓아버리려고 부지깽이를 들고 다시 나왔으나 뱀은 평소에 보았던 뱀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묘한 얼룩무늬가 천천히 맴을 돌고 있었다. 사람의 기척을 느꼈는지 뱀은 맴돌기를 멈추고 머리를 세웠다. 산꿩의 알만한 갸름하고 하얀 알을 대 여섯 개 쯤 모아 주위를 빙 둘러 감고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송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뱀은 알을 지키고 있었다. 뒷담 아래 축축한 붓꽃 무더기 아래서 알을 품고 있던 뱀과 눈을 마주치자, 송씨는 들고 있던 부지깽이를 등 뒤로 감추었다. 부엌으로 들어온 송씨는 가슴을 안고 오래 오래 소리죽여 울었다. 오년 전 홍역으로 떠나보낸 첫아이를 생각하며 울었다. 저 뱀처럼 새끼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울었다. 그날 이후 송씨는 한동안 뒤안 출입을 하지 않았다. 큰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얼마 후 뱀은 말캉하고 하얀 알껍질만 남겨둔 채 떠났고, 그 여름이 끝날 무렵 송씨는 태기를 느꼈다. 첫아이를 보내고 오래 기다려온 아이였다.
그 뒤로 송씨는 뱀을 보게 되면 놀라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가끔씩 큰 구렁이를 만나면 붓꽃무더기 아래의 그 뱀인가 반가워하며 자식들의 안부를 묻곤 했다. 적의가 없는 것을 느껴서일까, 그 해 뱀이 많아서 일까 그날 이후 송씨의 집은 뱀이 흔했고, 그 중에서 자주 보이는 큰 구렁이에게는 진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너는 얼마나 깨끗한 짐승인지…… 언제보아도 티끌하나 없이 정갈하고, 먹는 것도 그렇지 아무리 많이 있어도 배고프지 않으면 개구리 한 마리 안 잡아먹는 너는 참 어진 짐승이라.”
“진대야, 진대야! 사람은 해롭게 하지 말고 양식 축내는 곳으로만 다녀라.”
진대라 불린 뱀은 알았다는 듯 몇 번씩이나 혀를 널름널름하며 대답을 했고, 약속을 지켜주었는지 뱀이 겨울잠을 자러가기 까지 집 안에 쥐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후 새댁이었던 송씨가 할머니가 되기까지 진대라 불린 뱀도 몇 대를 이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덕분에 송씨는 화지사 스님들 사이에 진짜보살로 통했다. 그 호칭은 미향을 따라 독실한 카톨릭신자가 된 이후에도 송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그렇게 불려왔다.
이듬해 늦봄, 옷을 단출하게 차려입은 송씨는 오래 된 자신의 집을 떠났다. 미향은 많이 울었다. 장례와 삼우제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오빠들을 마중하며 울었다. 정운스님의 얼굴을 보고 또 울었다.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있는 엄마의 붉은 등을 보고 가슴을 녹여가며 눈물방울을 쏟아냈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영화나 드라마 속의 고상한 상주들처럼 그렇게 우아하게 슬퍼 할 수는 없었다.
삼우제를 끝낸 미향은 화지사 요사채 한 칸으로 옮겨왔다. 송씨의 장례일정 내내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던 미향은 이틀을 내리잤고 그 잠의 끝머리에서 부터 오래 앓아누웠다. 그 사이 화지사 섬돌 사이에서 자주닭개비가 피고 있었다. 연초록 난초잎이 뻗어 오르고 가운데 꽃대가 솟았다. 꽃대 끝에 조롱조롱 작은 꽃봉오리들이 맺히고 석장의 청보라색 꽃잎과 노란꽃술을 가진 꽃들이 피어났다. 늦은 아침, 헐렁한 옷을 걸친 미향은 죽담아래 쪼그리고 앉아 하나, 둘 꽃봉오리들을 눌러 손바닥 위에 푸른 잉크빛 꽃물을 받았다. 손바닥에 담긴 푸른 꽃물은 천천히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국에 말아 놓은 밥도 물을 마셔가며 겨우 삼키고 있다. 먹는 행위를 잊어버리려 일부러 텔레비전에 신경을 둔 채 밥알을 삼키고 있다. 이틀 뒤 집을 헐어내기로 했다. 오래된 엄마의 살림살이들은 간직할 몇 가지만 남겨두고 모두 처리를 했다. 태울 것은 태우고 버릴 것은 버렸다. 안전화를 신은 작업인부들이 사전작업을 위해 어제부터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내일쯤에는 포크레인도 올라 올 것이라 했다. 머리가 아프고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아침까지 견딜 정도의 칼로리는 섭취했다는 생각에 수저를 놓는다.
산기슭의 밤은 아직 싸늘하다. 오소소 돋는 팔의 소름을 손으로 문지르며 방으로 돌아온미향의 눈에 텔레비전 화면이 들어온다. 깍지 끼고 있던 양팔이 투둑 풀어져 내린다. 기다란 작대기에 굵은 뱀을 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주택가에 희귀한 능구렁이 출몰’이라는 자막이 뜬다. 굵고 긴 몸체와 뭉툭한 머리는 한눈에 보아서도 독사가 아님이 분명해 보이는데 남자는 필요 이상으로 작대기를 멀리한 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뱀은 별다른 저항 없이 축 늘어져 있다. 아직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려는 듯 꼬리만 조금 말았다 폈다 할 뿐이다. 분명히 낮이 익은 뱀이다. 텔레비전 화면이라 등 부분에 있는 푸르스름한 얼룩을 확인 할 수는 없었지만 뱀은 분명히 ‘진대’였다.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아니 몸처럼 마음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밤새 잠을 설치며 생각했고 날이 새면 곧장 그 동네로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미향은 점심때가 지나도록 방에 웅크리고 있다. 얼굴을 무릎에 묻고, 무릎은 두 팔로 감싸 안고 동그랗게 말려있다. 오후로 접어들자 바깥이 소란스럽다. 털컥대는 기계음이 들리고 크고 짧게 말하는 남자들의 목소리도 섞여 들린다. 미향은 손을 풀었다. 무릎도 풀었다. 자동차 키를 찾아 들었다. 화지사 담장을 돌아 천천히 내려온다. 커다란 사마귀 같은 포크레인이 주차장을 지나 편백길로 올라오고 있다. 미향의 집을 향하여 우둑우둑 올라오고 있다.
뉴스에서 알려준 곳은 멀지 않은 이웃 동네다. 도로를 따라 가면 완만한 커브를 돌아 버스정류장을 세 개쯤 지나야 하지만 집 뒤의 등산로로 넘어가면 바로 고개 아래에 있는 곳이다. 동네 과일가게에서 어제 뱀을 발견한 사람을 물었다. 또 몇 사람에게 더 물었다. 다시 차를 움직여 도시가 끝나가는 곳에서 진대를 만났다.
낮 선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슴이 보인다. 가지가 핀 뿔을 머리에 달고 낮선 사람을 잔득 경계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 노란색 유리눈알이 번득인다. 날개를 펴고 털을 부풀린 올빼미가 머리 위에서 내려다본다. 먼지 덮인 회색거북도 바닥에 굳어있다. 맞은편 선반에는 짙은 회색털의 족제비가 기다란 몸을 낮추고 숨을 곳을 찾고 있다. 족제비가 기어가는 선반 위 아래로 크고 작은 유리병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진대의 모습은 낮설다. 잔디가 깔린 담장 밑을 배를 짤짤 끌며 기어가거나, 부엌 문지방에 몸을 두 겹으로 걸치고 쉬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마알간 술이 담긴 유리단지 안에 양수에 떠 있듯이 가만히 잠겨 있다. 머리에서 한 뼘쯤 되는 부분은 많이 부풀어 오르고 피부도 벗겨져 있다.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래사용했던 몸은 어디에 어떻게 두어도 상관없는 듯하다. 바람소리 나는 혼은 푸른 수국덤불을 지나고, 허물어진 돌담장을 천천히 넘은 뒤 화지산 언덕길을 구불구불 기어오르고 있다. 차륵차륵…… 시누대 잎이 흔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