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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수탈
일본인들은 우리 문화재를 수집, 자신의 집을 꾸미는데 사용하곤 했다.
적산가옥 곳곳에서 우리 석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군산의 대표적인 문화재 수집상은 시마타니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이다.
어느곳에서 옮겨 왔는지도 모르는 석등, 석탑, 석물들이 남아있다.
일본인들이 누린 富의 공간
첫 번째 장소는 당시 군산으로 모여든 돈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구)조선은행이다. 2층 건물이지만 실제 높이는 4층과 같은 이 건물은 그 당시 군산 최대의 건물이었으며 동판을 이어 붙여 일본무사의 투구처럼 뾰족하게 만든 지붕이 인상적이다.
당시 군산 거주 일본인의 돈은 군산의 쌀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산에서 생산하고 군산으로 모여든 수많은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언제든 배가 닿을 수 있도록 뜬 다리를 만든 내항, 교역 물품을 관리하던 세관, 거대한 규모의 창고들, 화물운반을 손쉽게 하기 위해 항구까지 이어진 철로 등이 모두 쌀과 연관된 것들이다.
구)군산세관 본관 전시실에서는 당시, 쌀의 거래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부를 쌓은 일본인들은 군산에 그들만의 주거공간을 만들었다. 월명산이 바닷바람을 막아주어 아늑한 월명동, 신흥동, 금동, 금광동, 영화동, 장미동 일대가 그곳이다. 이곳에 히로쓰가옥과 동국사가 있다.
신흥동 히로쓰가옥은 일본 무사의 고급주택을 그대로 본 따 지은 목조주택으로 가옥의 보존상태가 우수하다. 부엌과 방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등 실내의 모든 목재는 백두산에서 가져다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영화 <타짜>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금광동에 자리한 월명산 동국사는 국내 유일의 일본사찰형식으로 지은 절집이다.
일본 조동종 승려 우치다가 1909년,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후 191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일본 에도시대 건축양식으로 지은 사찰의 외관은 수수하다. 지붕이 높고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연결한 복도 가운데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 모셔진 석가삼존불은 해방 후, 일본사람들이 모시던 부처를 모실 수 없다는 신도들을 위해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있던 불상을 옮겨 온 것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을 지낸 벽암 각성스님이 만든 삼존불상은 일본의 번영을 빌던 사찰과 묘한 대조를 보인다.
문화재청의 전국 사찰문화재 조사과정에서 삼존불상 안에 복장유물 333점이 확인되었다.
ㅇ 부잔교 (뜬다리)
군산내항은 금강하구와 중부 서해안에 자리한 지리적 특징으로 고려 때는 진성창이 자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칠읍해창이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해상교통로의 역할을 염두한 일본은 1899년 군산이 각국 조계지역으로 개항된 후 군산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1905년 기울어가던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1905~1910년)를 시작으로 1921년까지 많은 공사를 통해 연 80만톤에 달하는 수출입화물 하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일제는 수탈을 더욱 쉽게 하기 위하여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해야했는데 이를 위해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끔 설계하였으니 뜬다리 부두, 즉 부잔교라고 한다. (1933년 준공)
<부잔교...>
ㅇ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록문화재 제 374호)
1923년에 일제 식민지 정책의 총본산이었던 조선은행의 군산지점으로 건립되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때에 인질로 잡혀왔던 독일인들에 의하여 설계되었고 중국인에 의하여 시공되었다.
당시의 건축 상황에서 이와 같이 웅장한 건물이 경성 이외에는 없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외관은 2층이지만 본래 높이는 4층 건물 높이이다. 일설에는 구)조선은행 지하에 바다로 통하는 비상통로가 나있어 비상시 구명정을 타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 전한다.
1909년 대한제국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후 한일합방이 되자 총독부가 조선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조선총독부 직속금융기관 역할을 하다가 해방 이후에 조선은행은 한국은행으로 바뀌어 전주로 지점이 이전되었고 그 후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었다가 유흥시설로 사용 되던 중 화재로 겉모습만 남아 있다.
<금년 2월당시, 한참 공사중인 모습...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내부는 볼 수 없었다.>
ㅇ 구 일본18은행 군산지점
일본 18은행은 나가사키에 본점을 두고있던 일본 지방은행으로 조선에서는 1890년 인천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에 지점을 개설하였는데 군산에는 1907년 조선내 일곱번째로 개설되었다.
초기에는 대부업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싼 이자로 대출을 주고 이 돈으로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토지를 담보로 한 고리대금업으로 우리 농민들의 농토갈취가 많았다고 한다.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하여 설립된 수탈의 앞잡이 은행이다.
본관 뒤쪽으로 우측에는 2층 조적조의 금고 및 창고로 사용되는 건물이 있고 좌측으로는 2층의 일식 목조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복원공사는 마친듯 보였으나 내부는 볼 수 없었으며 가까이 있는 조선은행 지점과 더불어 안내시스템이 없었다.
아마 지금쯤은 잘 정리되고 내부전시를 포함, 문화해설사가 배치 되었으리라 본다.
<구 일본 18은행 군산지점 건물....>
<좌측의 2층 목조건물은 1930년대 건립된 무역회사... 2012년에 이전 개축하였으며 현재 '미즈카페'로 오픈하였다.>
ㅇ 구 군산세관 본관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87호)
1908년, 대한제국 순종 2년에 지어진 국내유일의 세관건물로 국내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이다.
(1. 구 군산세관 본관 2. 한국은행 본점 3. 서울역사)
건물의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당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불란서 사람 혹은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다는 설이 있다.
군산세관은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모두 헐리고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어 현재 호남관세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 군산세관 건물... 그 오른쪽에는 현재 군산세관이 있다.>
ㅇ 신흥동 일본식 가옥 '히로쓰 가옥' (등록문화재 제183호)
히로쓰 가옥은 일제 강점기 군산의 영화동에서 포목상을 하던 부협의회 의원 히로쓰 게쯔샤브로가 미곡유통업동으로 군산 임피에서 富를 이루고 지은 일본 武家의 고급주택으로 야시키 형식의 대규모 2층 목조 주택이다.
일본식 정원이 잘 꾸며진 이 가옥은 이 지역 대규모 일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존되었으며 부분적으로 낡고, 훼손된 부분이 있으나 대체로 보존 및 관리 상태는 양호하며 일반에게 공개되어 관람시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일부 증축된 부분과 수리된 부분이 확인되지만 군산시 내에서는 대규모 일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로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등 많은 영화가 촬영 된 곳이다.
히로쓰 가옥은 해방 후 敵産家屋 (적산가옥)으로 구 호남제분 이용구 사장 명의로 넘어가 오늘날까지 한국제분의 소유로 돼 있다.
주변에는 그밖에도 많은 일본식 가옥이 있지만 모두 공개된것은 아니라 들어가 볼 수 없다.
<히로쓰 가옥 외부 모습...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서 본 건물 외관.>
<건물 내부에는 낭하식 복도가 길게 놓였다. 반자라고 부르던 지붕...>
<건물 내부의 다다미 방... 미닫이로 된 수납공간 오시이레(왼쪽), 장식공간 도코노마(오른쪽)....>
<개인별로 향을 피우고 제단을 차렸던 공간으로 보이는 곳... 둥근 창문은 어딘지 중국 냄새가 난다.>
<ㄱ자로 꺾인 2층 건물... 그 접점부분에는 발산초등학교에서 보았던 금고형 창고건물이 보인다. 비슷한 구조/기능일것이다.>
長屋(장옥) (나가야)
일본식 건축물의 기본형태로 상가와 주택용도로 만들어졌으며, 한 건물에 2~6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연립가옥의 형태로 가구와 가구사이는 벽으로 구분되지만 현관은 가구마다 따로 있어 각 가정이 완전 독립적으로 생활 가능한 구조
町屋(정옥) (마찌야)
장옥과 유사한 공동주택 형태지만 장옥보다는 독립된 주거공간의 확보를 많이 하고자 하는 중류층의 사택 또는 관사 등의 형태로 전면의 폭이 장옥보다 넓어 일반적으로 1창 1현관 (2~4 가구) 및 2창 1현관 (2가구)의 구조
ㅇ 동국사 (등록문화재 제64호)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 일제 강점기인 1909년 내전불관화상이 개창하였고 대웅전은 1913년에 창건되었다.
당시는 금강사라 했으나 해방 후에 김남곡 스님이 인수하여 동국사라 이름지었으며 동국사는 개항 후 일본인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입된 그들의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땅에 정착하였는지 확인하기에 좋은 근대문화유산이다.
<동국사로 들어가는 길은 문화의길... 문학의 길로 조성되어 있다.>
<골목길을 가다보면 주택가로 이어진 동국사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동국사 문설주... 근대문화유산 동판이 설치되어 있고, 일제강점기때 흔적(글씨)들이 부분적으로 지워져 있다.>
<일본식 건물... 지붕 경사가 급한 본전(대웅전)과 옆으로 이어진 부속건물...>
<내부 불단은 한국식 절집과 동일하게 차려졌다. 밖에 있는 종루에 매달린 종은 일본식으로 달랑 매달린 모습이다.>
그밖에도 군산에는 당시 군산 부윤(시장)이 살던 관사가 남아 있다.
돈 방석에 앉으려면 군산부윤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산부윤은 선망의 자리였다고 하는데 1996년 보수를 거쳐 현재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정원에는 석등 등이 있어 일식정원의 형태를 볼 수 있고 내부에는 목조 계단을 통하여 2층의 방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방에는 오시이레와 도코노마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군산시 제 3청사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는데 해방이후 1950년대의 사진 자료에서 조달청사 건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관공서 건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동안 지어진 건물들은 일제 초반 서양의 고전적 경향을 모방하던 양식주의 경향에서 점차로 모더니즘 경향으로 변화하는데 군산시 제 3청사는 양식주의 경향이 모더니즘 경향으로 변화하던 과도기적인 단계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고 한다.
<암소 한마리 음식점이 된 군산부윤 관사... 군산시 제 3청사(오른쪽)는 현재 공개되지 않는듯 하다.>
또한 군산시의 월명산 자락 북쪽 끝의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 해망굴(등록문화재 제184호)가 있다.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1926년에 시작된 제 3차 축항공사를 통해 화물하차장 확대, 부잔교 추가설치, 창고건설 등이 수행되었고 해망굴도 이때 완공되었다. 길이 131m 높이 4.5m로 현재는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보행자만 통과가 가능하다.
Tip : 군산 맛집 이성당 빵집
68년(1945년 해방 이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1920년 군산시 중앙로에는 일본 시네마현 '이즈모시'의 지명에서 이름을 딴 ‘이즈모야'라는 제과점이 있었는데 '히로야 야스타로'라는 일본인이 주인이었다. 해방과 함께 군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서둘러 돌아가야 했고 그 자리에서 이성당은 시작되었는데 초대 사업주 '이氏' 성을 따서 ‘이성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빵을 만들 때 필요한 설탕, 밀가루등의 재료를 취급하던 삼영상사도 함께 운영하였고 당시 이성당 내부에는 우물도 있어 빵 반죽, 아이스케키 제조등에 사용하였다. 처음 이성당에는 빵이 없이 주로 과자와 사탕의 종류가 다양했고, 이후 제빵 기술을 배워온 기술자가 빵을 만들었다고 하며 직접 벽돌을 쌓아 오븐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전국에 소문이 나서 늘 줄서서 기다려야한다. 야채빵은 줄을 안서도 살수 있지만, 단팥빵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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