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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 설명
[신앙 유산] 하느님 중심의 새로운 윤리관 : 칠극(七克)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머리글
문자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큰 선물이다. 사람들은 문자를 가지고 문화를 창조하며, 그 문화를 보존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도 하느님의 선물인 문자를 통해 하느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나라에 천주교 신앙이 전래된 것도 문자를 통해서였다.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 서학서(西學書)가 조선에 전해지자 우리 지식인들은 이를 읽고 연구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때 전해진 서적들 가운데 우리 나라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와 판토하의 “칠극”을 들 수 있다. “천주실의”가 유교적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밝혀 준 책이라면, “칠극”은 그리스도교적 수양관과 인간관을 제시해 준 책이었다. 또한 “칠극”은 유교적 수양에 정진하던 우리의 지식인들에게도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던 책이었다.
“칠극”은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신도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어린 교회의 새로운 신도들은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윤리관을 확립하고 자기 수양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던 것이다. 한글로 번역이 되어 신도들에게 읽히고 있었던 이 책은 그리스도교적 윤리관과 삶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지은이는 누구인가
“칠극”을 지은이는 중국에서 선교에 종사하던 판토하(Didace de Pantoja. 龐迪我, 1571~1618년) 신부였다. 그가 중국의 마카오에 도착한 때는 l599년이었다. 이때가 우리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였다.
그는 중국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년)를 만나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는 1600년 마테오 리치를 따라 북경(北京)으로 가서 리치와 함께 문화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선교하기 그는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칠극”, “인류시원”(人類始原), “수난시말”(受難始末), “실의속편”(實義續編) 등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명(明) 나라 황실의 요청에 따라 천문과 역산(歷算)에 관한 저술 작업에 착수했다.
17세기 중국에 나와 있던 선교사들의 첫 과제는 중국인들에게 자신이 야만인이 아니라 훌륭한 문화 전통을 가진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시 중국에서 “제왕의 학문”(帝王之學)으로 존중받던 천문학을 연구, 이를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제시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로써 자신들도 중국인과 대등한 존재임을 인정받고자 했고, 또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에 놓여 있었던 중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의 조화를 생각하며 마침내는 보유론(補儒論)과 같은 적응주의적 선교 이론을 창출해 낼 수 있었다.
“칠극”의 가르침
판토하가 지은 “칠극”은 “칠극대전”(七克大全)으로도 불리었다. 이 책은 1614년 북경에서 7책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그 후 다시 1643년에 재판이 간행되었고 1798년에는 구베아 주교의 감준을 받아 3판이 발행되었다. 또한 1849년과 1873년에도 간행된 바 있었으며, 1857년에는 “칠극진훈”(七克眞訓)이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책으로 된 축약본이 발간되었다. 한편 “칠극”은 명나라 말기에 편찬된 “천학초함”(天學初函) 안에 포함되어 한자 문화권 안에서 더욱 널리 읽힐 수 있게 되었다.
“칠극”은 유럽어로는 “일곱 가지의 승리”(Les 7 Victoires)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이 제목 자체에서 암시되고 있는 바와 같아 이 책에서는 일곱 가지에 이르는 죄의 원인(七罪宗)을 극복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덕행 (七樞德)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칠극”의 요약된 내용을 우리의 순교자 윤지충의 말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윤지충은 1791년 전주에서 신문을 당할 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며 ‘칠극’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칠극은 이러합니다. 교만을 이기기 위한 겸손, 질투를 이기기 위한 애덕(愛德), 분노를 이기기 위한 인내, 인색을 이기기 위한 희사의 너그러움, 탐식(貪食)을 이기기 위한 절식(節食), 음란을 위기기 위한 금욕, 게으름을 이기기 위한 근면, 이 모두가 덕을 닦는 데 도움을 줌이 명백하고 정확합니다.”
판토하는 일곱 편으로 된 이 책에서 매편마다 성경 말씀을 자주 인용하고 있으며, 아우구스띠노나 프란치스꼬 등과 같은 성인 및 아리스토텔레스,세네카와 같은 현인들의 말들을 풍부히 제시해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나라의 이가환(李家煥, 1742~1801년)과 같은 인물도 그 적절한 비유에 일단은 감탄한 바 있었다. 판토하는 유럽의 스토아 철학이나 그리스도교 윤리론을 유가적(儒家的) 용어를 구사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는 개신 유학의 윤리관에서 기본이 되는 범주를 수용하여 그리스도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과 같은 그리스도교 고유의 가르침을 우선적으로 전하기보다는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구체적 삶 안에서 사악함을 극복하고 덕을 닦는 법을 먼저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접근하고자 했고, 이러한 그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신(神) 중심적 윤리관을 소개했다. 당시의 유가에서 강조하던 효제(孝悌)나 충신(忠信)과 같은 윤리관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윤리관이었지만, 칠극에서는 그 윤리의 초점을 하느님인 천주께 맞추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 내부에 적용되는 윤리도 하느님과 연결될 때만이 의미가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예를 들면 그는 유교의 인(仁)이라는 말을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란 개념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면서도, 인(仁)이란 사람들이 신적(神的) 사랑을 가지고 남을 사랑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바라볼 때에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렇듯 그는 유가의 용어를 가지고 그리스도교를 설명했던 것이다.
“칠극”의 전래
“칠극”이 우리 나라에 전래된 때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우리 나라의 학자들은 칠극에 관한 논평을 남기기 시작했다. 즉, 이익(李瀷, 1618~1763년)은 이 책이 유학의 극기설(克己說)과 한가지라고 전제한 다음 칠극의 내용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그 설명의 순서가 정연하며 비유가 적절하여 간혹 유학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에 안정복(安鼎福, 1712~1791년)은 이 책을 읽고 평하기를 칠극은 공자(孔子)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며, 그 안에 비록 심각한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취할 바가 못된다고 했다.
이익의 제자였던 홍유한(洪儒漢, 1726~1785년)은 1770년부터 천주교의 가르침에 따른 생활을 시도했다. 그가 실천했다는 윤리의 내용을 살펴볼 때 그도 칠극을 읽었으리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한편 1777년 주어사(走魚寺) 강학 때에 이벽(李檗)은 분명히 칠극을 소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회가 창설된 1777년을 전후하여 이가환, 정약용 등도 이를 읽고 있었다. 이렇듯 칠극은 교회 창설 초창기에 있어서 그 창설 작업에 참여했던 유교적 지식인들에 있어서는 필독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칠극”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이전까지 우리 나라 신도들의 윤리 생활을 이끌어 주고 그 수양에의 길을 가르쳐 준 대표적 서적이었다. 그 후 1850년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천주가사”에서도 우리는 “칠극”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칠극은 대체로 초창기 교회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1801년 정부 당국에서 ‘척사윤음’을 발표했을 때에도 칠극은 특별히 지적되어 공격당하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남은 맡
“칠극”은 하느님 중심의 수양 논리를 유교의 용어를 빌어 서술해 주고 있는 그리스도교 수양서이며 윤리서이다. 이 책은 18세기 이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서 주목받았고, 우리 나라 교회의 창설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책자였다. 이 책은 우리 나라 신도들의 이상적 윤리관의 구체적 내용을 오늘의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칠극”은 우리 나라 철학 사상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정약용은 그의 새로운 인간론을 전개할 때 “칠극”에서 제시한 인간론의 구조를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영명성(靈明性), 자주지권(自主之權)과 같은 용어까지도 그대로 수용하여 인간의 영혼에 대한 문제나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자유의 개념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칠극”은 교회 창설 초기부터 한글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글로 번역된 “칠극” 필사본들이 서울의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과 한국교회사연구소 등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필사본들이 작성된 연대를 현재로서는 정확히 밝혀낼 수 없다.
[경향잡지, 1993년 5월호]
칠극(七克)과 함께하는 사순 (1) 신앙선조들의 삶처럼 ‘사순적 일상’ 살아가야
‘넉 사(四)’자와 ‘열흘 순(旬)’자를 쓰는 ‘사순’은 그 기간을 40일로 지정한다. 하지만 우리 신앙 선조들의 사순은 꼭 40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일상의 삶이었다. 예수의 고통을 함께하며 죄의 뿌리를 끊어내려고 했던 조상들의 의지는 삶을 수양하는 신앙 지침서, 「칠극」을 통해 계속됐다.
가톨릭신문은 사순을 맞아 신앙 선조들이 교리서로 삼았던 칠극의 정신을 되돌아보고, 사순 6주간 칠극의 일곱 가지 주제별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이웃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기획이 사순의 첫 단추를 꿰며, 매년 돌아오는 ‘일상적 사순’이 아닌, 신앙 선조가 살던 ‘사순적 일상’을 사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칠극의 유래
- 「칠극」은 ‘칠죄종을 극복해 극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주제의 수양서다. 그림은 교만 · 질투 · 인색 · 분노 · 탐욕 · 음란 · 게으름 등의 칠죄종을 담은 것. 히에로니무스 보쉬 작(1480년 경, 패널 위에 유화, 120×150㎝,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칠극은 이러합니다. 교만을 이기기 위한 겸손, 질투를 이기기 위한 애덕, 분노를 이기기 위한 인내, 인색을 이기기 위한 희사의 너그러움, 탐식을 이기기 위한 절식, 음란을 이기기 위한 금욕, 게으름을 이기기 위한 근면, 이 모두가 덕을 닦는데 도움을 줌이 명백하고 정확합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이 1791년 전주에서 심문을 당하며 남긴 확신에 찬 목소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칠극이 갖는 핵심과 의미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윤지충의 말대로 칠극은 일곱 가지에 이르는 죄의 원인과 일곱 가지의 덕행을 가리킨다.
「칠극」은 한문으로 적힌 400면의 수양서로서 ‘칠죄종을 극복해 극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주제로 교만, 질투, 인색, 분노, 탐욕, 음란, 게으름 등을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악으로 여긴다.
「칠극」을 쓴 스페인 출신 디아고 데 판토하 신부(예수회)는 마태오 리치가 1601년부터 10여 년 간 중국 북경에서 전교 및 저술활동을 할 때 그를 보좌하던 사제다. 그를 보좌했기 때문에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와 판토하의 「칠극」은 시기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같은 학파의 특성을 띤 작품이 됐다.
「천주실의」가 중국인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을 소개하는데 주력했다면, 「칠극」은 그리스도교적 수양론을 유학자들을 위해 유교적 용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판토하는 성경과 성인전, 그리스와 로마 철학 및 서양의 여러 대중적 이야기들을 책에 풍부하게 인용하며 사상을 전개해간다. 17세기 중국에서 최초로 만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접촉을 통해, 인간의 이해와 수양론에 있어 매우 흥미로운 사상의 교류가 일어났던 것이다.
조광 교수(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경향잡지(1993)를 통해 “칠극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까지 신자들의 윤리생활과 수양의 길을 가르쳐 준 대표적 서적”이라며 “1850년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천주가사에서도 칠극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칠극과 신앙 선조
성인 최경환, 하느님의 종 윤지충, 이순이 · 유중철 부부, 홍유한 선생 등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실제로 칠극을 통해 단점을 극복하고 모범적 신앙생활을 실천했다. 특히 최경환은 칠극을 통해 본래 가파르고 급하며 혹독한 성격을 이기고 억제해 후에는 도리어 유순한 성품이 됐다.
김수태 교수(충남대 국사학과)는 ‘최경환 성인의 천주신앙과 순교’라는 논문을 통해 “교만에 대한 경계는 최경환이 신심의 바탕으로 삼은 칠극의 정신이기도 했다”며 “서울을 떠나 산 속 교우촌에 머물 때도 칠극을 통해 수신입공에 전념했다”고 전한다.
이순이 · 유중철 부부의 신앙생활에도 칠극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칠극 4장, ‘정결’을 뜻하는 ‘정극음(貞克淫)’편에서 판토하가 든 사례를 이순이가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결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결혼, 동정서약, 이후 각자 홀로 살며 동정을 유지하자는 내용을 행하며 부부는 기나긴 사순의 시간을 살았다.
하태진 신부(전주교구)는 “이순이 · 유중철은 한문으로 적힌 칠극을 읽을 수 있는 소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고 믿어지므로 이 책은 그들이 동정부부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지탱해 가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이해된다”고 전했다. [가톨릭신문, 2012년 2월 26일, 오혜민 기자]
[기고] 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 연구소장 · 우곡성지 담당)
“칠극(七克), 인간성 회복 위한 신앙인 지침서”
- 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연구소장)
또다시 사순절이 다가왔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 중의 하나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고, 주님이 가신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겠다고 다짐해보는 시기다. 일그러진 우리들의 본성을 주님께서 주신 원래 그 상태로 회복하고, 삶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어 나가야하는 시기다. 그래서 사순절을 ‘은혜의 시기’라고 부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긴급한 사안이 있다면, 곧 ‘일그러진 인간성 회복’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옛날, 신앙 선조들이 자신의 삶을 수양하기 위한 지침서로 삼았던 「칠극」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 없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종의 ‘진복선언’과도 같은 책이다.
「칠극」은 17세기,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중국으로 들어온 판토하(1571~1618) 신부가 저술한 심신수양서(心身修養書)다.
이 책은 마태오 리치(1552~1610) 신부가 저술한 「천주실의(天主實義)」와 더불어 신앙 선조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서적이기도 하다.
천주교에 심취했던 소현세자와 사도세자, 온몸으로 천주신앙을 살고 선포했던 농은 홍유한 선생, 홍유한 선생의 제자들이었던 천진암 강학회 회원들, 박해시대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일그러져가는 자신을 추스르며, 주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마음을 다잡고(求放心), 몸과 마음 등 삶의 안팎을 충실히 닦아나갔다. 또 「칠극」은 동양인의 심성에 맞게 쓰여 있어 책의 내용으로 충분히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할 수 있었다. 그 내용 하나하나가 교회의 정통 가르침이면서 당시 유행하던 ‘유가적(儒家的) 용어’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칠극」은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인간 본성을 해치는 일곱 가지 악한 행동의 실마리를 이겨내는(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진복팔단(마태5,1~12)’이 하느님나라의 대헌장이라면, 「칠극」은 대헌장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 실마리다.
실마리 가운데 첫째는 ‘교만을 누르는 것’, 둘째는 ‘질투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셋째는 ‘탐욕을 풀어버리는 것’, 넷째는 ‘분노를 삭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탐을 내어 먹고 마시는 것(무절제)을 막아내는 것’, 여섯째는 ‘음란함을 막아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으름을 채찍질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교만, 질투, 탐욕, 분노, 무절제, 음욕, 태만 등은 대체로 인간의 ‘참된 행복’을 빼앗는 일등공신이다. 빠지기는 쉬워도 벗어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결코 ‘주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지 못한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신앙 선조들은 사순절뿐 아니라 1년 365일 이러한 ‘일곱 가지 죄의 뿌리(七罪宗)’를 이겨내는데 지극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사순절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사순시기처럼’ 사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칠극」을 교회 발전을 저해하는 구시대적이고 저급한 교리서일 뿐이라고 우습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 말씀하는 그대가 바로 첫째로 이겨내야 할 ‘교만’에 빠져있음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참으로 「칠극」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용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복음적 덕목인 셈이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다들 한 번쯤 “이번 사순절에는 ‘무엇’을 끊어버리겠다”하고 다짐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칠극」이 소개하는 일곱 가지를 제외시키며 외치는 신앙적 맹세는 ‘헛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 본성을 일그러뜨리는 죄의 뿌리를 이겨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첫날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신앙 선조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살아보시기를 소망해본다. 신앙 선조들이 걸었던 그 길이 사도들이 걸었고, 주님께서 걸으셨던 길이 아니겠는가? [가톨릭신문, 2012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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