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범대 학생의 하류지향을 읽고

[미완의 화자]

“하류지향”을 읽고.

“하류”를 “지향”하는 사회. 역설의 맛도 나고 비판의 냄새도 느껴지는 오묘한 매력의 “하류지향”이라는 합성어는 사실, 되짚어 보면 우리 삶의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인 우치타 타츠루 교수는 현재의 일본 10대, 20대의 교육과 노동문제를 가지고 핵심을 짚어 냈지만, 그것은 다만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은 발견되지 못한 체 병이 되어 곪아 가고 있는 이시대의 참 가슴 아픈 사실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사범대 4년의 꽃이라고 하는 교육실습을 다녀왔다. 부산해운대구의 비주류중의 비주류라 손꼽히는 윗 반여동 산동네의 반여중이란 곳인데, 부산시 170개 중학교 중에 167등을 하고 급식지원을 받는 학생이 56%가 되는 열악한 교육열을 자랑하는 학교라고 한다 그리고 이 꼬리표는 연수를 받기 위해 만나는 부장선생님들 마다 꼭 빠짐없이 말씀해 주시는 학교의 매뉴얼 같이 소개 되었다. 또한, 은연중에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참 가슴 아픈 말들을 들어야 했다. 아이들의 입에서 “우리학교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결국 고등학교 가면 다른 학교아이들에게 등수가 밀린다고 했어요. 여기서 공부 잘해도 소용 없어요”라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사범대 4년의 꽃이라 소문 들었던 새로운 경험의 현실은 참 먹먹하게 시들은 꽃 한송이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여느 아이들과 다를 것 없이, 오히려 참 착하고 순수하다고 생각되던 반여중 학생들에 맞서 먼저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이 아이들을 미리 소개 해주었던 이학교의 선생님들 이었다. 왜 그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환경이 부족한 이곳의 현실을 그토록 우리에게 먼저 말해주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먼저 가지고 우리가 교육실습에 임하는 것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 했던 것일까 과연 그것이 진심으로 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배려가 되는 배경이라는 뜻으로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좀 더 거대한 세상의 순리에 맞추어 가르치지 못하고 성적을 내지 못하는 반여중 교사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변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을까

쉬는시간과 점심시간 마주하는, 대학생인 우리를 둘러싸고 장난을 치던 활기차고 밝은 아이들의 스위치는 수업이 시작하는 종이 울리는 동시에 Off 되고 만다. “잘해야 되고 자신을 보여 주어야 하는 사회” 속에서 몇몇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의 대 다수 학생들은 이제 학교에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막막하다고 은연중에 교사로부터 소개받은 자신들의 삶을 먼저 체득한 것인지 반여중의 수업은 참 소리 없이 막막한 시간들 이었다. 야스쿠니의 신사와 Gentle man의 차이를 구별할 이유도 필요도 못 느끼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문제”라고 연신 떠들어 대는 이사회는 참 따가운 여름의 햇볕일 수밖에 없다. 피하고 넘어서 자신들만의 그늘만을 찾아다니는 그러한 따가움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하류라는 그늘을 드리운 사회의 모습은 어쩌면 우치다 타츠루 교수가 말하는 이같은 방식과 이유에서 거부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외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둘러싸고 존재 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층의 건물은, 서울에 있다던 63빌딩이라고 믿고 있었다. 뭐, 근래에 들어 그것보다 높은 건물이 한국에 세워졌느니 마니 하는 이야기들을 스쳐 지나 살아 간 것 같으나 여전히 육십삼 이라는 숫자는 참 높구나 하는 생각으로 별 탈 없이 잘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몇 개월 전 그렇게 순수한(?) 내게 어떤 분이 학생한명을 소개 시켜주셨다. 대한민국 교육계의 병폐라고 일컫어 지는 사교육,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과외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63층을 가장 높은 층이라고 믿고 있었던 내 순수함을 비웃듯이 소개된 학생은 해운대의 어느 아파트 64층집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의 여자아이, 한 중소기업 화장품회사의 외동딸에게 영어를 가르쳐 보지 않겠느냐하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80층을 목표로 달리는 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60층 이상의 로열 가족들만을 위한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따로 마련되어있었다. 30초 만에 64층의 계단을 무시하듯 뛰어오르며 귓속이 잠시 멍멍 해지는 제트기에서 내려서, 대리석으로 도배된 이 아이의 집에 들어가면, 한쪽벽면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있는 이 아이의 방에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어리벙벙하게 영어를 가르치려 드는 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참 신비스러운 것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 아파트의 또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이학생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생각들과의 만남 이었다.

공부를 잘하지 않는 이 아이는, 아니,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려하는 이 아이가 나를 부른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좋은 대학과 높은 성적을 요구하지 않으며, 적당한 대학의 무조건 화학과. 이것이 전부이다. 자신의 꿈과 미래는 생각해 볼 필요가 없이, 화학과를 나와서 화장품에 대한 이해를 좀 하고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는. 그런 간단함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교사로써 가르침과 배움의 청운의 꿈을 가진 내게 참, 당혹스러운 생각과 삶이었다. 이것은 분명, 새로운 모습의 하류지향을 가진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소비와 소유의 상류에서 살아가면서 생각의 깊이는 자신도 모르게 하류를 지향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몇 번 수업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갈 때 마다 이 아이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쏟아내기 시작한다. 학교의 이야기에서부터 친구들과 있었던 일,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 오늘 먹었던 떡볶이집의 맛, 이번 주말이 되면 놀러갈 계획까지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들을 나에게 말하려하는데, 그렇게 나는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경청자와 공감자가 되어버리고 난 후, 집을 나오는게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과외수업의 대부분 인 것 같다. 영어를 가르치려고 향하지만 뒤돌아 올 때는 이름 모를 씁쓸함만을 이 아이에게서 느끼고 나온다. 공부할 필요가 없고 노동할 필요가 없이도 세상은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먼저 그러했던 부모님의 관심은 등한시되어 가슴속에는 항상 허전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 이제 막 스무살을 준비하는 한 아이의 삶이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살아가면서부터 참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하나하나 쌓이고 닦여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간의 가치 있고 소중한 행동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자연스러움에 조금씩 다른 어떠한 것들이 더해지기 시작하더니 교육은 이미 하나의 무기가 되고 창살이 되고 돈 조각이 되어 거부되어야 할 불순물 덩어리로 여겨지고 있는 실정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반여동 산동네에 살건, 63빌딩보다 더 높은 층의 어느 아파트에 살건, 어느 한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 체, 이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교육이 과연 내가 사범대에서 배워왔던 그 교육이 맞는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

표준과 메뉴얼을 지향하며 경쟁 속에서 대체 가능한 사회는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옆집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생산 공장이 될 뿐이며, 자식을 제품으로 전락시키고 속성재배 하기만을 꿈꾸는 부모간의 의식 없이 서로 답답한 전투를 되물림 하는 시발점밖에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이 막막함의 중심에 서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교육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삶에 한 부분이 되었던 그때를 되돌아보기를 원한다.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과 같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던 시대에는, 배움을 행하던 사람들에게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먼저, 우리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들을, 우리의 입장에서 내 놓으려 하지 말고 아이들의 노래와 삶에서 느끼게 해주어야한다. 오늘 배워나가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우리 삶속에서 발견되어 질지를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 속에 묻고 던져 보면서 함께 하는 시간들을 익숙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매 시간의 시작점에서 우리가 제시하고 목표해야할 결승점은 절대 같아서는 안된다. 사람은 각 사람마다 세상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행복이 다양하다. 그 존엄성을 발휘하기위해,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교육의 과정이 진행되어 가는 것이 전부여야 할 것이다. 과정이 결과를 예상하여 준비된다면 그것은 결코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할머니들에게 준비된 약을 팔게 하기 위하여 관광버스에 오르게 하는 그러한 모습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류를 지향하는 이시대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왜 거부하는지도 모르는 많은 것들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교육으로 노동으로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다. 정상의 쉬원함을 알고 있는 등산가 들은 다리에 힘을 주고 땀을 흘리는 산행을 기쁨과 행복의 시간으로 맞바꾼 체 산행을 계속한다. 우리가 계속하여 아이들에게 정상이 쉬원한 이유를 소개하지 못하고 또다시 똑같은 모습으로 가파른 1차선만을 내놓고 아이들을 뒤에서 떠민다면 그것은 고통의 선물로 교육을 만드는 것밖에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스러움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가치를 매 순간 느끼는 소중한 도구로써 이미 전락하여 등 돌려진 교육을 희망과 환희로써 소개하는 선배들이 되어야 한다. 하류지향의 세계에서 다시 한번 아픈 곳을 되살펴 볼 줄 아는 묵묵함과 선명함이 있어야 한다.

[박준규]

이 학생은 훌륭한 선생님으로 성장하겠지요.
다만 교사가 학생들에게 "정상이 시원한 이유를 소개"하는 활동을 교육과정의 운영의 중요 포인트로 잡는다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이것을 깨닫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정상' '시원' 소개' 낱말에 수많은 배경개념이 들러붙어 있는지 살피고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박준규]

이런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