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박사(구바울선교사)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 한국땅에 찾아와,
22년간이나 머물며 인술을 펼쳤던 구바울(미국명 Dr. Paul S. Crane·86) 전 예수병원장이
2005년 5월 13일(?) 오전 8시(한국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시 자택에서 영면했다.
헐벗은 한국민에 사랑의 인술 22년
구바울 前 예수병원장 美 블랙마운틴시서 별세
1919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출생한 그는
존스홉킨스 의대를 졸업하고 유니언 메모리얼 병원에서 의사수업을 받은 뒤 47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일제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문을 닫았던 전주의 예수병원을 8년 만에 다시 열었다.
일본 의사들이 떠난 의료 공백기에, 이 서양의사는 고통받는 환자들을 자신의 몸처럼 보살피며 건강과 새 생명을 주었다.
그는 매월 순천 애양원을 찾아 나병환자도 돌봤다.
48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수련의’ 제도를 도입했고,
50년에는 간호학교를 세워 근대 간호교육과정을 운영했다.
6·25 때는 전장을 돌며 숱한 총상 환자를 살리면서, 군의관들을 지도했다.
전쟁이 끝난 뒤 구바울은 한국땅에서 기생충 박멸운동에 앞장을 섰다.
1958년 겨울 어느 날
구바울 원장은 예수병원 문밖에 버려진 7세 여아의 몸에 수많은 기생충(1,063마리)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소녀의 사진을 신문사에 보냈고, 이 사진은 신문에 보도돼 기생충 박멸운동에 불을 붙였다.
호남의 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현대식으로 지은 예수병원 건물은
구 원장이 65년 6주간 미국 남부를 순방하며, 남장로교 신자들로부터 40만달러의 헌금을 모아 착수한 끝에 세운 것이다.
그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한국말도 능숙하게 구사해
61년 5월 박정희·케네디 회담 등 4차례의 한·미정상회담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의 부친은 선교사로 순천 매산학교를 설립한 구례인(John Crane)씨.
아버지를 따라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구바울은
69년 미국에 돌아간 뒤에도 “내 고향은 순천”이라며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는 58년 무공훈장, 63년 대통령상, 82년 한·미우호협회상 등을 받았다.
2005.6.15 (수) 05:46 조선일보 (전주=김창곤기자cgkim.chosun.com])
♥ 참고 자료처 : 예수병원 http://www.jesushospit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