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시>
평창아리랑
이 창 식
평창에는 강원도 묵은 눈이 내리고
평창에는 메밀꽃같은 눈이 또 내려
눈 속에서 마음불을 밝혀 신나리라.
비탈눈밭에는 감자순도 꿈꾸는데
그 위에서 설피로 걸어서 눈부셔라.
평창에는 오대산 해피700 눈발이 내리고
평창에는 희디흰 떡가루 자꾸 내려
강원도 인심 좋은 사람들 잔치상 차려라.
백두대간 숲마다 겨울새 화답하듯 어울려
설국열차에 눈사람들도 올라타라.
평창에는 강원도 곰삭은 아리랑 눈이 내리고
평창에는 동치미처럼 한겨울에도 아 시원해
농악 맞춰 사냥놀이 무척 재미 있어라.
설국에서 다같이 부르는 평창아리랑
놀이올림픽 축포처럼 세계 눈마을마다 울려라.
홍덕이 조선김치
이 창 식
심양 서탑 노을에 젖다.
끌려온 고난행보 만큼
깊어진 멍든 가슴과 쓰린 전족
불심으로 사하포에 배추 심고
수행하듯 김치 씹어서 달래다.
홍덕이* 네가 있기에
핏빛 하늘 아래 기도발로 용하게 버티다.
홍덕이 김치표 맛으로
청 조선관 깊은 굴레에서 나날이 견디다.
눈물도 때론 소금이 되어
저려진 세월,눈 감고 싶도록 익다.
홍덕이 김치에는 조선 소녀들 꿈 범벅
짙게 버무려져 혀를 베다.
그 혀끝 가피를 잊지 않으리라
그 눈시울,청심양고궁**담벼락에서 만나다.
*弘德이:봉림대군-훗날 효종-이 청국 볼모시절에
야판전 배추를 키워 김치를 담가 바친 나인.
**2016.7. 6. 淸瀋陽古宮 답사
/조선관은 고궁 덕성문 북쪽 200M 지점 추정.
이차돈순교비
이 창 식
백률사 절터 대숲에는
늘 희디흰 피냄새가 난다.
그 숲에는 돌로 길을 새긴 이야기나무,
삼라면벽 부처님 분신이다.
목을 버려 오히려 영생을 얻은 사람*
때로는 소중한 걸 버릴 때
더 나은 세계를 밝히는 길이 되는 법.
피에타 젖처럼 하늘에 솟은 사람
눈부시도록 꽃비가 되었다가
돌비에 찍혀 다시 불향(佛香)을 피우는 법.
꽃다운 나이에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
신라 서라벌 부처님 나라 일궜다가
장엄한 소멸도 거듭 생명나무로 사는 법.
백률사 절터 대숲 깊은 데에는
목 하나 떨어져 젖냄새 짙게 난다.
*이차돈순교비: 본래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백률사(柏栗寺)터에 있었던 것인데,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높이는 104cm이고, 면의 너비는 29cm이다. 백률사석당기(栢律寺石幢記), 이차돈공양비(異次頓供養碑)라고도 부른다.
오래된 마당
-인도 함피 비탈라사원
이 창 식
두 마리 코끼리로 전차를 끌었네.
내가 코끼리를 어루만지자
라마야나 서사시* 비슈누신을 만났네.
비탈라사원** 오래된 마당에서
링가와 요니로 태어난 아이들
물고기떼처럼 조르르 나타나
여러 시늉의 아바타가 되었네.
내가 아이들 속에 파묻히자
인도 함피 녹색겨울 속으로
간디전차를 신나게 몰았네.
찰라의 웃음, 오래된 눈물 겹쳐
비자야나가르왕국 비탈라사원 마당,
그 오래된 미래 아이들과 만났네.
순간 두 마리 코끼리 안으로 들어왔네.
겨울 속 흰꽃나무 우르르 흔들렸네.
*산스크리트어로 "라마의 여정"이란 뜻으로 신들을 위협하던 무적의 악마 라바나를 퇴치하기 위해 비슈누 신이 여섯번째 화신으로 환생한 인간 라마가 악마를 무찌르고 사랑을 쟁취하는 용감무쌍하고 스릴 넘치는 과정을 적은 무용모험담이다.
**남인도 함피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15-16세기 사원(2016. 2. 16.답사)
목어루(木魚樓)
이 창 식
눈발에도 눈 뜨고 가라고
어둠에도 눈 뜨고 살라고
겨울 절집 물고기* 속 깊게 울다.
울음 따라 눈밭에 어머니 다녀 가신 듯
물고기 문양 또박또박 찍히다.
간밤에 지워진 얼굴 다시 보다.
아프고 슬프고 왜 눈물 나는지
폭력 끝에 마구자비로 묻힌 사람들
폭설 속 그들의 길은 지워졌지만,
눈 뜨고자 다시 길을 나선 사람들 위해
선명한 물고기 두 마리* 행방
여전히 절집 부처님 눈매에 만나다.
물고기 울림으로 발심하여
온누리에 새해, 눈부신 소리 공양,
물고기의 간절함 담아내다.
그 울림, 절집 넘어 산문 마루턱 넘어
핏발 지우고 날선 핏대 잠재우고서
진정 마음의 눈 뜨기를 바라다.
*목어설화: 스승의 깊은 선정(禪定)에 비친 제자 모습-등에 나무 진 물고기-을
수륙천도재 해준 이야기.
**오병이어(五餠二魚)설화: 떡과 이크수스라는 하찮은 물고기로 이적을 보인
이야기(마태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