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음식 이야기] 발효와 부패
발효라는 단어는 일반화됐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자의 의미로는 술괼 발(醱)에 삭힐 효(酵), 즉 술을 삭힌다는 뜻이지만 발효는 단순히 술에만 한정되는 용어는 아니다. 간장발효, 젖산발효, 아미노산발효, 조미료발효 등 우리가 먹는 다양한 식음료에 적용된다.
발효의 정의는 미생물 혹은 미생물이 생산하는 효소에 의해 유기물이 의도한 대로 유용하게 변화되거나, 또는 소화나 풍미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의도한 대로 변화하지 않으면 이를 부패라 한다. 가령 술을 만들 목적으로 발효를 했는데 식초가 만들어졌다면 이건 부패에 해당된다. 애초에 식초발효가 목적이 아니어서다. 처음부터 식초를 만드는 의도였다면 훌륭한 발효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발효와 부패는 어떤 점이 다른가. 목적에 따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즉, 목적에 따라 발효도 부패도 될 수 있으며, 민족의 식습관이나 개인의 기호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서양 사람이 된장을 싫어하고 한국 사람이 곰팡이가 슨 치즈를 싫어하는 것, 냄새 지독한 삭힌 홍어를 지방에 따라 기호를 달리하는 것도 발효와 부패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누구에게는 훌륭한 발효식품인데 누구에게는 악취 나는 부패식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 발효에 대한 개념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약용식물이나 식품소재에 고농도의 설탕을 첨가하여 껄쭉한 추출액을 만들어 놓고 그 과정을 발효라 하고, 그걸 효소액으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설탕이 고농도로 존재하면 미생물의 생육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때 발효는 일어나지 않으며 단순히 재료성분 일부가 추출된 찐득한 용액이 될 뿐이다. 식품의 장기 보존을 위한 설탕(당) 절임이 효소가 되고 그것을 발효액이라 우긴다면, 왜 유자청이나 매실청을 효소라 하지 않고 발효액이라 부르지 않는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미생물이 자랐다고 해서 반드시 발효가 아니며, 더구나 어떤 미생물이 어떤 물질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모르는 상태를 발효라 하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자칫 유해 미생물이 자랄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즉, 오랜 경험에 의해 안전성이 확보된 전통식품이나 학문적으로 검증된 유용 미생물에 의하지 않은 거라면 그걸 발효식품이라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요즘은 화장품이나 천연염색에도 발효라는 용어가 쓰인다. 과연 그런 개념 적용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부산대 미생물학과 명예교수 leeth@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