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어떤 '한계'에 다달았을 때, 추사의 불이선란도를 천천히 다시 살피면서,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몸과 마음을 열어젖힌 채 유마거사의 침묵으로 그저 응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지평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귀가 들어오면 마귀를 만나고 보내고, 부처가 들어오면 부처를 만나고 또 보내는 것이지요. 침묵 속에서요.
아직은 '말'이 많고, 분별이 많아, 무엇이 살 자리이고 무엇이 죽을 자리일지 쉼 없이 번민하는 처지이지만, 이 번민마저도 유마의 대침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운동이라 여기며, 마귀와 부처에게 저의 모든 것을 내어 놓습니다.
그 길 위에서 고라니를 만나고 부엉이 소리를 듣습니다.
오직 침묵 뿐.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난을 치지 않은지 20년, 우연히 본성의 참 모습을 그려냈구나, 문 닫고 찾고 또 찾은 곳, 이 경지가 바로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일세.
若有人强要爲口實, 又當以毘耶無言謝之. 曼香.
어떤 사람이 강요하면 구실을 삼아, 마땅히 인도의 비야리성(毘耶離城)에 살던 유마(維摩)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사절하겠다. 만향 김정희.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 仙客老人.
처음에는 집에 심부름하는 달준에게 주려고 그린 것이다. 다만 하나만 그릴 수 있을 뿐이지, 둘은 있을 수 없다. 선객노인 김정희.
吳小山見而豪奪, 可笑.
소산(小山) 오규일(吳圭一)이 보고 억지로 빼앗으니 우습다.
以草隸奇字法爲之,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 謳竟又題.
초서와 예서, 기이한 글자를 쓰는 법으로써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으며, 어찌 좋아할 수 있으랴. 구경 김정희가 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