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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아니지만 외 7편
정수자
노을이 나만 위해 더 붉은 건 아니련만
뭉친 목 돌리다 지청구를 투둑 맞네
사는 게 모욕 같아도 뭉개면 또 사는 거라
절규도 급이 달라 뭉크급은 아니라서
변명 뭉치 속말이나 일껏 씹어보다
뜨거운 노을 끝물에 눈꺼풀을 데는 말복
소년의 긴 손가락이
신전의 부조들을 아다지오로 쓸다 말고
하늘을 훅 그으니 별들이 쏟아졌다
나일강 만파를 고르듯
파피루스 잎을 타듯
피아노를 타고 놀던 파리한 손가락이
별 사이를 촉진하자 은파랑이 튀었다
콤옴보 신화를 토할 듯
열주들이 울렁였다
불러 봐 너의 별을, 은파 만파 지휘하듯
반달 깃든 손톱이 뱃전을 두드릴 때
누천년 사막 능선 켜온
달도 뺨을 붉혔다
멍한 날
촐촐히 속이 비면 말개지는 느낌이야
제삿날 올리던 놋접시의 무나물이
슴슴히 둘레를 괴며 달무리를 흉내 내듯
말 많은 모임에선 뭇국조차 못 사귀고
그냥 마냥 걸으며 홀로나 더 맑히듯
촐촐히 멍한 날이면 뭔가 이룬 기분이야
너무 이른 사람
-나혜석
세상의 돌멩이쯤 콧등으로 받아치며
온몸을 붓 삼아서 생을 거듭 세웠지만
당신은 외로운 검객
이중의 아픈 식민지
가부장국 철옹성에 펜을 불끈 겨눌수록
쏠고 씹는 가십들이 문전에 쌓일수록
이마가 불타올랐다
손목이 뜨거웠다
애도 집도 다 앗긴 채 결국은 홀로 걸은
칼바람만 등을 치는 선각이란 진창길에
높아서 슬펐던 사람
그 눈이 여직 붉다
파도의 일과
청이 딱히 없어도 맨발로 내닫는 건
바람과 손잡은 파도의 오랜 비밀
푸르른 등을 미는데 흰 속곳 춤이라니!
더러는 하품이고 거품뿐인 일과라도
바위야 부서져라 껴안고 굴러보듯
필생의 운필을 찾아 눈썹이 세었다고
파도의 투신으로 해안선이 완성되듯
모래를 짓씹으며 달리리니 라라라
지면서 매양 칠하는 노을의 화법처럼
십일월 저녁
다 해진 길을 끌고 가을이 가고 있다
목마다 목이 시린 시래기 같은 시간들
그 어귀 외등을 지나는
당신 등도 여위겠다
가으내 비색에 홀린 바람의 당혜 같은
귀 여린 잎사귀도 먼 곳 향한 귀를 접고
제 안의 잎맥을 따라
한 번 더 저물겠다
슬픈 편대
허공을 찢으며 우는 기러기떼 발톱이여
멀건 국물에 뜬 노숙의 눈발들이여
한평생 오금이 저릴 저 강변의 아파트여
가을의 밑줄
저녁을 일찍 하니 저녁이 길어졌다
외등도 조곤조곤 곁을 더 내주고
접어 둔 갈피를 헤듯
책등들이 술렁였다
등불과 친해지면 말의 절도 잘 짓는지
하품 같은 농 끝에도 코가 쑥 빠지지만
저녁에 길게 들수록
행간은 더 붐비리
가을의 질문 같은 동네 책방 창문들도
길어진 모서리를 모과모양 밝히려니
누군가 밑줄을 긋고
별로 솟곤 하리라
문학과 사람 - 나의 시에 대하여
줄 없는 거문고를 타듯
정수자
*
새삼 다시 본다, 시조와 함께한 길을. 등단 40년에 받드는 ‘나의 시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원하는 시적 궤도를 생각하면 근처도 못 닿고 있다. 그럼에도 과분하게 받은 꽃이 적지 않았으니, 나름의 글길을 곰곰 숙여보지 않을 수 없다.
간간이 길을 되짚게 하는 시선이 있었다. 왜 하필 시조를? 다른 선택도 가능할 텐데 왜 굳이? 자유의 무한추구 판에 왜 오래된 정형을? 쓰는 자의 정체성을 깨우는 질문들. 어쩌다 보니, 그냥 좋아서, 왠지 끌려서… 허한 말 대신 묵묵히 쓰기로 답했다. 좋은 작품이면 되려니. 일찍이 창(唱)이 흐른 가문이라거나, 정형에 반했다거나, 민족시 운운하는 이들처럼 신념(?) 내세우기에 조심했던 게다. 무엇보다 확고한 표명에 소심했던 것은 나의 글 자체가 마음에 안 찼던 까닭이 크다.
시론 비슷이 쓴 글이 없지는 않다. 그나마 말을 가리다 평론 같은 주문에 따라서 시력이 좀 쌓인 뒤에야 소박하게 써본 것이다. 그런 것들을 돌려보면, 창작의 소회나 약간의 이론 공부를 더해 정리한 구조화 같은 짜깁기 같아 새삼 무색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많은 ‘문학론’이며 ‘시론’도 이전의 숱한 이론을 바탕 삼은 남의 이론에 자기 이론을 결합한 자기화 같은 재편집이 아닐지. ‘태양 아래 새로운 것 없다’고, 뭇 이론이 앞의 이론에 대한 반박이든 보완이든 창출이든, 자기 개진의 새로운 진상이니 말이다.
*
시적 궤적을 돌아보면 출발은 과분한 격려에서였다. 어린 마음에 빛을 건넨 한마디, “넌 어쩜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하니?”가 크게 작용했던 게다. 그냥 격려였던 선생님의 칭찬은 초교 2년생의 특선으로 돌아왔고, 그때 상품인 우리들의 글짓기(어효선 엮음, 교학사, 1963)는 제일 귀한 첫 책선물로 꽂혀 있다. 이후 상 못 탈라 도망치다 나갔던 글짓기대회들도 어슷비슷했다. 하지만 특선이나 입선이나 곧 잊히는 시골학교의 연례행사였고, 매양 부족한 책이나 찾아보는 그저 고픈 청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런 한참 뒤의 어느 날, 생각지도 않던 시조를 만났다. 진학이며 사회생활에 뒤진 채 세상 막막하던 1980년 초, 무심히 보던 샘터에서 시조가 확 들어온 것이다. 지금도 시조를 쓰나? 이후 시조는 석간을 이튿날 우체부 배달로 받는 시골생활에서 더 파고들었다. 일단 혼자 써보는 습작이 나왔고, 샘터니 중앙일보 응모와 채택 속에서 쓰기를 계속했다. 시난고난 쓰기 맛을 들이던 1984년 첫 <세종대왕숭모제전국시조백일장>(문화공보부장관상, 상금30만원)의 장원으로 덜컥 등단을 했다. 등단 후 당대의 시조를 쓰자는 의욕과 인식으로 약간의 주목도 받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준비 덜 된 자의 불안이 커졌다. 그즈음 이지엽 시인 등과 엮은 <80년대 동인>은 작품 토론과 사화집 출간 등으로 새로운 활력을 줬다. 하지만 미뤄둔 공부에 대한 미련도 부추겨서 문학 대신 늦은 대학과정(방송대)으로 잠시 시조동네를 떠났다.
7년쯤 지났나, 불현듯 시조가 보였다. 자력갱생 독립(1994년)에서 혼자의 시간이 늘자, 시조가 삼삼 밟힌 것이다. 맘 놓고 쉬다 막상 쓰려니 처음보다 더 막막했다. 새로운 쓰기를 하자니 어려움이 더 닥쳤을 뿐만 아니라 문학판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역동적 확장을 거듭한 시단에 비해 평온하던 시조단도 시인이 많아졌고 판도 꽤 커져서 공백이 더 보였다. 딱히 내세울 거 없는 늦된 어리바리의 ‘꿔다놓은 보릿자루’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도 작품밖에 없다는 결기는 그나마 보유한 상태라, 남보다 처지고 무르고 어리숙한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번 생은 시조에 기대어 견뎌보자는 최면이었을까. 어쩌면.
*
그런데 어떻게 쓸 것인가. 맥이 풀릴 때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김수영)를, ‘난 얼마나 부족하냐’며 막연히 자신을 재우쳤다. 무엇보다 오래 쓰고 살려면, 더 읽고 묻고 찾는 고민과 고독과 결핍을 양식 삼아 분투할 밖에. 조금씩 시의 기척이 닿자 잊힌 듯싶던 원고청탁도 날아들었다. 그즈음 시작한 박사 과정에 얹힌 주위의 우려(이론이 창작을 저해한다나)가 기우임을 보여주자고, 방학 때 몰아 쓰기 방식으로 나만의 글판을 넓혀갔다.
그 결에 ‘현대시조’의 현대성 문제도 나름의 가닥을 잡아갔다. 먼저 ‘지금 여기’의 ‘時調’를 찾을 것. 소외나 차별 같은 사회의 그늘을 챙겨볼 것. 낯익은 아름다움을 의심하되 낯선 새로움을 궁구할 것. 전형적 시조보다 오늘의 감각과 서정의 현대성을 추구할 것. 간소하지만 현대의 정형시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식과 방향을 다잡은 것이었다. 그런 모색 중에 얻은 「장엄한 꽃밭」은 뜻밖에도 중앙시조대상(2023년)을 안겼다. 중앙일보의 전통 있는 시조대상이 22회에야 내는 첫 여성수상자가 된 것이다. 시조의 면면이며 쓰기의 세계 그리고 쓰는 자의 자세를 여러 모로 가다듬게 한 상이었다.
1
오체투지 아니면 무릎이 해지도록
한 마리 벌레로 신을 향해 가는 길
버리는 허울만큼씩 허공에 꽃이 핀다
그 뒤를 오래 걸어 무화된 바람의 발
설산雪山을 넘는 건 사라지는 것뿐인지
경계가 아득할수록 노을꽃 장엄하다
2
저물 무렵 저자에도 장엄한 꽃이 핀다
집을 향해 포복하는 차들의 긴 행렬
저저이 강을 타넘는 누 떼인 양 뜨겁다
저리 힘껏 닫다 보면 경계가 꽃이건만
오래 두고 걸어도 못 닿은 집이 있어
또 하루 늪을 건넌다, 순례듯 답청踏靑이듯
책이며 다큐영화로 티베트나 인도여행을 대신하던 시절의 시조다. 그토록 끌리던 사막은 보기와 달리 고된 삶의 상징 같아 우리네 사막 같은 일상을 겹쳐본 것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높고 험한 산을 오체투지로 가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삶을 위해 지상의 하루하루를 누 떼처럼 넘는 사람들이나, 숙여 보면 순례의 꽃밭으로 장엄하게 비쳤던 것이다. 시조에 편재한 단순 서경의 반복이나 낯익은 풍경의 재현을 벗어나려 애쓴 때라 격려를 더 크게 받은 느낌이었다.
*
시조의 현대성을 찾으며 전통성과 정체성을 굴려보곤 했다. 시조는 덜 된 작품이 시보다 확연히 보이는데, 완결성이 두드러지는 정형구조 때문이다. 정형은 완전한 형식미가 필요하지만, 점점 그 너머의 ‘이지러진 달항아리’ 같은 아름다움을 구하게 됐다. 달항아리의 이지러진 멋에서 시조의 자연스러운 율과 품과 격을 더 찾아본 것이다. 물론 간소함이니 단아함도 뒤에 둘 수 없는 시조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런 품격도 시조의 근간인 균형과 조화, 정제된 율격을 아우르며 비춰내야 한다. 게다가 버릴 것 다 버린 후에 얻는 촌철살인의 섬광이며 비움 안팎의 여백도 중요하다. 이런 요소들의 융합적 발현이 나름대로 어루만져온 정형시 특유의 미학이다.
그런저런 시조의 진전을 고민하고 궁리할 때 「금강송」을 만났다.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皆骨의 결기 같은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骨法 같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
초겨울에 마주 선 금강산. 개골산 안팎의 뼈 같은 정신성이 돌올해지면서 동양미학의 골법이며 격조 같은 것을 자극했다. 직필도 금강만 같이 솟구친 신계사 주변의 울울창창한 금강송 군락은 눈을 쓰고 치솟은 만이천의 설봉 이상으로 경이로웠다. 그런 모습에서 진경을 구해본 「금강송」은 시조의 품과 격을 더 추키고 밝히는 과찬 속에서 고전미학으로 꿈꾸던 한국적 아름다움의 세계를 오래 톺아보게 했다. 그런데 이런 시편은 당대의 삶과는 거리가 있나? 현실의 삶에 육박하려는 지향의 일면을 다시 본다.
그런 중에도 정형 너머의 새로움에 자주 목말랐다. ‘파괴의 양식화’니 전복의 미학화니, 온갖 새로움을 열어가는 장르와는 품이 다른 그릇이라도 새로움은 예술의 필요충분조건이니 말이다. 물론 정형의 근간을 이루는 장(章)·구(句)·음보(音步)라는 요건을 더 살리는 맛과 깔과 향이 높은 새로움을 갈구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기법들과도 잘 놀아야 오늘의 예술들과도 상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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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쓰는 사람을 담고 닮는다. 그만큼 남다른 온축이 있어야 문체(文體)며 문채(文彩)며 자신의 文을 이루는 것. 글품이 깊거나 높거나 널찍하려면 쓰기의 자세도 종종 추슬러야 한다. 별일 없이도 분주한 현대의 글꾼으로 시조와 생존하기란 지난한 노릇이니 자주 살필수록 글도 자신도 함께 살 것이다. 시야말로 시적 상태를 유지해야만 시 비슷한 것조차 휙 지나쳐가지 않는 법. 그럼에도 40년의 시업이란 게 별 소득 없다는 자괴감에 씁쓸히 속이 또 갉힌다.
입술을 댈 듯 말 듯 서운히 보낸 어깨
돌아서고 나서야 없는 너를 만질 때
귓전에 연해 밟히는 중저음의 느린 여음
끝동을 길게 두다 서운해진 노을처럼
말 없는 말 그리며 사족사족 매만지네
자판에 자그락대는 자모음을 깨물어보듯
「사족蛇足」은 그런 쓰기 과정과 시간의 부산물이다. 뱀발을 더 엄히 살펴야 하는 정형의 입장에서는 사족 가려내기로 탈고를 쥐어짠다. 기막힌 시상이라고 선뜻 잡았다가 음보를 많이 이탈하는 언어며 이미지 등이 나오면 아까워도 쳐내고 버려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시간이야 모든 쓰는 자의 퇴고 고행이겠지만, 정형시는 정형이라서 그에 따른 품이 더 드는 게다. 그러다 디테일이나 구체성이 탈각되고 세부 묘사 대신 피상성이 늘고 공소해질 우려도 타넘어야 한다.
그보다 유념할 것은 시조에서 지적이 잦은 회고정서나 서정적 퇴행 같은 문제다. 시조의 현재화니 현대 속의 확장을 도모하려면, 내용이나 인식이나 미학이나 ‘지금 여기’를 도외시하면 안 되니 말이다.
고무신이 벗겨진 채 소녀는 끌려갔네
부를수록 집은 멀고 총칼은 목에 닿고
악문 채 몸을 봉해도 군홧발에 녹아났네
총을 물고 울었건만 목숨은 욕을 넘어
헐은 몸 닦고 닦아 옛집 앞에 섰건만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네
「슬픈 고무신-어느 위안부 피해자의」, 정제를 더하다 조신해졌지만, 약자와의 연대에 참여한 결과물이다. 수원의 평화의 소녀상 건립 때도 평화영화제 모금으로 참여한 연대의 작은 실천이다. 독일 건립 때(미테구 이전) 동행으로 의미가 컸던 소녀상은 지키기 어렵게 됐다. 이런 일도 시조에서는 드물어 나름으로는 마음을 더 내어 함께하는 시적 실천의 하나다. 현 사회의 약자든 변방이든 저지대든, 아프고 고프고 슬프고 외로운 그늘의 편에서 쓰려는 다짐의 실현인 셈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두루 미숙하고 미흡하고 미약하다. 그럴수록 더 널리 찾고 깊이 듣는 게 미욱한 자의 자세라고 타고난 부족함을 견뎌가지만. 점점 아프고 슬픈 일들이 넘쳐나는 세상과 함께 울며 넘는 것도 시의 소임이라니 더불어 가볼 일이다. 지하나 변방이나 세간의 구석들과 함께하는 가는 것도 시조 영역을 넓혀가는 소소한 실행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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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 씀의 길이란, 지면 질수록, 지치면 지칠수록, 더 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선입견 많은 시조의 길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도 찾아야 한다. 정제된 양식에 새로운 매혹을 어떻게 더할지, 독자와 함께는 또 어떻게 열어볼지… 궁리는 많아도 막상 작품으로 터지진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오늘’의 감각과 인식과 서정에 서 있는지 다시 둘러본다. 통쾌한 충격을 촉발하는 아이러니며 블랙유머 같은 현대미학의 쓴맛도 당겨본다. 정형만큼 금기도 많은 시조판에 조금이나마 色다른 미적 균열을 가하고자 이런저런 감행도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번뜩 닥친 발상이나 시상에서 버리기는 또 많다. 정형 구조상 ‘더 버리기’와 ‘깊이 벼리기’ 같은 고난의 행군은 필수. 형식과 내용의 줄타기에서는 절묘한 버림과 부림이 형식미를 가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너무 깎고 다듬고 고르다 확 당기는 詩맛을 놓치는 건 아닌지, 독자 가슴을 훅 파고드는 서정적 울림 같은 것도 놓치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가 또 떫고 시고 쓰리다. 더러는 숨긴 보물 찾던 어린 시절 소풍처럼, 뜻밖의 시조를 얻고 제풀에 취하는 독락도 좀 만져보지만.
이 모두 호기심이 있어야 살리는 제멋의 궁상이겠다. 관심이 관찰과 관통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직방이듯. 무릇 발견이든 발굴이든 발명이든, 경탄이 살아있어야 더 설레며 궁구할 테다. 새록새록 읽고 찾고 듣고 묻고… 하다 보면, 성찰이니 통찰 너머 어디선가 무지개 황홀도 얻을지. 그렇게 오늘도 대작 없이, 걸작 없이, 감히 더 나은 세계를 그리며 작작 갈 뿐이다.
정수자
1957년 경기 용인 생. 1984년 세종숭모제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 - 인칭이 점점 두려워질 무렵, 파도의 일과, 그을린 입술,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 녘 길을 떠나다 등 8권. 저서 - 한국 현대시의 고전적 미의식 연구 공저 - 한국 현대 시인론 외 몇.
수상 - 한국시조작품상, 수원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한국시조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우서문화상, 가람시조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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