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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들 다섯명 중에서는 그놈이 제일 착하고 똑똑했는데 말이다.
짜식들이 뭐가 그리도 급하다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느냐 말이다.
제 1계부터 시작하여 삼십육계는 마지막 카드인데 말이다.
그 끝을 써먹다니 나원참 기가 막힌다.
“야! 박가놈아 너는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야! 홍가놈아! 그래도 우리들 중에서 엉터리 삼도 삼략을 배운 놈은 너 혼자인데 너도 조심해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네~이놈 홍가야! 네놈이 감히 천기누설을 하다니 불러다 혼줄을 내주리다! 할 지도 모르니까“
“흥! 인마! 똑바로 알고 말해라 육도삼략이다. 그리고 천기누설·····
너야말로 뭐 축지법에다 공축법을 이용해서 우주공간을 마음대로 이동한다고?
너야말로 천기누설이다. 인마! “
자~ 이정도면 수인사를 나눈셈이다.
옆에서 말없이 술만 따르던 우리 아가씨들 왈
“어~머~나 선생님들이 말로만 듣던 도사님들이신가봐요? 호~호~호”
“도사는 개이름이 도사야? 도사좋아하시네 이 한심한 작자들아!
우리는 지금 농담따먹기를 하는거야 누구의 이빨이 더 쎈가를 겨루는 중이란 말이야“
“야! 홍가야! 해동이 그놈이 그때 바지사장 미끼를 물려고 할 때 말려야했어!”
“뭔소리야! 나는 그때 병중이라서 내코가 석자였거든 그런 박가네놈은 뭘하고 있었어 인마!”
가시 돋힌 말이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없겠지!
그 말도 안되는 글나부랭이 생활에 매달려 죽마고우가 낚싯밥을 물려고 하는 것도 몰랐을테니까!“
“아니다. 몇 번을 찾아가서 사정하고 애원하며 말렸다. 그랬더니 따귀까지 때리더라!
더 이상 이 조해동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놈들은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말이야!
머지않아 진짜 사장이 되어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핍박하던 놈들을 향해 포효를 하겠다며 눈에 독이 올랐더라“
“야 박가야! 그만두자 이미 흘러간 물이고 내가 공연히 네놈 심기를 건드려 미안하다.
내 진정으로 사과하마!
언제 시간이 되면 놈을 살리고 다시 거두어 들인 노량언덕에나 다녀오자”
조해동 그놈 참 착하고 또한 불행한 놈이다.
전라도의 작은 섬에서 의붓아버지의 매질을 못이겨 고기잡이 배에 몰래 숨어 섬을 빠져 나와 무작정 서울로 올라올 때 불과 열 살이다.
용산에서 내려 무작정 헤메고 다니다가 노량진 사육신 묘지 앞에 놓여 있는 북어포와
술을 어린 뱃속에 처넣으니 그것도 닷새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한강물 밖에 없는데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하늘이 너무 가련해서 목숨을 살려줬는지도 모를일이다.
숨이 넘어 갈즈음 거지떼들에게 발견 된 것이다.
다리 밑 움막으로 죽은 해동을 들쳐 업고 뛰다시피 달려서 침을
놓고 사지를 주무르고 하여 겨우 먹은 것을 토악질로 뱉어 내고 하여 해동은 겨우 눈을 떴다.
해동은 그들의 도움으로 식당의 잡일을 하며 겨우 생계유지를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년 후 그들이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서를 받고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던 날 아침 해동을 불러 간단한 유언을 남겼다.
“조해동! 절대로 죽지 마라!
“살아남는 놈이 승자이고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놈이다”
그들은 군사혁명이 일어나기 전 경찰의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이다.
거지로 변장하고 그렇게 숨어 다니다가 하필 옛날에 앙심을 품은 후배경찰들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그랬으니 해동이의 가슴에 응어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필 해동이놈은 불경스럽게도 자신을 살려 낸 그 곳에서 다량의 극약을 먹고 자결을 한 것이다.
해동의 마지막을 나는 이렇게 작별의 글을 남겼다.
해동아! 해동아! 조해동아!
남산위의 저 소나무들이 이슬에 아니 젖는 날 있었으랴!
언덕의 저 잡목들에게 바람 그칠 날 있었으랴
몸에 열이 나고 오한이 들었다.
한동안 억지로 숨기고 감추고 묻어 두었던 악몽들이 창과 칼을 들고 덤벼든다.
“네놈은 비겁한 회색분자이다!”
“네놈은 천지를 속인 천하의 둘도 없는 사기꾼이다!”
“그래도 네놈이 조해동의 죽마고우라고! 벗이라고! 웃기지마라!
네놈은 조해동을 진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놈의 불같은 성질이 두려워 도망을 친 것이야
어떻게든 말렸어야 했어!
그 길을 가면 안된다고 바지가랑이라도 잡고 늘어 졌어야지!“
그래 해동이를 그렇게 보내는게 아니였는데 그렇게 며칠을 물한모금 마시지 않고
담배만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래도 홍가놈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홍가놈 그놈! 본시 낙천적 성격이였는데 많이 변했구나
서대문 형무소에 두놈이 수감되던 날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교도관에게 몸수색을 당할 때
글쎄 이 홍가놈 간이 배밖으로 나온놈이지
“이보슈! 귀졸나리들 나 홍가요! 앞으로 잘지내봅시다!
그리고 담배 있으면 한 대 줘보슈!“
그 날 일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끔찍해
“그래 우리는 저승의 귀졸들이다.
네놈들은 지옥에 끌려온 놈들이고 죄질이 아주 나쁘단 말이야 새키들아!”
날아오는 곤봉세례들 주먹세례 발길질 온몸이 피범벅되어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문을 철컥할 때 홍가놈 다시 일어서며
“고맙다. 귀졸들아 독한 담배 한 대 잘 얻어 피웠다.
이제는 한숨 주무실테니 조용히들해라“
면회를 온 해동이놈에게 “야! 조해동! 너무 설치고 다니지 마라!
아무리 밤이 길어도 새벽은 오는거야 그러다보면 흐린날에도 해는 솟아오르거든
그게 세상의 이치란거다.“
“알아,인마.”
“네놈이 사법고시에 합격을 해서 법관이 된다면 말이다.
저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만 보지 말고 삼복더위에 가마솥 닮은 저 아스팔트위를 살겠다고 기어가는 지렁이를 보아라
누구는 말할 것이다.
“저놈의 지렁이새끼 이 더운 날 뭘 얻어 처먹겠다고 징그럽게 기어가고 지랄이야
당장에 밟아죽여라!“
과연 지렁이에게 인간법의 잣대로 지렁이를 심판하고 죽일 수 있을까
석달만에 가석방 기소중지로 풀려날 때 해동이가 두부를 사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야!박가놈아! 너 미안하지만 군대 소집명령서가 내려왔다.
그러니까 짜샤! 중놈이 되려면 아예 심심산골 동굴에나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말고
부처되는 일에나 골몰할 일이지 어떻게 턱걸이를 해서 들어간 똥달린 대학인데
인마 제적처분이라니 말이 되냐!? 이건 너무 억울하고 억울하다고“
“야! 조해동! 억울 할 것 하나도 없다!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없는 곳이야! 차라리 잘됐지 뭘 그래 인마!그래도 앞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오시는 것보다 당당하다 이 말씀이야!
그까짓것 맨날 허구헌 날 동사가 어쩌구 저쩌구 부동사가 어쩌구 저쩌구
형용사와 접미사가 만나서 머리가 절레절레 하신다 이 말씀이야“
술집으로 달려가 밤이 다 새도록 퍼마셨다.
그래도 정신은 맹승맹승했다.
그 날 술집에는 우리들 열놈들 말고도 여기저기 풀려난 놈들과
당시의 정권에 반항하는 젊은 남녀들이 모여 들어 술집주인은 손해 좀 봤을 것이다.
그 시절 모 대학가에서 학사주점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시던 이씨 아저씨는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셨으니 뉘라서 그 날을 증명하랴
그저 명복을 빌 뿐이다.
더 살아도 되는 나이에∙∙∙∙∙ 수배중인 놈들에게 도망 칠 여비를 만들어 주고
자신의 고물차로 야반도주 시킨 것이 그만 이승의 염라국에 발각이 되고 죽지도 않은 목숨이 미리 지옥에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했다.
출감을 했으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객사를 한 것이다.
이씨 아저씨 장례식이 열린 날 또다시 공권력과 충돌이 벌어졌다.
쉬지 않고 쏘아대는 최루탄 냄새와 주변의 연기들 이에 맞서 날아가는 화염병들의
불길들과 고약한 냄새들 차라리 우리들은 고지탈환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이씨 아저씨가 정말 보고싶다.
덥수룩한 털보에다 걸핏하면 “인생 별 거 아니야! 그냥 칠십점만 살면 되는거야!
백점을 살려니까 저지랄들이지!“
“아저씨 외상장부책에 달아 놓으세요. 또 시골에 등록금 올라오면 갚을게요.” 하는 소리
이제는 단골손님이다.
“헛소리 하지 말고 몸들이나 조심하고 해장국이나 한그릇씩 먹고들가라“
지금의 젊음들은 무슨 전설의 고향이냐고 되물어 온다.
수원의 홍가놈 집에서 눈치를 슬슬 보아가며 한 달을 버티다가 오산의 유가놈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것이 1974년 오월이다.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 유가놈의 집터는 궐동의 무궁화아파트 자리다.
어느 날인가 박동의 반야사에 올랐다.
당시의 반야사 노보살님 왈
“츠츠츠! 불연이면 큰 스님 될 놈이 부모인연 잘못되어 도랑으로 흘러 가는 물이 되었구먼 그려... 아까운 중놈하나 버렸네 그려!”
그 때 옆에 듣고 있던 꺽다리 중놈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
도랑물도 쉬지 않고 흐르다 보면 큰 개울 물로 들어가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오산을 오르니 산은 작지만 참으로 오묘하게 생겼다.
중턱에 앉아 내려다 보니 오산천이 구불구불 흐르는데 마치 용 한 마리가 오수를 즐기는 듯 하고 청학동으로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새들이 날아다니는데 마치 전설속의 청학들이 날아다니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때 “이 정신나간 놈아! 네놈이 장차 10년이 못되어 살아 갈 땅이고 네놈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 갈 땅이니 자세히 보아두거라!”
“흥! 누구신데 왜 남의 일에 참견을 하고 그러세요. 그렇게 앞날을 잘 아신다면 지금 당장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세요.”
“흥! 그래도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구나! 어디서 굴러다니는 개똥이나 주어 처먹고 나니 나온는 것이 개똥냄새로다. 이놈아!
네놈이 헤월인지 해월인지 하는 미친중놈의 제자란것도 잘 안다.
제발 정신차려라 이놈아!
너도 잘못하면 네 놈의 그 함자를 스승처럼 광대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다가 객사를 할테니까 말이다!“
아직도 살아계시니 차마 밝힐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당장에 불려가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서 법상에 높이 올라 주장자를 곧게 세우시고
“이~놈~ 네놈이 나를 안다고 해도 이 자리에서 서른세방망이를 맞을 것이요.
모른다고 해도 서른세방망이를 맞을 것이다.
일러라~일러라~ 계산따지지 말고 어서 일러라 이놈!“
하실터이니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내가 뭐 사부대중에게 개망신 당할 일 있나 뭐........
그랬다가는 개망신을 당하고 절름다리가 될테니까
여기서 이쯤하고 홍가놈 이야기를 조금해야 되겠다.
수원의 옛날 아카데미극장 뒤편에 팔달산을 오르는 작은 길이 하나 있었고
그 작은 길옆에 게떡지처럼 붙어 있는 작은 선술집이 우리들이 말하는 접선장소이다.
얼마전에 옛일을 떠올리며 찾아가니 장소는 틀림없는데 긴가민가했다.
하기는 흐른세월이 얼마련가?
그날도 이른바 혁명의 동지들이 모여 역적모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네놈들은 포위되었다. 어명이다. 모두들 나와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이 낯익은 목소리는 종로경찰서 고등계 황반장의 목소리이다.
여러 가지로 나를 동정하고 처지를 잘 이해하며 걸핏하면
“홍수로 터진 둑을 어찌 몇 명의 힘으로 막겠느냐?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살아갈 수 없겠느냐“ 하던 목소리이다.
그들에게 개 끌려가듯이 끌려간 곳이 나는 논산 훈련소 홍가놈은 저 악명높은 증평의 신병훈련소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조상님들이 돌아다보셨는지 홍가놈은 신병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대구의 수송학교에서 중장비 면허를 취득하고 당시에는 그리 흔치 않았던 굴삭기를 몰게 되었다.
결코 우연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모든 기계의 성능을 금새 알아보고 고치고 생김새를 정확히 기억하며 모든 부품들의 역할들을 배우는데 하나를 알려주면 몇십개의 답을 알아내는 수재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일에는 영 젬병이다.
군대의 화기중에 흔히들 말하는 엠지육공이라 대공화기가 있다.
다른 놈들은 불과 한나절이 못걸려 분해 결합하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우리들 몇놈들은 하루가 걸렸다.
우리들을 담당했던 조교님 왈
“에~휴~ 이런 돌대가리를 데리고 어떻게 전쟁터에 나가나 그래...”
속으로는 “흥! 그러니까 왜 돌대가리들을 억지로 군대에 끌고 오시냐고요.
당장 돌려보내보든지!“
홍가놈은 직업군인이 되어 오십이 넘어 전역을 했다.
그런데로 생활이 안정이 되고 장비도 세대로 늘렸다.
몇 년전이던가 가축전염병이 전국을 휩쓸 때 그도 장비를 몰고 가축들 살처분 현장에 동원 되었다. 그것은 크나 큰 실수였다.
땅을 깊이 파고 나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소떼들이 마치 굴비 엮이듯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홍가놈은 본시 겉은 우락부락하게 생겨가지고 마치 산적두목을 닮았다지만
속은 지금 막 솟아난 풀잎처럼 약한놈이다.
오죽 약한 놈이면 형무소 감방에 파리 몇 마리를 죽이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간수들에게 들켰는데
간수들 왈 “이런 젠장할놈의 세상을 봤나! 파리 몇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인간병신을
시국사범으로 감방에다 처넣고 우리더러 교화를 시키라니 이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구만“
하며 그 후로는 수인 번호를 부르지 않고 인간병신으로 불렀다.
그런 홍가놈 앞으로 어미소 한 마리와 송아지 한 마리가 끌려왔다.
송아지는 세상에 나온지 겨우 이틀이나 삼일정도 밖에는 안되는 어린새끼로
다리에 힘이 없어 비척거리며 어미젖을 빨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었다.
그 송아지에게는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였을 것이다.
어미소는 머리위로 떨어지는 흙을 새끼에게 튀지 않도록 제몸으로 막으며 새끼를 계속 핥아주고 있었다.
홍가놈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어려서 풀밭에서 놀다가 독사에게 물렸는데 밭을 매던 엄마가 달려와서 주저하지 않고 입으로 독을 빨았다.
옆에서 감독을 하던 공무원 놈이 재촉을 했다.
“굴삭기 기사님 뭘하고 계세요. 빨리 빨리 덮으세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살처분 다 못하면 상부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고 이놈의 모가지가 달랑거립니다.”
그 순간 홍가놈의 머리는 핑돌았다.
“이 인간 말종의 새끼들아 너도 멀쩡한 네놈의 새끼를 저 구덩이에 몰아넣고
이 굴삭기로 흙을 덮으란 말이다. 어서 덮으란 말이다!“ 고함을 질렀다.
순간 소동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축생으로 태어난게 무슨 죄라고 확인되지 않은 축생들까지 살처분하라니 이건 인간의 갑질중에 갑질이다.
인간이면 이런짓을 해도 되는 것이냐?
병균을 물리 칠 묘안을 가져와라!
그렇다. 사람들은 사악하다.
잘못한 저지르고도 자기변명에 열을 올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사악무리들이 인간들이다.
그렇게 축생들의 살처분에 동원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홍가놈도 기어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를 몇차례 거듭하더니
기어이 자리보존하고 누웠다.
내가 홍가놈을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병중이 깊을 때였다.
홍가부인에게 왜 진작 알리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채근을 했지만 울먹이면서
절대로 박가놈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을 했단다.
그놈도 힘들고 고단하게 사는데 친구의 일로 짐이 되기는 싫다는 것이다.
어쩐지 전화를 하면 능청을 떨고 사업이 바쁘다. 시간이 없다. 미안하다.
나중에 술 한잔 폼나게 사줄게! 라는 말들만 늘어 놓은 채 거의 1년을 그렇게 오산과 수원이 수천리라고 떨어져 살았다.
나를 겨우 알아보고는 힘없이 웃으며
“야! 박가놈아! 이 홍가놈이 그만 세상을 하직해야 하겠다. 그동안 고맙고 미안했다.
용서해라. 네놈이 옆에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서대문구치소에 수감 되던 날 피투성이 나를 네 놈이 마치 어미소가 새끼 핥듯이 그렇게 핥아주며 불르던 노래를 말이다.
‘친구여, 친구여 우리는 영원한 벗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벗이 되자···’
“야! 홍가야! 네놈이 진정한 이 박가놈의 벗이라면 당장 훌훌털고 일어나거라!”
그날 밤 덕유산 깊은 산골에서 홀로 사는 무당할멈에게 전화를 걸어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아이고! 그럼 그렇지라우. 시님이 저승갈날만 기다리는 할망구에게
전화를 걸었제 안그러유 참말이제 서운하지라우!“
“그렇게 세상살이 참말로 요지경 아니겄소?”
"내 옛날에 시님한테 빚진것도 있고 하니 내 죽기전에 공덕 한번 베풀테니 돈 같은 것 걱정
말고 데리고 오시요~잉“
마침 다음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징검다리 휴무라서 잘되었다.
집에는 회사일이 복잡해서 며칠 못 들어온다. 둘러대면 될 것이고 준비 할 것은
수원역에서 열차표 두장을 예매하고 원동의 의식형에게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이다.
눈치백단의 그 형이 틀림없이 꼬치꼬치 물어올테니까···
새벽에 부인이 승용차로 수원역까지 간단한 짐을 챙겨 홍가놈을 데리고 나왔다.
서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웃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다.
부인이 따라가려 했지만 내가 말렸다.
“잠시 혼자 있게 해주세요!
그게 저 홍가남편을 도와주는 겁니다. 꼭 쾌차해서 건강하게 웃으며 가족들 곁으로 돌아올겁니다.“
창밖을 보니 열차는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들판이 푸르름을 더해가고 멀리서 촌락들이 보였다 순간 사라진다.
“야! 홍가놈아 기억나냐?
그 술집에서 꽁꽁 묶여 열차에 태워져 끌려 가던 날 커튼사이로 밖의 세상을 보려다가
들켜서 두들겨 맞던 일 말이다.“
“짜식이~ 쓸데없이 지나간 일들을 왜 들먹이고 그래 인마!
헛소리 하지 말고 담배나 한 대 줘봐... 마!“
“야! 여기는 금연구역이야!”
“야! 이놈의 나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출입금지구역, 금연구역 거기다 통제구역 등등
이제는 지겹다. 인마“
마침 지나가는 역무원 아가씨에게 사정을 하자
“걱정마세요. 금연구역이 아닌 흡연구역으로 자리를 바꾸어 드릴게요.
그런데 저 승객분은 환자분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렇게 줄담배를 피워가며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니
어느 덧 열차는 전주역에 도착했고 뱀사골에서 작은 식당과 한봉치는 일을 하는 김가놈이
대기하고 있다가 멀리서 손을 흔들어 보이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놈이 저 김가놈 아닌지도 몰라.”
세상에 부모가 물려준 시가 몇백억 땅과 집을 아무런 미련없이 두 동생에게 나누어 주고 처와 자식에게는 허름한 집 한 채만 남겼다.
겨우 돈 삼천만원을 챙겨 들고 홀홀단신 지리산 입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놈이다.
놈의 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딱 한가지이다.
다름이 아니라 승가·무가·민가에서 세월의 강물처럼 불려 내려오는 아리랑과 회심곡 그리고
천수바라를 하늘에 닿을 때까지 불러서 중생계를 꽃 화자,화장세계로 만든다나 뭐한다나
대학교 때 선배들이 노래를 요청하자 글쎄 이 엉뚱한 놈이 천수경 가사에다가 찬송가를 구성지게 불러 그것도 아주 사람들 애간장 다 녹이는 목소리로 불러 주변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교회다니는 학생들 그중에서 여대생들로부터 러브콜을 수없이 받았다.
놈은 운전대를 잡고 백미러로 우리를 쳐다보면서
“야! 박가! 홍가! 네놈들은 아마도 전생에 이루지 못한 부부였는지도 모른다.
꼭 다정한 부부처럼 보이거든!“
홍가놈 그제서야 얼굴이 조금 펴지면서 웃는다.
“야! 김가놈! 너는 전생에 양녕대군이였는지 모른다. 아마 그럴거야!
그때도 네놈은 훼방꾼 노릇을 했을테니까...“
“그래, 네놈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흔히들 말하지! 세상은 공평하다고 그런데 그 말은 소위 가진자들이 못가진자들을 달래고
사탕발림을 한 거란 말이다. 해동이 일을 보고도들 모르냐?
어느놈이든 자신들의 성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는 놈은 가차없이 만길벼랑으로 던져 버리거든
보란 듯이 말이야. 그래서 갑과 을은 그림자 같은거야. 인마
그림자를 벼랑으로 던진다고 던져지겠냐?
어리석은 중생계의 중생놀이의 한 단면일 뿐이야!“
차는 구례를 조금 지나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는 입구의 화엄사 입구에 도착한다.
국립공원 출입을 할 때에는 입장료를 지불하라는 안내문이 사천왕보다 더 눈알을 부라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이번에는 주자요금 안내문이 돈을 내지 않으면
지옥맛을 한번 볼래? 하는 듯 실실 웃는다.
이 모습을 지켜보시던 원주스님 왈
“그래! 이놈들아! 웬 불만 섞인 표정들이야!
이 사바세계 산골에 머리깎은 중놈들이 먹고 살기 위해 행해지는 일종의 산적질이다.
어쩔래? 싫으면 다시 나가면 된다.“
“그렇게도 절 살림살이가 빠듯합니까?”
“이놈아! 네놈은 명색이 머리깎지 않은 중놈이 유마거사의 그 흔한 말도 못들어 보았느냐?
세상이 병이나면 부처도 병이 난다는 말이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절집도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다.
기왕에 머리깎고 먹물옷을 입었으면 수행정진 용맹정진 해야 할 빡빡이 중놈들이
좋은 자리만 찾아가니라
산 속 절집은 늙은 중놈들만 남아서 지는해만 바라보고 있다.
간단한 저녁 공양을 마치고 몇 명이 계곡물 소리 곡을 타는 고즈넉한 정자에 앉아
달구경을 하느라니 세상일 참으로 허무하고 덧없다.
앞산 뒷산에 꽃피고 새 울고 태풍에 폭우가 내리고 천둥치고 벼락이 치고
이 거대한 지리산이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머루와 다래며 모든 과일과 곡식들이
살아 남았다.
오늘따라 팔십이 넘은 우리 원주스님은 등을 정자난간에 기대고 다리를 쭉 펴시고
편안한 자세로 그의 애창곡 울고 가는 경부선을 흥얼거리고 계신다.
“이놈들아 모두들 잊어라, 나는 모두 잊는 법을 배우려 빡빡이가 되었다.
본래부터 부처도 없었고 중생도 없었고 빛과 그림자도 없었다.
환상을 보고 착각을 일으킨거야!“
나도 그랬다. 무장공비들의 간부였던 아버지가 사람들을 모아 생매장하는 것도 보았고 숨어다니는 아버지를 신고한 어머니를 한밤중에 숨어 들어 자식들 보는 앞에서 총세례를 퍼붙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두움 속으로 살아지는 것도 보았다.
동진 출가한 나에게는 평생을 빨갱이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 부처님조차 눈 흘겨 보는 삶을 살았다.
이놈들아! 사바세계란 것이 발버둥친다고 해서 짜여진 제도권에서 벗어 날 수 없고 백층건물 계단처럼 천충만충 계단을 오르게 되어 있단 걸 알아두거라
하늘은 중생계를 향해 갑질을 하고 중생계는 또 다른 중생계를 향해 갑질을 한다.
“네놈들 중에서 죄없는 중생들을 무심코 때려죽이지 않은 놈 있으면 어디 한 손 들어보거라
이 나이 처먹은 늙은 중눔도 너희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병이든 홍가놈을 덕유산 무당할멈집에 홀로 남겨두고 차를 몰아 산을 내려오는
김가놈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야! 김가놈아! 너 지금 울고 있냐?”
“짜식이 울기는 누가 울어...마!
제철도 모르는 하루살이가 날아서 눈에 들어간 모양이다!”
“그래! 모두가 시절 인연따라 살아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두들 제철도 모르고 앞 다투어 세상으로 나왔으니 이제는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한세상 살다가려니
모두들 악을 쓰고 있는거지...
야! 박가놈아! 우리는 어느 세월에 태어나야 제철을 만난걸까?
나는 항상 그게 궁금했거든“
“야! 김가놈아 내가 그런 걸 미리 알고 있었다면 네놈들을 등에 들쳐업고 한걸음에 달려 갔을 것이다. 인마”
“흥, 개뿔. 축지법에다 공축법을 쓴다는 놈이 그런것도 몰라!”
“이 짜식이, 오랜만에 한번 혼나볼래”
남원역 앞에서 설렁탕으로 주린배를 채우고 아쉬운 인사를 할 때
“홍가놈 걱정은 너무하지마라. 내가 알았으니 틈나는대로 자주 들려 볼테니
네 놈 하는 일에나 충실해라.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느라 TV를 보고 있는데
국회에서는 탄핵가결하는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청개구리
창자마저 푸른
청개구리
창밖이 화안 하길래
기다리던 봄이 온 줄 알고
부모님 몰래
밖으로 나왔더니
동지섣달 그믐 밤이였네
갈팡질팡 헤메다가
돌아 갈 길마저 잊었으니
어찌 돌아가나 한숨 쉴 때
새매 한 마리가 빙빙 도니
애처로운 목숨이 촌각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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