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추석을 앞두고 휴일을 이용하여 11번째 남파랑길을 출발하고
이틀간 이어서 걷기로 했다.
2025년 10월 추석은 7일간 연휴이며 샌드위치날 10월10일(금) 하루를 더 쉬면
무려 10일간의 연휴가 된다.
이번 연휴는 놀다가 쉬다가 지칠듯 하다.
연휴는 누군가 기분을 좋게하고 누군가는 큰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일반 자영업자들은 더 힘들어지기도 하는것 같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쉼이 되고
인생을 치료하는 시간들이 되시길 기대 해 본다.
- 걸었던 날 : 2025년 10월 4일(토요일)
- 걸었던 길 : 남파랑길 통영구간, 29코스.19.1km(남망산 조각공원~동피랑~서피랑~평림항~무전동해변공원~용봉사)
- 걸었던 거리 : 19.1km (32,000보, 5시간)
- 누계거리 : 456.2km
- 글을 쓴 날 : 2025년 10월 7일.(화요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통영 태생 시인 김춘수님의 "꽃"이다.
통영 강구항 옆 남망산 조각 공원아래 작은 공터에
김춘수 시인의 "꽃" 시비(詩碑)가 있다.
10여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쉬어 갈 정자가 마련되어 있으며
시비(詩碑)까지 있으니 일반 시민들이 쉬어 갈 공간으로 훌륭하다.
오늘 코스는 강구안에서 중앙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동피랑(벽화마을)과 서피랑을 걷는 통영시내 순례길이기도 하다.
특히 동피랑 골목길 벽화는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통영 문인들의 글이 쓰여져 있어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걷는 길이다.
동피랑길 초입 시멘트 벼락에 시인 백석의 언어가 적혀있다.
새벽녁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곳이다.(백석 통영,2)
시인 백석은 1912년생 북한지역 출신이며
일제시대와 해방후 신탁 찬반의 혼란시대
그리고 전쟁시대를 살았던 시인이다.
젊은시절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18세 통영아가씨 "란"에게 반해
통영에 자주 왔으나 정작 여인은 만나지 못하고
어느날 낮술을 마시고 충렬사 계단에 앉아 쓴 시가 통영2이다.(인터넷 자료 참고)
잔잔해진 눈으로 뒤 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의 시 "산다는것"중 마지막 구절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젊은 날에는 왜 몰랐을까?
류시화의 잠언집에서 멋진 시(詩)를 읽은적이 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에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중략,간략)
더 많이 놀고 덜 초초 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 했으리라.(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걸 젊은 날 알았더라면
더 행복 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진정 더 행복 했을까
혹여 아는 만큼 고민이 크지는 않았을까?
여러가지를 상상 해 본다.
살아보니 젊은날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중요한게 아니였고
나이 들어보니 나에게도 빛나던 청춘의 시간은 짧았다.
이제는 과거보다는 내일이 더 중요하고
남은 시간을 설계하고 즐기고 싶은거다.
통영은 푸른 바다가 품은 해안 도시이며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음악인을 배출한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시인 김춘수와 청마 유치환,그리고 소설가 박경리가 태어난 곳이다.
그래서 그분들의 언어와 벽화가 있었고 문학관과 기념관은 이미 유명관광지가 되었다.
벽화를 배경으로 한컷 남긴다.
동포루에서 내려다 본 강구안
강구안은 바다해안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온 해안가 지역이며
통영의 문화마당이기도 하고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동포루에서 내려 오면 삼도수군 통제영이었던 세병관을 만난다.
세병관 초입은 망일루인데 기품이 있어 보이는 목조 건물이다.
망일루는 광해군 3년(1,611년)에 우치적 통제사가 세웠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2,000년에 다시 중건하였다.(현판글 참조)
남파랑길은 세병관의 담장 넘어 골목으로 들어서
서피랑을 향하고~
좁은 골목을 지나는데 "박경리 생가"라는 페인트 글씨가 뚜렸하다.
평범한 붉은 벽돌집인데 현재는 소설가와 연고가 없는 다른분이 살고 있어
이런 정도의 표식만 하고 있었다.
7일간의 추석 연휴 둘째날
우리부부는 한국의 나폴리 통영에서 동피랑길과 서피랑길을 걷고 있다.
추석명절은 대부분 자신들의 고향엘 가서 부모와 가족 친지들을 만나는 대명절이다.
그러나 나는 두딸이 모두 해외에 나가 있어 명절다운 명절을 맞이 할수 없어서 트레킹을 선택했다.
큰애는 미국 보스톤 옆 에머스트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 연구중이고
둘째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부부는 그들에게 독특한 교육을 시킨적은 없다.
그저 내가 살았던 시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주기 바랄뿐이다.
그런데 어느때 부턴가 내 또레 친구들의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친구들은 너 나 할것 없이 손주 자랑이 한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내는 그 감정이 더 크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선택은 그들 몫이니 나는 기다릴 수밖에....
서피랑 가는길 담장에 쓰여진 글이 내 마음 같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그것은 내가 가진 유일한것이기 때문이다."
내 딸들도 자신의 삶을 매우 사랑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서피랑 언덕 서포루에 오른다.
누각에는 나이지긋한 할머니와 더 젊은 여인 서너명이 앉아 계시는데
그중 할머니는 노랫말 메모지를 보면서 노래를 연습중이시다.
그 모습도 멋진 인생의 시간 같다.
아내는 가까이 가서 "어르신 노래 연습하는 모습이 참 멋지시내요"라고 추임세을 넣어준다.
어머니와 딸이었을까?
세대가 다른 여인들의 한가로운 모습이 행복해 보였고
하얀구름 머문 가을 하늘이 더 시원해 보인다.
서피랑 언덕을 내려 오면서
포토존에서 웃으며 한컷!
내가 뭐라 했는데 기억이 없네?.ㅋㅋ
재래시장 서호시장앞을 지나다가
명절을 앞둔 대목장을 구경하기 위해서 시장안으로 들어 갔다.
시장 초입 콩나물가게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바쁘시고 표정이 밝다.
어물전 아주머니도 병어와 갈치 손질하느라 바쁘고
오늘은 모처럼 재래시장 안에 사람들이 붐비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통영시립박물관 앞을 지나고
윤이상 기념관앞에 이르는데 기념관은 오늘도 휴무일이다.
에휴~ 이번에도 관람불가이다.
통영 지하 터널 "용문달양" 입구에 이르지만
트레킹로가 아니여서 나중에 다시 들리기로 하고 패스!
용문달양 터널(483m)은 1932년 세계최초로 건설된 해저터널이다.
통영의 서쪽 바다는 온통 굴 양식장 천지이다.
통영의 바다는 거제도와 한산도등 작은 섬들이 포위하고 있어
태풍과 큰 파도를 막아 주어서 해양 양식업이 가능했을듯 하다.
바다의 표면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양식장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이제는 기온이 점점 더워지고 바다 온도도 올라갈텐데
저 양식업계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이라더니 항상 영원한것은 없는가 보다.
아~ 시장하다.배도 고픈데 마땅히 쉴곳이 없었다.
해안가 있을법한 흔한 카페도 없다.
그렇게 차량도 드믄 해안 도롯가를 한참이나 걷다가
카페가 세개나 모여있는 카페촌에 도착하여
초입에 있는 빵 카페에 들어가 밤식빵과 아이스커피를 시키고 쉬었다.
마침 아내는 보스톤에 있는 큰 딸이랑 카카오 통화 소통중이다.
딸은 몇가지 추석명절 음식을 만들어 주변도시에 있는 유학생 너댓명을 초대해서
명절 기분을 내는 모양이다.
상차림 사진을 보내 왔는데 제법 정성스럽게 차린 한식밥상이다.
오후 3시 30분 즈음에 무전동 해변공원에 도착하여 통영 29코스에 마치고
내일 걸어야 할 코스가 제석산과 발암산을 넘는 산악코스여서
오늘 미리 용봉사까지 30여분을 더 걸었다.
그리고 카카오 택시를 타고 출발지 남망산 조각공원 주차장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용문달양 해저터널로 이동해서 터널을 왕복해서 걸었다.
당시의 터널 공사 장면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바다의 양 옆을 둑으로 막아
가운데 물을 퍼내고 터널을 만든 다음 되메우기를 하고 둑을 터서
다시 바다로 되돌린 해협의 해저 터널이엇는데
차량은 다닐수 없고 사람만 교행하는 터널이다.
당시 중장비가 없던 시절 맨손으로 재방을 쌓고
피와 땀으로 터파기를 했을 주민들을 생각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제 강점기 시절 1,932년 완공, 세계최초 해저터널이라 자랑을 하지만
우리에게는 부끄러운 역사의 유물일수도 있겠다.
굴착공사 사진을 보면 하얀옷을 입은 사람들이 괭이질을 하며
돌을 나르고 괘도의 수래를 이용하여 흙을 옮기는 장면이 보이는데
공사 감독관 같은 사람도 보인다.
해저 터널를 왕복하고 숙소를 검색했는데
추석 연휴 관광객 수요가 많아 숙소 가격이 상당하다.
나는 연휴로 번잡한 시내지역을 벗어나 저렴하고 한적한곳의 숙소을 예약했다.
거리는 20여km 정도 떨어져 있었으나
내일 걸어야 할 시작점의 근처이고 최근에 지은 소형 호텔이엇다.
숙소에 도착하여 근처에서 삼겹살에 소맥 한잔을 털어 넣으니
이보다 더 좋은순 없다.
오늘 하루도 부지런하게 걷고 잘 살았다.
2025년 10월 4일(토)에 걷고
2025년 10월 7일(화)에 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