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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淨業障分 第十六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함)
復次 須菩提
善男子 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 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我念 過去無量阿僧祗劫 於燃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若復有人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於我所供養 諸佛功德 百分 不及一
千萬億分 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須菩提
若善男子 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或有人 聞 心則狂亂 狐疑不信
須菩提 當知
是 經 義 不可思議 果報 亦 不可思議
※
墮떨어질타 隨 따를수 惑 미혹할 혹
000
能淨業障分 第十六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함)
圭峰:
七은 轉罪爲佛이라
규봉:
㉴ 죄를 돌이키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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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次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도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현재)에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게 되는 것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되고 마땅히
무상정등정각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니라.
淸峯:
전세는 망념된 마음이요,
금세는 상에 집착함이 없이 깨달은 마음이니
사량 분별, 번뇌 망상을 이미 여의었으므로
업이 생길 것이 없어 그대로 불, 보살인 것이다.
이것을 설한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전생 업장이 악도에 떨어질 만하되
이 경을 수지 독송한 공덕으로
타인의 질시를 받고 가볍게 여기게 되어
업장을 여의고 정각을 성취하게 된다 하신 것이다.
說誼:
爲人輕賤은 明無我人이니 大率有我人者는
只欲爲人之上하고 不欲爲人之下이나
達無我人者는 貴之不喜하며 賤之不怒하며
能下心於一切衆生하여 甘爲人之下也니라
由是로 昔年에 忍辱仙人은 爲歌利의 割截되시고
不輕하고 菩薩이 爲四衆에게 打罵어도
此皆輕賤之事이나 初無瞋恨之心이라
故知爲人輕賤之事는 乃達無我人者之所爲也이니
苟達無我則爲人輕賤도 猶爲法樂이니라
法無彼此거늘 見起我人하나니
因有我人하여 起業造罪로다
罪業이 相形하여 障菩提路하나니
欲成菩提이면 先除罪業하고
欲除罪業이면 先斷我人이니라
若聞經解義하여 達無我理하고
又能修行無我之行하여
更不造生死之業하면 則罪根이 永除故로
縱有先世無量罪業이라도 卽同氷消瓦解하여
當成無上佛果菩提니라
故로 云若善男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되
若爲人輕賤이나
是人의 先世罪業이 卽爲消滅되고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니라
雖然受持讀誦此經이나 若貪名聞利養하여
不能生淨信心하며 亦不能知無我理하고
行無我行하면 則塵勞業用이 依舊熾然하리니
非唯不能轉罪成佛이며 亦乃未免當墮惡途이리라
설의: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我相 人相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대체로 我人(나다,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있는 자는 다만 딴 사람의 위가 되고자 하고
딴 사람의 아래 되고자 하지 않으나,
我와 人이 없는 도리를 통달한 자는
귀히 여겨도 기뻐하지 않고 천하게 여겨도
성내지 않으며 능히 일체 중생에게 下心하여
딴 사람의 아래 됨을 달게 여기느니라.
이 까닭으로
옛날에 인욕선인은
가리왕에게 찢기고 끊기게 됨이 가볍지 않고
보살이 四部大衆으로부터 때리고 꾸짖음을
당했어도,이것이 모두 업신여기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알라.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일을
가볍다하는 것은,
아상 인상이 없음을 통달한 자의 하는 바이니,
진실로 내가 없음을 요달하면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여도
오히려 법의 즐거움으로 삼게 되는 것이니라.
法에는
彼此가 없거늘 소견에 我와 人을 일으키니
我와 人이 있음으로 인하여 業을 일으키고
죄를 짓는 것이로다.
죄업이 형상을 이루어서
보리(깨달음)의 길을 장애하나니
菩提를 이루고자 하면
먼저 죄업을 없애야 하고
죄업을 없애고자 하면
먼저 나와 사람인 것을 끊어야 하느니라.
만약 경을 듣고서 뜻을 알아
무아의 이치를 통달하고 또한
능히 무아의 행을 수행(修行)하여
다시는 생사의 업을 짓지 않으면
곧 죄의 뿌리가
영원히 없어지게 되는 까닭으로
비록 선세의 무량한 죄업이 있다 할지라도
곧 봄날에 얼음이 녹고
기와가 풀리는 것 같아 마땅히
위없는 부처님의 과인 깨달음(菩提)을
이루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이르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 독송하되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이 사람의 전생업은 곧 소멸되고
마땅히 무상정등정각을 이룬다”고 하느니라.
비록 그러하나 이 경을 수지 독송하되
만약 칭찬이나 이익을 탐하여
능히 깨끗한 신심을 내지 않거나
또한 능히 무아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무아의 행을 행한다고 하면
곧 번뇌와 업의 작용이 예전처럼 치성하리니,
오직 이는 죄를 굴려서 성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악도에 떨어짐을 면치 못하리라.
청봉착어:
아상이 있으면 타인을 무시하고
아만이 생하여 남의 위가 되고자 하나
아상이 없으면 천함도 귀함도 분별하지 않아
남의 업신여김을 즐거움으로 삼으리라.
비록 전생의 죄업이 무거워도
이 경 수지 독송하면 업신여김 받을지라도
그 죄업 곧 소멸되고 정각을 이루리니
이 경 받아 지닌 공덕 한량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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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輕賤者는 總包이니
於中에 或打或罵故니라
隋譯에 云輕賤甚輕賤이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此毁辱이 有無量門故로
復云하여 甚輕賤으로
當得菩提者는 罪滅故라하다
규봉:
업신여긴다하는 것은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는
혹 때리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는 까닭이니라.
隨나라에서 번역한 것에 이르기를
“업신여기고 매우 업신여긴다” 했으며
무착이 이르기를
“이것은 헐뜯고 욕하는 것에
한량없는 법문이 있는 까닭에
다시 일러 매우 업신여김을 당함으로써
마땅히 菩提를 얻는다고 한 것은
죄가 멸한 까닭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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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佛言하시되 持經之人은
合得一切天人의 恭敬供養이나
爲多生에 有重業障故로
今生에 雖得受持諸佛如來甚深經典이나
常被人輕賤하여 不得人恭敬供養이나
自以受持經典故로 不起人我等相하여
不問寃親하고 常行恭敬하여
心無惱恨하며 蕩然無所計較하여
念念常行般若波羅蜜에 曾無退轉이니
以能如是修行하면 故得從無量劫으로
以至今生에 所有極重惡障이 悉皆消滅이시니라
又約理而言하면 先世者는 卽是前念妄心이요
今世者는 卽是後念覺心이니 以後念覺心으로
輕賤前念妄心하면 妄不能住이니
故로 云하되 先世罪業이 卽爲消滅이라하니라
妄念이 旣滅이면 罪業이 不成하여 卽得菩提也니라.
육조: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經을 가진 사람은 합당이
모든 하늘과 사람의 공경과
공양을 받아야 하나, 많은 생에서
무거운 업장이 있음으로
금생에 비록 모든 여래의
심히 깊은 경전을 수지 하였으나
항상 딴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남의 공경과 공양을 받지 못하는 것이나
스스로 경전을 받아 지닌 까닭에
내라, 사람이라는 등(4相)의
相을 일으키지 않아서
원수나 친한 이를 가리지 않고
공경을 항상 행하여 마음에 번뇌와
한이 없으며 탕연 (흔적도 없이 빈)히
계교(요리조리 비교하여 생각을 굴림)할 바가
없어서 생각 생각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일찍이 물러남이 없게되니,
능히 이와 같이 수행하면
그러므로 무량겁으로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있는 바
극히 무겁고 모진 장애가
모두 소멸되게 된다” 하신 것이다.
또한 이치로써 말하면 先世라는 것은
곧 앞생각(過去)의 망령된 마음이요
今世라는 것은 곧 뒤 생각의 깨달은 마음이니,
뒷생각의 깨달은 마음으로 앞생각의 망령된
마음을 업신여겨서 망심이 머물지 못하게 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선세 죄업이 곧 소멸된다 하니라.
망념이 이미 소멸되면
죄업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곧 보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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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先身에 有報障하나
今日受持經하여 暫被人輕賤이라도
轉重復還輕이로다 若了依他起하면
能除徧計情이리니
常依般若觀하면 何慮不圓成이리오
부대사:
선세의 몸에 업보의 장애가 있으나
금일 經을 받아 지녀 잠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할지라도 무거운 것을
굴려서 다시 도리어 가볍게 하도다.
만약 생각 일으킴으로 의해
다른 것임(依他起)을 요달하면
능히 두루 계교하는 마음(徧計의 情)을 없애리니
항상 반야에 의해 관하면
어찌 원만히 이루지 못함을 염려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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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不因一事면 不長一智니라
說誼:
無我不造業하고 斷障成菩提는 全承受持經力이니
伊麽則不因了得一大事면 不能證之一切智리라
야부:
한가지 큰 일(一大事)을 因하지 않으면
일체의 지혜가 자라지 못하니라.
설의:
我가 없으니 업을 짓지 않고
장애를 끊으면 보리를 이루는 것은
모두 경을 받들어 받아 지닌 힘이니,
이런 즉 一大事를 요달해 얻지 못하면
능히 一切智를 증득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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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전세의 무거운 업보
이 경 수지 하면
비록 업신여김 받더라도
하나를 요달하여
반야지혜의 정각을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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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讚不及毁不及이라 若了一萬事畢이로다
無欠無餘若太虛인데 爲君題作波羅蜜이니라
說誼:
此一大事는 釋梵諸天이 稱讚不及하고
天魔外道가 毁謗無門이로다
若能了得一大事하면 諸佛祖의
神通機用과 百千三昧와 無量妙義를
只向一念間하여 了畢無餘하리니
此一大事는 無名字相하며
無迷悟相하여 圓同太虛하여
無欠無餘이나 只爲未了底人하여
施設文字言詞니라
야부:
칭찬도 미치지 못하고
헐뜯음도 미치지 못하는지라.
하나를 요달하면 만사를 마침이로다.
모자람도 남음도 없는 것이
큰 허공과 같은데
그대를'바라밀’이라 이름하니라.
설의:
이 一大事는 제석천 범왕천등
모든 천신의 칭찬이 미치지 못하고
천마외도가 훼방할 문
(법의 문 곧 眞理)이 없음이로다.
만약 능히 일대사를 요달하면
모든 부처와 조사의 신통스러운 씀
(神通機用)과 百千三昧와 한량없는
묘한 뜻을 다만 한 순간에
밝게 깨달아 알아서 남음이 없으리니,
이 일대사는 이름도 글자의 相도 없고
어리석고 깨달음의 상도 없어서
원만함이 큰 허공과 같아서
부족함도 남음도 없으나 다만
요달(밝게 깨치지)치 못한 이를 위하여
文字와 言詞를 베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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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가장 큰 이 일을 알고자 하면
이 하나를 깨우치라.
이 하나는 부증 불감한 마하이니
칭찬도 헐뜯음도 미치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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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八은 超事多尊이니라 論에 云하되
示現速證菩提法故라하다 於中에 文二니
一은 供佛多中全具福이라
규봉:
㉵ 많은 존귀한 이를
섬기는 일보다 뛰어나는 것이다.
論에 이르되
“菩提法을 속히 증득함을
드러내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 중에 두 가지 글이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을 공양하는
많은 일 가운데 온전히 갖춘 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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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我念過去無量阿僧祇劫 於然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수보리야! 내가 생각하면
과거 한량없는 아승지겁인 연등불 이전에
八백四천만억나유타 수의 모든 부처님을 뵙고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되
헛되이 지냄이 없었으나,
淸峯:
헛되이(소홀히) 지내지 않았다 하는 것은
곧 지극하게 모셨다 하는 뜻이며
나유타는 십억이 洛叉(10만)가 되고,
十洛叉(낙차)가 俱胝(구지)가 되고
十俱胝가 나유타가 되니
무량수의 수로 봄이 옳다
.(인도의 아주 많은 수량의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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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那由他者는
十億이 爲洛叉요 十洛叉가 爲俱胝요
十俱胝가 爲那由他니라
규봉:
나유타란 十億이 낙차가 되고
십낙차가 俱胝가 되고
十구지가 나유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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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如來說那由여 那由幾劫中고
我人衆生壽여 壽者盡俱空하도다
若悟菩提道하면 道者盡通同이니
二體俱實際이니
際度出凡籠이로다
부대사:
여래께서 나유타라 설함이여
나유가 몇 겁 가운데인가?
我, 人, 衆生, 壽者여!
壽者가 모두 함께 空하도다.
만약 菩提道를 깨달으면
道란 다 통하여 같은 것이니,
二體(眞俗)가 實際를 갖추니
實際의 법도가 범부의 굴레를 벗어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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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二는 持經多中少分福이라
규봉:
둘은 경을 지니는 많은 가운데 작은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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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不及一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계합해) 읽고 외우면,
그 얻는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 더 나아가서
모든 숫자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淸峯:
아무리 크나큰 복덕도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무상의 도의 이치를 깨달음은
무여 열반에 이르름이니,
비유가 불가능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공덕 가운데는
모든 복덕이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
說誼:
佛不外求이니 只向心覓이니
若欲見佛이면 唯須內照니라
承事諸佛이 福則不無나
然亦未免向外馳求이니
一念聞經하면 能生淨信하여
卽自見性하여 直了成佛하리니
所以로 供佛이 不及持經이니라
설의: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니
다만 마음을 향해서 찾아야 하는 것이니라.
만약 부처를 보고자 하면
오직 모름지기 안으로 비출(반조)지니라.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김이
복은 곧 없지 않으나
그러나 또한 밖을 향해서 달려
구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니
한 순간 경을 들으면
능히 깨끗한 믿음을 내게 되고
곧 스스로 자성을 보아
곧 밝게 깨우쳐 성불하리니
이 까닭에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경을 지니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청봉착어:
한량없는 복도
유위의 것이면 인과로 새어 다 하며
경을 수지함은 곧 부처님을 받드는 것이요
나를 떠나 부처가 없는 것이니
부처를 보고자하면 나를 보(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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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供養恒沙諸佛하며 施寶滿三千界하며
捨身如微盡數한 種種福德이
不及持經이니 一念에 悟無相理하여
息希望心하면 遠離衆生顚倒知見하여
卽到波羅彼岸하여 永出三塗苦하고
證無餘涅槃이니라
육조: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들께 공양하며,
보물을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할 만치 보시하며
몸 버리기를 티끌 수와 같이 하는 갖가지 복덕이
경을 지니는데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한순간 無相의 이치를 깨달아서
바라는 마음을 쉬면,
중생의 뒤바뀐 知見을 멀리 여의어서
곧 저 언덕에 이르러 영원히 삼악도의
고통을 벗어나고
무여 열반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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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然燈에게 未敎化에는 呼爲在佛前하니
得値河沙聖하여 供養不爲難이나
末法難調製에는 開經暫展看하면
斯人은 無斷見하여 萬劫自安閑하리라
부대사:
연등불에게 교화되지 않았을 땐
부처님 전에 있었다 하니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성인을 만나
공양함은 어렵지 않으나
末法시대에 제도가 어려울 땐
경을 열어 잠깐 펴보게 되면
이 사람은 치우친 소견(斷見)이
없어져서 만겁에
스스로 편안히 한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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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功不浪施로다
說誼:
持經一念圓證하면 直了成佛하는
所以로 功不浪施니라
야부:
功은 헛된 베풂이 아니로다
설의:
경을 받아 지녀
한 순간에 원만히 증득하면
곧 바로 밝게 깨쳐
부처를 이루는 까닭에
공이 헛된 베풂이 아닌 것이니라.
---
청봉착어:
깨우치기 전에는 중생이요
깨우치면 부처님이니
깨우친 분(불)의 가르침(경)을 받아 계합하면
상을 여의고 집착을 놓게되어
무여 열반을 증득하여 삼악도를 벗어 나니라.
---
冶父:
億千供佛은 福無邊이나 爭似常將古敎看인가
白紙上邊에 書黑字하여 請君開眼目前觀하라
風寂寂水漣漣하니 謝家人이 祇在魚船이로다
說誼:
(他本에는 謝家人이 在釣魚船했다)
要識古敎在處麽인가 似海之深이요
如山之高로다 要識古敎文彩麽인가
煦日이 發生鋪地錦이니 無紋印字錦上舒로다
請君大開娘生眼하여 十二時中에 常照了니라
常照了여 內外無侵眞境現하니
一人이 獨擅其中事니라
又古敎者는 以迹言之則古佛이 能詮之敎也요
以理言之則學人의 一卷經也로다 此一卷經은
佛祖相傳底法印이며 衆生本有底一着子이니
其來無始이니 故로 云古敎니라
白紙上邊書黑字者는 經卷에 本具文彩也로다
白屬偏하니 自性隨緣二用也요 黑屬正하니
寂滅一體也니라 請君開眼目前觀者는
勸令諸人으로 不離日用하고 轉一大經卷也니라
風寂寂云云은 若轉得一大經卷하면
卽外而境風이 自寂하고 內而智水가 澄淸하여
隨緣任眞하며 逐處逍遙가 一似虛舟하여
駕浪에 自東自西하며 隨高隨下也니라
又風寂寂云云은 謂釣得錦鱗時에
也合風停而水而漣漣이요
觀照實相時에는 也宜情忘而智水澄澄이니라
般爲釣魚之具요 敎爲悟眞之法이니
悟眞者는 專心悟眞之法하면 則必有悟眞之期요
釣魚者는 只在釣魚之船하여야
則必有釣魚之時也리라
야부:
억 천 부처님을
공양함은 복은 끝이 없으나
어찌 옛 가르침(金剛經)을
항상 가져 보는 것만 같으랴?
흰 종이에 검은 글자를 써서
그대에게 청하노니
눈을 뜨고 눈앞을 살펴보라
바람은 고요하고 물결은 잔잔한데
집 떠난 사람이 다만 고기 배에 있도다.
설의:
(다른 책엔 집 떠난 사람이
“낚시 배”에 있도다로 되어 있음)
옛 가르침이 있는 곳을 알고자 하는가?
바다의 깊음 같고 산이 높음과 같도다.
옛 가르침의 무늬를 알고자 하는가?
따뜻한 햇빛이 땅위에 비단을 깐 듯이
무늬 없는 도장을 비단 위에 찍음이로다.
그대에게 청하노니,
어머니가 낳아준 눈을
크게 뜨고서 하루종일(十二時中)
항상 밝게 살필지니라.
항상 비춤(살핌)이여!
안팎으로 침범함이 없으면
참다운 경계가 나타나니,
한 사람이 그 가운데 일을
오로지 홀로 하나니라.
또 옛 가르침이란
그 자취(方便)로써 말한즉
옛 부처님이 능히 설명으로 가르침이요,
이치로써 말한 즉 학인의 한 권의 經이로다.
이 한 권의 경은
부처와 조사가 서로 전한 法印이며
중생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한 물건(一着子)이니
그것(불법-진리) 이 온 것이 시작이 없으니
그러므로 옛(시작 없는 옛) 가르침이라 이르니라.
백지 위에 검은 글자를 쓴 것이란
경전에 본래 갖춘 무늬로다.
흰 것도 치우친 데(偏)에 속하니
自性(색깔 없는 본바탕)과
隨緣(인연 따라 나투는)의
두 가지 쓰임(方便)이요
검은 것은
바른 것에 속(실다운 말씀)하며
寂滅이 하나의 體이니라.
“그대에게 청하노니
눈을 뜨고 앞을 살펴라”는 것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날마다 쓰는 것을
여의지 않고 하나의 큰 경전(一大經卷)을
굴리기를 권하는 것이니라.
바람은 고요하고 운운’한 것은
만약 一大經卷을 굴릴 줄 알면
곧 밖으로의 경계 바람이 스스로 고요하고
안으로 지혜의 물을 맑고 맑게 하여
인연을 따라 진(眞)에 맡기며
쫓는 곳마다 거니는 것이
빈배가 물결 따라 저절로 동서로 가며
높고 낮은 데를 따름과 같으니라.
또 ‘바람은 고요하다 운운’한 것은
좋은 물고기를 낚으려 할 때에는
바람이 그쳐 수면이 잔잔해야 하는 것이요.
실상을 관조할 때에는
또한 마땅히 알음알이(情)를
잊어야 지혜의 물이 맑고 맑으니라.
배는 고기를 낚는 도구요
가르침은 참을 깨닫는 법이니,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자가
참다움을 깨닫는 법에 마음을 오로지 하여야
곧 반드시 진리를 깨달을 기약이 있을 것이요,
고기를 낚고자 하는 자는
다만 낚시 배 위에 있어야
반드시 고기 낚을 때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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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무늬 없는 도장을 바다에 찍고
햇빛으로 비단을 깐 것 같은
그 가운데 오로지 한 주인공이
일체를 움직이고 이를 수 없는 것을 이르니
이를 경이라 하고
본래부터 없이 있음을 열어 보임을
옛 가르침이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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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九는 具聞則疑라
규봉:
㉶ 갖춤을 들으면
곧 의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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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或有人聞 心卽狂亂 狐疑不信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다음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은 공덕을 내가 모두 갖추어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곧 몹시 혼란하여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니라.
淸峯:
미혹한 중생이
비할 데 없는 무량 무변 무상정등정각을
생각으로 헤아려서는 의심하지 않고
믿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능히 무상심을 깨달아 무상행을 하여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혼란스러워 믿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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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佛言하시되
末法衆生은 德薄垢重이며 嫉妬彌深하여
衆聖이 潛隱하고 邪見이 熾盛하리니
於此時中에
如有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면
圓離諸相하고 了無所得하여
念念常行慈悲喜捨謙下하며
柔和하여 究竟成就無上菩提이나
或有聲聞小見은 不知如來正法常在不滅하고
聞說 如來滅後後五百歲에 有人이
能成就無相心하고 行無相行하여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면
則心生驚怖하여 狐疑不信하리라
.
육조: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末法時代 중생들은
덕은 엷고 번뇌는 무거우며
질투는 더욱 깊어져서
많은 성인들은 숨어버리고
삿된 소견은 불꽃같이 일어나리니,
이러한 때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같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모든 相을 원만히 여의게 되고 얻을 바
없음을 깨달아서 생각 생각에 항상
자비로 기쁘게 베풀되 하심하여
겸손하게 행하며 부드럽고 온화하여
필경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나
혹 어떤 작은 소견의 聲聞은
마땅히 如來의 正法이 멸하지 않고
항상 있음을 알지 못하고
여래가 멸한 뒤 후 오백세에
사람이 있어 능히 無相心을 성취하고
無相行을 행하면 무상정등정각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설함을 듣게되면
곧 두려운 마음을 내어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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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了妄心明遣하면 無爲業漸離하고
狂迷心境滅하면 凡愚盡總袪하리라
經中稱末世함은 狐疑且自迷이니
性慧脩眞實하면 只此是菩提로다.
부대사:
망념임을 깨달아 마음을 밝음으로 보내면
함이 없어 業은 점점 여의어지고
사납고 미혹한 마음의 경계가 멸하면
범부의 어리석음 없어지리라.
경 가운데
末世라 일컬음은 의심하여
또 스스로 미혹됨이니
성품의 지혜로 진실을 닦으면
다만 이것이 菩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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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十은 總結幽邃이다
규봉:
㉷는 그윽이 깊음을 모두 맺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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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當知
是經 義 不可思議 果報 亦不可思議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경은 뜻도 가히 생각으로 미칠 수 없고
과보도 역시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이니라.
淸峯:
무착 무상은 업이 공하고,
과보 또한 공함을
요달하게 되므로
인(因)도 과(果)도 본성이
공(本性空)한 것이어서
태허와 같은 것이다
.
상이 없음을 요달하면
집착이 끊어져 행하여도
행함 없는 행함이니
즉 집착이 없는
무념 무상의 행이 능히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게 되는 것을
무명 중생의 생각으로서는
능히 헤아려 미칠 수 없는 것이다.
說誼:
廣讚持經說經之功德은
不可得而思議라시고 乃云하되
所得功德을 我若具說者면
或有人은 聞하고 心卽狂亂하여
狐疑不信이라시며 乃至云果報도
亦不可思議라시니
聞經不信受는 良藥이 現前不知服이요
果報不思議여 服來平地에서 便升仙이니라.
설의:
널리 찬탄하시기를
“경을 지니고 경을 설하는 공덕은 가히
생각할 수 없다” 하시고 이에 이르되
“얻을 바 공덕을 내가 다 갖추어 말하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곧 몹시 혼란하여
의심하고 믿지 않으리라”하시며
혹 또 “그 과보도 또한 생각할 수 없느니라”하시니,
경을 듣고도 믿고 받들지 않음은
좋은 약이 앞에 있어도 먹을 줄 모름이요,
과보도 생각할 수 없다 하심은,
먹으면 평지에서 곧 신선이 되어 오름이니라.
청봉착어:
경을 수지하는 공덕 사량할 수 없고 한량없어
어리석은 중생은 의심해 믿지 못하나니
약을 줘도 먹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고
믿고 먹으면 놀라운 영험을 보게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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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無着이 云하되
此는 顯示彼福體及果를
不可測量故라하다.
규봉:
무착이 이르기를
“이것은 저 복의 체와 과보가
헤아릴 수 없음을
나타내는 까닭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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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是經義者는 卽是無着無相行이요
云不可思議者는 讚歎無着無相行이
能成就阿耨多羅三藐三菩提也니라.
육조:
이 경의 뜻은 곧 집착할 것이 없고
상이 없는 行이요,
생각 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집착함이 없고 상이 없는 행이
능히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한다
하는 것을 찬탄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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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果報分明在는 善惡이 分兩枝라
末法難調製는 謗經失路迷이니
狐疑하면 生斷見이요
脩卽是便宜니 覺悟無前後하면
成佛不爲遲니라
부대사:
과보가 분명히 있다 함은
선과 악 둘로 나눔이라
말법시대에 제도하기 어려움은
경을 비방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것으로
의심하면 斷見을 내고
닦으면 곧 편리하리니
앞뒤가 없음을 깨달으면
성불이 더디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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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各各眉毛眼上橫이로다
說誼:
佛所說法은 只說得眼上眉毛시니
若是眼上眉毛라면
生而固有라 誰獨且無리오
야부:
각자의 눈썹은 눈 위에 가로놓여 있도다.
설의:
부처님이 설하신 법은
다만 눈 위에 눈썹을 말씀한 것이니,
만약 이 눈 위의 눈썹이라면
나면서부터 본래로 있는 것이라
누구나 홀로 또 없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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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과보를 따르면 윤회를 면치 못하니
오직 구족함이 스스로임을 믿고 닦아
무착 무상의 도리를 요달해 이를 행하면
능히 정각을 성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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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宿業緣墮惡報이나
今人賤而罪卽消되니
供諸佛보다 誦此經하면
功德勝而喩莫及이로다
只如無着無相底는
還有果報也無인가 妄心滅盡業還空하니
直證菩提超等級하도다 惡因誰作罪誰招인가
眞性은 如空不動搖로다 曠劫無明을 俱蕩盡하니
先天後地寂寥寥로다
종경:
숙업의 인연으로 악의 과보에 떨어질 것이나
지금 사람들이 업신여김으로 죄가 곧 소멸되니,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이 경을 외우면
그 공덕이 뛰어남이 어떤 비유로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無着, 無相한 것은 또한 과보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망심이 멸하여 다하면 업도 또한 공한 것이니,
곧바로 菩提를 증득하여 등급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악의 인연은 누가 짓고 죄는 누가 부르는가
참된 성품은 허공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도다.
한없는 오랜 세월의 무명을 모두 없애니
하늘보다 먼저 하고 땅보다 뒤로하여
고요하고 쓸쓸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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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良藥苦口이요 忠言逆耳이니
冷暖自知는 如魚飮水이로다
何須他日 待龍華리오
今朝先授菩提記로다
說誼:
旣皆同有인데 聞不信受는
怎麽인가 只爲太近難曉로다
雖然如是이나 飮啄隨時이여
飢飽自知로다 伊麽則人人의
位同毘盧요 一一同居寂光이니
何待龍華記莂이리오
擧足卽是寂場이로다
以本分으로 論之則理合如斯으나
若據今時하여 論之則此經은
如良藥하여 服來에 萬病消니라
超然作金仙이언마는 只是不肯下口요
亦如忠言하여 信受하면
自知非라 能爲衆中尊이건만
只是不肯信受니라
唯有利根人은 言下에 自知非하여
一聞에 能總持하리니 鯤鯨이 飮海水로다
位同大覺已이니 極果를 更何疑리오
果報不思議라시니 誠哉라 佛所說이여
야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니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은
고기가 물을 마심과 같도다
어찌 모름지기
다른 날 미륵세계를 기다리리오
오늘 아침에 벌써
菩提의 수기를 받았음이로다.
설의:
이미 모두 같이 갖고 있는데
듣고도 믿고 받들지 않음은
무슨 까닭일까?
다만 너무나 가까워서
깨닫기 어려움이로다.
비록 이와 같으나
마시고 먹는 것은 때를 따르며
주리고 배부름은 스스로 아는 것이로다.
이러한즉 사람 사람의 지위는
비로자나불과 같고
낱낱이 법신불의 세계(寂光土)에 함께 있으니
어찌 미륵 부처님의 수기를 기다리리오?
발을 들면 곧 이곳이
적광의 도량이로다.
本分으로써 논한즉
이치에 합당함이 이와 같으나
만약 이제(지금의 현상으로)를
들어 논한다면
이 경은 마치 좋은 약과 같아서
먹으면 만병이 사라짐이니라.
초연히 金仙(佛)을 지으련만
다만 기꺼이 입에 넣지 않음이요.
또한 충언과 같아서 믿고 받으면
스스로 그릇됨을 알아
능히 대중 가운데 존중받게 되련만
다만 기꺼이 믿고 받지 않느니라.
오직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언하(言下)에 스스로 그른 줄 알아서
한번 들으면 능히 모두를 지니리니
큰 물고기와 고래(鯤鯨)가
바닷물을 마심이로다.
그 지위가 대각과 같거니,
지극한 과보를 다시
어찌 의심하리오.
“과보가 불가사의하다”하시니
진실하도다.
부처님의 설하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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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믿고 닦음도 나 스스로요
깨우침도 행함도 나 스스로다
일체가 공하여 무상 무착하는
이 도리 깨우침이 곧 보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