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닷가의 전망 展望
김은숙
그 항구에서 길은 끝나 있습니다.
마침내 육지의 끄트머리 녹동 항에 도착한 것입니다. 물가에 서서 코끝에 스며드는 갯내음을 음미합니다.
꿈속에서 수없이 많이 다녀 간 곳. 아늑한 어릴 적 나의 고향.
이 조용한 바다의 잿빛 안개와 튀는 물보라, 갈매기의 날갯짓과 수부들의 느릿한 사투리를 떠 올려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가슴이 따뜻해지곤 했습니다.
오늘은 배를 타고자 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듯합니다. 배는 자동차까지 실을 수 있어서 그대로 앉아 있어도 무방합니다. 서울이나 광주 등지에서 온 자동차들이 스무 대쯤 배 안에 들어앉아서 가깝거나 먼 섬들을 향해 멀어집니다.
뱃머리가 향한 쪽에 거금도가 있습니다. 적대봉이라는 높다란 산봉우리가 위용을 자랑하며 떠 있고 그 오른 쪽엔 용두봉의 능선이 잿빛으로 젖어 아스라이 멉니다.
거금도와 녹동 사이에는 아주 작은 두 개의 섬이 있습니다. 썰물이 되었을 때는 섬과 섬 사이를 왕래 할 수 있어 하나처럼 보이지만 밀물이 되면 두 개의 섬이 되곤 합니다.
그곳은 이름도 예쁘게 꽃 섬이라고 불렀습니다. 관공서의 문서에는 화도(花島)라고 올라 있습니다. 섬의 모양이 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꽃 섬과 화도는 완전히 다른 이름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진해에 내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는 첫딸이 예쁘고 예뻐서 꽃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꽃님아!”하고 부르면 가슴속에 그 아이의 꽃향기가 전해오는 것 같은, 한없이 정다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는 화임(花任)이가 되었습니다. 출생신고를 할 때 동사무소의 직원에 의해 한자어로 씌어져 그렇게 된 것입니다.
화도라고 하던 꽃 섬을 보니 화임이라고 부르던 꽃님이가 생각납니다.
유년 속의 점순이를 기억합니다. 어느 핸가 꽃 섬에 살던 먼 친척 점순이가 자기 엄마를 따라 우리 집에 왔습니다. 무슨 잔칫날이었든지 사람들이 많이도 왔습니다. 그 애는 새까만 얼굴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숯불에 달군 놋젓가락으로 머리를 지졌는지 아니면 원래 곱슬머리였는지 새까맣고 굵어 말총머리라고 하던 내 머리카락과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또래였기에 금방 어울릴 수가 있었습니다.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서로 엉켜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뜯어 말렸지만 점순이는 기어코 내 머리카락을 한 주먹 뽑은 후에야 놓아주었습니다. 점순이의 엄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꽃 섬에 놀러 오면 맛있는 걸 해주마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당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점순이는 단호하게 소리 질렀습니다. “우리 꽃 섬에 오지 마, 오면 죽여버릴끼여.”
그 음성이 바닷바람을 타고 들리는 것 같습니다. 꼭 그래서 안간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그 섬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곳에 들어가 볼까 합니다.
눈길을 오른 쪽으로 돌리면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소록도가 있습니다. 가운데 잘록한 부분을 경계로 해서 남쪽 끝에는 나환자촌이 있고 녹동 항에서 건너다보이는 북쪽에는 일반인, 그러니까 건강한 사람들의 마을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곳을 천형의 섬, 나병 환자의 섬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에는 섬 입구에 ‘나병은 낫는다.’라는 문구의 간판을 세워 놓았는데 지금 철거 되고 없습니다.
일반인 마을에는 병원 관계자와 그 가족이 살았습니다. 장사를 하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더러는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삽니다. 그곳에 서너 차례 가 본적이 있습니다. 이국풍으로 예쁘게 지어진 집들과 잘 가꾸어진 정원, 나무판자로 질서 있게 엮어서 흰 페인트를 칠해놓은 울타리 너머로 어여쁜 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마을 앞 은빛으로 빛나는 모래밭으로 소풍을 간 적도 있습니다. 찔레꽃이 구름처럼 피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시인 한아운님이 울며 걸었던 전라도 길엔 이제 보리피리가 없습니다. 꾸불거리던 황톳길은 곧게 펴져 4차선으로 뚫렸고 보리 대신 잎을 틔우기 시작한 마늘과 양파가 온 들판을 뒤덮고 있습니다.
녹동 항, 전망 좋은 커피숍에 앉아서 사라진 보리밭과 한아운님의 눈물을 생각합니다. 나병환자에 대한 편견과, 그들을 만날까봐 간이 오그라들곤 하던 기억이 부끄럽습니다.
꽃 섬의 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우악스럽던 점순이가 보고 싶습니다.
두꺼비집을 만들던 바닷가와 찔레꽃이 피던 나의 유년을 낚아 올립니다.
13년 동안 나를 키워 준 이 바다는 언제나 처음이고 또 나중이었던 까닭에 마음으로만 바라다 볼 수 있는 것들도 무궁무진하게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