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일 시 : 8월 8일(금) ~ 9일(토)
장 소 : 원불교 우인훈련원
좋/은/사/람/들
[ 일 정 ]
✿ 8월 8일(금요일)
강릉식당(채미골)6시30분~8시 – 우인훈련원 8시30분
✿ 8월 9일(토요일)
소금강 8시~11시 – 점심(오죽헌, 칠사당, 허난설헌, 참소리박물관) - 집으로
채미골 033-655-8939) 황태정식, 더덕정식 / 안인고향수산 033-642-0889세꼬시 물회
서지초가뜰 033-646-4430
1. 우인훈련원
☎ 033-662-7630 / 나성제교무 010-6633-7630
강릉시 연곡면 듬바우길 206-14
강원도 우인훈련원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정신개벽의 청정훈련도량입니다.
원불교우인훈련원은 정기와 상시훈련을 시켜 인류의 정신을 개벽시키는 활선도량입니다.
누구든지 각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자비와 지혜를 계발하여 사람으로서 어떠한 관계속에서도 원만하게 은혜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영육쌍전 도량입니다.
대도정법으로 만생령이 다 제도의 은을 입으시고, 온 인류가 인도정의의 바른길을 가기를 원하며, 인연닿는 모든 분들이 다 불보살이 되시기를 서원하며, 우리 다함께 법동지로서 세세생생 도덕사업 공도사업으로 대불과를 얻고 대보은자 되시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2. 오죽헌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오른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 방이 바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최치운은 이후 오죽헌을 아들인 최응현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위인 이사온에게 물려 주었으며 이사온은 그의 사위인 신명화에게 물려 주었으니 이때 율곡 이이가 태어난 것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 이이선생이 어릴때 사용하던 벼루가 보관되어 있다.
3. 칠사당
조선시대의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 단속에 관한 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고쳐지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진위병(鎭衛兵)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 부사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 군수 및 강릉 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둥근형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의 하나)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4. 경포대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13년(1326)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앞면 5칸 · 옆면 5칸 규모로 단층겹처마 팔작지붕(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면의 모서리에 2층 누대를 꾸며 상좌(上座)의 자리를 만들어 입체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익공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대호(臺號)인 「경포대」(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안의 「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에 맞추어 높낮이를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에 따라 공간을 나누며, 시각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곳에 적절히 공간 형태를 부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2014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일 시 : 8월 8일(금) ~ 9일(토)
장 소 : 원불교 우인훈련원
좋/은/사/람/들
[ 일 정 ]
✿ 8월 8일(금요일)
강릉식당(채미골)6시30분~8시 – 우인훈련원 8시30분
✿ 8월 9일(토요일)
소금강 8시~11시 – 점심(오죽헌, 칠사당, 허난설헌, 참소리박물관) - 집으로
채미골 033-655-8939) 황태정식, 더덕정식 / 안인고향수산 033-642-0889세꼬시 물회
서지초가뜰 033-646-4430
1. 우인훈련원
☎ 033-662-7630 / 나성제교무 010-6633-7630
강릉시 연곡면 듬바우길 206-14
강원도 우인훈련원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정신개벽의 청정훈련도량입니다.
원불교우인훈련원은 정기와 상시훈련을 시켜 인류의 정신을 개벽시키는 활선도량입니다.
누구든지 각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자비와 지혜를 계발하여 사람으로서 어떠한 관계속에서도 원만하게 은혜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영육쌍전 도량입니다.
대도정법으로 만생령이 다 제도의 은을 입으시고, 온 인류가 인도정의의 바른길을 가기를 원하며, 인연닿는 모든 분들이 다 불보살이 되시기를 서원하며, 우리 다함께 법동지로서 세세생생 도덕사업 공도사업으로 대불과를 얻고 대보은자 되시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2. 오죽헌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오른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 방이 바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최치운은 이후 오죽헌을 아들인 최응현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위인 이사온에게 물려 주었으며 이사온은 그의 사위인 신명화에게 물려 주었으니 이때 율곡 이이가 태어난 것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 이이선생이 어릴때 사용하던 벼루가 보관되어 있다.
3. 칠사당
조선시대의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 단속에 관한 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고쳐지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진위병(鎭衛兵)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 부사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 군수 및 강릉 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둥근형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의 하나)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4. 경포대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13년(1326)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앞면 5칸 · 옆면 5칸 규모로 단층겹처마 팔작지붕(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면의 모서리에 2층 누대를 꾸며 상좌(上座)의 자리를 만들어 입체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익공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대호(臺號)인 「경포대」(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안의 「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에 맞추어 높낮이를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에 따라 공간을 나누며, 시각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곳에 적절히 공간 형태를 부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2014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일 시 : 8월 8일(금) ~ 9일(토)
장 소 : 원불교 우인훈련원
좋/은/사/람/들
[ 일 정 ]
✿ 8월 8일(금요일)
강릉식당(채미골)6시30분~8시 – 우인훈련원 8시30분
✿ 8월 9일(토요일)
소금강 8시~11시 – 점심(오죽헌, 칠사당, 허난설헌, 참소리박물관) - 집으로
채미골 033-655-8939) 황태정식, 더덕정식 / 안인고향수산 033-642-0889세꼬시 물회
서지초가뜰 033-646-4430
1. 우인훈련원
☎ 033-662-7630 / 나성제교무 010-6633-7630
강릉시 연곡면 듬바우길 206-14
강원도 우인훈련원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정신개벽의 청정훈련도량입니다.
원불교우인훈련원은 정기와 상시훈련을 시켜 인류의 정신을 개벽시키는 활선도량입니다.
누구든지 각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자비와 지혜를 계발하여 사람으로서 어떠한 관계속에서도 원만하게 은혜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영육쌍전 도량입니다.
대도정법으로 만생령이 다 제도의 은을 입으시고, 온 인류가 인도정의의 바른길을 가기를 원하며, 인연닿는 모든 분들이 다 불보살이 되시기를 서원하며, 우리 다함께 법동지로서 세세생생 도덕사업 공도사업으로 대불과를 얻고 대보은자 되시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2. 오죽헌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오른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 방이 바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최치운은 이후 오죽헌을 아들인 최응현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위인 이사온에게 물려 주었으며 이사온은 그의 사위인 신명화에게 물려 주었으니 이때 율곡 이이가 태어난 것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 이이선생이 어릴때 사용하던 벼루가 보관되어 있다.
3. 칠사당
조선시대의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 단속에 관한 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고쳐지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진위병(鎭衛兵)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 부사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 군수 및 강릉 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둥근형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의 하나)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4. 경포대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13년(1326)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앞면 5칸 · 옆면 5칸 규모로 단층겹처마 팔작지붕(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면의 모서리에 2층 누대를 꾸며 상좌(上座)의 자리를 만들어 입체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익공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대호(臺號)인 「경포대」(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안의 「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에 맞추어 높낮이를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에 따라 공간을 나누며, 시각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곳에 적절히 공간 형태를 부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2014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일 시 : 8월 8일(금) ~ 9일(토)
장 소 : 원불교 우인훈련원
좋/은/사/람/들
[ 일 정 ]
✿ 8월 8일(금요일)
강릉식당(채미골)6시30분~8시 – 우인훈련원 8시30분
✿ 8월 9일(토요일)
소금강 8시~11시 – 점심(오죽헌, 칠사당, 허난설헌, 참소리박물관) - 집으로
채미골 033-655-8939) 황태정식, 더덕정식 / 안인고향수산 033-642-0889세꼬시 물회
서지초가뜰 033-646-4430
1. 우인훈련원
☎ 033-662-7630 / 나성제교무 010-6633-7630
강릉시 연곡면 듬바우길 206-14
강원도 우인훈련원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정신개벽의 청정훈련도량입니다.
원불교우인훈련원은 정기와 상시훈련을 시켜 인류의 정신을 개벽시키는 활선도량입니다.
누구든지 각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자비와 지혜를 계발하여 사람으로서 어떠한 관계속에서도 원만하게 은혜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영육쌍전 도량입니다.
대도정법으로 만생령이 다 제도의 은을 입으시고, 온 인류가 인도정의의 바른길을 가기를 원하며, 인연닿는 모든 분들이 다 불보살이 되시기를 서원하며, 우리 다함께 법동지로서 세세생생 도덕사업 공도사업으로 대불과를 얻고 대보은자 되시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2. 오죽헌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오른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 방이 바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최치운은 이후 오죽헌을 아들인 최응현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위인 이사온에게 물려 주었으며 이사온은 그의 사위인 신명화에게 물려 주었으니 이때 율곡 이이가 태어난 것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 이이선생이 어릴때 사용하던 벼루가 보관되어 있다.
3. 칠사당
조선시대의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 단속에 관한 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고쳐지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진위병(鎭衛兵)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 부사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 군수 및 강릉 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둥근형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의 하나)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4. 경포대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13년(1326)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앞면 5칸 · 옆면 5칸 규모로 단층겹처마 팔작지붕(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면의 모서리에 2층 누대를 꾸며 상좌(上座)의 자리를 만들어 입체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익공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대호(臺號)인 「경포대」(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안의 「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에 맞추어 높낮이를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에 따라 공간을 나누며, 시각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곳에 적절히 공간 형태를 부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일 시 : 8월 8일(금) ~ 9일(토)
장 소 : 원불교 우인훈련원
좋/은/사/람/들
[ 일 정 ]
✿ 8월 8일(금요일)
강릉식당(채미골)6시30분~8시 – 우인훈련원 8시30분
✿ 8월 9일(토요일)
소금강 8시~11시 – 점심(오죽헌, 칠사당, 허난설헌, 참소리박물관) - 집으로
채미골 033-655-8939) 황태정식, 더덕정식 / 안인고향수산 033-642-0889세꼬시 물회
서지초가뜰 033-646-4430
1. 우인훈련원
☎ 033-662-7630 / 나성제교무 010-6633-7630
강릉시 연곡면 듬바우길 206-14
강원도 우인훈련원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정신개벽의 청정훈련도량입니다.
원불교우인훈련원은 정기와 상시훈련을 시켜 인류의 정신을 개벽시키는 활선도량입니다.
누구든지 각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자비와 지혜를 계발하여 사람으로서 어떠한 관계속에서도 원만하게 은혜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영육쌍전 도량입니다.
대도정법으로 만생령이 다 제도의 은을 입으시고, 온 인류가 인도정의의 바른길을 가기를 원하며, 인연닿는 모든 분들이 다 불보살이 되시기를 서원하며, 우리 다함께 법동지로서 세세생생 도덕사업 공도사업으로 대불과를 얻고 대보은자 되시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2. 오죽헌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오른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 방이 바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최치운은 이후 오죽헌을 아들인 최응현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위인 이사온에게 물려 주었으며 이사온은 그의 사위인 신명화에게 물려 주었으니 이때 율곡 이이가 태어난 것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 이이선생이 어릴때 사용하던 벼루가 보관되어 있다.
3. 칠사당
조선시대의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 단속에 관한 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고쳐지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진위병(鎭衛兵)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 부사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 군수 및 강릉 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둥근형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의 하나)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4. 경포대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13년(1326)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앞면 5칸 · 옆면 5칸 규모로 단층겹처마 팔작지붕(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면의 모서리에 2층 누대를 꾸며 상좌(上座)의 자리를 만들어 입체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익공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대호(臺號)인 「경포대」(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안의 「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에 맞추어 높낮이를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에 따라 공간을 나누며, 시각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곳에 적절히 공간 형태를 부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일 시 : 8월 8일(금) ~ 9일(토)
장 소 : 원불교 우인훈련원
좋/은/사/람/들
[ 일 정 ]
✿ 8월 8일(금요일)
강릉식당(채미골)6시30분~8시 – 우인훈련원 8시30분
✿ 8월 9일(토요일)
소금강 8시~11시 – 점심(오죽헌, 칠사당, 허난설헌, 참소리박물관) - 집으로
채미골 033-655-8939) 황태정식, 더덕정식 / 안인고향수산 033-642-0889세꼬시 물회
서지초가뜰 033-646-4430
1. 우인훈련원
☎ 033-662-7630 / 나성제교무 010-6633-7630
강릉시 연곡면 듬바우길 206-14
강원도 우인훈련원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정신개벽의 청정훈련도량입니다.
원불교우인훈련원은 정기와 상시훈련을 시켜 인류의 정신을 개벽시키는 활선도량입니다.
누구든지 각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자비와 지혜를 계발하여 사람으로서 어떠한 관계속에서도 원만하게 은혜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영육쌍전 도량입니다.
대도정법으로 만생령이 다 제도의 은을 입으시고, 온 인류가 인도정의의 바른길을 가기를 원하며, 인연닿는 모든 분들이 다 불보살이 되시기를 서원하며, 우리 다함께 법동지로서 세세생생 도덕사업 공도사업으로 대불과를 얻고 대보은자 되시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2. 오죽헌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오른쪽 한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 방이 바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몽룡실이다.
최치운은 이후 오죽헌을 아들인 최응현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위인 이사온에게 물려 주었으며 이사온은 그의 사위인 신명화에게 물려 주었으니 이때 율곡 이이가 태어난 것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 이이선생이 어릴때 사용하던 벼루가 보관되어 있다.
3. 칠사당
조선시대의 관공서 건물로 일곱 가지 정사(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 단속에 관한 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고쳐지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진위병(鎭衛兵)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 부사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 군수 및 강릉 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둥근형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 모양을 내고 초각한 공포재의 하나)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4. 경포대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13년(1326)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앞면 5칸 · 옆면 5칸 규모로 단층겹처마 팔작지붕(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고, 경포호를 바라보는 정면의 모서리에 2층 누대를 꾸며 상좌(上座)의 자리를 만들어 입체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익공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대호(臺號)인 「경포대」(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안의 「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에 맞추어 높낮이를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에 따라 공간을 나누며, 시각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곳에 적절히 공간 형태를 부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