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속집 제2권 / 부록(附錄)
종산서원(鍾山書院)의 사액 제문 숙종(肅宗) 병인년(1686) / 지제교(知製敎) 제진(製進)
하늘 끝 변방 한 지역을 / 天荒一隅
관북이라고 하는데 / 曰惟關北
경계가 오랑캐와 가까워 / 疆鄰羯羠
자품이 비루하고 거칠었네 / 性資鄙朴
집안에선 읍하고 사양함을 부끄러워하고 / 家慙揖讓
사람들은 글 배우기를 부끄럽게 여겼는데 / 人愧文學
풍속을 변화시킨 것이 / 一變而魯
그 누구의 힘이었던가 / 伊誰之力
우리 충성스럽고 어진 이들이 / 賴我忠賢
바르게 인도한 덕분이었으니 / 是牖是迪
덕으로 보나 공으로 보나 / 以德以功
예에 있어 합사해야 했네 / 禮宜侑腏
*鄭汝昌 1450 1504 河東 伯勖 一蠧 文獻
내 생각건대 문헌공은 / 予惟文獻
자품이 매우 뛰어났네 / 資稟卓絶
뜻은 계도하는 데 있었고 / 志在啓開
행실은 독실하기에 힘썼네 / 行務篤實
체에 밝고 용에 통하였으며 / 明體達用
지식 지극하고 사물 이치 궁구했네 / 知至物格
근원을 깊이 탐구하여 / 深探根窟
위로 염락을 접하였네 / 上接濂洛
안을 곧게 밖을 방정하게 하여 / 直內方外
의가 정미하고 인이 익숙해졌네 / 義精仁熟
동궁을 인도하매 도가 높아졌고 / 翼儲道尊
고을을 맡으매 교화가 넉넉하였네 / 分竹化洽
사람들은 나아갈 방향을 알았고 / 人知趣向
선비들은 바른 도를 본받았네 / 士軌正轍
공이 성문에 빛나니 / 功光聖門
오현 중의 한 분일세 / 五賢之一
*奇遵 1492 1521 幸州 子敬 德陽, 服齋 文愍
덕양은 빼어나서 / 德陽翹英
성렬과 제회하였네 / 際會聖烈
학문은 수양에 근원하였고 / 學原藏修
충성은 보익하는 데 있어 / 忠存輔益
현덕한 이를 사우로 삼고 / 師友賢德
기와 설을 본받았네 / 型範夔契
문교가 성대하게 일어나서 / 文敎蔚興
고도를 회복할 만하였는데 / 古道可復
위기가 밤에 갑자기 닥쳐와 / 危機夜駭
뜻을 간직한 채 돌아가셨네 / 齎志而沒
*金尙憲 1570 1652 安東 叔度 淸陰, 石室山人, 西磵老人 文正
인조 때 훌륭한 신하 있었으니 / 仁祖有臣
문정공은 곧은 절개 간직하였네 / 文正直節
금석처럼 변치 않는 성심을 바쳤고 / 誠輸金石
빙벽으로 절조를 가다듬었네 / 操勵氷檗
명(明)을 높이고 청(淸)을 배척하매 / 尊周攘夷
가을빛처럼 의기가 늠름하였네 / 義凜秋色
명나라를 한결같이 섬기다가 / 一心皇朝
삼 년 동안 연옥에 갇혔네 / 三年燕獄
중국과 오랑캐를 놀라게 하였고 / 驚動華夷
그 이름 사적에 찬란히 빛났네 / 煒煌簡策
*鄭蘊 1569 1641 草溪 輝遠 桐溪, 鼓鼓 文簡
또한 생각건대 문간공도 / 亦惟文簡
충직이 매우 뛰어났네 / 挺特忠直
효를 주장하여 강상을 부지하다가 / 推孝扶綱
어려움 만나 위리안치되었으니 / 艱値栫棘
변치 않는 굳센 충성 / 一介孤忠
벽립천인(壁立千仞) 같았네 / 千仞之壁
오랑캐 신하 되지 않을 의기로 / 義不臣虜
칼로 배를 깊숙이 찔렀으니 / 刃沒于腹
평소의 충양으로 말미암아 / 由其充養
이런 일을 이룰 수 있었네 / 有此樹立
*柳希春 1513 1577 善山 仁仲 眉巖, 漣溪 文節
문절공과 같은 경우는 / 至如文節
해박하고 성실하였네 / 博洽端慤
화합하되 오속(汚俗)으로 흐르지 않았고 / 和能不流
위무가 지조를 굽힐 수 없었네 / 威武難屈
장추궁에서 내린 밀지를 / 長秋密旨
누가 거스를 수 있었겠는가 / 誰能批逆
홀로 공정한 논의를 창도하여 / 獨唱公議
화를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 蹈禍不怵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 不負所學
실로 나라의 우뚝한 인재였네 / 展也邦特
*鄭曄 1563 1625 草溪 時晦 守夢, 雪村 文肅
생각건대 문숙공은 / 惟此文肅
행의가 순수하고 독실하였네 / 行誼純篤
스승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고 / 鼓篋函丈
붕우와 어울려 보익을 구하였네 / 樂群求益
강직하여 아첨하지 않았으므로 / 棘棘不阿
소인배들이 눈을 흘겼네 / 群壬側目
바른 도리로써 나아가고 물러나 / 進退以正
명철하게 몸을 보전하였네 / 保身明哲
집에선 효도하고 국가엔 충성해서 / 入孝出忠
받은 가르침 욕되게 하지 않았네 / 不忝蛾述
*鄭弘翼 1571 1626 東萊 翼之 休翁, 休軒 忠貞
지난 혼조 때에는 / 往在昏朝
인륜이 무너져서 / 倫斁人瀆
서궁을 낮에도 금고하여 / 西宮晝錮
변고가 조석 간에 닥쳤는데 / 變迫朝夕
다행히 충정공이 있어 / 幸有忠貞
앞장서서 직언을 올리자 / 挺身奮筆
삼강이 끊어지지 않고 / 三綱不絶
인기가 부식되었으니 / 人紀以植
일대의 충의였고 / 一代忠義
천추의 사업이었네 / 千秋事業
*趙錫胤 1606 1655 白川 胤之 樂靜 文孝
저 아름다운 곧은 신하 / 彼美貞臣
사문이 의탁하였으니 / 斯文攸託
집안에 전해 오던 청백으로 / 家傳淸白
충효의 대절을 세워서 / 忠孝大節
악을 미워하기를 더럽힐 듯이 하였고 / 疾惡若浼
의에 나아가기를 목마른 듯이 하였네 / 赴義如渴
그 풍모와 업적이 우뚝하여 / 峻其風績
대간의 기강이 엄숙했는데 / 臺綱以肅
하늘이 수명을 부족하게 주었고 / 天嗇其年
벼슬 또한 그 덕에는 모자랐네 / 位歉于德
*兪棨 1607 1664 杞溪 武仲 市南 文忠
기계에 사람이 있어서 / 杞溪有人
대대로 충성을 바쳤네 / 世效忠績
학문에 연원이 있었고 / 學有淵源
의열을 숭상하였는데 / 尙志義烈
남한산성에서 올린 한 소장 때문에 / 南漢一疏
북쪽 변방에 삼 년 동안 출척되었네 / 北塞三黜
전조를 맡자 어진 이가 진출하였고 / 秉銓賢進
헌부를 맡자 간신들이 두려워하였는데 / 持憲姦懾
재주 폄을 오래하지 못하였으매 / 展施未久
조야가 매우 애석해하였네 / 朝野悼惜
생각건대 이 아홉 현인은 / 惟玆九賢
세대는 달라도 자취는 같네 / 異世同躅
그 광채는 열렬하였고 / 其光烈烈
그 행실은 뛰어났으니 / 其行卓卓
누군들 경모하지 않겠으며 / 誰不景仰
누군들 흠모하지 않겠는가 / 誰不欽服
하늘이 그 어떤 이에게 / 天其或者
변방을 교화하게 하였는가 / 要化荒域
전후에 걸쳐 이 한 구역에 / 一邦前後
수령이 되거나 귀양 가서 / 或刺或謫
어리석다 하지 않고 / 不謂蒙昏
모두 인도해 주었네 / 幷加誘掖
새로이 교화를 펼치니 / 新而化之
옛날의 나쁜 버릇 모두 변하여 / 舊染皆革
직접 배운 이는 바탕이 변했고 / 親炙質變
멀리서 들은 이는 풍속이 바뀌어 / 逖聽俗易
현송이 끊이지 않았고 / 絃誦不絶
제사의 의례도 익숙해졌네 / 俎豆是習
연대는 비록 멀어졌으나 / 年代雖遠
우러러 의지함이 어제 같으니 / 瞻依如昨
의당 너희 선비들은 / 宜爾章甫
생각하여 본받아야 하리라 / 思以矜式
종성의 서쪽에 / 鍾城之西
사우가 있는데 / 棟宇所托
천 개의 산봉우리 솟았고 / 山聳千鬟
아홉 굽이 물이 흐르네 / 水廻九曲
발걸음 이른 곳은 / 杖屨攸及
정령이 깃든 곳인데 / 精靈是宅
옛 서원 철거하고 새로 합함은 / 撤舊合新
대개 더럽혀질까 염려해서일세 / 蓋慮其黷
깊은 학문과 큰 절개로 / 邃學大節
나란히 혈식을 받으니 / 班享血食
유풍은 더욱 진작되고 / 儒風益振
의로는 더욱 넓어졌네 / 義路愈闢
부계와 녹동은 / 涪溪鹿洞
정자와 주자가 간 곳인데 / 程朱所適
지역은 달라도 지명은 같고 / 地殊名同
사람은 달라도 도는 한결같았네 / 人異道一
모두들 여기에 모인 것도 / 幷萃于玆
또한 기이한 일인데 / 是亦奇績
전형을 아득히 상상해 보니 / 緬想典型
어슴푸레 보이는 듯하도다 / 怳爾如覿
한스럽게도 동시대 아니어서 / 恨不同時
내가 보필 받지 못하였도다 / 資予毗翼
이에 예관을 보내 / 玆遣禮官
아름다운 편액을 내리노라 / 賁以嘉額
이어 제물을 올려 / 仍薦牲醴
나의 충정을 펼치니 / 敷予衷曲
영혼이 계시거든 / 不昧者存
와서 흠향하소서 / 尙來歆格
[주-D001] 종산서원(鍾山書院) :
함경북도 종성군(鍾城郡) 부계동(涪溪洞)에 있었던 서원으로, 일명 종성서원(鍾城書院)이라고도 한다. 1667년(현종8) 지방 사림들의 공의로 기준(奇遵), 유희춘(柳希春), 정엽(鄭曄), 조석윤(趙錫胤), 유계(兪棨) 등의 학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십주도회서원(十州都會書院)을 세웠다. 1669년(현종10)에 정여창(鄭汝昌)을, 1684년(숙종10)에 정홍익(鄭弘翼)을 추가 배향하였다. 그 뒤 지방 사림들이 회령서원(會寧書院)을 이 서원에 통합할 것을 건의하여 1686년(숙종12)에 ‘종산(鍾山)’이라는 액호를 받았으며, 회령서원에 봉안되었던 김상헌(金尙憲)과 정온(鄭蘊)을 추가 배향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주-D002] 염락(濂洛) :
송(宋)나라 때 도학(道學)이 일어났던 염계(濂溪)와 낙양(洛陽)이다. 이 지역 출신으로 특히 주돈이(周敦頤), 소옹(邵雍), 사마광(司馬光),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 여섯 사람이 유명하다.
[주-D003] 안을 …… 하여 :
《주역(周易)》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군자가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 하였다.
[주-D004] 내 …… 분일세 :
이 부분은 정여창에 대한 제문이다. 오현(五賢)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일두 정여창,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가리키는바, 1610년(광해군2)에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였다.
[주-D005] 기(夔)와 설(契) :
기는 순(舜) 임금 시대의 전악(典樂)으로 천자의 맏아들로부터 경대부의 맏아들까지를 가르쳤던 신하이고, 설은 사도(司徒)로 오품에 따른 오교(五敎)를 가르친 신하이다. 《書經 舜典》
[주-D006] 덕양은 …… 돌아가셨네 :
이 부분은 기준(奇遵)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경(子敬), 호는 복재(服齋)ㆍ덕양(德陽),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주-D007] 빙벽(氷檗) :
얼음을 마시고 황벽(黃檗)을 먹는다는 뜻으로, 괴로운 상황에 처한 것을 비유한다. 황벽은, 줄기는 황색 염료를 만들고 껍질은 약재로 쓰는데, 매우 쓰다고 한다.
[주-D008] 삼 년 …… 갇혔네 :
연옥(燕獄)은 송(宋)나라 충신 문천상(文天祥)이 원(元)나라 장군 장홍범(張弘範)에게 패하여 3년 동안 수감되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다가 죽음을 당한 곳이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여기에서는 김상헌(金尙憲)이 청(淸)나라의 출병(出兵)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심양(瀋陽)으로 압송되어 구류된 것을 말한다.
[주-D009] 인조 때 …… 빛났네 :
이 부분은 김상헌(金尙憲)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ㆍ석실산인(石室山人)ㆍ서간노인(西磵老人),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주-D010] 벽립천인(壁立千仞) :
암벽이 천 길이나 높이 솟음을 말하는 것으로, 선비의 드높은 기상과 성대한 기운을 비유한다.
[주-D011] 또한 …… 있었네 :
이 부분은 정온(鄭蘊)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주-D012] 장추궁(長秋宮) :
한(漢)나라 때 세운 궁전으로, 처음에는 고조(高祖)가 거처하다가 후에는 황후(皇后)가 거처하였다. 이로 인하여 황후나 왕후(王后)를 대신 일컫는 말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중종조(中宗朝)에 소윤(小尹)인 윤원형(尹元衡)이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대윤(大尹)인 윤임(尹任) 일파를 제거하려 하였는데, 조정의 공론이 따르지 않자, 자전(慈殿)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오빠인 윤원형에게 밀지(密旨)를 내려 일망타진할 계략을 편 것을 말한다. 《明宗實錄 1年 8月 23日》
[주-D013] 문절공(文節公)과 …… 인재였네 :
이 부분은 유희춘(柳希春)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주-D014] 생각건대 …… 않았네 :
이 부분은 정엽(鄭曄)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몽(守夢),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주-D015] 지난 …… 사업이었네 :
이 부분은 정홍익(鄭弘翼)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익지(翼之), 호는 휴옹(休翁)ㆍ휴헌(休軒)ㆍ휴암(休菴),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주-D016] 저 …… 모자랐네 :
이 부분은 조석윤(趙錫胤)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윤지(胤之), 호는 낙정재(樂靜齋),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주-D017] 기계(杞溪)에 …… 애석해하였네 :
이 부분은 유계(兪棨)에 대한 제문이다. 그의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주-D018] 현송(絃誦) :
학문을 강론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에 노닐고 행단(杏壇) 위에 앉아 쉬면서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하며 거문고를 탔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D019] 부계(涪溪) :
송(宋)나라 때의 학자인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철종(哲宗) 때 당론(黨論)으로 인하여 귀양 간 곳이다. 《宋史 卷427 程頤列傳》
[주-D020] 녹동(鹿洞) :
백록동(白鹿洞)을 말한다. 이곳의 백록동서원은 송나라 초기의 사대 서원(四大書院)의 하나로, 주자(朱子)가 남강군(南康軍)을 맡아 다스릴 때 손수 이 서원의 학규를 정하고 여기에서 학문을 강론한 일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낙철 (역)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