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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uth is, there were many in both Great Britain and America who believed in what is called "the two-stage coming doctrine," the idea of Christ's invisible presence prior to his revelation at the end of the present world and the teaching of an invisible rapture of the saints during his presence or parousia -- all ideas presented in The Object and Manner. In point of fact, these concepts were originated in 1828 by Henry Drummond, a British Evangelical who with Edward Irving was a co-founder of the Catholic Apostolic church or the Irvingites. Later, many of Drummond's ideas were popularized and spread throughout Great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by John Nelson Darby of the Plymouth Brethren, and by a number of other preachers. The various groups espousing these ideas came to be known as Dispensationalists. Quite a few famous names in American religion are associated with them: J. B. Rotherham, a Bible translator; the well known Bible commentator W. E. Vine; and the commentator C. I. Scofield of Scofield Reference Bible fame. Their dispensationalist views are clearly evident in their works. See The Roots of Fundamentalism: British and American Millenarianism 1800-1930 by Ernest R. Sandee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Now, all these arguments would go up in smoke if, as the November 1, 1986 Watchtower said, on p. 6:
진실은, 영국과 미국 양쪽에 소위 "두 단계에 이르는 교리"라고 불리는 것, 그리스도께서 현세 말기에 계시하기 전에 보이지 않는 임재에 대한 개념, 그리고 그의 임재 또는 파로우시아 동안 보이지 않는 성도의 황홀경에 대한 가르침, 즉 <목적과 방법>에 설명된 개념들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개념은 1828년 에드워드 어빙과 함께 가톨릭 사도교회나 어빙파 공동창립자였던 영국의 복음주의자인 헨리 드러먼드에 의해 유래되었다. 후에 드러먼드의 많은 사상들이 대중화되었고 플리머스 브레트렌의 존 넬슨 다비와 많은 다른 설교자들에 의해 영국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러한 생각을 옹호하는 여러 단체들은 천계적 사관주의자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 종교에서 꽤 많은 유명한 이름들이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 성서 번역가인 J. B. 로더함, 잘 알려진 성서 해설자 W. E. 빈, 그리고 스코필드 참고 성경 문헌의 명성가인 해설자 C.I. . 그들의 천계적 사관주의적 견해는 그들의 저술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근본주의의 뿌리를 보라: 어니스트 R 산딘에 의한 영국과 미국의 밀레나리아주의 1800-1930. , 1970년 시카고 대학 출판부.
1986년 11월 1일 파수대 6쪽에서 말한 것처럼, 이 모든 논쟁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When Did the "Seven Times" Really End?
'일곱 때'의 끝은 실제로 언제였는가?
Some people argue that even if the "seven times" are prophetic and even if they last 2,520 years, Jehovah's Witnesses are still mistaken about the significance of 1914 because they use the wrong starting point. Jerusalem, they claim, was destroyed in 587/6 B.C.E., not in 607 B.C.E. If true, this would shift the start of "the time of the end" by some 20 years. However, in 1981 Jehovah's Witnesses published convincing evidence in support of the 607 B.C.E. date. ("Let Your Kingdom Come,"21 pages 127-40, 186-9) Besides, can those trying to rob 1914 of its Biblical significance prove that 1934 -- or any other year for that matter -- has had a more profound, more dramatic, and more spectacular impact upon world history than 1914 did?
'일곱 때'가 2520년을 지속하는 예언이라 하더라도 여호와의 증인은 출발 시기가 잘못돼 1914년의 의의에 대해 여전히 오류라는 주장도 있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607년이 아니라 기원전 587년 6월에 파괴되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화 되어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종말의 시간"의 시작을 20년 정도 변경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1981년에 여호와의 증인은 기원전 607년을 지지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발표하였다.(<당신의 왕국이 임하소서>, 217쪽 127-40, 186-9) 게다가 1914년에서 성경적 의미를 없애려는 사람들이, 1934년, 혹은 그 어떤 다른 해라도, 1914년 보다 세계 역사에 있어서 더 심오하고, 더 극적이며, 더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The answer to the Society's question is a profound Yes. While the Society often claims that as regards 1914, "many historians correctly point to that year as the pivotal one for mankind," (Oct. 15, 1980 Watchtower, p. 14), this is not true of most historians. Most historians, even the ones the Society quotes, say that 1914 was one of the turning points in history, the turning point in our time, and so forth. For example, historian Barbara Tuchman, in The Guns of August (1962) said that "like the French Revolution, the First World War was one of the great convulsions of history." But when the Society's 1981 book Let Your Kingdom Come quoted this on p. 115, it left out the phrase "like the French Revolution." Many historians, in fact, state that the French Revolution was an even greater turning point than 1914 in terms of world history.
협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심오한 예스다. 협회는 1914년에 대해 "많은 역사가들이 그 해를 인류의 중추적인 해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파수대 1980년 10월 15일, 14 페이지)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심지어 협회가 인용하는 역사학자들까지도, 1914년은 역사의 전환점 중 하나였으며, 우리 시대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바바라 터흐만은 <8월의 총성>(1962년)에서 "프랑스 혁명처럼 1차 세계대전은 역사의 큰 격변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회의 1981년 책 "당신의 왕국이 임하소서"의 115페이지에서 이 말을 인용했을 때, "프랑스 혁명처럼"이라는 문구를 생략하였다. 사실 많은 역사학자들은 프랑스 혁명이 세계사적 측면에서 1914년보다 훨씬 큰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Let Your Kingdom Come also quoted The Economist magazine of August 4, 1979, in which the editor said that, "In 1914 the world lost a coherence which it has not managed to recapture since...." But it is hidden from the reader that the editor in the very same article compares the period after 1914 with the period from 1789 to 1848, which was as unstable, filled with wars, disorder and violence, as our own time, and suggests that history follows a rhythmic pattern -- "Two generations of upheaval and violence, followed by two generations of consolidation and calm, followed by two more generations of upheaval, followed by ... ?" (Page 10) So what did the editor really say about the period since 1914? Only that it seems to follow the general cyclical pattern of history in the past.
<당신의 왕국이 임하소서> 는 1979년 8월 4일자 <이코노미스트> 잡지를 인용하여 편집자가 "1914년 당시 세계는 그 이후 일관성을 잃고 회복될 수 없었다..."고 말했으나, 바로 같은 기사를 실은 편집자가 1914년 이후의 시기와 1789년부터 1848년까지의 기간을 비교한 것은 독자들에게서 감춰져 있다. 전쟁과 무질서와 폭력으로 가득 찬 우리 자신의 시대처럼 역사가 율동적 순환 패턴을 따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2대의 격변과 폭력에 이어 2대의 통합과 평정에 이어 2대의 격변에도 이어……"(10페이지) 그렇다면 편집자는 1914년 이후의 기간에 대해 정말로 뭐라고 말했을까? 그것은 과거의 일반적인 역사의 순환 패턴을 따르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As regards the Society's position that various features of what it calls the "composite sign" prove that its claims about 1914 are true, a detailed study of these claims about wars, earthquakes, pestilences, famines, and other features of the "sign" shows that the 20th century is no worse, and in some cases much better, than preceding centuries. For example, historian Barbara Tuchman, in the 1978 book A Distant Mirror, shows how the 14th century was similar in many ways to the 20th, and in some cases much worse.
이른바 '복합적 징조'라고 하는 것의 다양한 특징들이 1914년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한다는 협회의 입장에 관해서, 전쟁, 지진, 역병, 기근, 그리고 그 밖의 '징후'의 특징들에 대한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20세기가 이전 세기보다 더 나쁘지도 않고, 어떤 경우에는 훨씬 더 낫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역사가 바바라 터흐만은 1978년 책 <원거리 거울>에서 14세기가 어떻게 20세기와 여러 면에서 비슷했는지, 어떤 경우에는 훨씬 더 나빴는지를 보여준다.
The Mongols and Tartars overran most of the known world, killing tens of millions in the process. The Black Plague killed about one third the population of the entire world. Nothing even remotely like that has happened in the 20th century. Worldwide famine, not just hunger but famine, with people cannibalizing dead bodies, occurred several times. Crime and violence accompanied the devastation in the usual fashion. Earthquakes occurred normally, adding to the similarity. Author Philip Zeigler, in the 1969 book The Black Death, on p. 277, quoted historian James Westfall Thompson, who compared the aftermath of the Black Death and of World War I and found that in both cases complaints of contemporaries were the same:
몽골과 타르타르인들은 대부분의 세계를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흑사병은 전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을 죽였다. 20세기에는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단순히 배고픔만이 아니라 기근, 사람들이 시체를 식인하는 등 세계적인 기근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범죄와 폭력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참화를 동반했다. 지진은 정상적으로 발생해 유사성을 더했다. 작가 필립 자이글러는 277페이지에 실린 1969년 저서 흑사병(The Black Death)에서 역사학자 제임스 웨스트폴 톰슨의 말을 인용, 흑사병과 제1차 세계대전의 후폭풍을 비교한 결과, 두 경우 모두 동시대인들의 불만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Economic chaos, social unrest, high prices, profiteering, depravation of morals, lack of production, industrial indolence, frenetic gaiety, wild expenditure, luxury, debauchery, social and religious hysteria, greed, avarice, maladministration, decay of manners.
경제적 혼란, 사회 불안, 물가 상승, 폭리, 도덕의 타락, 생산 부족, 산업적 나태, 광적인 쾌락, 마구잡이 지출, 사치, 방탕, 사회 및 종교적 초조감, 식탐, 탐욕, 탐욕, 잘못된 행정, 매너의 실종.
첫댓글 워치타워는 1914년 이후를 세계 역사상 전례없던 대 재난의 때로 선전하지만 14세기에 흑사병이 돌고 당시의 경기가 침체하면서 겪었던 시대보다 더 큰 재난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1914년을 마치 워치타워 예언의 전유물로서 성서 예언을 크게 적중시킨 듯한 그들의 주장은 과대 포장이며 근거가 빈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