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4월 15일(월) 마태복음 10:16-33 찬송 255장
22절)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될
고난(苦難)과 핍박(逼迫)에 대해 교훈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메시야 왕국이 시작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악의 세력이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열 두 사도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 하시고
이스라엘의 각처로 파송하기에 앞서 그들이 겪게 될
고난과 핍박에 대해 예고(豫告)하신다.(16-23절)
복음 전파 과정에서 사탄의 방해는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양 같은 제자들이 이리 같은 세상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려면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이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권력자들 앞에 설 때도 있다.
이 또한 복음 전파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을 말할지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구하면 성령께서 친히 때에 맞는 말을 주신다.
예수님 때문에 가족이 나뉘고 서로를 죽음에까지 내몰기도 한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주님은 곧 오실 것이다.
지혜롭고 순결한 마음으로 재림의 소망을 품고
끝까지 인내할 때 복음 전도자의 행보는 기쁨의 행진이 된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셨기에 제자인 우리도 고난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 사람들이 집주인(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 하니
그 집 사람들(제자들)도 바알세불의 하수인으로 볼 것이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하신다.
먼저,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26절)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제자들의 무죄함을 입증시켜 주시며 진실을 밝혀 주시되
거절한 자들에 대해서는 그 범위대로 처분하실 것이다.
둘째로 박해자들은 몸은 죽일 수 있으되 영혼은 죽이지 못하나
하나님은 육(肉)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멸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28절)
실로 인간의 영육(靈肉)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어느 누구도 두려워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박해자가 주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의 심판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결국 당신의 종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친히 보호하시기 때문이다.(29-31절)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攝理)하에 있다.
하나님은 하찮은 참새의 운명도 주관하시며
우리 머리털까지 세시는 세심하신 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 확장을 위해 수고하는
전도자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시지 않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시며 그 생명을 지키신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복된 자들이다.
어둠을 몰아내려고 힘을 쓸수록 힘들다.
오히려 어둠에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닮아간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다.
어둠을 이기는 지혜로운 방법은 빛을 비추는 것이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사라진다.
세상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은 싫어한다.
미워하고 박해한다.
세상은 성도를 회유(懷柔)하고 타협하려 하다가 안 되면 핍박한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포기하는 신앙의 변절자가 된다.
힘들게 사는 것이 싫고 두렵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 했던 분들 중에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변절하여 친일파가 된 사람들이 많다.
일신의 영달(榮達)을 위해...
한번 뿐인 인생 힘들게 살기 싫어서...
두려움 때문에 아니면 희망이 없으면 포기한다.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되었을 때
변절자들은 땅을 치며 후회하며
주홍글씨처럼 지워지지 않는 수치를 안고 자손대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친일파들이
큰소리치며 살아가고 독립 운동했던 분들과 자손들은 힘들게 살아가지만)
신앙의 경주도 그렇다.
모든 것이 잘되고 아무 문제없으면 좋으련만
인생이 그렇지 않다.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악한 영들)의 시험과 핍박이 크다.
포기하거나 타협하면 지는 것이다.
끝까지 견디고 지키는 것이 영성이다.
견딘다는 것은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죽음의 고통까지라도 인내하며 복음의 진리를 붙잡는 것이다.
잠시 동안 어둠이 빛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어둠은 드러나고 진리는 밝혀지게 된다.
이 땅에서 드러나지 않아도 주님 나라에서는 밝혀진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2절)
주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달음질하자.
인생은 마라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