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교회를 가다 (1) 가난과 차별을 딛고
1%(66만 명)가 힘겹게 지켜나가는 미얀마 교회… 도움의 손길 필요
- 우연히 들른 카레이교구 캄팟지역 교리교사 바오로의 집에서 가족들과 염수정 추기경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년 11월 미얀마 땅을 밟은 지 1년이 지났다. 교황은 오랜 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을 어루만지며 ‘분노와 복수’가 아닌 ‘사랑과 평화’를 특별히 요청했다.
미얀마는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 60년 넘는 내전과 군부독재의 아픔이 쌓여 있는 땅이다. 미얀마 군부는 오랜 세월 나라 빗장을 걸어 잠갔고 분쟁과 가난으로 시간이 멈춘 땅이 되었다. 이런 미얀마에 최근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2016년 문민정부가 탄생하면서 예전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발전과 변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인구 90%가 불교를 믿는 미얀마에서 가톨릭교회 인구는 약 1%, 66만 명으로 미미한 숫자다. 하지만 교회는 변혁의 시대 속에서 갈등의 중재자로, 평화 건설의 주역으로 ‘작지만 큰’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랜 가난과 차별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노래하며 평화를 심고 있는 미얀마교회, 교황청 산하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와 함께 그곳에 다녀왔다. ACN한국지부 이사장 염수정 추기경이 처음으로 현장을 방문했다.
‘가난’은 수도 양곤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느낄 수 있는 미얀마 첫인상이다. 열악한 도로, 전력, 교육, 의료 상황은 우리나라 1960년대를 떠올린다. 교회는 특히 더 가난하다.
“주일 미사 봉헌금을 다 모아도 1달러가 안 되는 날도 많습니다. 많을 때는 2달러?”
- 지역 정서에 부딪혀 외부를 성당처럼 꾸미지 못하고 있는 양곤 쉐피타 지역의 한 ‘창고형’ 성당.
미얀마 서북지역 친 주(州) 산간마을 성당의 조셉 싱 탕 신부(하카교구)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싸움”이라고 말한다. 소작을 지으며 떠돌며 매달 7만 원 남짓 돈을 버는 신자들과 꾸려나가는 공동체는 가난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칼레묘 성심성당(칼레이교구)은 최근 기약 없는 새성전 짓기 공사가 한창이다. 조금씩 돈이 들어오는 대로 건물을 쌓아 올리고 있다. 원래 쓰던 성당은 흙바닥에 양철지붕을 덜렁 올려둔 터라 비 오는 날이면 미사 소리도 안 들릴 만큼 빗소리가 지붕을 때리고 더운 날엔 열기가 고스란히 들어와 찜통이 된다. 마땅한 의료 서비스도 없는 이곳에선 사람이 죽으면 성당에서 시신을 수습하기도 하는데 30년 넘은 낡은 차에 산 자와 죽은 자가 포개져 달리는 일도 예사다.
‘차별’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미얀마는 종교 자유 국가다. 하지만 국민 정서 문제는 다르다. 미얀마 신분증은 손바닥 반만 한 붉은색 종이에 이름, 출생연도, 신체 특징 등과 함께 출신 민족과 종교를 기록한다.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 불교’ 조합이 아니라면 비공식적인 차별을 감수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수녀들은 베일을 벗고 수도복 대신 사복을 입는데 이만 봐도 곱지 않은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경직된 분위기는 소수 종교를 움츠리게 한다. 수도 양곤에는 ‘창고형 성당’이 몇 군데 있는데 성당 외벽에는 십자가도, 스테인드글라스도 없다. 불교가 강한 지역공동체 분위기 탓에 종교시설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목적홀 혹은 창고로 허가난 건물은 문을 열고 봐야 비로소 성당임을 알 수 있다. 교회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소리높여 성가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미사처럼 대규모 인원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일은 누군가 딴죽을 걸면 언제든 큰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라이따야 지역의 한 성당은 실제로 지난해 두 달간 문을 닫기도 했다.
- 칼레이교구 한 교리교사의 집에서 염수정 추기경과 엘리사벳 할머니. 할머니는 염 추기경에게 달걀 두 알을 선물했다.
‘미션’은 그럼에도 계속된다. 교회는 가난하게 쌓아올린 성전에서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사회 사각지대를 돌본다. 칼레이교구는 올 5월 의사 5명과 함께 시내에 무료 진료소를 열었다. 하카교구는 절반 이상 본당에서 청소년 기숙사를 운영하며 학업을 지원한다. 저학력, 저임금 굴레에 갇힌 청년들을 위한 컴퓨터, 영어, 운전 등 직업교육과 야학도 시행하고 있다. 무엇 하나 수월하지 않은 환경에서 사목은 상상 이상으로 처절하다.
“산길에서 네 번이나 굴렀는데 아직도 살아있다니!”
우기가 되면 질척한 땅을 헤집으며 오토바이를 탔다가 업었다가 해발 5000m 산길을 달린다는 다윗 킨 훙(하카교구) 신부의 슬픈 농담이 이곳에선 ‘일상’이다.
*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 ACN)는 가난과 차별, 박해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의 재단으로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를 개설했다. 미얀마 교회는 ACN을 통해 성전 건립, 교리 책 발간, 성직자 양성 및 생계 지원 등을 받고 있다.
문의: 02-796-6440 또는 인터넷에 ‘고통받는 교회 돕기’ 검색, 성금 계좌: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코리아)ACN
ACN 한국지부 이사장 염수정 추기경
염수정 추기경은 ACN 한국지부 이사장으로서 처음으로 11월 26~30일 ACN 후원 현장을 방문했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형제 교회의 어려움에 함께 연대하기 위해서다. 염수정 추기경의 미얀마 방문 소감을 정리했다.
“미얀마 첫 현장 방문은 애초 계획 없었던 깜짝 방문으로 시작됐습니다. 현장 방문을 가던 도중 험한 도로 사정 때문에 차량 타이어에 구멍이 났고 시골 들판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길 바로 앞에 있던 농가에 ‘가톨릭교회, 교리교사 바오로의 가정’이라는 문패가 있었습니다. 한 평신도 교리교사의 가정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은 경제적 지원일 것입니다. 특히 의료와 인재 양성 부분에서 도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교회를 돕는다는 것은 경제적인 도움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의 사목활동과 수도자의 사도직을 돕고 그들의 어려움에 함께하고 연대함으로써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우리는 참 좋은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얀마교회를 가다 (2) 눈물의 옥(玉)… 카친 IDP 캠프를 가다
오랜 내전으로 늘어난 실향민… 값싼 마약에 노출된 아이들
-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성 요셉 팔라나 IDP 캠프’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얀마 카친 주 국내 실향민들.
“제한된 지역 방문 시 처벌 받을 수 있음”
미얀마 최북단 지역 카친 주 미치나공항에 내리자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표시한 경고판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국제선 출입국 심사보다 더 깐깐하게 체류 기간과 장소, 방문 목적 등을 기재하고서야 공항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도 경고판이 시선을 따라 붙었다. 중국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미얀마 최북단, 천연자원의 보고, 차별과 수탈의 역사가 서린 땅, 정부군과 소수민족 카친 반군의 내전이 끊이지 않는 곳, 미얀마 민족분쟁의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IDP 캠프에서 도움 기다리는 실향민들
A씨는 올 초 쫓기듯 고향 마을을 떠나왔다. A씨 고향은 카친독립군(KIA)이 점하고 있던 마을인데 어느 날 밤 정부군이 행진해 올 것이라 예고했고 갑자기 마을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밤 11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온 마을이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1000명이 줄지어 밤길을 걸었다. 불이 보이면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말에 밤새 어둠 속을 걸었고 초소를 지날 땐 너무 무서워서 기도했다. 다행히 새벽 6시쯤 다른 마을에 도착해 구조팀과 접선했고 두 마을을 더 떠돌다 IDP(Internally displaced persons, 국내실향민) 캠프로 왔다. A씨는 수개월째 캠프 내 한 칸짜리 방에 가족들과 머물며 구호의 손길에 기대고 있다.
‘성 요셉 팔라나 캠프’에서 만난 A씨의 극적인 고향 탈출기다. 이곳은 A씨처럼 무력분쟁을 피해 온 국내실향민들이 머무는 곳으로 인장양, 숨프라붐 마을 출신의 170여 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카친 주에는 160여 곳의 IDP 캠프가 있는데 이곳은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50여 개 캠프 중 하나다.
캠프의 오후는 한산했다. 아이들은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와 유치원에 갔고 몇몇 여인들만 집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오면서 삶을 잃었다. 가장이 고향에 남으면서 이산가족이 된 집도 많다 보니 캠프의 공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얇은 칸막이로 겨우 집과 집 사이를 분리해둔 나무집과 공용 빨래터, 화장실은 남루한 생활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카친 사람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무력 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경험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분쟁과 피난의 역사는 깊다. 캠프에서 만난 60대 B씨는 어린 시절 정글로 숨어들어 간 기억이 수없이 많다며 이번 캠프 생활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어둠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캠프에 더 머물고 싶지 않지만 돌아가더라도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서워요. 땅에는 지뢰가 심어져 있을 테고 싸움이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니까요. 무장군이 논에도 못 가게 하고 나무도 못하게 할 텐데요. 부자는 아니지만, 집도 있고 생계가 다 그곳에 있었는데 여기선 교회나 NGO 지원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 힘듭니다.”
뿌리깊은 지하경제,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
-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미치나 ‘성 요셉 팔라나 IDP 캠프’아이들이 공부방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분쟁은 삶의 터전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파괴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집집이 최소 두 명은 마약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헤로인을 맞으려면 500짯(약 440원)이면 돼요. 초콜릿보다 싸고 구하기도 너무 쉽죠. 젊은 여성들은 상당수가 계약결혼으로 중국에 팔려갑니다. 아이를 하나 낳고 또 다른 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집으로…. 유흥업에 흘러가기도 하고요.”
교구청에서 만난 노엘 나우 랏(미치나교구 사회사목 담당) 신부가 담담하게 카친의 상황을 소개했다. 오랜 분쟁 속에서 카친은 버려진 땅이 됐다. 정부군과 반군이 총부리를 겨누는 동안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지하경제가 뿌리내렸다. 세계적인 품질의 옥, 루비가 나오는 풍요로운 땅은 오히려 카친족에게는 눈물의 씨앗이 됐다. 중국 자본과 정부, 군부의 이해관계 속에서 지역은 멍들어갔고 ‘마약, 에이즈, 인신매매’는 일상이 됐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아픔에는 눈을 감고 있다.
미치나교구가 설립한 ‘부활 재활센터’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돌보는 아슈에나 아파오(성 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 수녀는 “망망대해에 물방울을 흘리는 심정”이라고 말한다. 마약 중독은 넘쳐나는데 도움의 손길은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수많은 아이가 학교 대신 정글 벌목장이나 바나나 플랜테이션에 가서 일해요. 사업장에서는 어린 노동자들을 고되게 부리면서 암암리에 마약을 권해요. 현실의 고달픔을 잊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오는 유혹이 마약이에요. 투약 바늘을 나눠 쓰다 보니 에이즈 감염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처벌은 없어요. 국경지대로 가면 양귀비밭이 많지만, 거대 마약상은 건드리지 않고 어쩌다 한 번씩 작은 판매자만 처벌하는 정도예요. 우리 센터에 제발 자기 아들을 받아달라고 찾아와서 우는 엄마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죠.”
카친 주에 걸쳐 있는 미치나ㆍ바모ㆍ라시오교구는 뿌리 깊은 분쟁의 역사를 끊기 위해 2015년부터 주교 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사목에 힘을 모으고 있다. 세계 교회를 향해 카친 분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가하면 IDP캠프 운영, 가정사목 등을 함께하고 있다. 60년을 이어오는 관성적 공포와 무력을 멈추고 평화를 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회의 발걸음에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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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친 분쟁=미얀마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비롯해 샨, 친, 카인, 리카인, 카친 등 크고 작은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나라다. 카친은 미얀마가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부터 민족 자치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카친독립군(KIA)을 중심으로 정부군과 내전을 벌여오고 있다. 1994년 평화협정을 맺었으나 2011년 정부와 중국이 합작 건설한 수력발전소 인근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무력 충돌로 인해 다시 분쟁이 격화됐다.
후원 문의: 02-796-6440 또는 인터넷에 ‘고통받는 교회 돕기’ 검색,
성금 계좌: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