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3) 칙사 독우의 징계
"이놈들아! 빨리 문을 열어라! 빨리 열지 않으면 내가 모조리 부숴 버릴 테다! "
칙사의 부하들은 문틈으로 내다보다가 장비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문을 열지 마라! 대문을 열었다가는 큰일나겠다! "
칙사의 부하중에 지휘자인듯 한 자가 소리쳤다.
그러자 문밖에 장비는,
"이놈들아! 네놈들이 정말 순순히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말이지? 좋다, 그렇다면...! "
장비는 그렇게 말하더니, 대문 기둥에 두 손을 대고 <끄응> 소리를 내며 힘차게 흔들어 대는 것이었다.
대문 기둥은 처음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장비가 두 번째 흔들었을 때에는 약간 흔들리는 듯이 보이다가, 세 번째 끄응 하고 흔들었을 때에는 우적우적 소리를 내면서 안으로 자빠져 버렸다.
그 바람에 먼지가 풀석 일면서 하졸 몇 놈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진 대문과 지붕에 깔려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장비는 비호같이 대문을 밟고 넘어들어 가며,
"독우란 놈은 어디 있느냐?"
하고 호랑이가 울부짖듯 고함을 질렀다.
"저놈 잡아라! "
"저놈을 때려눕혀라! "
칙사의 하졸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덤벼들었다.
"에잇! 강아지 같은 놈들! "
장비는 한꺼번에 덤벼드는 하졸들을 닥치는대로 집어던지고, 발길질을 해댔다.
"아이쿠! "..."으악! " ..."꽥! "
칙사의 하졸들은 장비의 손에 단박에 제압되었다.
장비는 그 길로 칙사의 객실로 뛰어들었다.
때마침 칙사 독우는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계집들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장비는 방안으로 뛰어들기가 무섭게 독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죽일놈아! 네놈이 우리 형님을 죄인으로 몰아 상소문을 쓰게 했다지! 너 같은 놈은 이 장비가 그냥둘 줄 아느냐! "
계집들은 혼비백산해서 악기를 집어던지고 줄행랑을 친다.
독우는 멱살을 붙잡힌 채 발발 떨었다.
"아! 이, 이, 이 무슨 무례스러운 일이뇨?"
"이것 봐라? 네 놈이 아직도 큰소리를 쳐? "
장비는 독우의 멱살을 움켜잡은 채 바깥으로 질질 끌고 나와 마당에 내동댕이 치며 이렇게 꾸짖었다.
"너같이 썩어빠진 놈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운 거야! 이놈! 너는 천하의 의병 대장 장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인데, 오늘 제대로 맛 좀 보거라! "
이러는 동안에도 장비의 기세에 눌려서 아무도 독우를 구하러 달려오는 놈이 없었다.
장비는 홧김에 독우를 발길로 걷어찼다. 독우는 볼썽사나운 비명을 질렀다.
장비는 반쯤 늘어진 독우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일갈하였다.
"너 같은 놈은 여러사람 앞에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
하고 말하며, 밧줄로 독우의 몸을 칭칭 묶어, 마당 한쪽에 서있는 버드나무 굵은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그리고 나서 제법 굵은 버들가지를 꺾어서 독우의 등허리를 냅다 후려갈겼다.
"이놈! 채찍 맛이 어떠냐! "
"아고고, 사람죽네! "
"이놈아! 백성들의 피가 빨리는 고통을 모르는 놈이 네 몸에 채찍내리는 아픔은 안단말이지? 가렴주구(苛斂誅求)의 고통이 이만할 줄만 아느냐?
네놈도 필시 십상시놈들의 수족이 되어가지고 백성들의 등을 쳐먹는 놈이 틀림없으렸다? 너같은 흉물은 아에 햇볕에 말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
장비는 호령과 함께 채찍을 <따악 딱>내리갈기는 바람에 버들가지는 금방 껍질이 벗겨져 나갔다.
칙사 독우는 체면과 위신은 간 곳 없이 이제는 흑흑 흐느껴 울기까지 하며 통사정 조의 말을한다.
"용서하소서! 다시는 안 그럴테니 목숨만 살려주소서! "
"이놈아! 내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갈 줄 아느냐! "
장비는 여전히 채찍을 후려갈겼다.
사실 황제의 칙사인 독우나 그의 하졸들을 장비가 제대로 후려갈겼다면, 단 한 방의 주먹질로 아구창이 으스러지며 이빨이나 눈알이 모두 튀어나왔을 것이고, 그의 힘찬 발길질 한 번이면 정강이 뼈나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지고 으스러져서, 그 자리에서 모두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장비는 처음부터 놈들을 단순히 혼내 줄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독우와 그의 하졸들은 장비에게 경을 치고도 죽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날 유비는 전날 있었던 칙사의 행패가 너무도 불쾌하여 관아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있었는데, 때마침 사오 명의 백성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큰소리로 말한다.
"유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장비 나리께서 술김에 황제의 칙사를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고 마구 채찍을 가하고 있습니다."
유비는 깜짝 놀라며 현장으로 달려왔다. 관우도 그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오며,
"드디어 그동안 참고 참았던 장비의 심술이 터진 모양이로구나."
하고 혀를 찼다.
현장에 와 보니, 칙사 독우는 불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밧줄에 온몸이 꽁꽁 묶여 버드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흙이 묻은 옷은 갈기갈기 찢겨있었고, 드러난 등줄기에는 채찍에 맞아 피가 줄기줄기 어지럽게 맺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팔다리에는 시퍼런 멍 조차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여보게 장비! 이게 무슨 짓인가! "
유비는 다 떨어진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장비의 손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형님! 내버려두시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이런 놈은 아예 없애 버려야 합니다."
나무에 매달린 독우는 유비를 보자, 고개를 굽신거리며 이렇게 애걸하였다.
"오오, 현위 유공이시어! 공의 부하 장비가 술에 취해서 나를 죽이려 하고 있소. 나는 장비의 잘못을 용서하고, 공 에게도 높은 벼슬을 내리도록 상주할 테니, 제발 나를 좀 살려 주시오."
순간 유비는 그토록 위세가 당당하던 칙사 독우의 비루한 비명의 소리를 듣고 나자, 갑자기 장비를 나무랄 생각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독우가 비루한 인간일지라도 그는 황제의 칙사가 아니던가?
유비는 그 점을 생각해서,
"여보게 장비! 그만두지 못하겠는가! "
하고 책망하며 장비의 뺨을 호되게 후려갈겼다.
장비는 그제서야 채찍을 던져버리고 독우를 노려보기만 하였다.
유비는 독우에게 다가가 나무에 묶인 밧줄과 몸을 감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던 관우가 한걸음 다가서며 말한다.
"형님! 이런 놈을 살려두어서 무슨 쓸모가 있다고 그러시오?"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무슨 쓸모를 기대하고 이 사람을 살리는 줄 아는가! "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놈은 백 번 살려 주어도 나라에 해독이 있을 뿐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그러나 이분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황제의 칙사가 아닌가?"
"칙사요?"
관우는 전례없는 코웃음을 치고 나서,
"형님! 우리가 오늘날 이런 비루한 놈에게 욕을 보게 된 것은, 형님이 현위라는 보잘 것 없는 감투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지극비란봉소서(枳棘非鸞鳳所捿) 라고, 탱자나무와 가시덤불 속은 봉황이 살 곳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애초에 살아야 할 곳을 잘못 택한 것 같습니다. 그걸 성질이 급한 장비가 오늘 행동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이곳을 떠나 원대한 계획을 다시 세워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추연히 말하는 것이었다.
"관우 형님! 역시 내 형님이오. 내 기분을 이렇게나 잘 이해 해 주는 것을 보니! "
장비가 반색을 하며 관우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관우와 장비의 이런 모습을 지켜 보던 유비도 생각되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옳은 말이오! 나 역시 그동안 이곳은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계속해 왔소. 다만 젊은 혈기로 섣불리 행동했다가 모두에게 폐를 끼칠까 보아 가만히 있어왔지만, 오늘의 사태를 겪고 보니 이제는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가 된것 같으오."
유비가 말을 마치자 관우, 장비가 유비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삼형제는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도원결의 삼형제는 손에 손을 맞잡고 서로를 격려하였다.
"형님! " ..."유비 형님!..." 아우님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지! "
이윽고 유비는 독우를 향하여, 가슴에 달고 있던 현위의 인수(印綬)를 끌러 주면서 말했다.
"당신같이 백성을 괴롭히는 오리(汚吏)는 마땅히 목을 베어 만인환시하에 효시(梟示)하여야 할 것이나, 당신의 가족들이 놀랄까봐 살려주겠소. 이제 낙양으로 돌아가거든 부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나랏일에 임하도록 하시오."
"가세, 관우,장비 두 아우님들..."
유비는 즉시 관우,장비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유비는 현위 벼슬을 받은 지 넉 달이 채 못 되어, 그 길로 두 아우와 함께 내일의 운명을 모르는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