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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章 대막쌍마군(大漠雙魔君) 1 운학령(雲鶴嶺) 근처였다. 저녁 무렵, 산중에 출몰한다는 호랑이가 무섭지 않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 운학령을 넘는 흑 삼검사 하나가 있었다. 얼핏 보면 걷는 듯하나 사실 걷는다기보다 난다고 표현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전설로만 알려지고 있는 축지성촌술(縮地成寸術)을 시전하고 있는 젊은이의 나이는 일신 무 공에 비해 아주 앳되어 보였다. 많이 먹어야 스물한 살 정도의 나이인데, 고금에 드물다 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이었다. 양귀비(楊貴妃)가 환생한다면 당(唐) 현종(玄宗)의 귀비가 되기보다 이 청년의 애인이 되는 쪽을 원할 것이다. 이미 흙으로 화한 전국시대의 미남 송옥(宋玉)이 저승에서 그를 보고 부끄러워 고개를 떨굴 것이고……. "형주에 닿으면 밤이 되겠군." 그의 말소리가 저녁 공기를 깨뜨렸다. "상쾌한 날이군. 천하에 악인이 없다면 더 좋을 텐데… 인간의 마성(魔性)을 무엇으로 없앨 수 있단 말인가?" 탄식하며 걷는 젊은이는 옥면혈마라 불리기 시작한 희대의 풍운아 상관안이었다. 그는 지금 형주로 가는 길이었다. 처음 가는 길인지라 도중 길을 잃어 헤맸고, 그러기에 아 직 형주 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관안은 허기를 느꼈으나 참고 몸을 날렸다. 이불지와 길이 엇갈린다는 것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이불지의 벌거벗은 몸뚱이가 눈앞으로 떠올라 간혹 피부에 소름을 돋게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신이었던가? 그녀의 피부는 상관안이 접해 본 어떤 비단 이불보다도 부드러운 것이었고, 그녀의 숨결은 천하에서 가장 달콤한 향내였지 않던가? '천녀제와 짜고 나를 속이기는 했으나, 내게 약간이나마 진정(眞情)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상관안은 이불지가 자신을 어찌 생각하고 있을지 생각하며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는 가운데 천녀교의 내막에 대해 기이한 느낌이 일었다. '미혼관음은 왜 금족령을 당했을까? 그녀야말로 천녀교의 공신(功臣)이 아닌가? 그녀는 과 거 마후상인을 부려 혈홍문을 멸망케 했고, 천녀교를 위해 수많은 기재들을 모았었다. 천녀 교주가 처음 거둔 제자 또한 미혼관음인데… 어이해 자신의 지위를 이불지에게 뺏겼을까? 천녀제가 왜 과거의 공신들을 모조리 제거하는지 모르겠군. 뇌옥 안의 시산혈해가 소문난다 면, 지금 천녀제를 따르 는 많은 마도고수들이 그녀를 배척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관안은 자신이 한때 천녀교의 소교주라고 불렸던 것을 잊지 못했다. 그것을 영광으로 여 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로 여길 뿐. "이불지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군. 단 하룻밤을 같이 지냈는데도 십년지기같이 친했었는 데… 그것이 가면인 줄 모르고… 후후… 하긴 나도 그들을 십 년이나 속이고 살았었으니, 피장파장이다." 상관안은 과거지사를 기억하며 웃음을 흘리다가 문득 걸음을 세웠다. "저것이 무엇일까?" 상관안의 망막으로 들어오는 성광(聖光) 한 줄기가 있었다. 검은 하늘이 은은한 붉은빛에 휩싸여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신비한 빛, 그것은 상서로운 물건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보기(寶氣)였다. 신령한 물건은 자연을 변화시키며 자신이 나타났음을 알린다. 상관안은 자석에 끌리듯 하늘로 향해 치솟은 보광에 시선을 빼앗겼다. 잠시 후, 상관안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영약(靈藥)이 나타났음에 틀림없다. 산상에 전설적인 영약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상관안은 고서(古書) 안에서 본 글 한 줄을 뇌리에 떠올렸다. <화리(火鯉)가 나타나면 하늘이 붉게 물든다. 화리는 단 일각,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잡지 못하면 한 달을 기다렸다가 잡아야 한다. 하나 화리는 하루에 만 리를 가는 영물이니, 한 번 놓칠 경우 어느 곳에 가서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 상관안이 다섯 살이 되기 전 읽은 책 중에 쓰여 있던 글이었다. "만 년 묵은 화리가 나타났음에 틀림없다. 붉은 기운이 점점 강렬해진 것으로 보아, 화리가 물 위로 떠오르고 있겠군!" 상관안은 화리에 대해 욕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껏 그 모습도 보지 못한 화리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충동마저 느끼지 않을 정도 는 아니었다. "가 보자." 상관안은 호기심에 끌려 산상으로 치달려갔다. 휘익-! 비천유성신법을 시전하는 찰나, 그의 몸뚱이가 한 줄기 검은 바람같이 되어 숲을 가로질렀 다. 상관안의 비천유성신법은 태극동부를 나설 때에 비해 한결 나아진 상태였다. 그간 무공 수련을 게을리 않은 탓이었다. 언제고 한 번 싸워야 할 강적, 당금 천하에 있어 가장 강한 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천녀제와 의 일전을 위한 수련을 어찌 중단하겠는가? 휙- 휙-! 상관안은 흑의선인과 삼마의 절예를 한몸에 익힌 젊은 고수로 부끄럽지 않게 절묘히 날아 운학령 꼭대기에 이르게 되었다. 산정, 그곳에 거대한 호수 하나가 있었다. 아주 광활한 호수인데, 타는 듯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붉은빛 명주를 수만 개 뿌린 듯, 출렁이는 물살이 타오르듯 신비로운 빛을 뿌려 댔다. 호수 한가운데, 붉은 광구 하나가 떠올라 있다. 붉은빛은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만년화리다!" 상관안은 광구가 만년화리의 등가죽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화리는 만 년을 사는 동안 내단을 만든다. 내단이 완성되면 화리는 타오르는 붉은빛으로 변 하는 것이다. 내단을 복용하면 만독불침지신이 되고, 금강불괴의 신체를 얻게 된다. 그러하기에 무가에서는 화리의 내단을 절세의 신약으로 여기는 것이다. 내단으로 단약을 만든다면 백골에 살을 돋아나게 만들고, 범부를 한순간에 절세고수로 만들 수 있다. 화리는 만고의 영물, 그것은 천기를 타고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상관안은 화리를 한 번 낚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가 화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킬 때였다. 꽝-! 저 멀리서 폭음이 일어났다. "늙은이! 감히 잠수(潛水)하려 하다니… 우리들이 여기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냐?" "어서 나와라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광폭한 목소리에 뒤이어 늙은이의 신음 소리가 뒤따랐다. "너… 너희들은 육십 년 전 죽었다고 전해지는 대막(大漠)의 쌍마군(雙魔君)인데, 어이해 지 금 천녀교의 옷을 걸치고 버젓이 살아 있단 말이냐?" 아주 처량한 말소리의 임자는 교룡피로 된 잠수복을 걸친 채 물가에 엎드려 피를 토하고 있 었다. 호호백발 늙은이인데, 눈빛이 아주 선해 보였다. 그 좌우, 키가 아주 큰 홍의노인 하나와 키가 아주 작은 난쟁이라 불릴 만한 홍의노인이 서 서 이를 갈고 있었다. "우리들은 저것을 얻기 위해 여기서 열흘 밤을 세웠다. 한데, 늙은이가 불쑥 나타나 물 속으 로 뛰어들다니……." 거인(巨人)이 손을 쳐들자, 노인의 얼굴에 체념의 빛이 떠올랐다. '대수인(大手人) 일 장은 중원무성도 받는 데 고생했던 것이다. 여기서 죽는 수밖에 없겠 군.' 그가 눈을 감을 때였다. 2 "멈추시오!" 낭랑한 말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로질러 오는 흑의인영 하나가 있었다. 반대의 호숫가에서 등평도수 신법과 능공허도 신법을 배합한 기묘한 신법으로 수면을 간간 이 차며 드넓은 호숫가를 가로지르는 청년은 바로 상관안이었다. 츠윽-! 상관안은 자신이 질러 낸 호통 소리의 여운이 끝을 맺기 전, 잠수복을 걸친 노인 바로 곁에 떨어져 내릴 수 있었다. 가히 섬전을 방불케 하는 신법이었다. "흠, 천녀교 무리가 없는 곳이 없군." 상관안은 두 노인을 바라보며 눈빛에 살기를 더했다. <혈탑제일호법(血塔第一護法)> 체구가 대조적인 노인들은 옷자락에 금빛 실로 수놓은 글씨를 갖고 있었다. 금빛 실은 은빛 실보다 높은 단계를 의미했다. 홍의노인들의 무공은 혈탑 안에서도 최절정에 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막쌍마군(大漠雙魔君)이라 불리는 이대 전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활약했던 시절 은 일성군 삼기인이 청년의 패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여겨지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조차 천녀교 혈탑의 의복을 걸치고 있다는 것은, 곧 천녀교의 세력이 명불허전임을 말 하는 것이었다. 키가 큰 자는 패천마제(覇天魔帝)라 불리었고, 쌍장에 익힌 대수인을 장기로 삼고 있었다. 그가 익힌 대수인마공은 가히 대막 최고의 절기였다. 잠수복을 입은 노인이 쓰러져 있는 이유도 대수인에 격타당했기 때문이었다. 노인의 정체가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패천마제의 실력이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데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패천마제는 자신보다 일곱 자나 작은 키를 갖고 있는 난쟁이 노인에게 상수(上手)의 지위를 내주어야 했다. 천왜수(天矮 )라는 전설적인 별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육구(肉球)같이 생긴 사 척 단 구의 노인이었다. 그의 특기는 열 손가락에 익힌 빙백신지력(氷魄神指力)이었다. 빙백지공은 원래 장백파(長白 派)의 비전절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장백파가 문하 제자들을 두지 않고 맥을 끊은 후 실전된 것으로 소문난 절기 였다. 천왜수는 지금으로부터 구십 년 전, 장백산에 갔다가 그것을 적은 비급 한 권을 얻은 기연 을 만났었다. 그는 그것을 익혀 자신의 고향 땅인 대막의 패자(覇者)가 되었고, 마음이 맞는 패천마제와 더불어 대막을 피로 물들이고 현세의 옥황상제같이 행세했었다. 그러다가 상고기인(上高奇人)의 절예를 익힌 중원무성이란 젊은 고수에게 패해 사라져야 했 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에 죽었다고 소문났는데, 버젓이 살아나 있으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 가? 휙-! 절정에 달한 신법을 일으켜 호수 위를 가로질러 잠수복을 입은 노인 곁으로 떨어져 내린 상 관안은 그들이 혈탑제일호법이란 수를 놓은 홍의를 입고 있다는 데서 분노를 일으켰다. "흥! 감히 어디서 살생을 하려 하는가?" 상관안이 섬전같이 날아들자, 대막쌍마군이 어이없다는 듯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히히히……!" 천왜수의 웃음소리는 밤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두 배 더 큰 체구를 갖고 있는 패천마제 쪽을 바라보며 싯누런 이빨을 드러 내 보이다가. "아우야." 그러자 패천마제가 멍청해 보이는 말상의 얼굴을 일그러뜨려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형! 어인 말씀이시오?" "헤헤헤… 이 녀석을 자세해 봐라!" 천왜수가 상관안의 분노에 찬 얼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가히 봉황지재(鳳凰之才)가 아니냐? 물론 너 같은 바보 놈이야 인재를 알아볼 수 없겠지 만……." "헤헤… 형의 말이면 모두 다 맞는 말이 아니겠소?" "흐흐흐… 이놈의 근골은 한눈에 봐도 천하제일의 근골이다. 이놈을 전인으로 삼아 두 손바 닥에 네녀석의 대수인을 익히게 하고, 열 손가락에 나의 빙백신지공을 익히게 한다면… 아 마 일 년이 되기 전, 천하제일인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외다!" 패천마제가 엄지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그 사이, 상관안은 잠수복을 입은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백발노인 곁에 쭈그리고 앉아 노인 의 경혈을 살펴보았다. 노인은 거의 다 죽어 가고 있었다. 노인은 상관안이 자신의 맥을 짚으며 상세히 살펴보려 하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노… 노부는 대수인마공에 당해 기경팔맥이 뒤틀렸고, 오장육부가 자리를 바꿨다. 영약이 있다면 살 것이고, 없다면 여생을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그러니, 노부에 대해서 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이곳을 떠나라. 저 두 명의 노마두는 상상을 불허하는 고수들이다." 노인은 의리에 아주 밝았다. 그는 상관안이 살펴보기 전 그 자신의 상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상관안에게 오히려 충고의 말을 주는 것이었다. 노인은 허리춤에 기름 종이로 싼 바구니 하나를 차고 있었다. 그것은 의원들이 즐겨 갖고 다니는 약바구니였다. "의원이시군요?" 상관안은 흠칫해 물었다. "그… 그렇다. 그러기에 노부의 신상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노부는 대라 신선이라도 살려 낼 수 없는 중상을 입었다." 노인이 고통스러운 가운데 말을 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노인장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 그럴 수는 없어!" 노인이 고개를 슬며시 저으며 눈을 감았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듯. "애… 애석한 것은, 지… 지난 십팔 년 내내 뒤쫓아 다닌 만년화리를 발견하는 찰나, 쓰러져 야 한다는 것뿐이네." 노인의 말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다가 한순간 다시 들려 오지 않았다. 노인은 곧 사경(死境)에 빠져들었다. '큰일이군. 이대로 둔다면 일각 이상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실 것이다. 훌륭한 분 같은데, 돌아가시게 둘 수 없다.' 상관안은 일단 두 명의 괴마들을 제거한 후 노인을 위해 요상대법(療傷大法)을 시전하리라 작정했다. 태극선공으로 혈기를 일으킨다면 죽어 가는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흐흐흐……!" 거인 패천마제가 사악한 웃음소리를 내며 상관안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들었다. 그의 걸음이 내딛어지는 곳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호숫가의 모래알들이 그의 발 아래 밟히며 아주 단단한 돌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흐흐흐……!" 패천마제는 두 다리에 신공을 발휘해 모래알을 벽돌로 만들어 가며 상관안 바로 앞까지 다 가섰다. 그러나 상관안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천한 재간을 갖고 사람의 눈을 속이려 하는군!" 상관안의 눈빛이 보다 날카로워졌다. "천한 재간이라고?" 패천마제와 천왜수가 함께 눈을 부라렸다. 상관안이 한 말은 그들이 일생 동안 들어 본 말 중 가장 지독한 욕설이기 때문이었다. 거인이니 난쟁이이니 하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나, 무공이 천하다는 욕을 들어 본 일이 없는 대막쌍마군의 얼굴에 격동의 빛이 떠오를 때. "하하… 대막에 비전되어 온다는 대력금강공(大力金剛功)을 아주 교묘히 이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그것을 알다니……?" 패천마제가 놀라 천왜수 쪽을 바라봤다. 천왜수는 놀라는 가운데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아우야, 우리들이 드디어 천하제일의 기재를 만난 것 같다. 오늘 만년화리를 잡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이 녀석을 잡아야 한다. 이 녀석을 잡아 전인으로 둔다는 것은, 만년화리 백 마리를 잡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헤헤헤… 형 말대로 할 뿐이지요." 패천마제가 곧 웃는 표정이 되었다. 그들이 파안대소를 터뜨릴 때, 상관안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대막쌍마군은 그가 이제껏 접한 고수들을 전부 합한다 해도 이겨 낼 절세고수들이다. '태극선강을 이용한다면 이들을 칠 초 안에 패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삼마의 무공으로 이들을 이기려면 백여 초는 사용해야 한다. 그럴 경우, 저 노인의 혼백은 육신을 떠나게 될 것이니…….' 상관안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만들어졌다. "헤헤헤……!" 천왜수가 간사한 표정으로 상관안을 응시했다. 패천마제가 지극히 우매해 보이는 반면, 천왜수의 눈빛은 아주 놀라운 예지의 빛을 갖고 있 었다. "어린 녀석!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안다." 천왜수가 잠수복을 입고 쓰러져 있는 노인을 지적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 점찍어 놓은 천년화리를 훔치려 하다가 우리들에게 패한 저 애송이의 생사가 걱 정되어 그런 표정을 갖는 것이 아니냐?" "마음을 속이지는 않는다!" 상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천왜수는 상관안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어 견딜 수 없다는 듯 아주 흡족한 웃음을 짓 다가 패천마제를 바라봤다. "이 녀석아!" "예, 형님!" 패천마제가 얼른 허리를 숙였다. "네녀석이 숨겨 갖고 다니고 있는… 한 알의 태환단(太還丹)을 꺼내야겠다." "예? 태환단이오?" 패천마제의 얼굴 표정이 우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흐흐… 네놈이 태상교주의 명에 따라 숭산 소림사를 봉문시킬 때 슬쩍해 온 것이 있지 않 느냐?" "헤헤… 형이 그것을 알지 못할 줄 알았는데……." 패천마제는 아깝다는 표정을 짓다가 품안에 손을 넣어 조그만 목갑을 꺼내 들었다. 그 물건이 천왜수의 손을 거쳐 상관안에게 전해졌다. "이것을 네게 주겠다." 태환단은 전설적인 영단이었다. 천왜수가 그 귀한 것을 선뜻 건네준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 지지 않았다. "제자 녀석이 우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어 태환단을 주는 것이니, 어서 저 애송이에게 먹이고 우리들의 거처로 가자. 너를 일 년 안에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 주겠 다." "하하……!" 상관안은 그들이 자신을 전인으로 한다는 데 어이없는 웃음를 터뜨리다가 손을 가볍게 내저 었다. 슥-! 그의 손바닥에서 능공섭물진기가 일어났다. "흥! 무릎을 꿇고 받아야지!" 천왜수는 상관안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얹혀 있는 태환단이 든 목갑을 취하려 한다는 데 냉 소 치며 손을 꼭 움켜쥐었다. '도저히 뺏지 못할 것이다. 너의 무공은 노부의 내공에 비해 십분지일도 되지 않을 것이 니…….' 천왜수가 득의한 표정을 할 때였다. 슈욱-! 경미한 파공성과 함께 부드럽고 질긴 힘이 그의 손바닥을 휘감으며 그의 오른손 다섯 손가 락을 하나하나 펼쳤다. "어… 엇?" 천왜수는 자신의 공력을 아주 간단히 파괴해 버리는 진기의 출처가 상관안의 손바닥이라는 데 경악했다. 순간, 그의 손바닥 위에 얹혀져 있던 태환단이 담긴 목갑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상관안 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을 선물로 받은 대가로… 노괴들을 죽이지 않겠다. 노괴들의 무공만을 폐쇄해 이제껏 천녀제의 주구가 된 것에 벌을 내릴 것이다." 상관안은 일 초 신위를 발휘해 대막쌍마군의 입을 함구케 한 후, 목갑 뚜껑을 열었다. 빛이 누런 단약 하나가 보이며 근처가 훈풍에 젖었다. '과연 태환단이군. 이것은 소림 장문인이 십대에 걸쳐 만든다는 소림 최고의 보물로, 약효는 대환단(大還丹)보다 다섯 배라는데… 이런 귀한 것이 사마외도의 품안에 있게 되었으니 …….' 상관안은 탄식하다가 오른손 검지와 식지를 써서 단약을 집어 노인의 입 안으로 밀어넣었 다. "음……!" 노인의 표정에 경미한 변화가 생길 때. "회혼백팔지력(廻魂百八指力)-!" 상관안이 두 손바닥을 마주 붙였다가 떼어 내며 두 손 열 손가락을 번개같이 놀렸다. 스슥- 슥-! 지영(指影)이 노인의 전신을 휘감았다. 상관안은 탄지지간 노인의 혈도 일백팔 개를 점혈한 후 안심하는 표정이 되어 몸을 일으켰 다. '이제 한두 달 요양하면 대수인마공에 당한 상세에서 벗어나실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한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관안의 이마 위 가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노인을 구하기 위해 혼신공력 중 이(二) 성(成) 가량을 흩트리는 정성을 깃들인 직후이기 때문이었다. "가… 가히 귀신을 능가하는 놈이군." 천왜수가 그제서야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너… 너는 저 노적(老賊)과 어떤 사이냐?" 천왜수가 약간 떨리는 말로 물었다. "생면부지의 사이다." 상관안이 우뚝 서서 눈에 신광을 흘렸다. "으음, 처음 보는 사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네놈이 무슨 활보살이라고 처음 보는 늙 은이를 위해 이렇듯 고생을 한단 말이냐?" "하하하… 활보살이 아니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노괴들 같은 마도 무리들은 이 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상관안이 두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의 손바닥에 녹색 반점이 나타나며 점차 커져 손바닥 전체를 짙은 녹색으로 물들였다. "엇!" "마… 마공(魔功)을 아는군!" 대막쌍마군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방랑하며 협행을 일삼는 협사로만 보이는 상관안의 무공 초식이 정파의 무공이 아닌 마공일 줄이야? "하하… 정과 사는 무공이 어떠한 것이냐로 갈려지는 것이 아니다. 정과 사는 익힌 무공으 로 어떠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노괴들에게 주는 최후의 충고이니, 명심해 듣거라." 상관안이 비웃으며 말하자. "흐흐… 우리들로 말하면… 당금 천하에 있어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지 위이다. 이제껏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들은 적이 없다. 제자가 될 놈이 사부가 될 노인들을 애 취급하다니……." 천왜수의 머리카락이 빳빳이 일어났다. 그의 눈알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전설로만 알려지고 있는 빙백공을 일으키며 열 손가락에 빙백공력을 주입시키기 때문에 그 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몸 주위로 짙은 얼음 안개가 서리며 근처의 지면이 동토(冬土)로 화 해 냉기를 흘려냈다. "노부의 무공을 시범해 보일 것이니, 한 번 보고 기절하지나 말거라. 이후 너의 무공이 될 것이니……." 천왜수는 오만히 말하다가 수면을 향해 열 손가락을 뻗어 냈다. 츠츠츠츠-! 섬뜩한 파공성과 함께 열 줄기 회색 기류가 일어났다. 섬전 같은 기세로 호수를 향해 뻗어 나가는 빙백신지공. 열 줄기 지력이 물살에 닿는 순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꽈광- 꽝-! 호수물이 얼음으로 화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지력이 수면에 닿기 이전 수면에서 일곱 자 아래 부위가 모두 얼음으로 화했고, 지력이 얼 음덩이를 때리자 얼음비로 화해 허공에 뿌려지는 것이었다. 우르르릉- 꽝-! 뇌성벽력 같은 소리가 운학령을 진동시키는 가운데 천왜수가 열 손가락을 오므리며 아래턱 에 매달린 몇 가닥 수염을 쓰다듬었다. "어떠냐? 노부가 백 년 동안 익힌 빙백신지공이란 것이다." "쓸 만하군. 하나……." 상관안은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야?" 천왜수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묻자. "하나, 한여름 부채를 대신해 땀을 식힐 정도밖에는 되지 않겠다. 저 정도로는 변방토호를 위해 호원무사(護園武士)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상관안의 말에 천왜수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고… 고약한 놈! 네놈이 그 누구의 전인이기에 노부의 빙백신지공 같은 절학을 경시해 말 한단 말이냐? 노부의 빙백신지공으로 말하자면, 음양무상신공의 주인이신 천녀제께서도 극 찬한 것이거늘……." "흠……!" "흐흐… 노부는 천녀제와 백 초를 겨룬 유일한 사람이다. 천녀제와 겨뤄 패하기는 했으나, 인간 세상에서는 평생을 통해 보기 힘든 기인이다. 네놈이 노부의 전인이 된다는 것은 일생 을 통한 영광일 것인데, 어찌 그런 불경한 말을 일삼는단 말이냐?" 천왜수가 침방울을 튀기며 말하자. "으하하… 천녀제의 음양무상신공이 아직 십 성 수준을 넘어서지 않은 모양이군. 그 늙은 종년이 음양무상신공을 십 성 이상 익혔다면 빙백신지공 정도를 상대로 백 초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텐데……." 상관안의 목소리가 천왜수의 말소리의 여운을 잘라 버렸다. "으으으……!" "고… 고약한 놈!" 천왜수와 패천마제가 일시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놈을 전인으로 삼느니, 차라리 돌부처를 전인으로 삼겠다. 네놈을 능지처참시켜 이 한을 풀겠다." 난쟁이 기인 천왜수의 인내가 드디어 한계를 넘어선 듯 그의 얼굴이 숯덩이같이 검게 변했 다. 패천마제의 표정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의 얼굴은 싯누렇게 물들었고, 키는 오히려 두 자 정 도 더 커져 거인 중에서도 거인으로 화해 있었다. 상관안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겁먹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천녀제가 노괴들의 어떠한 점을 높이 사 혈탑제일호법의 지위를 내렸는지 알아보고 싶군." 상관안은 아예 뒷짐을 지고 있다. 대막쌍마군 따위는 적수가 안 된다는 듯. "흐흐흐… 네놈을 대수인 아래 피떡으로 만들리라!" 패천마제가 입을 쩍 벌리며 외치다가 우장, 좌장을 동시에 펼쳐 상관안의 목과 아랫배 쪽을 향해 두 줄기 강맹한 진기를 쳐냈다. 꽈르르르릉-! 만균(萬鈞) 벼락이 떨어지는 듯 우둔하게만 보이는 패천마제였으나 몸놀림은 가히 섬전 번 개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대수인이 어떤 것인지!" 상관안이 뒷짐진 손을 풀며 슬쩍 앞으로 내젓자, 녹색 장영 수십 개가 일어나 대수인을 가 로막았다. 고수들이 금기로 삼고 있는 내공 대결이 벌어지려는 찰나. "구… 구유망혼장이 아닌가?" 천왜수가 경악해 외치다가 두 사람 사이로 끼여들었다. "이런!" 패천마제가 얼른 진기를 회수했고, 상관안도 구유망혼장을 흔적도 없이 거둬들이고 천왜수 를 바라봤다. 천왜수는 전과 달리 경건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구… 구유망혼장이 분명하냐?" 그의 음성은 이상하게도 떨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구유망혼장을 알아 내다니… 자칫하다가는 사문의 내력이 밝혀지겠 군.' 상관안이 쓴웃음을 지을 뿐 침묵으로 일관했다. "으음, 구유망혼장의 전인이 분명하군. 그렇다면 우리 대막국(大漠國) 사람들과 인연이 없다 할 수 없다. 구유망혼장의 창시자 구유신군(九幽神君)은 대막국의 상고기인이시자, 대막의 성자이셨던 대막천군(大漠天君)을 죽였었다. 대막국 사람이라면 오백 년 전, 중원 고수 구유 신군에게 돌아가신 대막천존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한다. 네가 구유망혼장을 익혔다면, 오백 년 전 구유상인이 대막국에 일으킨 혈풍(血風)의 빚을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 상관안은 천왜수가 아주 엄숙히 말한다는 데서 배분과 전통을 중시하는 대막인들의 속성을 느낄 수 있었다. '속까지 검게 물든 자들은 아니군. 한 사람은 너무 우둔하고, 한 사람은 꾀가 많으나 허튼 꾀인지라 마도에 들었을 뿐이다. 천녀제도 그것을 알고 이들을 꼬여 충복으로 만들었으리 라.' 상관안이 그렇게 생각할 때, 천왜수의 열 손가락이 전과 같이 빳빳이 펼쳐져 상관안의 가슴 쪽을 향해졌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