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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빙선일월장 순천진인은 청색혈마가 그토록 간단하게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을 보자 몹시 놀랐다. 십 팔 년 동안 무림의 변화가 극심하였다는 것을 새삼 통감하였다. ‘내가 십팔 년 동안 조석으로 고된 무공을 연마하고 다시 발을 내딛자 바로 저런 정상의 고수를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구나.’ 이렇게 생각한 순천진인의 눈에 점차 흉맹한 살기가 서렸다. 그 자신이 십팔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열심히 연마한 무예가 헛되이 쓰러져 버린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서 소름끼치는 살기의 광채가 폭출되며, 아홉 초를 쳐내고 급히 세 걸음을 물러났다. 그는 잠시 날카로운 눈으로 청색혈마를 노려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필시 그는 일종의 극히 악독한 수법으로 사람을 상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청색혈마도 손을 멈추고 우뚝 서 있었다. 그녀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연(奇緣)으로 비범한 인물이 된 처지이기는 하였으나 몇 초 겨루어 보는 동안 순천진인의 무공의 심후함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무공이 일반 무림 고수가 도저히 미칠 바 아님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단지 순천진인의 거동을 눈여겨 바라볼 따름이었다. 사방은 고요하였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상대의 거동을 살피는 동안 싸늘한 바람만 소리를 내며 불었다. 비류신과 선우철은 두 절정 고수가 펴내는 오묘한 초식에 넋을 잃은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질식할 듯한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 속에서 두 고수의 움직임을 응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비류신의 머리는 평정을 되찾았고, 선우철의 머릿속에서는 큰 파도가 일렁이듯 하며 만 갈래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특히 복면을 해서 확실한 용모는 볼 수 없어도 풍만한 몸매를 한 청색혈마의 몸매에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그녀의 몸매는 아름답구나.’ 선우철이 보는 청색혈마의 인상은 성숙한 삼십 대 미만의 여성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 임기응변하는 것은 세상 풍진을 많이 경험한 여인이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졌다. 청색혈마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다는 듯 쌀쌀한 어조로 말하였다. “순천 노 도사! 당신 공력은 충분히 보았소.” 그녀는 말을 끝내자 곧 순천진인을 향해 오른손을 가볍게 밀어냈다. 순천진인은 청색혈마가 입을 열 때 이미 두 팔에 운행한 진력을 뽑아 기선을 잡고 먼저 손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청색혈마의 날쌘 동작에 비해 이미 뒤져 있었다. 갑자기 한 줄기 한랭한 압력이 그의 상반신을 엄습해 왔다. 그는 공격하려던 자세를 멈췄다. “어엇!” 그는 놀라며 호신(護身) 강기를 운행하는 한편 장력을 내뻗쳐 반격을 가하였다. 순천진인은 왼손을 힘차게 내뻗쳤다. 그 장력은 언뜻 보기에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청색혈마는 순천진인이 쳐내는 장력이 허공을 뚫는 바람소리를 조금도 내지 않고, 기세가 매우 유화한 것을 보자 속으로 놀랐다. 그녀는 순천진인이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내력을 집중해서 그의 장력을 맞이해 갔다. 고수들이 초식을 교환하는 데 있어 일거수일투족의 차이로 능히 적을 사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때문에 어느 싸움에서는 장력이나 권력을 막론하고 어느 한쪽이 진력이 중후하여 기세가 위맹할 때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예사이다. 지금 두 사람의 싸움은 그런 상황과 판이하였다. 두 고수가 밀어내는 장력은 오히려 서서히 밀려가고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장세에 강맹한 장력,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진력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장력이 모두 최정상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여느 고수들이 따를 수 없는 점이었다. 또한 그들은 약유약허(若有若虛)의 내공을 익힌 모양이었다. 다시 말하면 장력을 곧 내칠 듯하면서 실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그치는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정적을 깨고 가볍게 바람소리가 일었다. 휙! 하는 소리가 나자 곧이어 두 사람의 중간에서 극히 강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모래와 돌, 그리고 흙이 회오리바람에 말려 사방으로 날리며 먼지가 삽시간에 뽀얗게 덮였다. 동시에 주위에는 강풍이 쉴 새 없이 몰아치며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쌍방의 경력이 비로소 호되게 맞부딪친 것이다. 순식간의 변용은 온천지를 뒤엎는 듯 요란하였다. 청색혈마는 서로의 경력이 부딪치는 순간 몹시 놀랐다. 그녀는 크게 진동을 받고 거의 몸을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순천진인은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오른손의 불진으로 청색혈마를 향해 열세 번이나 쓸어 쳐갔다. 청색혈마는 순천진인의 불진이 휘감겨 오는 것을 보자 몸이 떨렸다. 상대의 장력이 갑자기 몇 배로 강해진 듯 느껴졌다.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지 못하고 뒤로 한 걸음 후퇴하였다. “으흐흐흐… …” 순천진인은 음흉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오른손 불진으로 재차 청색혈마를 향해 공격하였다. 불진 끝의 털은 마치 철사처럼 뻣뻣하며, 휘감겨오는 기세는 거물이라도 단번에 자를 듯하였다. 그러자 다음 순간이었다. “호호호호호… …” 청색혈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동시에 그녀의 왼손이 좌우로 가볍게 휘둘려졌다. 아주 오묘하게 순천진인을 향해 장력을 내뻗고 있는 것이었다. 청색혈마가 몸을 뒤로 물리는 기회를 이용해서 불진으로 공격하던 순천진인은 안색이 변하였다. 그의 몸이 한바탕 경련을 일으키더니 두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마자 이 장 밖으로 밀려나갔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위맹한 장력에 휘말리고 있었다. 이 장 밖으로 밀려 나간 순천진인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급히 자신의 혈도를 찔러댔다. 손가락을 창끝처럼 해서 황망히 자기의 요혈을 세 군데나 찌르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세 덩어리의 피가 잇달아 나왔다. 웩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핏덩어리를 벌컥 쏟아내며 그의 발을 적셨다. 청색혈마는 순천진인이 피를 토해내는 것을 보고 더욱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호통 쳤다. “흥! 다행히 당신의 명은 길었소. 노 도사는 몸을 보호하는 강기 무공을 연마했구려. 그러나 조금 전에 나는 내가 연마한 바 이 성의 경력을 썼을 뿐이었소. 이제 당신은 사 성이 깃든 빙선일월장(永禪日月掌)을 받아 보시오!” 그러나 순천진인은 청색혈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하였다. 그는 청색혈마의 빙선일월장에 견디질 못한 것이다. 만약 그가 호신강기를 연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진기를 모아 온몸의 요혈에 두루 퍼뜨리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견문이 넓었다. 때문에 상대방의 음경(陰勁)에 맞는 찰나, 전신 기혈이 얼음처럼 굳고 머리가 어지러우며 눈앞이 아찔해지자 빙선일월장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즉각 스스로의 요혈을 찔러 한독(寒毒)을 누르는 한편 체내에 응고된 독의 피를 토해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내장에 심한 상처를 입은 터였다. 그럴 때 청색혈마가 재차 사 성의 공력으로 일 장을 치겠다는 소리를 하기에 몸을 돌려 삼십육계를 놓게 되었다. 이것을 본 선우철은 눈을 크게 뜨고 잔인, 음독한 본성을 드러냈다. 순천진인이 몸을 돌려 기회를 놓치면 순천진인을 제거할 시기를 놓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큰소리로 한바탕 웃고 나서 순천진인을 향해 말하였다. “하하하하… 순천 노 선배, 잠깐 걸음을 멈추시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선우철의 말을 듣고도 고개조차 돌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선우철! 네가 만약 싸울 의사가 있거든 나를 따라오너라!” 선우철은 순천진인의 대답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의 등을 향해 오른손을 내저었다. 번쩍하는 빛을 내며 단검이 순천진인을 쫓아갔다. 순천진인은 그의 뒤에 이상한 기척이 있는 것을 느끼고 급히 몸을 거꾸로 하여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오른손의 불진으로 단검을 쳐갔다. 이를 본 선우철이 크게 소리쳤다. “순천 노 선배의 무공은 대단하오. 그러나 비검술(飛劍術)에 대해서는 반딧불의 재간에 불과하오!” 그는 말을 하면서 오른손을 다시 앞으로 내저었다. 그러자 네 자루의 단검이 다시 순천진인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요혈을 향해 쏜살처럼 내달았다. 순천진인은 한 자루 단검을 쳐서 막은 바로 직후여서 피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른손의 불진을 휘둘러 요혈을 노리는 단검을 간신히 떨어뜨렸다. 단검의 공격을 막은 다음 순천진인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졌다. 갑자기 가슴이 터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그는 청색혈마에게 입은 상처에 다시 무리를 하였기 때문에 느닷없이 극심한 통증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선우철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바라던 기회가 드디어 닥친 것이다. 순천진인을 제거할 수 있는 때가 왔음을 기쁘게 여기는 웃음이었다. 그는 즉시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순천진인의 두 다리를 겨누고 달려들었다. 그의 눈은 살기와 희열이 뒤범벅된 묘한 상태를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천진인은 선우철이 생각한 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금시 노기가 서리며 선우철을 향해 일장을 내밀었다. 순천진인의 이 일 장은 극도의 노여움으로 사력을 다해 발휘한 것이어서 그 사나운 바람은 닿는 것마다 에일 듯 위맹했다. 드디어 선우철의 검을 피하자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삼 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원한에 찬 음성으로 말하였다. “선우철! 언젠가 빈도는 너를 죽여 묻힐 곳이 없도록 만들겠다!” 그의 음성은 금세 멀어졌다. 선우철은 더 이상 순천진인의 뒤를 따르지 않고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하… …” 이때 그의 웃음을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주 음랭한 울림이 있어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청색혈마였다. 그녀는 싸늘한 눈길로 선우철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선우철에게 다가섰다. 선우철은 그녀의 기색이 틀림없이 자기를 제압하려는 것임을 알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여협의 도움을 입어 강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이 사람은 참으로 감격스럽기… …” 청색혈마는 쌀쌀한 목소리로 선우철의 말을 가로챘다. “교활한 자식! 가장을 해서 나에게 호감을 살 생각은 하지 말라!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밤 너는 무사히 도망가지 못할 거다.” 그녀의 말은 선우철을 죽여 버리겠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었다. 선우철은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금세 원상회복하고 웃음을 띤 채 그녀에게 말했다. “여협! 내가 전에 무슨 죄를 지었소이까? 설마하니… …” 청색혈마는 선우철의 말을 가로채고 코웃음 쳤다. “흥! 잔소리는 하지 마라! 네 목숨이나 보존할 생각을 해라! 그러나 만일 네가 나와 겨루어 십 초를 싸워 넘긴다면 나는 네가 도망쳐도 아무런 말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하며 청색혈마가 천천히 다가오는 바람에 선우철은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여협의… 여협의 무술에 충심으로 감복하였소. 절대로 여협과 싸우지 않겠으니 제발 죽이겠다는 뜻을 거두고 목숨이나 부지하게 해 주시오.” “네가 깊이 감춘 무기로 능히 나의 십 초를 받아 넘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서 응전할 준비를 서둘러라! 그리고 나는 싸우는 마당에 절대 인정을 두지 않는다는 것만 명심해라!” 청색혈마의 결연한 말을 들으며 선우철은 여전히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여협의 빙선일월장은 천하를 주름잡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이 사람은 단 한 초도 받아 넘길 수 없으리라 여기오.” 이 말에 청색혈마의 입가에 선우철을 비웃는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너는 내가 빙선일월장을 쓸까봐 두려워하는 모양이군. 흥! 너로 하여금 죽어도 눈을 감도록 해 줄 테다. 이십 초 안에 나는 절대로 빙선일월장을 쓰지 않겠다. 어서 내 초식을 받아라!” 선우철은 뒤로 물러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청색혈마가 빙선일월장을 쓰지 않겠다는 말을 하자 심중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선우철처럼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한 성격으로 청색혈마의 그런 말을 듣고 그대도 있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청색혈마의 빙선일월장이었다. 청색혈마의 빙선일월장은 자기의 부친 선우휘일지라도 대항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은연중 청색혈마가 빙선일월장을 쓰지 않게 하도록 꼬일 속셈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용이치 않을 것으로 여겼던 일이 곧 통과되었지 않는가? ‘흥! 됐다. 나는 당신이 빙선일월장을 쓰는 것이 두려웠을 따름이다. 자 이제 당신이 나를 상대할 수 있는지 보겠다. 내가 정말로 나의 숨긴 무공을 드러내지 않으면 나를 아주 넘보게 되겠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 청색혈마에게 은근한 다짐을 하였다. “무림에서는 한마디 말을 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취소하는 일이 없는 법이오. 좋소! 나는 억지로나마 오늘밤 몇 초 가르침을 받겠소.” 이 말을 들은 청색혈마는 두 눈에 놀랄 만한 살기를 띠며 대꾸했다. “너는 빈틈없이 잔꾀를 강구하는구나. 아무튼 너의 목숨을 취하여 이름을 깎을 날이 있으리라. 나는 절대로 약속을 지킨다. 너처럼 비열하고 도량이 좁은 사람이 아니다.” 선우철은 빙긋이 웃음을 띠었다. 청색혈마가 자기를 비열하고 속이 좁다고 욕을 할망정 두려워했던 빙선일월장을 쓰지 않겠다는 말에 마음이 놓인 것이다. “잘 알았소! 그럼 실례하겠소!” 그는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 장검으로 청색혈마에게 덮쳐갔다. 청색혈마도 선우철의 간사한 성품을 아는지라 선우철이 검을 휘두르고 쳐갈 때 이미 공력을 모아 준비하고 있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무공은 정묘하였다. 몸을 재빨리 대여섯 자 밖으로 날렸다가 앞으로 내달으며 내치는 장세는 실로 위맹했다. 선우철은 청색혈마의 무공이 기묘한 것을 알고 있는 터여서 장검을 휘두르다가 허사로 돌아가자 즉시 초식을 바꾸어 비스듬히 공격을 가했다. 그의 검은 청색혈마의 왼쪽 어깨를 내리쳤다. 그러나 청색혈마는 이미 그가 공격할 방식을 예측한 듯 급히 왼손을 낮추어 식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검 날을 거머쥐려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오른쪽 다리로 선우철의 아랫배를 번개처럼 걷어찼다. 선우철이 멈칫하는 순간 그의 옆구리를 왼손으로 쳤다. 한 초에 세 식을 동시에 쳐나감에 있어서도 청색혈마는 조금도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또 한 식마다 괴이하고 정확하였으며 공격하는 위치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도저히 막지 못하게 하는 기이한 점이 있었다. 선우철은 움찔하며 즉시 검초를 거두고 재차 천하노사(天河怒瀉)의 식으로 푸른 검광을 층층이 나게 하여 자신을 보호하였다. 청색혈마의 무공이 매우 높기는 하였으나 층층이 겹친 검광을 뚫을 길은 없었다. 그녀의 일초 삼식의 사나운 공세는 선우철의 검초에 의하여 봉쇄되고 말았다. 선우철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미 다섯 초가 지났소.”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검을 옆으로 휘둘러 청색혈마를 쳐갔다. 일검은 얼른 보기에 극히 평범한 것 같았으나 일단 검이 휘둘러지자 한꺼번에 다섯 자루의 검이 움직이는 듯 상대의 목, 가슴, 허리, 양다리를 옆으로 쳐갔다. 그의 검식은 기이하고 정묘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습격하는 방향을 알 수 없게 했다. 그의 검초는 바로 환운검술(幻雲劍術)이었다. 환운검술은 여하한 상대라 할지라도 공격할 빈틈을 잡지 못하게 하며, 아무리 절정 고수라 하여도 초식을 뒤집어 반격할 수 없게 하였다. 선우철이 환운검술을 전개하는 것을 보자 청색혈마는 냉소를 지으며 몸을 날려 뒤로 대여섯 자 물러섰다. 이를 본 선우철은 통쾌하다는 듯 웃으며 즉시 공격을 개시하였다. 검을 휘두르니 만 갈래 검광이 번쩍이고 청색혈마를 휘감듯 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삼 초를 찔러댔다. 그의 이 삼 초는 모두 사나운 살수, 독초이며 검기는 하늘을 덮고 운무처럼 퍼졌다. 청색혈마가 비록 일신에 절기를 지니기는 하였으나 당초 적을 넘보아 기선을 제압하였기 때문에 그 삼 초의 면밀한 검세에 잇달아 몸을 피하고 있었다. 이때 선우철이 또 소리쳤다. “제 구 초닷!”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고 난 선우철은 약허이환(若虛以幻)의 초식을 펼쳐 냈다. 검광이 눈부시도록 뻗치는 가운데 서서히 청색혈마를 찔러 갔다. 약허이환 초식이 뻗치는 검세는 실로 위맹한 것이었으며 찌를 듯하면서 내치는 것 같고 공격하는 듯하면서 수비를 겸하고 있어, 명가의 눈으로 보면 극히 무서운 살초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청색혈마는 선우철의 공격하는 기색을 보자 두 눈에서 예리한 빛을 폭사하며 처절하리만큼 냉랭하게 큰 소리로 웃었다. “호호호호!” 그녀의 웃음소리는 길게 꼬리를 끌며 몸은 선우철을 향했다. 선우철의 위맹한 검초에도 몸을 물리지 않고 오히려 정묘만 신법으로 번뜩이며 기묘한 일 검을 피하였다. 그러는 동시에 선우철에게 왼손을 밀어내고 있었다. 예리한 경풍이 사납게 선우철의 오른팔을 향해 밀어 갔다. 선우철은 크게 놀라는 기색을 띠었다. 그는 약허이환의 검초로 능히 청색혈마를 제압하리라 여겼었다. 그러던 것이 그녀는 사나운 그의 검초를 가볍게 피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격을 해온 데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청색혈마의 반격을 보고 그는 급히 진기를 모아 오른손을 뒤로 돌렸다. 칼끝이 바르르 떨렸다. 초선축화(蕉扇逐火)의 일 초로 청색혈마의 왼쪽 어깨를 내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청색혈마의 일장이 이미 그의 오른쪽 팔꿈치를 격중시켰다. 시큰함을 느끼는 순간 그는 장검을 그대로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호호호호… …” 청색혈마는 선우철이 눈을 부릅뜨고 공격하려다 그대로 힘없이 병기를 땅에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크게 냉소를 터뜨렸다. 청색혈마는 선우철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천천히 쳐들고 그의 심감혈(心坎穴)을 찍으려고 했다. “제 십 초다! 지옥으로 너를 보내주는 초식이다!” 그녀가 말을 마치고 선우철의 요혈을 찍으려는 찰나였다. “그를 상하게 하지 마시오!” 어디서 급하게 외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고함소리와 함께 강후한 경풍이 청색혈마 옆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이 한 줄기 장풍은 기이하리만치 웅혼(雄渾)하여 청색혈마도 순간적으로 막아내기 어려움을 느꼈다. 더욱이 그 일 장이 비류신이 내친 것임을 알자 그녀는 할 수 없이 선우철을 쳐 죽이려던 일 초를 단념하고 몸을 뒤로 물렸다. 몸을 물린 청색혈마가 비류신을 향해 입을 열려고 할 때 선우철이 포권을 하며 말하였다. “비형, 감사하오. 나를 또 한 번 구해주셨구려. 이 바다보다 깊은 은혜는 뼈에 새겨 두리다. 잊을 수가… …” 비류신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무 그런 소리를 하면 오히려 내가 무안해지오.” 청색혈마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냉랭하게 웃으며 비류신에게 말하였다. “비류신! 어째서 저런 교활한 도적과 사귀고… …” 그녀의 말을 들으며 선우철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온 천하를 두루 다니며 친구를 사귀었으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는 자가 그 몇이나 되겠소? 비형을 우연하게 만나기는 했으나 한 번에 옛 친구 같은 느낌을 받았소. 내가 생각하기에 비형이 나를 대하는 바가 따로 보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렇더라도 나는 비형의 인품을 잘 아는 만큼 진심으로 사귀고 싶소이다. 나의 마음을 믿든 안 믿든 비형 스스로가 체험하실 수… …” 이때 청색혈마가 아주 냉정하게 웃었던 까닭으로 선우철은 말을 중단했다. 선우철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청색혈마가 입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 자기가 비류신을 몰래 죽이려던 일을 그녀가 말을 할까 두려워 얼른 말을 계속하였다. “오늘밤 비형이 다시 도와주신 은혜는 훗날 반드시 갚겠소. 그런데 비형이 재미있는 구경을 할 장소에 갈 의향이 없으면 나는 여기서 잠시 작별을 할까 하오.” 선우철은 말을 마치자 비류신을 훑어보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그는 비류신이 자기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긴 것이다. 청색혈마가 비류신에게 과거에 자기가 비류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폭로할까 두려워서였다. ‘저 여인이 진상을 발설한다면 나는 여기서 도망조차 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니 아예 일찌감치 뺑소니를 치자.’ 이렇게 생각하고 선우철은 걸음을 재촉하였다.뒤도 돌아보지 않고 횡 하니 앞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푸른 그림자가 퍼뜩 움직이자 청색혈마가 도망치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선우철! 우리들은 이미 결정한 바 있었다.네가 나의 십 초를 못 받아낸다면 네 목숨을 여기 남겨 놓아야 한다고 말이야!” 그녀의 말소리에 선우철은 움찔 하였으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비류신이 청색혈마에게 다가서며 노한 음성으로 외쳤다. “당신은 너무 사람을 업신여기시는군요? 당신이 손을 써서 순천진인을 격퇴한 정분만 없다면 이 비류신은 당신에게 무례한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소! 만일 선우철을 꼭 죽이려 하신다면 나까지 죽이셔도 좋소!” 비류신의 말을 듣자 청색혈마의 날카롭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비류신, 그대는 저 자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알기나 하오?” 그녀의 말끝에 선우철은 비류신에게 응답할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해 사나운 목소리로 청색혈마에게 말했다. “여협! 사람을 말로써 자꾸 핍박하는 짓은 하지 마시오! 오늘밤 이 굴욕은 내 언제고 보답할 날이 있을 것이오. 이제 잠시 이별이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외다.” 선우철은 이렇게 말하고 그대로 몸을 날려 달아났다. 청색혈마의 눈은 다시 사나운 빛을 뿜어내었다. 그의 등 뒤를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흥! 선우철! 오늘밤 너는 이곳을 도망칠 생각은 아예 하지 마라!” 그녀의 외침이 끝났을 때 그녀의 몸은 이미 귀신같이 빠른 속도로 선우철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그의 퇴로를 막아서자 그대로 오른손을 비스듬히 날렸다. 한 줄기 음풍이 허공에 몸을 솟구친 선우철을 향해 뻗쳐갔다. 이때 비류신이 급히 외쳤다. “선우형! 저 여자를 두려워할 것 없소! 한 걸음 먼저 가시오!” 순간 비류신은 강맹하기 이를 데 없는 경풍을 뽑아내어 청색혈마의 장력을 맞이해 갔다. 이 틈에 선우철은 몸을 번뜩이며 십여 장 밖으로 사라져 갔다. 그의 뒤를 비류신이 매처럼 빠르게 따르기 시작했다. 청색혈마는 이 광경을 바라보고 처량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비류신, 당신은 걸음을 잠시 멈추시오!” 그녀의 외치는 소리는 선우철과 함께 멀리 사라지는 비류신의 뒤를 따르듯 울려 퍼지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비류신은 걸음에 속도를 가하여 잇달아 몇 번을 뛰고 날아 곧 선우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선우형, 우리가 이번에 가면 고 선배를 만날 수 있을까요?” 비류신이 이렇게 나직이 묻자 선우철은 고개를 돌려 빙긋이 웃으며 응답하였다. “비형, 염려하지 마시오. 나의 정보는 정확하오. 절대로 착오가 있을 수 없소. 다만 이번에 가는 길이 너무 흉험해서… …” 비류신은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고 선배께서는 나를 극진히 애호해 주셨소. 그러한 분이 지금 흑룡강 일파의 수중에 떨어졌는데 내가 어찌 그런 위험을 보고 구하지 않을 수 있겠소? 오늘밤에 내가 비록 검산도림 (劍山刀林)에 들지라도 그분을 구해야겠소.” “비형, 비형의 정의가 그토록 깊으시니 내 감동하지 않을 수 없구려. 오늘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비형을 도와 고 선배를 구하겠소.” 선우철이 비류신의 심정에 정말 탄복하였다는 듯 응답했다. 그러자 비류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 사의를 표시하였다.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고 달렸다. 그들의 내력이 심후하여 달리는 속도는 질풍처럼 빨랐다. 순식간에 그들은 두 영(嶺)을 넘어 한 골짜기 어구에 이르렀다. 선우철이 입을 열었다. “비형, 벌써 목적지에 이르렀소. 이 골짜기에 있는 넓은 장원이 바로 흑룡강 일파가 잠복하는 곳이오. 이제부터 조심을 해야 하오.” “선우형, 고 선배는 이미 골짜기 안의 장원 내에 갇힌 것이 아니요?” 선우철은 고개를 들어 날씨를 살펴본 다음 나직한 소리로 응답했다. “고 선배는 아직 뜰에 이르지 않은 듯하오. 그러나 그들과 약속한 시간은 무척 빨리 다가왔소.”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며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질풍같이 내닫는 그들은 눈도 역시 재빨리 움직여 사방을 세세히 살피고 있었다. 골짜기 안 어둠 속에 하나의 높은 장원이 우뚝 서 있었다. 장원은 방으로 보이는 건물이 즐비하였고, 높은 누각 정자가 보이는 것 외에도 오동나무, 백양나무 그리고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있어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거진 나무들이 음산한 분위기를 이루었고 등불조차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핀 다음 몸을 날려 장원의 뜰로 뛰어갔다. 뜰은 아주 황량하였다. 야생초가 무성하였고 행랑방은 이미 헐어 있었으며, 벽이 무너져 있고 담이 없었다. 을씨년스러운 광경이 어둠 속에서 더욱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 비류신과 선우철은 그런 광경을 낱낱이 살핀 끝에 다시 몸을 날려 앞쪽의 건물 용마루 뒤로 갔다. 이때 두 사람은 동시에 한 인영을 보았다. 그 인영은 건물 위로 세 길을 뛰어올라 몸을 비스듬하게 하고 서북쪽을 향해 떨어지더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비류신은 인영이 사라진 뒤 섬뜩하여 생각하였다. ‘저 사람의 신법을 보니 무공이 대단하구나. 강호에는 정말 고수들이 많군. 나의 무공은 무림에서 호통을 치기엔 아직 멀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자 비류신은 순간 자신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져 선우철을 향해 말하였다. “선우형은 이곳에 수많은 강호 무림의 고수들이 잠복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소?” “비형, 무엇을 생각하고 있소? 우리는 이미 이곳 뜰에 발을 들여 놓았소.용담호혈(龍潭虎穴)같은 이 속에 몸을 담은 이상 조심해서 행동해야 하오. 내가 아는 바로는 수많은 무림 고수들이 모두 소식을 듣고 여기로 달려올 것 같소.더욱이 흑룡강 일파는 개개인의 무공이 기이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오.” 비류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다시 선우철에게 나직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선우형, 나와 함께 뜰의 형세를 우선 조사해 보러 가지 않겠소?” 선우철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옳은 말이라는 투로 대답하였다. “그렇소! 비형, 기왕 여기에 왔으니 어떻게 생긴 곳인지 속속들이 알아봅시다. 무엇이 숨어 있는 지도 알아보아야겠고… 갑시다.” 그의 대답이 떨어지자 비류신은 몸을 우뚝 세워 앞장서서 허공으로 솟았다. 두 팔을 활짝 편 그 모습은 마치 학이 구름 사이를 날듯 산뜻한 자세였다. 그런데 이때 선우철이 급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비형! 누가 왔소! 어서 이리 와서 몸을 숨기시오!” 비류신은 이미 몸을 이 장 밖으로 날리고 있었으나 선우철의 말을 듣자 급히 방향을 바꾸었다. 두 팔을 휘두르고 허공에서 세 번 맴을 돌아 몸을 번개처럼 빨리 움직였다. 그런 다음 선우철의 곁에 다시 내려 주위를 살폈다. 과연 두 인영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비류신과 선우철이 숨어있는 맞은편 지붕 위에 내려섰다. 그들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지붕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 선우철은 두 인영에게 정신을 쓰기보다 비류신의 기절(奇絶)한 경공 신법에 놀라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비류신의 무공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심(高深)하구나. 요 며칠 사이로 그의 무공은 더욱 더 증진하였다. 장력이 웅혼하고 강경한 외에 초식 또한 기묘하기 짝이 없다. 청색혈마의 초식에 못지않다. 진편독자의 제자라고 했지. 탁성군은 어떻게 해서 이런 고수를 길러낼 수 있었을까?’ 그는 이런 일들을 종합해서 생각한 끝에 그의 본성을 드러냈다. 즉 그렇게 절고한 무공을 지닌 비류신이 만약 청색혈마나 홍부용 등과 제휴하게 된다면 무림에서는 손도 대지 못할 두터운 세력이 생기게 되어 자신의 열망을 도저히 달성할 길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선우철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비류신은 잠시 동정을 살폈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자 그에게 나직이 말했다. “선우형, 우리들은 살짝 앞쪽 뜰로 갑시다. 지금의 두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보아야 되겠소.” 그의 말에 선우철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그대로 몸을 날려 소리가 나지 않게 땅 위로 뛰어내렸다. 비류신도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몸을 숨겨 담을 돌아 한 그루 키 작은 소나무 뒤에 이르러 뜰의 동정을 엿보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아주 조용하고 으스스하며 구석진 곳으로 동서로 갈린 곳에 청방(廳房)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일 오른쪽 방 앞 돌계단 위에는 가을 국화를 심은 화분이 즐비하였다. 바람이 불자 국화 향기가 코를 찔렀다. 어둠을 뚫고 보니 가장 오른쪽 방문 앞에는 허리를 굽히고 키가 작고 큰 두 노인이 있었다. 누군가의 분부를 받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청방의 문은 엄중하게 닫혀 있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류신과 선우철은 하나같이 이상하게 여겼다. “두 늙은이가 저기에 멍하니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비류신이 예닐곱 장이나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노인들을 눈으로 가리키며 선우철에게 나직이 물었다. “선우형, 저 두 사람은 누구겠소?” 그의 말이 떨어지자 길 밖에 있던 키가 큰 노인이 말을 받았다. “심야에도 불구하고 이런 쓸쓸한 곳까지 왕림해서 동정을 물으시니 참으로 감사하오.” 비류신은 그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직이 말하면 아무리 무공이 기이하게 높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노인이 하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교살독사(咬殺毒蛇)라 하오. 대접이 소홀한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라오.” 노인의 말에 선우철은 놀랐다. 교살독사는 이미 강호에 얼굴을 내민 적이 있는 교살용사쌍수 중 독사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이 장원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흑룡강 일파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몸을 굽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 신분이 높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교살용사쌍수는 이미 강호 무림에서 십 년 전에 이름이 났던 인물이면서 지금은 흑룡강 일파에 소속하여 낮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은 흑룡강에서 삼남사녀의 무공이 얼마나 높은가 짐작하고도 남게 하는 일이었다. 비류신은 자기의 나직한 말을 상대가 이미 듣고 대답을 한다는 것을 알자 막 모습을 드러내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선우철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바로 이때였다. 뜰의 남쪽을 향해 선 오동나무 위에서 냉소를 터뜨리는 사람이 있었다. “허허허, 말 잘 하셨소! 한바탕 말을 참잘 하셨다고. 교살용사쌍수는 벌써 십 년 동안 무림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극락으로 가신 줄 알았소이다. 그러던 중 의외에도 두 분은 스스로 신분을 하천(下賤)하게 해서 흑룡강 일파에 몸을 담았구려? 남의 노복이 되셨단 말이외다. 하하하… …” 이런 조롱하는 투의 말을 들으면서 교살노사는 크게 노하는 내색 없이 냉랭하게 대꾸하였다. “당신은 누구요? 용기가 있다면 모습을 나타내고 썩 나오시오! 말투를 들으니 아마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 같은데…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동나무에서 기묘하고 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허허허허허!” 그 웃음소리는 만 길이나 되는 얼음 구덩이 속에서 불어나오는 냉한한 바람처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 웃음소리를 듣자 선우철은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비류신에게 말하였다. “비형, 조심하오. 나무 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무림칠절 중 신독괴살수요.” 이때 교살독사는 신독괴살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약간 놀라는 기색을 보이다가 냉정스레 웃고 말하였다. “오호! 뜻밖에 당신일 줄이야… 좋소, 좋아! 오늘 저녁 이 장원이 더욱 빛을 낼 수 있을 것 같군.”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오동나무 위에 있던 신독괴살수는 몸을 날려 내려와 교살독사 앞에 나섰다. 비류신은 숨을 죽인 채 자기 스승과 더불어 강호에 이름이 알려졌다는 무림칠절 중 한 사람인 신독괴살수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신독괴살수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장포(長抱)에 긴 소매를 늘이고 있었다. 안색은 누르스름하고 눈빛은 쏘는 듯 예리했으며,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온 생김새였다. 또한 눈이 움푹 들어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할 적마다 안광이 폭사되었다. 교살독사 앞에 나선 신독괴살수는 눈빛을 번쩍이며 사방을 두루 살핀 다음 냉정하게 말하였다. “너희들의 주인은 어찌하여 여태껏 도착하지 않았는가?” 교살독사가 코웃음을 치며 냉랭하게 대꾸했다. “흥! 네가 말하는 주인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 말을 듣는 신독괴살수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무서운 눈으로 교살독사를 훑어보며 얕보는 투로 말했다. “너희들 용사쌍수가 섬기고 있는 사람은 흑룡강의 계집아이가 아니던가?” 이번에는 교살독사가 노한 기색을 보였다. “네가 말하는 계집아이란 누구를 가리켜서 하는 말인가?” “내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너희들 흑룡강 일파에서 거들거리는 두목의 소녀를 말하는 것이다.” 신독괴살수가 거침없이 해대는 말에 교살독사가 어이없다는 기색으로 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허… 신독괴살수! 너는 살기가 귀찮아졌단 말이로군! 흑룡강 선자(仙子)의 여식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지 모르고 어찌 아무렇게나 입을 놀리고 있는가?” 신독괴살수가 양 어깨를 들먹이며 참는 웃음소리를 내고 응수했다. “으흐흐흐… 말 잘했어! 노부가 그녀를 욕했다고 해서 목숨이 없어진다고 했겠다? 어디 정말 그것이 사실인지 두고 보면 알겠지!” “… …” “으흐흐흐흐… 오늘 저녁 너희들을 에워싸고 죽이려고 온 중원 무림의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 줄이나 아는가? 아마 너희들 같은 멍청이들이 거처하는 이 장원의 뜰에 고수들이 잠복하고 있을 게다. 너희들 흑룡강 일파의 몇 사람의 세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하하… …” 이때 별안간 서쪽 용마루 뒤에서 가가대소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노 괴물! 네 말이 틀리지 않게 행하라! 너와 빈도의 힘만으로도 이 자들은 재미를 보기에 알맞을 것이다! 아하하하.” 선우철은 그 말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며 생각하였다. ‘일이 묘하게 되었군. 오늘 저녁 나는 아무래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크게 불리할 것 같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몸이 호리호리한 사람이 허공을 날아 민첩하게 신독괴살수 뒤에 내려섰다. 익공관주 순천진인이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신독괴살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신독괴살수는 그를 바라보며 쌀쌀하게 말하였다. “순천 노도사, 언제 익공관을 떠나 왔소? 보아하니 무공이 더욱 정진한 모양이로군?” “아마 그럴 걸. 늙은 괴물 역시 십팔 년 동안 진전이 많았을 테지? 허나 우리들의 무공쯤으로 이 무림에서 지존(至尊)이라 일컬을 수 없다고 생각하네.” “멍청이 도사야! 네 어찌하여 그렇게 맥 빠질 말을 하는가? 보아하니 무림칠절의 십팔 년 후의 약속은 지키되 너를 제일 말석에 앉혀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십팔 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칠절은 아마 모두 생존하지 못하리라. 싸움의 약속도 이행할 수 없게 됐다. 만약 싸우게 된다면 너 같은 늙은 괴물쯤은 빈도가 일 초 정도 이길 수 있으리라 믿지.” 신독괴살수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일 십팔 년 전에 우리의 약속이 있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나는 너와 한 수 겨루겠는데… …” “아주 옳은 말이야! 잘한 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칠절은 약속 기한 이전에는 응당 손을 잡고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거지!” 순천진인이 겸연쩍은 웃음을 띠며 말하는 소리를 듣고 선우철은 속으로 그를 욕하고 있었다. ‘정말 교활하고 내숭스럽군. 만일 그들 칠절이 손을 잡고 일을 하게 된다면 무림의 형세는 또 다른 점에서 헤아려 볼 문제가 아닌가?’ 한편 비류신은 무림칠절의 십팔 년 전 약속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순천진인의 말을 듣고 그 나름대로 생각을 하였다. ‘무림칠절? 이제 그들 중 세 분은 돌아가셨다. 남은 네 분은 그 전의 약속을 이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싸우겠다면 나는 은사이신 소대호를 대신해서 그들과 싸워야 하겠군.’ 이때 익공관주 순천진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소. 칠절이 무림에서 크게 싸워야 될 것으로 아오. 우리 칠절은 이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죽어갈 지도 알 수 없는 일이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