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롤로그>
참 행복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있습니다.
“그들은 창문으로
사랑스러운 신과 조우한다”
체코의 이 속담은
현재에 만족하며
주어진 시간을 향유하고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상이 지루해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신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명상을 즐기는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나(안젤름 그뤈 )에게 이 표현은
행복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유와 순간’을
강렬하게 체험하는 것,
그리고 최상의 축복,
이런 것들은 항상 장 어울립니다.
그런가 하면,
경험에 굶주린 상태,
내적인 불안,
쉴 틈도 없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모습은
서로 일맥상통 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분주한 모습은
흔히 자신의 행복만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추구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또한 행복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구루라고 불리는
인생의 스승들도 많고,
한편에서는
쉽고도 신속하게 행복을
찾게 해주겠다며
거짓 약속을 하는
자칭 행복예언가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행복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그만큼 널리 퍼져 있는 징조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으며,
일상의 현실을
슬쩍 비켜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을
통과해 갑니다.
게다가 우리는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대단한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순간
-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 우리 주변의 작은 일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뜨면 되는 것입니다.
새들이 앉아 있는 나무,
먼 바다,
폭풍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됩니다.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느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것은
일종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면
우리는 날마다
신의 선물을 인지하게 됩니다.
(깨댤음에 이르면)
친절한 사람을 만나거나,
꽃이 아름다움을 보게 되거나,
태양이 나를 따뜻하게 감사줄 때,
그리고
나의 마음을 채워주는 사랑을
경험할 경우입니다.
(와유)
이렇듯 행복으로 가는 길은
힘들지도 않고
멀지도 않습니다.
신이
매일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매일은
그야말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행복이 우리 발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걸어가는 길가에서
행복은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꺾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설령 행복을 예언하는 자들이
초대하는 장소에 갈지라도 말입니다.
행복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행복이란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이라고요.
만일 내가
모든 감각을 한껏 동원하여 살아가고,
순간에 충실하며,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주어진 삶에 감사를 하면,
행복은
그냥 오게 된다고 합니다.
보는 자세가 달라지면
이렇듯 매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눈길로 보고,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리고 내가 가진
한계와 약점을 인정한다면,
그러면
내 자신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삶과 마찬가지로
붙잡아둘 수 없습니다.
내 길은
매일 내가 부딪히는 것들을
통과하게 될 것이고,
상처, 오해, 갈등을
지나가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신성한 세계에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둠과 암울한 것이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쁨과 고통은
모두 삶(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행복으로
인도하는 끈이 될 수 있습니다.
이토록 불완전한 세상에서도
내 자신의 인간성을 긍정하고,
마주치게 되는 것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행복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나게됩니다.
불운과 고통 속에서도
신의 나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것을 통해
신을 보고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을 볼 수 있는 자는 행복합니다.
영혼이 깊숙한 바닥에
행복이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
신이 머물고 있으며,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