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5장 38-40절『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출애굽기 21장 22-25절『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야짜 예레드)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파릴)을 따라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아손)가 있으면 갚되(나탄) 생명은 생명으로(타하트),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야짜 예레드는 낙태라기 보다 조산을 의미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왔는데, 재난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는 죽은 낙태가 아니라, 조산한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재난이 없더라도 재판장의 판결대로 벌금을 내라는 것이다. 판결이라고 번역된 파릴은 재판관이라고 번역되었지만, 말의 유래를 찾아보면, 판단하다, 중재하다, 기도하다, 탄원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기도 안에서 옳은 판단으로 넘겨주라는 것이다.
『다른 해가 있으면』에서, 다른 해(아손)에서 히브리어 성경에는 다른 이라는 말이 없다. 아손은 재난으로 번역된다. 해(재난)는 산모에 대한 말이다. 어머니의 눈이 상했으면 눈으로, 이가 상했으면 이로 라는 말이다. 이 세상적 표현으로『동해보상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동해보복법』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동해보상법』은 보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의자가 피해를 입은 자에게『같은 수준의 보상을 하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임신한 여자를 교회로 비유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2장 1-2절에서『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나탄은 넘겨주다라는 의미다.『생명은 생명으로(타하트),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생명은 생명으로 넘겨주라는 것이다. 생명으로 라고 했는데, 『~으로』 라는 히브리어는 타하트이다. ~대신해서 라는 말이다. ~대신 죽는 의미를 갖는 전치사이다. 그래서 앞의 생명은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죽은 예수와 연합하여 죽었음을 의미하며, 그래서 보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의 몸으로 영원한 생명을 갚아주는 것을 상징한다.
이는 먹는 것의 상징이다. 앞의 이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여 잡아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뒤의 이는 성도들이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다. 피는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상징하고, 살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앞의 눈은 육적 눈을 감기고, 뒤의 눈은 영적 눈으로서 열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다른 것들도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밴 여자가 출산을 한다는 것은 복음의 씨가 들어가서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열매는 부활 생명의 열매이다. 현재적 부활을 맺게하는데, 교회를 상징하는 임신한 여자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오늘날 현재적 부활을 신도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비난과 멸시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멸시를 갚아주겠다고 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 16-19절『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은 이런 구약의 출애굽기의 사례를 비유를 하시면서『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므로 나타나는 어려움을 참고 오히려 더 나아가 고통과 환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오른뺨을 친다는 것은 치는 입장에서는 바라보는 대상자의 왼쪽이다. 왼쪽을 친다는 것은 손등으로 칠 수 밖에 없는데, 오른 손의 손등으로 상대의 왼쪽을 친다는 것은 대단히 모욕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맞은 자가 고개를 돌려 상대가 오른쪽의 손바닥으로 자신의 왼쪽을 치도록 한다는 것은 더욱 모욕적인 것을 각오하고 맞겠다는 의미가 된다. 복음의 씨를 퍼뜨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사야 50장 6-7절『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이사야 선지자의 말이 성도에게 주는 말씀처럼 들리는 것이다. 성도 역시 복음의 씨를 뿌리고 싹이 나게 하고, 열매맺게 하는 과정은 엄청난 고난과 시련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9절의『악한 자를 대적하지(안디스테미) 말라』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으로 붙잡다, 세우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안디스테미는 스타사에서 어근을 찾는다. 누가복음 7장 36절에서『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스타사)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말은 악을 선으로 세우라는 것이다.
악은 죄의 근본이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의미한다. 이게 첫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의 몸이다. 그 죄의 몸이 예수님의 몸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예수님은 그 고리를 끊어셨다. 십자가에서 죄의 몸이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와 연합된 자는 그의 죄의 몸도 죽은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선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의미한다.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5절『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