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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장 問答(문답) 지객당주 고진은 당황했다. 누군가 벼락치듯 스치고 지난 것이다. 대상물을 확인하기 위해 급히 고개를 돌리던 고진대사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무언가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붉은 구름 같았다. "땡중, 비켜!" 앙칼진 여인의 고함이 들렸다 싶은 순간 무언가 뭉클한 것이 빡빡 밀은 머리를 강타하고 지났다. 고진대사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가 지면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의 눈빛이 몽롱하게 풀리고 말았다. 고진대사는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붉은 구름의 정체를. 너무도 아름다운 미소녀였다. 절 아래 술집 주모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겼던 그의 사고를 한 순간 바꿔버린 그런 절색의 미소녀였다. 고진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머리를 강타한 것, 그건 그 아름다운 미소녀의 그것이었다. 뭉실통통한 유방! "히익---!" 고진대사는 붉어진 얼굴로 급히 사방을 바라보았다. 사미승들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미타불! 속히 비상종을 울려라!" "수좌스님, 어떤 비상종을 말씀하시는지요?" 사미승이 맹랑하게 물었다. 그 꼬마승의 반질반질한 머리를 보며 고진대사는 멈칫하고 말았다. "요괴, 요괴가 침입했다는 비상종이다." 소림사의 산문에 설치된 비상종이 끊임없이 울렸다. 요괴의 출현을 알리는 비상종은 없다. 사미승은 요괴가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것으로 알고 혈궁이 침입했을시 울리게 되어 있는 서른 여섯 번의 타종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종소리를 센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아미타불, 전 문도에게 알리노라. 혈궁의 침입이다. 당황치 말고 진중히 행동하라. 아울러 백팔나한진을 펼치고, 장경각과 나한당은 물론 방장실을 경호함에 허점이 없도록 하라!" 불문의 신공 사자후로 울리는 음성! 거산(巨山)이 깨어났다. 대소림의 웅자가 마치 잠룡이 몸을 털고 일어나듯 그렇게 용솟음치고 있었다. 단궁비는 급했다. 가는 곳마다 형형이 안광을 빛내는 호사승들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보이는 건 빡빡 민 대머리요, 급히 방향을 틀면 회색 가사다. 소림사와 철천지원수를 진 적이 없으니 모습을 드러내도 별 탈은 없을 것이지만 그는 무무대사를 볼 면목이 없었다. '소실봉의 뒷산에 뇌옥이 있다고 하던데 일단 그곳으로 피하자. 홍의미녀도 따돌릴 수 있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쾅! 석 자 두께의 철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제아무리 단단해도 만년한철조차 녹이는 독마신의 절기 앞에서는 물컹한 두부에 불과한 것이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습한 습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서 정말이지 두 번 다시 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아미타불! 누군가? 사제인가?" 노승의 인자한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을 들은 단궁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목소리는 무무대사의 목소리였다. 대소림의 방장으로 수십 년 동안 불심을 천하에 전파한 일대의 고승이었다. 그런 그가 왜 이 뇌옥에 수감되어 있단 말인가? "허허! 말이 없는 걸 보니 사제인 모양이군. 사제, 포기하게. 난 죽어도 다시는 소림의 방장을 맡을 수 없네!" 단궁비는 음성이 흘러나온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보인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노승의 모습이! 세 치 정도 자란 머리, 때가 낀 꼬질꼬질한 승복! 눈을 감고 있지만 퀭하니 들어간 눈두덩은 이전의 인자하고 품위가 넘치던 무무대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님!" 단궁비의 음성을 들은 무무대사의 어깨가 출렁 흔들렸다. 꾹 감은 그의 두 눈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아미타불! 이 목소리는… 혹시 창해일룡 단궁비 시주가 아닌지?" 단궁비는 날 듯이 그에게 달려갔다. "방장스님, 이 어인 일입니까?" 단궁비의 음성을 재차 들은 무무대사의 눈꺼풀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눈을 뜨지는 못했다. "허허! 꿈만 같구먼. 단시주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다니!" 무무대사의 음성에는 짙은 회한이 담겨 있었다. 단궁비는 전신을 엄습하는 불안감에 말조차 못하고 무무대사를 바라보았다. "신비각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미타불, 일단 앉으시게!" 단궁비가 앉자 무무대사는 말없이 단궁비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어리석은 사람. 한 순간의 울분을 못 참아 모든 일을 그르치다니… 하긴 이것이 하늘의 뜻일지도 모르지!" "무슨 말씀입니까?" "궁개는 참회하고 있네. 나 역시 이렇게 참회하고 있고!"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허허! 이해할 수 없겠지. 하긴 나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지!" 무무대사가 밝힌 사실, 그것은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담자무의 정체, 그가 혈궁의 궁주인 마야 나청군이라고 했다. 그의 마각이 드러난 것은 개방에 의해서라고 했다. 개방의 방주 궁개가 우연히 담자무를 발견했다. 인사를 나누려 했으나 문득 궁개는 담자무가 평상시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뒤를 밟았다. 그를 미행한 궁개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자무가 향한 곳, 그곳은 만승산에 거점을 두고 있는 혈궁이었다. 이에 의문을 품은 궁개는 담자무의 뒤를 극비리에 캐던 중 그가 마침내 혈궁 궁주 마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즉시 신비각의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궁개의 말을 들은 장로들은 경악했고, 이 일을 주약란에게 알린 후 담자무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담자무가 사람을 보냈다. 비밀을 폭로하면 구파일방을 궤멸시킨다는 위협과 함께!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은 코웃음쳤다. 구파일방이 비록 활동이 뜸하다고 하나 일단 연합을 구성하면 사해팔황을 뒤엎을 힘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기에. 그런데, ---앙천독(仰天毒)!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만성독약이 이미 대량으로 각파에 유입되어 주요인물들을 모두 중독 시켜 놓은 뒤였다. 비밀 폭로, 그것은 구파일방의 멸망이었다. 구파의 장문인들은 고민했다. 결국 그들은 마야의 명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시간을 벌어 해독한 후 일거에 혈궁을 치겠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본 후! 그러나 마야는 지독했다. 그는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의 무공을 폐하고, 기억을 잃게 하는 망아환을 복용시켜 버린 것이다. 다행히 궁개와 무무대사는 내공이 심오해 망아환의 저주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무무대사가 긴 회상을 마치고 단궁비를 바라보았다. ---히죽!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나 보다. 내가 인간이듯이 그녀 주약란도 인간인 것을! "늦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진척되었다면 신비각은 이미 마야의 수중에 들어간 것입니다." 단궁비는 잘라 말했다. "아미타불! 신비각에는 아직 주약란 문주가 있고, 불패괴옹이 있으며, 황충산이 건재하네! 그들이라면 다시 일을 도모할 수 있네!" "비겁하군요!" "비겁하다?" "결국 혈궁을 멸망시켜 소림사를 비롯한 구파일방의 문도들을 중독시킨 앙천독을 해독시켜 달라는 뜻이 아닙니까?" "음…!" 무무대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날, 천향루에서 독을 해독했을 때 당신들은 나를 비웃었습니다. 당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담자무가 위대해 보인 건 당연하지요!" 단궁비는 잠시 말을 끊었다. "누구를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신의 목숨만이 귀하다 여기는 인간의 약점을 파고 든 담자무의 계략에 감탄할 뿐입니다." 무무대사는 푹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비로소 단궁비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의 장난기 어린 행동 뒤에 숨겨진 숭고한 정신을! 칠십 평생 무엇을 보고 무얼 사색한 걸까? ---크크! 이들이 고통을 알까? 면벽 구 년 뒤 해탈이란 고고한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인간의 극히 기본적인 고통을 알까? 사랑이란 고귀한 단어로 치장된, 결국에는 짐승의 소유욕에 불과하고 저질의 질투에서 비롯되는 이 고통을 이들이 알까? 이 얄팍한 감정으로 다시 여러 사람의 피를 흘리란 말인가? "구파일방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십시오. 이런 구석진 곳에서 면벽한다는 핑계로 현실을 회피해서 해결되는 건 없습니다." 무무대사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겠네. 그러나 단시주! 이건 알게. 주약란 문주는 중원무림을 구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네. 우리 모두가 담자무를 잘못 판단했듯이 문주 역시 오판한 것일세. 그 분의 고뇌를 헤아리게!" 단궁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혈궁과 신비각! 둘 중 누가 중원을 지배하든 상관없습니다. 마야와 주문주가 결혼한다면 결국 그들 두 사람이 천하를 지배하는 것이니까요! 그게 주약란의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괴변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과거의 여인을 굳이 헐뜯고 싶진 않았다. 단궁비의 말이 끝나자 무무대사는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단궁비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침묵이 오래도록 흐른 후 무무대사가 번쩍 눈을 떴다. "그렇군! 진정 주약란 소저를 사랑한 사람은 단시주였군! 주약란 문주와 담자무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 그 날이 신비각의 파멸이네. 담자무는 결코 주약란 문주를 사랑하지 않네!" 단궁비는 벌떡 일어섰다. "혈궁이 중원에 피바람을 일으키면 난 다시 마야와 싸울 것입니다. 아버지가 남긴 유언인 대의멸친의 뜻이 이제는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지만 분명히 마야와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신비각과 구파일방의 도움은 받지 않습니다. 이건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이니까요!" "단시주." 단궁비는 담담하게 소림사의 뇌옥을 나섰다. 그러나 뇌옥을 나서는 순간 단궁비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싸구려 감정이라고 자신을 비하하지만, 주약란, 그 이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비하하면 비하할수록 더욱 고귀해지는 그 어떤 것처럼! * * * "오늘입니다, 주약란과 담자무가 혼례를 치르기로 한 날입니다." "신비각의 동태는?" "그들은 혼인 준비에 정신이 없습니다." "혈궁에서 날아든 비합전서는 없느냐?" "아직 없습니다." 능각표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산정이다. 그의 뒤로는 대마천의 모든 고수들이 정렬해 있었다. 그가 디디고 선 산정 아래에는 중원 무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강북에서 사용하는 화약과 암기의 절반 이상을 제조하는 곳! 만기문(萬技門). 각종 암기와 화약제조술로 이름난 문파였다. 삼 일 전 투항할 것을 명했으나 만기문주(萬技門主) 목가상(木可霜)은 거절했다. 능각표는 지금 만기문을 접수하려는 찰나였다. 이곳에서 화약을 얻을 생각이다. 그것으로 한바탕 화려한 축제를 벌여 줄 계획이다. 주약란과 담자무의 결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를! 능각표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애초에 살성을 타고 난 인물이었다. 미인을 안는 것도 좋지만 싸움은, 특히 적수와의 대결은 무엇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지금 그의 기분이 그랬다. 그때 저 멀리서 수신호가 올랐다. 은밀히 화약과 암기를 빼돌렸다는 신호였다. 능각표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흘렀다. "대마천기(大魔天旗)를!" 쇄애애애액-! 황금깃발 하나가 만기문을 향해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갔다. "시작하라." 그의 입에서 살인 명령이 떨어졌다. 만기문주 목가상은 넓은 광장에 나와 있었다. 이미 자신과 수하들은 분신쇄골(分身碎骨)되는 한이 있더라도 대마천에 대항하기로 작정한 터였다. "비력진천뢰(飛力震天雷)는 모두 매설했느냐?" 목가상의 부리부리한 호목(虎目)에서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굴강하고 선이 뚜렷한 턱선은 그가 매우 강맹하고 고집 센 인물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매설했습니다." 총관 상관충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광장에는 기치창검(旗幟槍劍)을 한 만기문의 무사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다. "비전암기들도 모두 조치를 취했겠지?" "일시에 모두 폭발이 일어나도록 조치해 두었습니다." 대마천에게 만기문의 비전암기들을 넘겨줄 수는 없었다. 폭발이 일어나면 만기문의 모든 것이 일시에 날아가도록 조치를 취했다. '오늘이 만기문 최후의 날이 되겠군.' 목가상은 자신의 수하들을 두루 훑어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불굴의 투지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귓청을 쑤시고 들었다. 쌔애애액! 파악! 거대한 황금깃발 하나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와 벼락처럼 광장 한 복판에 내리꽂혔다. 대마천기였다. "드디어 시작인가?" 목가상은 낮게 중얼거렸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크크크크!" 활강시의 손이 만기문 무사의 목젖을 움켜잡았다. "우드득!" 목뼈가 부서져 나가며 무사의 고개가 외로 꼬였다. "죽어랏." 칼날이 활강시의 미간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창날 하나는 복부를 깊숙이 찔렀다. 카카카캉-! 그러나 쇳소리만 났다. 카카카카-! 흉칙한 괴소를 터트리며 활강시는 양손으로 자신을 공격한 두 사람의 머리통을 콱 움켜쥐었다. 퍽! 잘 익은 수박이 으깨어지듯 그들의 육신(肉身)은 머리를 잃고 말았다. 활강시의 살수(殺手)는 가공악랄했다. 일수(一手)에 서너 명씩! 그들이 한 번씩 손을 휘두를 때마다 만기문의 무사들이 허수아비처럼 무너졌다. "마물(魔物)인 활강시를 이용하다니…." 목가상은 땅을 치며 통한의 혈루(血淚)를 삼켰다. 저들이 설마 활강시를 이용해 공격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활강시는 모두 열 구, 그러나 수백의 수하들이 그들의 손속에 맥없이 무너졌다. '최소한 이 마물들이라도 없애 버려야 한다.' 목가상은 이를 악물었다. "동사폭멸진(同死爆滅陣)을 펼쳐라." 동귀어진(同歸於盡)! 누군가 대마천과 대결할 사람을 위해 활강시와의 동귀어진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대마천과 내통한 첩자들이 화약과 암기를 빼돌린 것을! * * * 능각표는 산정에서 만기문에서 벌어지는 혈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 될 때가 되었군."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꽈과과과광-! 천번지복(天飜地覆)이 따로 없었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쩍쩍 갈라지며, 만기문 전체가 통째로 날아올랐다. "쯧쯧, 결국 활강시 열 구를 또 잃었군." 능각표는 아깝다는 듯 혀를 찼지만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웃음이다. * * * 챠르륵! 맨몸 위에서 부서져 내리는 경쾌한 물소리가 정적을 깼다. 요요는 커다란 욕조에 몸을 담고서 자신의 알몸을 정성껏 씻었다. 알 수 없는 서글픔이 가슴 한 구석을 꿰뚫었다.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났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지금껏 가꾸어 온 몸. 목적을 이루지 못할 시에는 자결하리라.' 그녀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언뜻 살기가 스치듯 지났다. 풍염한 상체는 물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단 한 번도 사내의 손길을 접한 적 없는 요요의 가슴돌기에 투명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그녀의 손길은 온몸 구석구석을 닦고 또 닦아 내었다. 마야가 들어왔다. 그는 눈이 부신 듯 요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경건한 예식을 치르는 신도처럼! 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그녀를 원하는 간절함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정녕 아름답구려!" 마야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고 침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안개가 흐트러질까 걱정하듯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포근한 솜으로 그녀의 알몸을 덮어 주었다. '이… 이 사람?' 요요는 두려워 눈을 감았다. 그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돌아섰다. 그가 나가고 있었다. 요요가 그를 불렀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요요는 자신의 손으로 이불을 벗겨 냈다. 실로 눈부신 알몸이 다시 드러났다. "제가 두려운가요?" 마야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무해 주세요." 포동포동하고 욕감을 자극하는 관능미가 여인의 몸에 가득 깃들어 있었다. 특히 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박 속 같은 젖가슴은 농익어 터질 듯 부풀어올라 있었다. 마야의 희고 부드러운 손이 그녀의 가슴을 안았다. 마치 병아리를 안 듯이 부드럽게. 요요는 몸을 꼬았다. 그는 그리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뜨거운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감싸쥐고는 그녀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 볼 뿐이었다. "이 가슴은 아픔을 담고 있소. 난 낭자의 과거의 아픔을 치료해 줄 생각이오!" 그의 뜨거운 손이 부드럽게 조금씩 움직였다. 물방울처럼 동그랗게 뭉친 그녀의 유방을 움켜쥐고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아픔이 가시는 것 같소?" 말을 하자 그의 입김이 바짝 돌기한 유두에 훈풍처럼 스쳤다. "아아…." 요요는 눈을 감고 말았다. 차마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대신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 뜨거운 손을 그녀의 깊은 곳으로 인도했다. 마야가 주춤거렸다. 그러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비림지대를 두툼하게 덮었다. 요요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솜털이불을 덮은 것처럼 안온했다.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떴다. "원하는구나!" 요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말을 마친 사내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돌아섰다. 극심한 혼돈이 마야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능각표의 명령은 그녀에게 절대적이었다. * * * 요요는 초조했다. 그는 그 뒤에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시비에게 물어보자 결혼 준비로 바쁘다고 했다. 문득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확 타올랐다. 질투심, 그것이었다. 능각표의 명령은? 그는 아마 자신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요요는 출생 때부터 단전에 화정(花精)이 형성된 천하의 우물이었다. 화정이란 쉽게 설명하면, 고(蠱)와 유사했다. 고를 지닌 여인과 정사를 하고 나면 평생 두 사람이 붙어 살아야 하듯이 화정을 지닌 여인과 관계를 한 사내는 평생 동안 그녀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정지기(花精之氣)가 사내에게 옮겨져 여인을 항상 그리워하는 환성(幻性)에 빠트리는 것이다. 그 와중에 사내의 양기는 점차 여인의 화정지기(花精之氣)를 키워 종내 그녀를 완벽한 신체로 만드는 것이다. 능각표가 요요를 마야에게 보낸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왔다. 오늘이 혼례일이라며. 그래서 며칠 동안 보지 못할 것 같다며 서역산 고급 포도주를 들고 그녀를 찾아왔다. 한 잔 술을 입에 담고 그에게 입술을 주었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향긋한 포도주만큼이나 달콤한 입맞춤이 길게 이어졌다. 사라락! 어깨에서 흘러내린 얇은 망사의가 발목까지 미끄러져 내렸다. 요요는 고의적으로 발목에 걸린 망사의를 빼내려고 허리를 살짝 굽혔다. 그녀는 지금 뒤로 돌아선 상태다. 마야는 의자에 앉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그러하듯 고요하고 다정했다. 요요는 은밀히 그를 살폈다. 지금 자신이 취한 자세를 그는 잘 알고 있다. 만월 같은 둔부가 살짝 벌어지며 여인의 신비지문이 살며시 열려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런 그녀를 보면서도 마야는 일체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초인적인 정력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녀석, 오늘 이 오라비가 결혼하는 날이다. 내 신부 될 여인에게 미안하지도 않느냐?" "싫어요!" 버럭 고함을 질러놓고 요요가 놀랐다. 그리고는 거칠게 망사의를 벗어 던졌다. 울컥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본연의 여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평범한 여인으로! 마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강하게 당겨 안았다. 그의 입에서 단내가 풍겼다. 여인의 색정을 강하게 돋구는 냄새였다. 요요가 그의 목에 매달렸다. "가지 마요. 가려면 저를 안아주고 가세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넌 정말 나를 종으로 만들려는 모양이구나!" 요요가 고개를 저었다. 요요는 눈을 크게 떴다. 처음으로 보는 사내, 그 당당함은 정녕 놀라울 정도였다. "무서워요!" 마야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의 몸 위에 체중을 실었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그것이 하체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너무 생생해 요요는 두려운 눈으로 마야를 바라보았다. 마야가 그런 그녀의 입술을 점했다. 그의 설육이 치아를 벌리고 밀려드는 순간, 요요의 몸이 침상에서 펄쩍 튀었다. "하악!" 하체의 궁이 외부의 힘에 의해 열리며 침입자가 고개를 디민 것이다. "아파! 나… 아파요!" 마야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의 하체가 다시 한 번 강한 충격을 주었다. 단숨에, 그의 거대한 실체가 그녀의 궁을 파괴하며 밀려들었다. 그 지독한 통증에 요요는 다급히 마야의 가슴을 밀었다. 그러나 일단 입성한 물건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좌우로 요동치자 요요의 붉고 요염한 입술이 한껏 벌어졌다. 그 설백의 흰 치아 틈에서 가쁜 신음이 토해졌다. "아악…!" 그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단숨에 처녀성을 파괴한 그는 난폭자처럼 날뛰었다. 요요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능각표가 부여한 임무는 저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침상에 엎드려 있었다. 두 손으로는 이불보를 틀어쥐고. '이… 이건?' 그제야 자신이 마야에게 보내진 이유를 떠올렸다. 화정지기를 흘려 마야를 그녀의 종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던가! 문제는 화정을 흘려 보내기 위해서는 정상위(正常位)이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후위(後位)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마야는 요요를 거칠게 공격했다. "악… 악!" 마야가 허리를 거칠게 놀릴 때마다 요요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깊게 밀려들어오는 거대한 물체가 닿는 곳마다 지독한 통증이 일었다. 그러나 그 통증은 점점 쾌락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전신의 뼈가 녹아 내리는 것 같은 지독한 쾌락이었다. "아… 아!" 드디어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요요는 세차게 도리질쳤다. '아… 안돼… 이… 이러면 안….' 요요의 입에서 뜨거운 단내가 확 풍겨나왔다. 빙기옥골의 나신은 이미 땀으로 목욕을 한 듯 번들거리며 강한 육향을 훅 풍겨내었다. 요요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과 합체가 된 부위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으로 그녀의 전신 가득히 또 다른 쾌감을 피워 올렸다. "하악… 하악!" 마야의 허리가 퉁겨질 때마다 그녀의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요요!" 마야가 그녀를 부르며 움직임을 멈췄다. "예?" 마야가 허리를 뒤쪽으로 슬쩍 뺐다. 요요가 둔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의 내부는 무언가 강한 폭발을 원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제 막 정상에 도달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마야가 동작을 멈춘 것이다. 요요는 계속 둔부를 움직이며 과자 달라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마야가 뒤로 뺐던 허리를 둔탁하게 느리게 밀어넣었다. 요요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으…!" 거목이 밀고 들어오는 듯 묵직한 포만감에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 전신으로 퍼진 것이다. 그리고, 한 순간 마야가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강하게, 아울러 허리를 맹렬하게 놀리자, 여체가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감당할 수 없는 쾌락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을 침상에 묻은 채 요요는 흑흑 흐느껴 울었다. '어… 어쩔 수 없어. 이…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 * * 폭설이었다. 하남대평원이 온통 눈에 뒤덮여 있었다. 무려 석 자 가까이 쌓아놓고도 눈은 멈추질 않았다. 단궁비는 그곳에 있었다. 홍의소녀에게 쫓기고 또 쫓기다가 결국은 이곳까지 도주한 것이다. 광활한 벌판에서 자신의 생을 되새기고 있었다. 이 순간 그의 얼굴은 해맑았다. 홍의소녀에게 쫓기며 그는 비로소 인간이 의지로 되는 일이 극히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삼일 째 되는 날, 더 방치하면 홍의소녀는 죽을 것이다. '별 수 없이 그녀를 맞이하는 수밖에 없군!' 그때 저 멀리서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폭설을 뚫고 그를 향해! 선두의 일인은 마치 늘 왕래하던 사람처럼 다가왔다. 백발과 팔이 잘려 빈 소매를 바람에 휘날리며,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익살스런 웃음을 머금고! 평소와 다른 건, 그가 허리에 커다란 술동이 하나를 차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뒤,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뇌종원, 냉소를 필두로 개방 방주 궁개의 모습도 보였다. 그 뒤로, 무무대사의 얼굴도 보였다. 그리고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의 모습도 모두 다. 그들도 허리에 커다란 술동이를 하나씩 꿰차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앞에 선 불패괴옹의 작은 몸은 더욱 작아 보였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단궁비의 머리에 벼락이 쳤다. "놈! 형님이 술을 장만해 왔으면 퍼뜩 안주를 준비할 것이지 뭘 보느냐?" 단궁비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형님!" "어허 이 녀석이 어서 안주를 준비해 오라니까?" 단궁비가 손을 쓸 틈도 없었다. 우르르 몰려 온 군중들은 부산스럽게 품 안에서 양피지에 싼 물건들을 펼쳐 놓았다. 그 형태는 마치 잔칫집의 음식상 같았다. 단궁비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는 동안 사람들은 각기 자리를 잡아 착석하고, 불패괴옹이 앞에 나섰다. 그는 예전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다. 단궁비가 망신을 당하던 귀왕곡의 그 날의 광경을! 추레한 옷차림으로 그때보다 비쩍 마른 몸으로! 그러나 단궁비를 온화한 눈길로 바라보며! 외로움이 그 작은 노인의 몸짓을 보자 스르륵 녹아 내렸다. 나와라! 불패괴옹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단궁비는 푹 고개를 숙였다. 불패괴옹의 의도를 안다. 그러나 따를 수가 없다. 그가 망설이자 뇌종원을 비롯한 냉소와 궁개가 고개를 숙였다. "단소협! 우리는 단소협이 아니면 죽은 목숨이었소이다. 치기어리다 생각 말고 이 흥겨운 잔치에 동참해 주십시오." 단궁비가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자꾸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단궁비는 한껏 거드름을 부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쳐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오!" "정녕! 정녕 놀랍도다!" 단궁비를 본 구파일방의 수뇌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픔이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미안함이 있었다. 단궁비는 조용히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흘렀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도 말이 없었고, 단궁비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 쌓였던 오해는 씻기고 있었다. "소생, 경험이 적어 예전에는 예를 잊었습니다." 단궁비! 이 인간이 강호물을 호되게 먹고 난 후 존장을 대하는 법을 깨달아 근엄한 표정에 예의를 철저하게 차리니 누구나 칭찬일색이었다. 황충산은 그 모습을 보며 소매로 얼굴을 씻었다. 뇌종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때 아름다운 아악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든 단궁비의 눈빛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부복으로 성장을 하고서, 입가에는 정녕 아름다운 웃음을 머금고서, 사뿐히 즈려밟는 발길에 쌓인 눈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향해 다가올수록 그의 가슴에 앙금으로 남았던 찌꺼기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사랑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절실히 그 감정을 느낀다.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단궁비의 몸은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불패괴옹이 그에게 다가왔다. "놈! 네 신부다!" 단궁비는 히죽 웃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돌려 받고 있었다. 단궁비는 미친 듯이 달렸다. 눈이 펑펑 날리도록! 그 여인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두 팔을 벌리고 얼굴에는 눈물이 범벅되어서! 와락! 그녀를 당겨 안았다. 갈증을 풀 듯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대취하도록, 거나하도록,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셨다. 궁개의 주량은 실로 대단했다. 단궁비와 대작을 하며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 두 술꾼이 앉아 일단 술병을 비우기 시작하자 무려 다섯 동이가 삽시간에 바닥이 나 버렸다. 주약란은 그들 옆에서 연신 안주를 집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팠지요?" 단궁비가 묻자 궁개가 쓱 단궁비를 노려보았다. "아팠냐고?" 쾅! 술동이가 단궁비의 머리에 부딪쳐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홍알거리는 단궁비를 궁개가 와락 당겨안았다. "미안하이. 내 사과하네!" "후후! 거지 형, 대취하도록 마셨으면 되잖아. 난 다 잊었어!" 단궁비의 음성은 점차 꼬부라지고 있었다. 사르륵! 비단옷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향긋한 체향(體香)이 실내를 감쌌다. 설사 하늘의 천향(天香)이라도 이처럼 향기롭진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이런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여인은 단 한 사람, 주약란이었다.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손에는 기이한 향기를 머금은 찻잔이 담긴 다반(茶盤)이 들려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맑은 옥음을 굴리며 그녀는 찻잔을 놓은 뒤 단궁비의 옆에 앉았다. 단궁비는 주약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너무도 강렬해 주약란은 고개를 숙였다. 어색하다. 창피하다. 그러나 기분이 좋다.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소." 주약란은 고개를 저었다. "고생은요." 주약란의 별빛 눈이 단궁비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말해 보시오." "저를… 문주가 아닌 약란이라고 불러 주세요!" 말을 마친 주약란은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여심의 표현이었다. 고개 숙인 주약란의 뽀얀 목덜미를 바라보며 단궁비는 갈증을 느꼈다. "아니, 곤란하오!" 주약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륵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약란이 뭐야? 아내라고 불러 줄게!" 주약란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마음이 붕붕 뜨는 것은…! 주약란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한순간 세상이 환해졌다. "정말인가요? 정말인가요?" 거듭 확인하는 주약란을 단궁비가 당겨 안았다. 주약란의 뜨거운 눈물이 단궁비의 가슴을 적셨다. 그녀의 촉촉한 음성이 방 안을 울렸다. "저도 둘이 있을 때는 여보… 라고 부르겠어요." "오호! 그거 좋지. 지금 당장 한 번 불러 봐!" "여보…!" 주약란은 그렇게 부르고는 단궁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단궁비는 주약란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 아!" 그녀의 입에서 환희의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박 속 같은 치아가 살며시 벌어지며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그들의 입술이 하나로 포개졌다. 그리고 길고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 * * "안돼! 아우 혼자 보낼 수 없어!" 불패괴옹은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노선배님! 이번 일은 제 개인적인 일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가겠다는 겁니다." "이놈…!" 호통을 치려던 불패괴옹이 주약란의 표정을 힐끗 살핀 뒤 못마땅한 듯 말투를 바꾸었다. "아우가 혼자 가려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어떤가? 일촉즉발의 상태야. 주약란과 우리들이 없어진 걸 알면 마야가 자네를 없애려 들 걸세." 단궁비가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혼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괜히 많은 인원이 움직여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보, 수석 장로의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그리고 어쩌면 마야는 당신이 올 줄 알고 미리 대비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단궁비가 고개를 저었다. 불패괴옹의 눈동자가 한차례 뒤룩거렸다. "좋아. 그럼 나와 동행해!" "예?" "넌 이제 문주의 남편이면서 또한 신비각을 대표하는 인물이란 말이다. 네가 강호에서 또 불미스런 일을 저지르면 우리 신비각의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 불미스런 일! 그건 다름 아닌 여자를 말함이다. 단궁비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마야가 미인계를 사용하면 단궁비로서는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던 것이다. 단궁비가 불패괴옹을 확 째려보았다. "형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난 예전의 단궁비가 아니란 말이오! 그리고 담자우 그 자식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단 말이외다. 만일 이번에도 내 뜻을 거부하면 난 다시 감쪽같이 사라질 것이오!" 사라진다는데, 할 말이 없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