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수비 포지션을 부르는 명칭을 보면, 투수 pitcher는 볼을 던지는 사람이고, 포수 catcher는 당연히 볼을 잡는 사람입니다. 또한, 1루수를 비롯한 내야수나 외야수 등도 그들이 지키는 베이스나 위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격수만큼은 shortstop이라고 부르고 있죠. 한자인 유격수나 영어인 shortstop만으로는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또한 어디를 지키는 포지션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사실 9개의 포지션 중에 가장 역사가 짧은 것이 유격수이죠. 앞선 글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알렉산더 카트라이트의 공적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 중에서 9인제 야구를 확립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1845년에 만들어진 니커보커스 룰에는 몇 명의 선수가 그라운드에 나서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12년이 지난 1857년에 나온 개정판에 9명이 플레이를 펼친다는 조항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9인제가 확립되기 전에는 몇 명이나 그라운드에 투입되었을까요?
현재 남아 있는 삽화 등을 봤을 때에 1830년대부터 9인제가 확립되기 전까지 10명에서 12명이 경기에 출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그 때 그 때 달라요'였고, 또한 팀에 따라서 10명에서 12명의 선수가 지키는 수비 위치도 제각각이었습니다. 포수를 2명이나 출전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내야를 무려 5명이나 두는 팀도, 외야수는 최소 3명에서 4명이었다. 내야를 5명이나 둔 것은 이 당시의 볼이 거의 반발력이 없었던 관계로 장타가 나올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죠. 결국, 각 베이스 근처에 1명씩의 수비수를 두고, 1루와 2루, 2루와 3루 사이에 각각 1명씩을 둔 그물망 수비를 펼쳤습니다.
특히 내야의 다이아몬드를 벗어나서 상대적으로 짧은 필드를 지키던 1루와 2루, 2루와 3루 사이의 야수를 쇼트 필더 short fielder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점차로 9인제가 정착하면서, 기본적인 각 포지션 외에 어디에 1명의 야수를 두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1847년 니커보커스의 주치의 겸 선수였던 다니엘 아담스는 당시의 볼이 반발력 등이 없어서, 멀리 던질 수 없는 것과 대부분의 타자들이 우타자인 것을 감안해서, 지금의 유격수에 해당하는 위치에 출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유격수라는 포지션의 시발점이 되었고, 1849년에는 쇼트 필더라는 포지션을 대부분의 팀이 받아들였습니다.
즉, 유격수의 원조에 해당하는 쇼트 필더는 사실 내야수라기보다는 짧은 외야를 지키는 외야수였습니다. 외야수가 잡은 공을 홈이나 다른 베이스로 한번에 던질 수 없었기에, 그 공을 중계하는 역할이 쇼트 필더의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게다가, 1857년에는 지금과 같이 베이스 간의 거리가 90피트(약 27.4m)가 확정되면서, 쇼트 필더의 중요성은 더해졌다. shortstop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최초의 기록은 1859년 8월 27일로, 아마도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숏스탑도 '짧다'와 '멈추다'는 말이 합쳐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쇼트 필더의 중요한 역할이었던 외야와 내야를 중계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말입니다.
결국, 지금의 유격수는 9인제가 정착되기 이전의 10인 이상이 플레이를 펼치던 시대의 흔적인 셈이죠. 과거와는 달리 유격수는 수비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이 커지고 있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