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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큐왕국의 외침,오카나와 4박 5일 여정
(슈리성 정전:ㅈ욱구풍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카니와 하면 일본의 최남단 섬. 괌이나 사이판처럼 야자수 그늘 아래서 쥬스를 마시는 그저 남태평양의 작은 섬으로만 여겼다. 기껏 안다는 것이 미군 기지가 있고 우리네 프로야구단이 동계훈련캠프장 정도
금년 겨울에 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류큐왕국의 보물을 본 순간 오키나와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13세기 말에 세워진 독립국가인 류큐는 중국와 일본 그리고 조선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와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얻어 독특한 해양왕국을 만들었다. 일본은 물론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회화와 건축, 섬세한 왕실유물, 형형색색의 의복. 입이 딱 벌어질 만한 나전칠기 등 넋이 나갈 정도로 류큐문화에 흠뻑 반해버렸다. 놀라운 것은 우리와 함께 일월오악도를 왕의 병풍으로 쓴 유일한 나라이기에 동질감 마저 느껴진다. 진도에 이어 제주마저 함락 당한 삼별초의 유민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찾은 곳이 류큐라는 말도 있다. 오키나와 북단 니키진성터의 성벽은 마름모식의 일본 축성방식이 아닌 자연석을 이용한 들여쌓기 방식으로 우리네 축성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바다를 향해 길게 이어진 성벽을 보니 희미하게나마 우리의 실선같은 핏줄을 보게 된다. 거기다 홍길동에 등장한 율도국이 바로 류큐왕국이라는 동화같은 이야기까지 더해진다.그걸 증명하듯 홍가와라(洪家王)가 살았던 집이 오키나와 본섬에 남아 있는데 우리네 민속촌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니 묘한 흥미를 자아낸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를 발판으로 임란을 일으켰다. 이때 류큐왕국에 특사를 보내 조선 출병을 위해 군대를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류큐왕은 “조선은 형제의 나라이니 그럴 수 없다.” 라고 거부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를 방패 삼아 본토를 사수하려 했고 오키나와인들은 버려진 돌로 여긴 것이다. 1945년 3월에서 6월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어 오늘날 제삿가이 3개월에 집중되어지낸다고 한다. 만약 제주도 역시 전쟁터가 되었다면 분명 이런 아비규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조선의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곳 역시 오키나와였다. 남부의 평화공원에 가면 한국인 위령탑이 있다. 이 먼 섬으로 끌려온 학병, 근로자, 위안부는 남의 나라 전쟁에 억울하게 휘말려 희생된 사람들이며 그 수가 무려 1만명에 헤아린다. 1945년 8월 원자탄 두 방에 천왕은 무조건 항복을 했고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만났지만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을 미국이 순순히 내어주지 않았다. 공산화된 중국과 대치하려면 이 섬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일본군의 만행과 희생에 이어 기나긴 미군정의 신탁통치가 이어진다. 1972년, 류큐의 독립은 요원했고 당장 미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대안을 일본 복귀로 찾은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패배한 미국이 한 풀 꺽여 있을때 오카나와 현민들은 불같이 일어났고 드디어 일본으로 복귀된다. 미군 기지가 있어 잠자리가 나는 것처럼 수시로 비행기가 오르내리고 고속도로에는 장갑차가 달린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거대한 유류저장소가 살벌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에서도 조센징과 더불어 냉대 받은 사람들이다. 일본인이면서도 주변인이기도 한 그들은 누구보다 일본군의 만행과 역사왜곡에 분노했다. 1975년에는 기념관 건립을 위해 오키나와를 찾은 황태자에게 화염병 투척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저항정신이 대단하다. 그래서 그래서 남쪽 평화기념관을 찾으면 우리네 독립기념관 분위기가 날 정도로 태평양전잰의 만행에 분노하고 있다. 지금도 주민 네 다섯 중 한 명이 분리 독립을 외칠 정도로, 일본 본토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춤과 노래를 즐겨했고 얼굴이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연예인으로 진출한 오키나와 인들이 많다고 한다. 오키나와, 극우주의자들에게는 성지, 오키나와인이게는 비극의 땅. 미국인에게는 군사기지 과 연 한국인에게 오키나와는 어떤 얼굴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오키나와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키나와 직항로는 진에어, 제주항공, 아시아나 항공 등이 있는데 소요시간은 인천에서 2시간 10분. 진에어, 제주항공은 특가 상품이 있으니 미리 고르면 20만원 미만 티켓도 구할 수 있다.
비행기 뒤편 좌석 50번 좌석 이후 그러니까 오키나와 갈 때는 F석,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A석에 앉으면 한반도의 서쪽 해안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비행 항로가 해안선을 따라 오가기 때문이다.
지도 한 장 펼치면 짚어보면 아이들 지리 공부에 도움이 된다. 인천-천수만-변산반도-무안-목포-진도의 팽목항-추자도를 지나 제주도를 가로 지르기 때문에 한라산, 성산일출봉, 마라도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인천공항은 영종도(永宗島) 와 용유도(龍遊島) 사이 바다를 메꾼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자 영종과 용유를 해석하면 '긴 마루에 용이 놀고 있다'.우와 이미 선조들은 이 바다 위로 비행기가 날 것을 예언 했던 것이다.
'용(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긴마루(활주로), 왼쪽에 시커먼 섬이 무의도 그 뒤에 실미도가 보인다. 무의도(舞衣島)..춤추는 옷..패션쇼를 할 수 있는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허지 않을까? 비행기는 목포를 지난다. 호수와 바다 그리고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섬 진도를
지났을 때 팽목항과 관매도가 내려다 보이는 것이었다. 성산의 일출봉을 지나 서귀포 그리고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지날 때까지 난 숨을 죽이며 우리 국토를 내려보았다. 승무원들이 간식으로 빵을 놓고 갔디만 미동도 하지 않고 국토의 아름다움을 꼽씹었다. . 그리고는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지루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뭉게 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구름 속에서 내 얼굴을 찾다가 쿨쿨~
비행기는 고구마처럼 생긴 이에섬 옆을 스쳐간다. 이곳이 남국임을 말해주듯 에머럴드빛 산호초가 눈에 확 들어온다. 하늘에서 바라본 나하시. 난 깜짝 놀랐다. 오키나와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살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괌이나 사이판 처럼 시내에만 일부 도시가 형성되고 나머지는 거의 산과 바다인줄 알았다. 그러나 북부만 빼고 계속 도시가 이어졌다. 묘한 충격 속에 비행기는 진에어의 상징처럼 나비가 되어 사뿐히 안착했다. 일본의 출입신고서는 뭘 그리 적을 것이 많은지 심지어는 돈을 얼마나 소지했는지 묻는다. 많이 적으면 보따리 장수처럼 보일 테고 적게 적으면 불법체류자 오해를 살 수 있을 것만 같아 은근히 고민된다. 그저 100만원~~입구에서 친절히 안내해주는 공항직원의 표정에 친절함이 묻어 난다. 이런 느낌은 여행내내 계속.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샀는데 '아리가또'를 외치며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이 부담스러울 정도다. 공항에 송영 나온 렌터카 직원의 안내를 받고 렌터카 버스에 올랐다. 회사는 5분 정도 거리 오키나와는 지형이 길게 뻗어 있어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으면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 애를 먹는다. 거기다 길이 협소하고 차선이 반대인데다가 운전대가 오른쪽에 달려 있어 운전하는데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빌리자마자 좌회전 하다가 중앙선 넘은 적도 있었다.그런데 30분 운전하다보면 대충 적응이 된다. 도요타 렌터카에 대만족 거기다한국어네비가 있어 어찌나 편한지 모른다. 토요타 악시오를 1500cc를 빌렸는데 역시 하이브리드답게 연비가 리터당 30km. 이동 거리가 많다면 경차를 빌리는 비용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차선이 좁기 때문에 경차 운전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어쨌든 주행거리 500km를 달렸는데~~주유비가 3만원이 안나왔으니 기름값이 산 것인지 연비가 좋은 것인지~~운전할 맛이 난다. 어디 부터 갈까 고민하다가 오키나와 서쪽과 남부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지막 날은 모노레일로 다녀야 하기 때문에 남쪽은 미리 둘러보는 것이 낫다. 가장 먼저 오키나와 건국신화가 묻어 있는 세이와우타기 니라이카나이 다리 세이와우타기 가려면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u자형 교량이 이채롭다. 니라이카아니는 파라다이스를 의미한다. 고개에서 내려다본 바다가 그것이 아닐까 세계문화유산 세이화우타키. 하늘 신들이 땅에 내려와 머무는 신성한 장소로 국가 제사가 열리는 곳이다. 석회암과 정글. 습기가 가득하다.
신들이 머문 장소라서 그런지 웅장하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정확한 이등변 삼각형을 가진 삼각바위. 이 안쪽에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이 놓여 있다. 우타키란는 천신이 하늘에 내려오는 장소.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단이 나오는데 그 뒤쪽에 신들이 머문다는 쿠타카섬이 보인다. 이곳에서 임금이 신을 향해 경배를 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바다를 배경으로 행운의 다리가 놓여 있다. 연인이 만나면 사랑이 이루어지겠지~겐또
세이와우타기 주차장에서 바다쪽으로 조금만 가면 툭 튀어난 지형힌 치넨미사키 공원이 나온다. 250도가 바다를 향해 있어 드넓은 태평양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는 곳이다. 신의 섬 쿠다카섬이 아른거린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그림이다. 옥빛 바다 위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반대편 바다는 석회암이 파도에 씻겨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보인다. 버섯모양의 바위. 태평양의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말해준다. 사람모양 가장 예쁜 하늘과 멋진 바다가 서로 조우하는 곳 저 세상 가기전에 아들과 10번 해외여행을 하는 곳이 소원이라는 울 아부지. 이제 3번 채웠다.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메고 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스럽게 보인다.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니시하라에 대형 쇼핑몰이 보여 장을 보기 위해 들어갔다. 우선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온 아부지 샌달부터 사드렸다. "아부지. 오카나와가 더운 나라인줄 모르셨어요?' 푸드코트에 들어가서 일본 백반을 시킨다.그리 화려한 찬은 아니지만 아끼바리 쌀로 지은 밥이 맛나 잘 넘어간다. 역시 한국인은 국물을 마셔야 제대로 식사하는 것 같다.
가족과 함께 한다면 바닷가 좋은 호텔에서 3일 정도 머무는 것을 권하겠는데 렌터카를 이용해 주로 문화답사라든지 관광지를 돌 생각이라면 굳이 좋은 호텔에 머물 필요가 없다. 난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9시 쯤 호텔에 도착했으니 호텔은 잠만 자는 곳~ Tokyo Dai-ichi Hotel Okinawa .. 아고다 사이트를 이용해서 구했다. 3박 4일에 22만8천원. 조식불포함 아무래도 비수기이기에 저렴한 것 같다. 나하의 머큐어호텔은 1박 2일에 7만 5천원 베란다가 있어 바다경치를 볼 수 있으며 실내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단 바닷가가 아니라 산 중턱에 자리해 찾기 쉽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중부지역에 호텔을 잡아야 동선잡기가 수월하다.
나하는 주차하기 힘들 뿐더러 한번 차량이 막히면 꼼짝 없이 갇혀 있어야 하므로 나하는 렌터카를 반납하고 모노레일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24시간 700엔 무제한
비데까지 갖추고 있다.
휴대용 빛으로 하나 챙기면 좋다. 칫솔은 헷갈리지 않도록 색을 달리한 것이 특징이다.
욕조와 비데도 있다.
호텔 베란다에서 바라본 오키나와 시 |
첫댓글 잘 봤습니다. 여행시 많은 도움 되겠네요.
열심히 다니십니다.
항상 건강 잘 챙기시며 다니세요...^^
아버님과 함께 하시는 여행 보기좋네요
조속한 시일내에 아버님 수원대로 열번 채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