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일 성체성사의 해 시애틀 대교구장 사목서한 일치의 표징, 사랑의 끈; 05/06/05
서문: 주님의 날
저는 우리 대교구의 미래가 희망으로 가득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성체성사가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하나의 교회로서, 우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시한 것같이 전례에 전적이고 의식적이며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제안합니다.
삶이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주일 미사에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현재 미국에서는 가톨릭 신자의 3분의 1 만이 매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불행한 실정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통계는 우리 교구에도 해당합니다.
주일은 우리가 매일 신경쓰는 일들에서 벗어나, 안식을 취하고 쉬면서 거룩하게 보내는 날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주일을 제8일로 여겼습니다. 그날은 주님의 부활을 시작으로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는 재창조의 영광스러운 시간이며, 새로운 창조의 여명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살아계시다고 하는 신비 안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주교 신자로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우리 마음 속에서 조용히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성사가 우리 교회 신앙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임을 인식하고, 전적이고도 능동적이며 의식적으로 성체성사에 참여하도록 요청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참여하도록 다같이 불러주신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로서 거행해야 합니다. 다 같이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주일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현존의 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이 환하게 비춰진 것은 주일 낮만이 아니었습니다. 첫 부활절 저녁에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요한 20,22) 사도 바오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1고린 15,45) 주님께서는 오늘도 주일 미사에 성령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이제 성인 입교 예식이 거의 모든 본당 생활에 정착되어, 신자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와 성체성사가 통합된 성사 예식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입교예식을 주일날 거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는 더 많은 교회들이 세례대와 세례장을 그 입구 가까이에 설치하여 신자들이 주일 미사에 올 때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성사생활로 들어가면서부터 그들이 받은 세례를 명확하게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매주일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성당에 오는 신자들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봉사자들-주례자, 독서자, 성가대, 성체성사의 집전자, 안내자들을 통해서도 맞이합니다. 그리고 가장 특별하게,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 성체성사의 요소인 빵과 포도주 안에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이 현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성체성사의 가장 분명한 차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찬례가 식사라는데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시는 공동체는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충만히 살아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 늘어선 줄은 하늘나라를 향한 순례의 양식을 얻는 줄입니다.
동시에 성체성사는 희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도 세상을 구하시기 위해 아버지께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봉헌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도록 초대합니다. 이 희생제사에 동참하는 영성체는 우리가 전례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 찬미와 섬김의 삶을 살도록 촉구합니다.
성체성사 거행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생생한 느낌은 미사 밖의 성체께 대한 흠숭 곧 성체조배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감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 앞에 무릎을 꿇고 "개별적으 로 그리고 공동적으로 관상기도"를 바치도록 권장하십니다. 감추어 계신 신비에 초점을 맞추는 법을 배움으로써, 하느님 백성이 매일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가운데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지를 발견하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함께하는 교회의 날
성체성사는 우리 모두를 하나의 교회로 일치시켜 주는 근원입니다. 제가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리고 대교구 전체가 통합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서부 워싱턴 교회가 한 식탁에 둘러 앉은 것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마치고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파견됩니다. 미사 끝부분에 주어지는 파견 강복은 "가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축복을 통해 좋은 일을 하라"는 사명이며, "복음을 널리 전하고 사회에 그리스도교 가치들을 고취시키도록 노력하라"는 주님의 명료한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환자를 돌보고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드러나게 되고,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는 우리가 성체성사를 "더욱 정의롭고 우애로운 사회 건설에 실제적으로 투신하도록" 재촉하는 "평화의 위대한 학교"로 체험해야 한다고 쓰셨습니다.
영성체 후에 바로 떠나는 신자들은 미사의 마지막 순간에 주어지는 이런 중요한 선교사명을 놓칩니다. 파견 예식에서, 믿음이 충만한 우리 신자들이 "책임을 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러 모인 전체 예식 중에 그리스도께서 진정 현존하셨던 것처럼, 이제 섬기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를 구현하도록 파견됩니다. 우리 주교좌 성당의 제대 위 천정 창에 "나는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와 있다." (루가 22,27)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교회가 서부 워싱턴 전역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섬기셨듯이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체성사의 선교 원동력이 개인적인 기도와 신심생활에서 우러나온다는 중요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일 성체성사에서 느끼는 교회의 보이는 친교 체험은 개인적인 신심 안에서 느끼게 되는 보이지 않는 일치와 친교의 원천이며 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성체 조배와 묵주 기도, 성체 거동 그리고 다른 전통적인 신심들은 성찬례와 같은 정신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많은 신심들이 개인적으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기초는 우리 자신을 넘어서 공동체의 필요를 기억하도록 하는 교회의 공적인 전례 안에 두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 각 개인에게 주어진 은사나 장점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는데 쓰여져야 한다고 일찍부터 증언했습니다.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문화 속에서,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최고의 기도인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공동체적이고 교회적인 체험의 빛으로 우리 개인의 신심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 거행을 교회 문 앞에서 멈추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데 자발적으로 헌신하라고 하십니다.
결론
여러분의 대주교로서 저는 모든 본당 공동체들이 이 성체성사의 해에 전례를 더욱 더 거룩하게 거행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새롭게 봉헌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는 우리가 "성체성사의 해"를 충실히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찬례 거행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성체성사가 우리를 위한 일치의 표징이며 사랑의 끈인가를 나타내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도록 그리고 우리 가운데 보잘 것 없는 이들의 존엄성을 들어 높이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활기를 띄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이게" (시편 34,8) 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