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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전 종정님 도훈말씀 中에서-
궁극의 도, 원시반본 그러면 증산도의 원시반본 정신은 선천 문화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까지 동서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는다, 도를 체험한다.” 하며 평생을 바쳐 명상과 수행을 해 왔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마음의 문을 부수고 우주의 일심 경계에 들어갔다고 해서, 신성神性의 세계에 영원히 상주하는 법신法身을 얻었다고 해서 도가 다 구해진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분명히 기초적인 통通은 성취했다. 그러나 궁극적인 도는 통하지 못했다. 그 궁극의 도가 무엇인가? 불가로 말하면 미륵불의 도의 세계요 기독교로 말하면 아버지 하나님, 천주님의 도 세계인 원시반본의 도다. 이 ‘천주’란 언어를 처음 쓴 사람은 동양 사람이 아니다. 물론 산동성에서 강태공이 유불선 이전의 원형 문화, 동방 신교 문화의 팔신제八神祭를 중국 한족 문화에 부흥시킨 예가 있다. 팔신제라 함은 천주天主, 지주地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일주日主, 월주月主, 병주兵主, 사시주四時主 등 신도神道를 여덟 범주로 나누어 제를 지낸 것이다. 이 때에도 천주가 있었지만, ‘천주’를 신도의 위격으로 처음 쓴 이는 서양의 신부인 마테오리치 대성사님이다. 그분은 동양에 와서 중국말에 통하고 사서四書를 직접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아! 상제님이라는 문화가 있구나. 상제관이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분은 서양의 창조주, 성부 하나님과 동양의 상제관에 다리를 놓는 언어로 ‘천주’란 말을 썼다. 천주, 하늘의 주인(the Lord of Heaven)이란 말이다. 이것은 서양의 기독교인들이 2천 년 동안 써 온 언어인 창조주 하나님, 성부 하나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격적인 신의 위격을 뜻하는 언어로 동양적 신관에 접근한 것이다. 그분이 남긴 『천주실의天主實義』란 책을 통해 실학자들이 천주교를 신앙했다. 이 ‘천주’란 말은 동서 신관을 통합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논리가 없다. 빌리 그레함(Billy Graham) 목사의 『성령론(The Holy Spirit)』이라는 책을 보면, 한 부자간의 대화가 나온다. 그의 친구의 아들이 성부, 성자, 성신도 각기 하나님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 삼위 일체론은 2천 년 동안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논쟁이 거듭되어 오다가 지금은 쑥 들어가 버렸다. 원시반본은 문제 해결의 대도 우리는 원시반본을 순환의 문제로 얘기한다. 순환이 지속됨으로써 생명이 확보되는 것이다. 지구 일 년도 가을이 되면 초목이 원시반본을 한다. 만약 원시반본을 하지 않거나 거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명을 지속할 수 없다. 춘하추동 한 주기에서 끝나 붕괴되고 만다. 우주 일 년도 봄여름에서 가을이 되면 원시반본해서 일단 수렴하여 열매를 맺고 겨울에 푹 쉬고 다시 봄을 맞이한다. 이것이 바로 상제님이 말씀하신 생장염장의 도다. 봄여름은 생장하고 가을겨울은 수렴해서 열매 맺어 폐장한다. 문 닫고 봄을 준비하는 것이 폐장이다. 상제님은 가을의 도로서 원시반본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지만 이 원시반본의 가르침에서 우리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안목을 얻는다. 즉, 원시반본은 문제 해결의 길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가령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을개벽을 모르고, 또 그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이 없다 해도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바른 길인가? 그럴 때 우리 증산도 신앙인들은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가? “그 길은 원시로 반본하는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한번은 우리나라 역사학자 송호수 교수가 이런 얘길 한다. “아, 증산도는 한 마디로 원시반본이야, 원시반본.” 서울에서 세미나 할 때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우리나라 고대사 찾기를 주제로 말한 것이다. 원시반본의 도에 충실하면 우리 민족의 뿌리 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즉 원시반본의 도에 통했을 때, 원시반본이라는 의식의 중심에 섰을 때, 우리 문화의 근본을 회복한다. 국조國祖의 문제, 우리 한민족사의 첫 출발점,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고대 국가의 성립 시기 등을 정확히 밝힐 수 있다. 원시반본은 생명의 존재 법칙 왜 원시반본이 중요한가? 지금은 이번 우주 일 년의 여름철이 지나고 가을로 들어서고 있다. 가을에는 우주만유가 원시반본을 한다, 근본으로 돌아간다. 종도사님께서 “원시반본의 본은 뿌리다, 뿌리!”라고 하셨다. 또 “뿌리를 찾아야 한다. 증산도는 뿌리 문화다.”라고 하셨다. “이 때는 원시반본하는 때라 혈통줄이 바로 잡히는 때니 환부역조하는 자와 환골하는 자는 다 죽는다.”는 상제님 말씀처럼, 이번에는 자기 조상을 배반하면 다 죽는다. 원시반본의 도는 대자연의 도요, 역사의 도요, 앞으로 열리는 새로운 문명의 도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만유의 생명의 도이자 존재 법칙이다. 이 원시반본의 도는 꼭 가을의 정신을 전제로 한 것일 수만은 없다. 왜 그런가? 우주 만유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항상 근본을 떠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도의 근본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회귀 본능을 갖고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생명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도를 회복한다, 도로 돌아간다 할 때의 도의 본성, 즉 우주가 생겨난 생명의 근원, 빛의 세계, 중도실상中道實相 등을 항상 우리 마음과 생명의 의식 경계에서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가장 기본적인 문제다. 원시반본의 실천 이념: 보은, 해원, 상생 한 인간, 생물, 더 나아 지구, 하늘과 땅, 온 우주가 순간순간 변화해 나간다. 그런데 지금의 변화, 때의 정신은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인간은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열매 맺는, 성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원시반본의 도다. 그러면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상제님께서는 해원解寃, 상생相生, 보은報恩을 원시반본을 성취하는 구체적인 실천 이념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다. 보통 우리는 해원, 상생을 항상 음양적으로 붙여서 얘기한다. 그리고 보은을 세 번째로 말한다. 도운의 초기 시대에도 해원, 상생, 보은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제3변 도운에 들어와 상제님 도를 전하면서 진리의 틀을 다지다보니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은’이 맨 앞에 가야 한다. 왜 그런가? 우리 삶의 질서, 인간 문화의 질서 속에서 원시반본의 정신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보은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갚는 것. “반반지은半飯之恩도 필보必報하라, 반 그릇 밥의 은혜도 반드시 갚으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 속에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신명, 나와 선령先靈, 부모와의 관계에서 볼 때 원시반본의 도가 곧 보은이라는 말이다. 갚을 보報 자에 은혜 은恩 자. 은사, 은혜, 은총이라고 할 때의 은 자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네가 나에게 얼마를 도와줬으니 나도 그만큼 도와준다는, 주고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신세진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가 아니란 말이다. 상제님이 그런 수준에서 우리에게 보은의 도를 내려주신 것만이 아니다.
증산도 도전 5편 3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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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聖父 성부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 성자 원형이정봉천지도술약국 재전주동곡생사판단 聖神 성신 천지의 정신인 원형이정의 도를 바탕으로 천지를 받드는 도술약국이라 전주 동곡에서 천하 사람의 생사 판단을 하느니라. "
"347:9 상제님께서 삼위일체 신관을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서교문화의 인간관, 신관, 우주론의 결론적 명제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신관의 가장 큰 문제는 신도의 음양적 논리 구조가 결여되어 아버지의 실상을 이중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원신·법신적인 아버지와 신명계의 우주 살림의 주관자이며 동시에 대우주의 주재자로서 상제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2천 년 기독교 신앙사에서 예수가 그토록 외친 하느님 아버지의 실상을 제대로 못 보게 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
제 뿌리를 못 찾고 환부역조하는 조선인을 경계하심 |
16 |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이 無依無托하니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不可不 文字戒於人이니라 불가불문자계어인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
증산도 도전 5편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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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령신을 박대하는 예수교의 기운을 거두심 |
1 |
하운동 입구 오동정(梧桐亭)에 세 아름씩 되는 큰 둥구나무 세 그루가 서 있거늘 상제님께서 제비창골을 오가실 때 그 나무 아래 바위에서 자주 쉬시니라. |
2 |
하루는 바위에서 주무시다가 갑자기 일어나시어 그 앞에서 주막을 경영하는 예수교인 김경안을 부르시더니 |
3 |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예수교서를 가져오라.” 하시매 경안이 영문을 모른 채 신약전서를 가져다 올리거늘 상제님께서 불살라 버리시니라. |
4 |
이에 경안이 깜짝 놀라 “왜 책을 사르십니까?” 하며 소리치니 |
5 |
상제님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이놈아! 이것 믿어 가지고 뭐할 것이냐! |
6 |
이 책은 죽은 뒤에야 천당으로 간다는 조건이 붙은 책이니 살아서 잘되고 행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
7 |
"앞으로 이 교가 수많은 중생을 죽게 할 것이요, 선령신을 박대하는 길이니 태우는 것이다.” 하시매" |
8 |
경안이 분을 이기지 못하여 상제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 하고 고함치거늘 온 동네가 소란하니라. |
9 |
그 후에 형렬이 상제님을 모시고 오동정 차윤필(車允必)의 집에 가니 경안이 와서 예수교서 불태운 것을 말하며 또 행패를 부리거늘 |
10 |
상제님께서 “곧 돌려주리라.” 하시는데 이 때 마침 한 붓장수가 지나가는지라 |
11 |
상제님께서 그를 불러들여 술을 권하시고 붓상자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그 상자 속에 든 예수교서 좀 보자.” 하시니라. |
12 |
이에 붓장수가 내심 놀라며 “이 속에 예수교서 있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고 여쭈니 |
13 |
"말씀하시기를 “아, 저 붓 밑에 들었구만 뭘 그려. 그대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그 책을 나에게 전함이 어떠하냐?” 하시매" |
14 |
붓장수가 대답하기를 “술도 많이 주시어 고마운데 그냥 드리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 책을 받아 경안에게 주시니라. |
15 |
"그 후로 경안의 집은 패가하여 아들이 간질병으로 죽고, 딸도 소박 맞고 돌아와 떠돌다 죽으니라." |
8장 김상용(1941∼ ) 증언.
8:2 김경안. 천주교를 믿었으며 오동정에 살았다. 축지법을 좀 한다 하여 동네 사람들이 쉽게 대하지 못했다.
"8:3 신약전서. 구약은 유대족의 역사서이기 때문에 신약만 불사르신 것이다. 또 구약의 여호와 와 신약의 아버지 하느님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의 고리를 끊어 주신 것이다."
"8:9 차윤필(車允必, 1874∼?). 본관 연안.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서 부 화성과 모 박씨와의 사이에 4남으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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