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시외버스터미널을 구경한 후에 우리는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사진을 한창 찍던 막바지 즈음 주차장의 뒷쪽으로 또 하나의 버스터미널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로 다니는 고속버스는 없고, 반대편 주차장에 로얄미디 시리즈와 에어로시티 버스들이 쭉 늘어선 것을 보니
시내버스 차고지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어엿한 승차홈이 있고 승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선
시내버스터미널로 쓰이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차피 여기까지 온 김에 겸사겸사 방문해보기로 했다.
거창읍내의 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위치에 '창동교'라는 자그마한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 앞의 교차로에는 외부로의 소통을 담당하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외부로의 왕래를 자유롭게 해준다면, 거창 내부에서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설이
또 하나 있다. 그러나 이쪽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골목길로 꽤나 들어가야 한다.
시외버스터미널 뒷편 골목길엔 버스터미널이라는 간판을 붙인 최신식
건물이 있다. 무려 필자가 갔던 때와 같은 해에(2015년) 이 자리에 이사를 와서 새로 영업을 하는 건물이란다.
서흥여객이라고, 상당히 생소한 회사가 운영하는 시내버스터미널이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이제 막 공사가 끝난 듯 주변은 어수선해
보였고, 버스터미널 앞에는 주정차된 차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왕 온 김에 한바퀴 돌면서 둘러보기로 한다. 우리가 왔던
방향을 향해 사진을 찍어보니 대략 위치가 짐작이 간다. 저 앞에 희미하게 거창고속으로 추정되는 시외버스 차량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얼핏 보이고, 그 뒤로 분홍색의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데 저기가 시외버스터미널이다. 그 뒤에 어떠한 상권도 없이, 나홀로 조용하게
새단장을 한게 바로 여기다. 다음 스카이뷰를 사용해 옛 항공지도를 보면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자리는 논이 있던
자리였다. 완전한 외곽에 터를 닦았으니 아직은 어색해 보이는게 당연한 것이다.
사실 여기 오기 직전에 방문했던 함양에도 시내버스터미널이 따로
있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것도 같았고, 함양지리산고속이라는 향토업체 소유라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곧바로 시간에 �i겨 허덕이는 바람에 차마 그쪽까지 갈 생각을 하지 못했고, 결국 함양에서 사진을 찍을 땐 시내버스의 존재를
잊다시피 하면서 어영부영 빠져나오게 되어 아쉬움이 남았던 차에, 이런 곳을 다시 발견하고 다행히 바로 옆이라 사진까지 남기고 가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나름
버스터미널이라고 대합실까지 구비되어 있는데, 요금 지불방식은 온전히 현금과 카드에 맡겼는지 매표소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더위와 추위를 막아줄 천장의 난방기구와 심심함을 달래줄 TV, 그리고 큼지막하게 붙여진 시간표와 요금표가 붙어있다. 햇빛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게 구조가 되어있어 조명 없이도 밝다. 주변의 칠판, 달력 같은 인테리어가 시설 좋은 구식 터미널을
연상시킨다. 새로 지어졌지만 옛스런 느낌이 살아있어 뭔가 익숙하고 훈훈한 냄새가 난다.
승차장의 모습도 정말 아기자기하다. 에어로시티같이 폭이 좁은
차량도 들어오면 꽉 찰만큼 아담한 주차장의 폭과, 사람 한 명이 서면 꽉 찰만큼 작은 승차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사진을 찍을 무렵, 버스 기사분들이 무엇을 찍느냐 물으신다. 대개 이런 질문은 두 가지 뉘앙스가 풍기는데, 하나는 찍지 말라는 듯
날이 선목소리의 부정적인 어투, 또 하나는 사진을 찍는 이유 자체가 궁금하면서도 반가운 듯한 목소리의 긍정적인 어투다. 다행히
후자였다. 이유를 설명하니 반가운 목소리로 터미널의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신다. 원래 김천리라는 곳에 있던 게 여기로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여기서 처음 들었고, 아직 홍보가 덜 되어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는 상황까지 자세히 말을 해주신다. 거창 뿐만 아니라
합천에서도 여기저기를 누비는 농어촌버스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다음에 올 경우 꼭 타보라면서 시간표도 나누어 주신다. 한두 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 정도만 받으려 했지만, 사양 말라며 두둑히 챙겨주는 인심이 시골 장터의 할머니마냥 푸근하다.
우리 일행에 말을 걸어주신 기사 분은 두 분이 계셨다. 그 중 한
분은 다음 '버스매니아'에서 오래 활동했던 분이라고 한다. 필자도 자주 방문하는 카페여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정체를 숨기기로 한다. 나중에 그 카페에 글이 올라오면 아마 놀라실지도 모를테니. 그런 서프라이즈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낯설고 먼 지역에서 내가 아는 분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신기하다. 참 세상 좁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기분은 정말 좋다. 오랜 시간의 여정에 조금은 지쳐 있는 상태였는데 뭔가 힐링되는 기분이다. 이런 맛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닌가.
딱히 정해진 번호도 없이, 험한 산길이 많은 거창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버스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잠시 쉬었다가 곧바로 다시 출발하는 차들도 있을 것이고, 운행을 하지 않는 예비차들도 있을
것이다. 다수의 차들은 거창군 곳곳을 누비며 이곳에 들어올 시간만 기다릴 것이다. 다음에 또 온다면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의 풍경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뿌듯하다. 20여분 정도의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시간은 기억 속에
강하게 남은 장면이었다.
다시
차를 돌려 출발하려 하니 기름칸에 빨간 불이 떴다. 오기 전에 충전했던 기름이 여기까지 오니 버틸 수가 없었나 보다.
거창읍내에서 기름을 넣기로 하고 가려던 길로 가면서 찾다 보니, 어느새 김천사거리라는 곳에 멈춰섰다. 근처 주유소로 들어가려고
좌회전을 하다가 옆에 슬레이트 지붕의 창고같은 건물과 함께 넓은 공터가 보인다. 필자는 그냥 창고겠거니 하고 지나치려는데, 옆의
일행이 여기가 원래 서흥여객 본사였다고 알려준다. 혼자 왔으면 모를 뻔했지만, 둘이 오니 깨닫고 가는 새로운 사실 덕에 색다른
경험을 하나 추가하게 되고 여행을 보는 시각이 하나 더 넓어지는 효과를 얻고 간다.
첫댓글 서흥여객 터미널, 본사이자 차고지 겸 출발기점 터미널로 사용하는군요. 매우 깔끔해 보입니다!
제가 갔을 때 만든지 두 달 째였을 때랑 깔끔하다 못해 휑하더군요. 지금은 터미널다운 분위기로 좀 더 바뀌었을 것 같습니다.
포스팅 잘보았습니다!ㅋ다음은 어디로 여정이 이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보시면 알게 될겁니다. ㅎㅎ
정성들여 올린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해인사와 고령 남았나요? 기대됩니다.
기다려 주세요. ^^
같은 카페매니아로서 팬이 되어 버렸네요.ㅎㅎ
다음 여정이 벌써부터 기다려 집니다.!!!^^
감사합니다. 더이상 기다리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올려드리겠습니다. ㅠㅠ
아. 시"내"버스터미널이군요.
여긴 그렇습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시외버스터미널과 농어촌버스터미널이 왜서 따로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전남권에선 저런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그렇게 느낄 수 있겠네요. ^^;
영광과 나주도 주차장은 공유하고 있지만 건물은 각각 따로 있죠. 그나마 바로 옆자리로 옮겨온게 다행이 아닐까 싶네요. ^^
오랜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리 샤오랑)
정말 오랜만입니다! 바쁘게 지내느라 거의 신경을 못 썼네요 ㅠ
@Maximum ㅎㅎㅎ 글이 2015년에서 멈췄는데... 보아하니 많이도 올리셨네요^^ 저도 좀바빳어요^^
다시뵈니 반갑게 맞아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덕성여객(논산) 이제서야 올리는 글도 2015년짜리 글입니다 ㅎㅎㅎ 앞으로 이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는 그대로일 것 같네요. 자주 뵐 수 있도록 틈틈히 찾겠습니다.
@Maximum 네^^
오래만이시네요
항상 정감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시간되시면 전주고속터미날 신축해서 운영중이니 한번 다녀오세요
그러고보니 전북쪽 버스터미널을 새로 업데이트 해야겠네요. ㅎㅎ
제가 군산에 살거든요
옛날에 써 놓으신거 읽었는데
불행히도 그때와 달라진게 하나도 없습니다....
명세기 대한민국 고속버스이용객 4위에 해당하는 도시인데요...
언제 시간되시면
군산도 한번 들리셔서 터미날 문제점에 대해 글한번 올려주세요...
네 잘 기억해 뒀다가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꼭 참고하겠습니다. ^^
거창군과 합천군 군내버스를 사실상 독점운영하고있어 꽤 넓은 커버리지를 자랑하는 업체이죠. 잘보고갑니다
시내버스 회사 중에선 넓기로는 손꼽지 않을까 싶네요. ^^
원래 터미널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나마 가까워졌네요 ㅎㅎ 하긴, 제가 마지막으로 탄 것도 10년은 한참 넘게 지났으니...
정말 세련되고 멋지게 잘 바뀐 것 같아요. 옛 건물은 처음 봤을때 아예 못알아 봤었지요 ㅎㅎ
서흥여객은 거창,합천군지역 운행회사이지만, 의령군(합천-신반), 산청군 차황면,함양군 안의면 까지 운행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