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산타클로스를 '니콜라우스'라고 부른다. 그 이름을 딴 교회가 구 동독지역의 대도시인 라이프치히에 있다. 바로 성 니콜라이 교회다. 이 곳에서는 1989년 초부터 동독의 해외여행 자유와 평화를 기원하는 촛불기도회가 월요일 저녁마다 열렸다. 20여명으로 시작된 기도회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수백, 수천명으로 늘어났다. 비밀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동독지역 전역으로 확산됐다. 그해 겨울, 성탄을 앞두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통일독일의 막이 올랐다. 니콜라이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촛불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초심(初心)이다. 초심은 순박하고 진실하며 특정단체나 조직의 이해관계에도 흐트러짐이 없을 때 유지될 수 있다. 독일의 통일은 작은 씨앗이 순수함을 끝까지 지켜 이뤄낸 열매다. '초심대로' 행하지 못하면 삶도, 신앙도 성숙한 열매를 맺기 힘들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 출처: 햇볕같은 이야기
<파파노의 성탄절>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사셨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성탄일에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할아버지가 잠을 깨었을 때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다.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다. 점심 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조그만한 신발을 신겨 보았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이 몰려 왔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다. 그 때 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리고 갈려고 끌고 갔다. 그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다. 그 아이가 배고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 값을 지불하지요 파파파노의 마음에 할머니는 그 아이를 용서했고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 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 때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라고 하는 어제 밤 꿈의 그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어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어요.” 거리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출처: 크로스맵)
<방 없어요!>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 지적장애가 있던 윌리라는 9세 소년이 있었다. 어느 해 성탄절에 주일학교에서 성극을 하게 되었는데 윌리가 맡은 역은 여관집 주인이었다.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주인이 나와 방이 다 찼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간절히 사정했다. "우리는 너무 멀리에서 왔습니다. 아기가 금방 태어날 것 같습니다.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윌리는 말을 잊은 채 마리아를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 주던 선생님은 윌리가 대사를 잊어버린 줄 알고 자꾸 읽어 주었다. 한동안 서있던 윌리는 선생님이 크게 읽어 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안돼요. 방이 없다니까요. 가세요.!" 결국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얼굴로 돌아섰다. 바로 이때였다. 각본대로 이제 방문을 딛고 들어가야 할 윌리가 돌아가는 요셉의 가족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요셉, 마리아!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들어와요!" 물론 각본에 없는 대사였다. "내 안방을 쓰세요. 내 방에 어서 들어가란 말이예요!" 연극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던 많은 교인들은 "내 생애에 이렇게 감동적인 성탄극은 처음 보았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출처: 크로스맵/수정)
<고요한 밤, 거룩한 밤>
1818년 성탄절을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교회에서 시무하던 26세의 젊은 신부 모올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성탄절 연극을 준비 하는데 그만 하나밖에 없는 풍금이 고장이 난 것이다. 수리공이 풍금을 분해하여 늘어놓았지만 성탄절까지 고칠 수가 없었다. 신부 모올은 근심 중 마을의 밤풍경을 바라 보았다. 참으로 고요했다. 이전에 시를 써본 일이 없었던 모올이지만 그날 받은 영감으로 시를 썼으며 그 교회의 organist인 구루버에게 작곡을 부탁했고 이내 그 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이 때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출처: 크로스맵/수정)
<종은 언제 울리나>
어떤 나라 도시 한복판에 교회가 있었다. 종탑에 종은 있었으나 종을 치는 줄이 없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종은 성탄절 날 아기 예수께 가장 값진 선물을 드릴 때 저절로 울린다는 것이다. 많은 부자와 왕과 귀족들은 종소리를 듣기 위해 값진 선물을 바쳤다. 그러나 그들은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다음해 성탄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은 보석을,어떤 사람은 금화를,어떤 사람은 책을,왕은 자신의 왕관을 바쳤다. 그러나 종탑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해 내려오는 종소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가대가 마지막 찬송을 부르려 할 때 여태까지 침묵했던 종이 은은하게 소리를 발했다.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 것은 눈길에 쓰러진 사람을 구해주느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형을 대신해 동생이 드린 은전 한 닢이었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출처: 크로스맵
<성탄 선물>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제가 드릴 성탄 선물은
오래 전부터
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 꽃피고 열매 맺은
우정의 기쁨과 평화인 것을.
슬픈 이를 위로하고
미운 이를 용서하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집이 되어
등불을 밝히고 싶은 성탄절
잊었던 이름들을 기억하고
먼데 있는 이들을
가까이 불러들이며 문을 엽니다.
죄가 많아 숨고 싶은
우리의 가난한 부끄러움도
기도로 봉헌하며
하얀 성탄을 맞이해야겠지요?
자연의 파괴로 앓고 있는 지구와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 다시 그대에게 드립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주님의 뜻을
우리도 성모님처럼
겸손히 받아 안기로 해요.
그동안 못다 부른 감사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로 해요.
친구여, 알고 계시지요?
아기예수의 탄생과 함께
갓 태어난 기쁨과 희망이
제가 그대에게 드리는
아름다운 새해 선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