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흰 머리칼이 듬성듬성 나는 사십대 중반 남자의 모습, 당당한 듯 수줍고, 그러면서도 달변에, 또 한없이 이야기가 풀어져 나올 것 같은 그 유연함에 놀라게 된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소설가 방현석과 만나는 시간, 김영하 강좌에 비하면 사람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 아무래도 노동문제며, 실천문학적 소재를 다루는 낯설음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문예진흥원 문학담당자가 말한다. 한 중년의 여자는 일찍 와 책을 읽다 의자에 앉은 채 강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나는 방현석씨를 보면서 약간 경색된 미소 속에서 팔십년대식 그림자를 보았던 걸까. 얼마전까지 군산상고 야구감독이었던 김용남씨의 인상과 너무도 흡사하다. 짧은 머리, 비죽이 삐져나온 흰 머리칼, 그리고 듬직하면서도 상기된 듯한 미묘한 표정을 바라본다.
반면 문학상이란 문학상을 다 휩쓴 이 시대 문학의 카리스마 김원일 선생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의 백발홍안이 괴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한 마디 한 마디를 그저 던지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관객을 압도하는 유머와 촌철살인의 풍자로 사회자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 하다.
김원일/ 오늘이 금요문학 이야기 강좌 아홉 번째 순섭니다. 오늘은 88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최근 베트남 문제를 다룬 중편소설 두 편으로 주목을 끓고 있고 작년 황순원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방현석씨를 모셨습니다. 오늘 나온 방현석씨는 중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적이 있는데 올해 교수가 되었습니다.
방현석씨는 문학의 현장성 이념성 문제에 천착해온 작가인데요, 그런 면에서 이전에 나왔던 김영하나 이순원씨의 문학과는 상당히 다른 자기 문학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등단작부터 노동문제와 노동현실, 노동자의 삶에 깊이 관여해 작품을 쓰고 있는데요, <겨울 미포만>에서는 노동자의 생태를 날카롭게 그려냄으로써 우리나라 노동문학의 일인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조예가 깊습니다. 70년대 전태일 분신자살 이후 노동문제가 부각되었고, 또 대학에서도 노동자와 연대하여 노동문제를 본격적으로 사회문제화 해, 8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세대로 보자면, 박태순씨가 <와촌동 사람들>이란 소설로 60, 70년대 서울로 이주해 온 호남과 경상도 사람들이 서울 근교의 변두리에 움집을 짓고 서울로 입성하는 과정을 담아냈습니다. 황석영씨도 <객지>를 통해 떠도는 노동자의 삶을 그렸는데요, 한 지역에서 공장일이 끝나면 다른 지역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윤흥길씨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 또 조세희씨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작품에서는 앞에서 떠돌던 노동자들이 정착된 노동자의 삶으로 변해갑니다.
90년대에 와서 여성 작가들이 개인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노동문학이 지지부진해지고 노동소설이 죽어버린 듯한데 마침 방현석씨가 나와서 그 노동의 현장성을체험적을 끌어내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분야에 대한 강연이나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우리의 노동시장이라고나 할까, 노동의 변천사를 몸소 겪고 글쓰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쉽게 들려줬으면 합니다.
방현석/ 제가 간이 좀 큰 편입니다만, 지금은 제가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문학 공부를 할 때 교재로 읽고, 또 치열하게 작품을 써오신, 대하기 어렵고, 또 존경하는 분 앞에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다는 것에 떨리고 어렵습니다만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노동자를 잘 아는 건 아닙니다. 10년 동안 인천에 살았는데요, 1980년 대학에 입학을 했을 때 전두환 정권 땝니다.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시험을 봤는데요, 그 때만 해도 본고사와 실기시험이 있었습니다. 중앙대학교 문창과에 지원을 했는데요, 본고사 국어 문제에 춘향전이 지문으로 나왔습니다. 이도령의 이름을 써라. 뭐 이런 문제가 나왔죠. 그 때 제가 왜 그 문창과를 가게 되었냐하면요, 친구가 고등학교 때 소설을 잘 쓰던 친구였거든요. 저는 본래 철학에 관심이 많아 철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자꾸 문창과를 가자고 해서, 시를 좀 써본 적도 있고 또 마침 친구가 그러는 겁니다. 문창과라고 하는 곳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수학, 과학, 철학을 해도 좋고 또 아무 것도 안 해도 좋고... 그래서 얼떨결에 시작을 하게 되었죠. 그래 친구에게 물었죠. 야. 이 학교도 참 한심하다. 이도령 이름이 뭐냐니. 그래 넌 뭐라고 썼는데 친구가 묻길래 그랬죠. 이방원도 모르냐고. 넌 떨어졌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실기시간이 되었는데 시 제목은 창이고 산문제목은 보리밭이에요. 저는 시를 쓰고 친구는 산문을 썼지요. 그 때만 해도 예비문제라고 해서 시를 한 스무편은 외워가지고 갔어요. 그런데 시간이 십 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겨우 세 줄을 쓰고 만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가 떠오르지 않기에, 제가 외워간 강이란 시가 있었는데 그걸 글자를 바꿔 창이라고 고쳐서 쓰고는 그럴 듯 하게 고쳤지요. 시를 적어놓고 보니까 그럴 듯 해요. 이미지도 운율도 맞고, 오히려 모던한 느낌도 들고, 사실 그때만 해도 고3이 얼마나 글을 잘 쓰겠어요. 반짝이는 햇살에 몸을 뒤집는 그런 식이죠. 그런데 그 때 경쟁률이 17대 1이었어요. 저는 미달될 줄 알고 갔는데, 그래도 다행히 합격을 했어요. 소설을 잘 쓰던 친구는 떨어지구요.
1980년, 학교에 들어갔는데, 선배들 뒤따라 다니기 바빴지요. 학교는 매일 휴교하고, 학교로 오는 주변과 육교엔 정의사회 구현이란 말이 여기저기 구호처럼 나붙었는데요. 저는 그런 걸 보면서 참 언어를 이렇게 능멸을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에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언어를 다루는 자들 또한 언어가 능멸당하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주로 술집에서 보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었는데요. 주자가 술 주 자 주류여서, 주류는 몸을 상해가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비주류는 공부해서 취직하려고 하는 불순한 자들로 취급을 받았던 시댑니다. 저는 본래 겁이 많아서 앞장서지도 못하고 남들 하는데 따라다니다 보니까 그렇게 가다가는 군대에 가기도 전에 감옥에 갈 것 같더라구요. 저는 절대 감당 못할 건 안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 후배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때 총학생회가 부활되어 선거를 하고 그런 땝니다. 저는 그저 운동권 술 사주고, 또 운동권 혼내주는 선배 혼내주고 뭐 그런 일을 했지요. 그래 선거에서 지지연설을 해달라고 해서 나갔는데, 영연과에 다니던 친구가 총학 후보로 나왔는데, 그 당시만 해도 영극영화과는 문창과의 식민지 학과처럼 취급을 받고 신뢰가 그렇게 높지 않았던 과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찍어주지 않을 거라면서 저보고 대신 나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냥 이름만 걸어 달라, 그러면 자기들이 실무적인 일은 다 해주겠다고. 그래서 출마를 했는데 당선이 된 거예요.
참 마이크를 잡으면 왜 거룩한 말을 하잖아요. 옳고 진리만 말하는데, 마이크 잡는 자리에 서서, 감당 못할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 한 말에 대해서는 감당을 해야겠고, 그런 동기에서 공장에 가기로 작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류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그 때 마침,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잡혀들어왔던가, 그저 공돌이 공순이라고 개처럼 맞고 귀도 어깨쭉지도 죽도록 맞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생들과는 너무도 다르게 취급받는 걸 보았습니다. 대학생들은 그저 정보과장이 와서 담배도 한 대 주고 그러는데, 노동자들은 면외도 한 번 안 오고,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래 영치금으로 내게 온 사식을 안 먹고 건넸는데 그 일로 그 노동자는 평소 먹던 보리밥도 못 먹게 되었지요. 그래서 생각했는데, 우리가 하는 민중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감당 못할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런 일에 인생을 걸 생각도 아니었고 그저 자기가 한 말에 대해 감당을 나오겠다고 간 게 공장이었습니다. 1985, 1986년 당시 일당이 3700원 정도였는데 짜장면 한 그릇에 1500원 하던 땝니다. 일당을 받아 짜장면 두 그릇하고 담배 한 갑을 사면 맞을 돈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받고 산다는 게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 해도 한 해 일당이 백 원 올라가기도 하고, 제일 잘 버는 사람이라고 해야 겨우 300원 정도 오르는데 그쳤은이까요. 그들을 이해하는데 5-7년이 걸렸어요.
김원일/너무 길게 말씀을 한 것 같은데 조금 줄여주세요. 우리 권선생이 너무 놀고 있는 것 같아서요. 권선생께서는 방현석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라고나 할까요, 혹은 지향점에 대해 말씀을 해 주세요. 권명아씨는 1994년 작가세계 비평부문에 당선되고, 현재는 연세대 국학 연구원 연구 교수로 재직중에 있으며, 2000년에 한국 비평가 협회에서 주는 젊은 비평가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권명아/비유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겨울 미포만>이란 초기 노동문학의 민중지향적 문학의 연보로부터 <랍스터를 먹는 시간>과 <존재의 형식>의 추가에 이르기까지 차이와 변화를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트는 미포만>이나 <겨울 미포만>은 동적이고 격렬함을 담고 소설이 시각적으로 영상화가 되는 소설입니다. 크레인, 군화가 나타나는 격렬한 동적인 세계를 담고 있지요. 하지만 <랍스터를 먹는 시간>과 <존재의 형식>이란 소설에서는 조용해진 세계로 소설세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비슷하게 80년대를 겪어온 사람들이 실제 노동문학을 통한 정치적 투쟁도 있었지만 그 현장의 옆에서 함께 지향성을 공유해온 건 아니가 생각합니다. 80년대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시대변화의 역사는 마치 시대스펙트럼처럼 동적인 세계에서 마치 정물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작품의 변화 속에서 방현석 문학이 지닌 위치는 그만큼 특이하고 유일한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386세대로서 80년대에 이십 대를 보낸 역사가 바로 방현석 문학이 담고 있는 전형적인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노동문학보다 80년대의 역사를 담아내면서, 21세기에도 80년대란 무엇인가를 문학사적으로 조명해낸 의미가 있다고 보고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김원일/ 작품 얘기로 돌아와서, 방현석 선생의 작품집에 나와 있는 작품 네 편 중 두 편이 베트남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절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존재의 형식>이란 작품으로 작년에 황순원 문학상을 받았고, 또 저도 심사위원으로 참여를 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그 때 보니까, 베트남 문제처럼 우리 현실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현실을 말하는, 진실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주인공과 베트남 여자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안에 작품의 무게감도 있었습니다. 에세이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베트남 여행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현장에서 만나고 사귀고 겪어보아야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저도 베트남에 간 적이 있는데, 그저 구경만 일주일 하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우리 소설 중에도 박완서씨의 <그 집 앞>이란 소설이 6.25때 살던 집을 추억하면서 쓴 연애소설인데요. 방현석씨도 베트남과 광주항쟁과 같은 소재들을 끊임없이 소설적 소재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송파강>이란 황석영씨의 작품도 있지만 베트남전에 가해자로서 또 패배자로 끝난 전쟁 이후, 전쟁 이야기는 말고, 지금 어느 정도로 그들이 살고 있고 또 어떤 면에서 나에게 소설적인 소재로 강하게 다가왔는지 얘기를 해 주세요.
방현석/베트남은 한 마디로 ‘부자는 아니지만 자부심이 있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대 최강국인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몽고까지 한 판씩 붙어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나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콤플렉스가 가장 적은, 뒤틀리지 않은 나라라고 그들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승리했기에 청산할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바뀌지도 않고, 옳게 한 번 청산도 해보지 못했으면서, 지금 잘 산다고 앞으로도 잘 산다는 보장도 없는, 지금 지나치게 누리는 것들로 또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칠지도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역사적 균형감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서는 거지들도 당당합니다. 10년 전에만 갔을 때도 원 달러 원 달러 하면서 달라붙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는데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비굴하지는 않습니다. 안 주면 말고, 주면 잘 하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베트남 사람들의 여유는 그렇다면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 넉넉함의 원인은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는데요. 한 가지는 자연환경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연환경은 좋게 말하면 넉넉하고 나쁘게 말하면 사람을 느리게 만듭니다. 보통 3모작을 하는데 계절이 있다고 해도 거의 일 년 내내 여름과 같은 날씹니다. 넓은 농토와 따뜻한 날씨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굶지 않습니다. 또 난방이 필요 없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됩니다. 이달에 못 심으면 내 달에 심으면 되고 또 한 쪽에서는 나락을 게도 바로 옆에서는 모를 심습니다. 우리처럼 이달에 못 심으면 내년에 심어야 하는 모습과는 너무 다르죠.
강력한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킨 동력도 한 판 해서 져도 승복을 하지 않고 내일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합니다. 분명히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프랑스가 최초의 식민지 전쟁의 패배를 맛보았던 곳도 바로 베트남입니다. 그들은 아예 적과 함께 살자는 생각으로 달려듭니다. 적을 섬멸하지 않고도 서서히 외세들을 지치게 만들어갑니다. 그러니 외세들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합니다. 홍수가 나도 홍수와 더불어 산다는 생각으로 지붕에 광주리 같은 배를 얹어놓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립니다. 감당할 수 없는 낙천주의가 그들을 지키는 원동력이란 말입니다.
또 그들에겐 사회주의 경험이 있습니다. 아등바등 하지 않고 기본 생계와 의료보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교육기회를 갖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이지 않지요. 기계를 고치다가도 땡 하고 작업시간이 종료되면 집에 갑니다. 그들은 왜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느긋하지만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술집도 매춘도. 그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그들에게 지금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그들은 답합니다. 과거에 그들이 이유도 없이 외국군대가 들어와 자신을 능멸하는 곳으로부터 자율적인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면 지금 그들은 가난과 싸우고 있다고. 시장경제가 불가피하다면 그 그림자마저도 따라오는 것 아니냐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가난을 어떻게 극복할지 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원일/ 이야기를 듣고 보니 베트남이 지상낙원이란 말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왜 집칸 늘려가고 아등바등 사는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방글라데시란 나라는 홍수가 나서 수 천명이 죽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또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최 빈국중의 하나인데요. 그들의 행복지수를 보면 세계에서 일 위입니다. 잘 먹고 잘 쓰는 것이 행복하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를 다니면서 느끼게 됩니다.
근간 신문을 보고 놀란 일이 있습니다. 동독 사람들이 공산주의에서 통독된 사회로 변화된 생활을 한 지 십 년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그들에게 ‘자유란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여관이 없어 여행의 자유도 없고 또 공민증, 양곡권 같은 것들로 자유가 속박당할 것 같은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어서 자유란 말에 대한 느낌이 궁금했던 것 같은데 그들이 하는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자유요. 자유란 게 뭐 별 것 있습니까. 배 불리 밥 먹고 사는 것이 자유지.’
베트남에서 느낀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인문학적인 소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존재의 형식인가 하는 작품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해방투쟁과 자존심 그리고 당당함이란 것에 베트남 정신이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경우엔 그 간의 역사가 오욕의 역사였습니다. 이승만이나 전두환 체제가 무슨 정의처럼 취급되었으니까요.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협조한 자의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것 없는 당당함과 자존심을 배우기 위해 여행을 했고 그걸 통해 많은 걸 얻은 것 같습니다.
97년 <겨울 미포만>이란 작품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자났는데, 지금 노동현장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 않나, 주인공의 개인노동투쟁에서 공동투쟁을 통한 화해 그리고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지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 이야긴데요. 실제 서구에서도 1930년대 경제 공황을 겪으면서 좋은 노동소설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산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제르미날이란 영화가 유명하지요. 사실 우리는 제 삼 세계는 아닙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만 불을 넘어선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어떻습니까. 노동현장 소설이 칠 년 전에 비해 앞으로 노동문제를 계속 그 위치대로 그려나갈 수 있을지, 간단히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방현석/간단하게 이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노동자 이야기에 대한 선호도를 보면 지금 젊은 작가들의 손으로 그려지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습니다. 저는 그 동안 써온 소설을 통해 진만큼의 빚을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다만 인간의 문제를 더 넓고, 더 깊게, 치열하고 투철하게 노동현장이나 노동자 속에서 그들의 삶을 젊은 작가들이 그려내야 한다고 봅니다.
권명아/ 80년대 노동문제에서 중요한 건 노동자 문학이냐 아니면 창작 주체로서 존재기반을 민중지향적으로 보고 작가가 노동자를 대신해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냐 하는 겁니다. 사실 후자의 경우처럼 노동문학이 부르주아라고 부르는 지식인들이 노동자와 다른 현실을 살아가면서 그들의 삶을 대변한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나 가능할지 주목해 봐야 합니다. 요즘에 문제가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도 80년대 관심을 가졌던 노동문제와는 달리 관심을 기울여 보아야 할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지식 노동자의 이야기를 비롯해, 노동문제를 과거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의 존재기반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우리의 존재기반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성찰을 하는 노력은 현란함과 소재의 다양함을 취향으로 하고 개방적인 문학의 주류 속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어떤 길로 갈 것인가. 그 길이 중요한 문제인데요. 작가로서 발 디딜 기반을 가지고, 본격적인 질문을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욕의 세월을 살아온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랍스터를 먹는 시간>, <존재의 형식>이란 소설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긍심을 다시금 환기시킵니다. 자기의 발판, 기반이 무엇인지 끝임없는 질문이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닐까요?
방현석/뭐 쓸래 하는 물음이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 물음에 대해 저는 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방향을 달리 하겠다는 것 아니고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현실사회가 변화되면서 운동권은 무질서하게 퇴각하고 또 곳곳에서 그런 현실이 공격당하고 있는데요. 리얼리즘적인 소설들이 한계와 오류가 많았다는 반성을 하고 있지만 저는 반성할 게 없다고 봅니다. 최선을 다 해서 썼고, 리얼리즘 작품을 쓰면서도 미학적으로도 형식을 지향하는 모더니즘 작품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당대의 현실에 대응해 설득력 있는 작품을 쓰지 못하는 무능에 대해 반성할 뿐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세대입니다. 모범답안 읽는 것이 문학은 아닙니다. 함께 고민하고 담당해 가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연장선에서 넓은 시선과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다만 조금 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의 얘기를 하다보면 권익이란 것을 말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노동자의 삶을 통해 인생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 문학은 비어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전업작가들이 등장을 하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는데 문예지는 읽히지 않고 소설은 잘 안 팔립니다. 그렇다고 작품들 또한 다양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보다 더 자신의 현장에 바탕한 다양한 소설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원일/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시대 노동시장의 변화 중 뚜렷한 변화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사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뒤엔 <겨울 미포만>과 같은 작품이 있었습니다. 진정성을 통해 국민들이 교감하고 젊은 층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민노당은 잘 하고 있다고 봅니까? 이전과 비교해 큰 기업체의 노동자들은 귀족 노동자란 말을 들을 정도로 상여금과 보너스, 토요 휴무제등 찾아먹을 건 다 찾아먹으면서도 강력투쟁을 해 국민들의 미움을 사고 있는데요, 노동시장을 겁내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많이 뽑는 현실의 변화를 봅니다.
<겨울 미포만>이란 작품에서처럼 거주할 집이 없고 가족을 따뜻하게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연대 투쟁을 했던 현실과 달리 지금은 먹을 것이 없어서 투쟁을 하는 건 아니지요. 극빈층의 경우에도 노동을 못한 실직이 아닌 빚 때문에 겪는 고통입니다. 빚을 청산하기 바쁜 현실 속에서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거나 혹은 팔이 잘려서, 요즘 애들은 화약물질이나 혹은 식품 첨가제 같은 것들에 의해 장애인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환자의 치료비 같은 것들로 하루하루의 생계를 이어가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전국적으로 삼백 오십만의 인구가 그렇다는데요. 저는 문학이 바로 이런 소외계층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자는 할 만큼 했고 지금 젊은 작가들이 그런 문제로 씨름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겨우살이>란 작품에서처럼 교통사고를 당하고 가해자가 법대로 하라면서 덮어씌우면서도 차에는 천주교의 그 ‘내 탓이오’란 글귀가 붙어 있는 걸 통해 작은 일상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가 정의며 양심이며 도적적 순결성이 살아 있느냐 묻고 있는 면이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소설 쪽으로도 사회를 고발하는 시사나 신문 쪼가리가 아닌 문학적 향기를 통해 담아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