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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갑시다 찐짜 종소리 나는 바위가 다는 아니고 소리나는 바위가 따로 있어요 |
*그렇습니다.
만어사는 종소리,
표충사는 목탁소리,
우연일까요?
*만어사 종소리는 6시 내고향에서 시청 한 듯...신기했슴다.
다음 고향 방문엔 솔밭과만어사에 가고 싶군요^^
| *네 맞아요 저 국민하교 소풍을 만어사 절에 갔어요 나무하러가고 봄에 쑥떤어로 가고 초팔월이면 꼭 만어사 절에 가고했어요 친척분 돌아가시면 49제 지내고 했어요 |
| ◆제 글에 입력 미숙으로 문맥이 어긋나는 것이 있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지라도, 효봉 스님의 사리탑이 서 있는 북암 바위의 어느 부분에 목탁 소리가 난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의 因然說을 감안한다면 더욱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랑진 만어사 주변의 종소리가 나는 경석처럼 말입니다. |
| *정말로 어느부위를 두드리니 진짜 목탁소리가 났습니다 정말로 기이한 일이 아닐까요?? 산이 높고 풍수지리가 대단하던데 이곳의 기운을 받으면 휼륭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정말 인재가 많은곳입니다 |
| *정대재님 좋은 정보 잘읽었습니다 계속 좋은글 올려주세요. |
*이 좋은 말씀을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듣지 못 한 게 매우 안타깝습니다
내년에는 꼭 함께 하시지오^^
| ◆당일 코스에 배정되어 표충사에 함께 못 간 것이 한이로군요! 사라호 태풍 이전의 표충사와 지금의 표충사는 너무도 너무도 많이 변해 있어서 옛 모습을 생생하게 반추해 볼 수도 있었는데! 예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가람의 출입구가 남쪽의 옥류동천 쪽으로 나 있었고, 따라서 비각을 포함한 碑林과 산문도 그쪽에 위치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삼층석탑 가에는 고색창연한 연못이 있었고, 그 둘레엔 잘 자란 배롱나무들과 아름드리 염주나무(보리수)와 호두나무들이 서 있었지요. 그때는 아랫마을에 살림집을 둔 대처승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1960년대 초에 오랜 법정 다툼 끝에 조계종 산하의 비구승들이 들어오게 되었지요. 그 이후에 판사 출신의 큰스님이 조실 스님으로 들어왔다며 마을 사람들이 떠들썩했는데, 그때, 孫僧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와 망중한을 즐기던 노스님이 바로 그 유명한 효봉대선사였지요. 지금 효봉 스님의 사리탑이 있는 北巖 큰바위 앞에는 천년 거목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 팽나무 한 그루가 큰 가지는 벼락을 맞은 채로 부부처럼 서 있었지요. 그곳 북암 왼쪽으로는 내원암과 한계암, 서상암 쪽에서 흘러온 금강천이 흐르고, 그 건너편의 봉삼터 위쪽에 붓끝처럼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가 바로 나에게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과도 같았던 筆峰이지요. 아직도 일제식 이름 인 천황산으로 통용되고 있는 載岳山의 제1봉은 해발 1,108m인 獅子峰이며, 그 아래에 있는 암자가 바로 서상암인데, 그곳이 일직 손씨들의 중시조인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의 초상화를 모셨던 성지나 다름 없는 곳이지요. 손홍량 선생은 고려 말에 복천부원군으로 봉해졌던 인물로서 정계를 은퇴한 후 고향 복주(안동)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가 10만 명의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왔을 때, 그곳으로 피난을 온 고려 공민왕을 맞아 모시면서 난을 평정하는데 충심을 다하였는데, 이에, 감동한 공민왕이 그의 충절을 기려 직접 그린 초상화와 궤장을 하사하였던 것이지요. 그 후, 손홍량 선생의 후손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안동 일직면의 타양서원에 봉안 되어 있던 손홍량 선생의 영정을 산세가 험한 이곳 載岳山의 서상암으로 옮겨와 난이 평정될 때까지 봉안하곤 했던 것이지요! 손홍량 선생의 시호는 정평(靖平)이며, 안동 일직면에 있는 타양서원과 밀양 산외면 다죽리의 혜산서원에서 제향되고 있지요. 표충사에는 임진왜란 때의 3대 의승장인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그리고 기허대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변란이 있을 때 손홍량 선생의 영정 피난처로 활용된 연고 로 인하여 단장면 안법리 출신으로 만주 환인현의 교민회장인 손경헌 선생의 주선으로 부북면 출신의 단애(檀崖) 윤세복(尹世復) 선생이 창설한 만주 무송현의 <흥업단>에서 파견한 군관 양성자금 모집책들의 활동 거점으로 이용했던 곳도 바로 이곳 서상암이었지요. 또한, 밀양 출신의 의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하여 <의열단>을 결성한 약산(若山) 김원봉(金元峰) 선생이 <광복단>으로 활약하고 있던 고모부인 백민(白民) 황상규(黃尙奎) 선생의 도움으로 서울 중앙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독립운동 지도자의 길을 꿈꾸면서 1년 동안이나 머무르며 각종 병법서를 섭렵하며 체력단련과 무술을 익혔던 곳도 바로 표충사였으니, 이곳이야말로 호국의 성지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
| *당일로 참석하신 분들의 사진이 별로 없고 일박 차량 위주의 사진만 많이 올라와서 아쉬웠네요 ~ 다음번에는 다 함께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일 차량은 오고 가는 시간이
길어서. 고향에 머물 시간이 짧아서
저도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음기회에는 1박 차량 늘려서
더 많은 분들이 참가 하기를~^^
멋진 가을입니다.^^
| *그러게요.. 이번 밀양아리랑축제는 당일차량 한대, 일박차량 한대, 이렇게 갔었는데, 주로 일박하신분들 위주의 행사가 된것 같습니다. 당일 차량에 함께 탑승하신 분들 과도 좋은 추억 만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다음번에 뵐때까지 건강하세요~ 당일차량봉사자 설상희올림 |
| *아이고. 1박2일의 여정이라 사진이 많습니다 이사진안에 고향의 하늘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숲도 보입니다 잘하면 맑은 공기도 마실수 있을거에요. 어느 선배님이 그러셨어요 수옥아 이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수 있을까?^^ 그 만큼 이번 여헁이 좋으셨다구~^^♧ 저희 1박팀은 손명석 특보님을 가이드로모시고 고향의 유명한곳은 다 둘러본거 같아요 손명석특보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3.13 밀양 만세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중국으로 망명한 을강 전홍표 선생의 휘하
윤세주, 김상윤, 한봉근, 한봉인 형제 등은 먼저 망명하여
남경의 금릉대학에 다니다가 중퇴한 뒤,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있던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창단의 주역이 되었고,
그해 4월 4일에 단장면의 용회동 장터에서 있었던 태룡리 만세운동과
4월 6일의 부북면 춘화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밀양의 청년들도
만주로 건너가 의열단원이 되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윤세복 선생이 지휘하는 대종교(단군교) 계열의 <흥업단>에 가입하거나
황상규 선생과 김대지 선생, 손일민 선생이 후원하는 <의열단>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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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재선생님의 글을 보고 이제 답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일 다녀 오신분들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조용히 있으려 했는데... 평일날 하루, 고향을 방문한 고생을 보답하기 위해 많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코스를 정했습니다만 변경이 되어 실망하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다음 기회에는 멋진 고향방문이 될 수 있도록 건의 하겠습니다. 1박 하신 분들은 제가 최선을 다해 밀양 동북부 지역을 돌며 가이드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들어 표충사의 배산이 왜? 재악산인지, 왜? 재약산인지, 왜? 천황산인지... '재악산표충사'란 현판 아래는 천황산, 재약산이란 안내판이 공존하고 있더군요. '호국성지 표충사'의 전두환대통령의 치적, 거기에는 당시 주지 지은스님의 공덕 등. 그리고 안타깝게도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빼앗긴표충사의 유물까지. 유물관 문이 닫혀 반환 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네요. 여기서 각설하고, 효봉스님 사리탑은 돌로 두드린 흔적에 목탁 소리나는 곳이 많았습니다. 인기였지요. 바위 위에 사리탑이라... 그런데 언젠가 울타리로 못들어 가게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정비를 해서 들어 갈 수 있도록 했더군요. 왜 울타리를 쳐서 못 두드리게 했는지는 저도 신문사를 물려 주고, 갈 기회가 없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주지스님도 몇번이나 바뀐지라. 하여간 효봉큰스님 사리탑의 목탁소리도 표충사의 신비의 소리였고, 보물이었으며, 관광객 및 시민들께 불심의 징표가 되었습니다. 거듭 당일 왕복하신 향우님들의 고생하신 고향사랑의 열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이 나는 신비로운 사명대사의 비석이 봉안된 비각 (밀양시 무안면 소재)
<관련 신문 기사>
밀양 3대신비, 사명대사 표충비각 한출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 종소리가 나는 만어사 경석과 함께 밀양의 ‘3대 신비’ 로 알려진 사명대사 표충비각에 18일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경까지 1리터 가량 땀이 흘렀다. 무안면 홍제사(무안리 903-5) 내에 소재한 표충비각은 경남 유형 문화제 제15호로 이 비석은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그 조짐을 미리 알려 준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이 비를 신성시하고 있다. 더욱이 땀방울이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과 받침돌에는 맺히지 않는다 하여, 그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다. 표충비가의 땀흘린 역사를 되짚어 보면 1894년 동학농민 운동을 시작으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무렵에 한출 기록이 있으며, 최근에는 2008년 FTA 소고기협상,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대통령 탄핵심판 시, 한출한 바 있다. 사진=18일,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까지 무안면 사명대사 표충비각이 1리터 가량 땀을 흘렸다. |
| *당일로 참석하신 분들의 사진이 별로 없고 일박 차량 위주의 사진만 많이 올라와서 아쉬웠네요 ~ 다음번에는 다 함께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일 차량은 오고 가는 시간이
길어서. 고향에 머물 시간이 짧아서
저도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음기회에는 1박 차량 늘려서
더 많은 분들이 참가 하기를~^^
멋진 가을입니다.^^
| *그러게요.. 이번 밀양아리랑축제는 당일차량 한대, 일박차량 한대, 이렇게 갔었는데, 주로 일박하신분들 위주의 행사가 된것 같습니다. 당일 차량에 함께 탑승하신 분들 과도 좋은 추억 만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다음번에 뵐때까지 건강하세요~ 당일차량봉사자 설상희올림 |
| *아이고. 1박2일의 여정이라 사진이 많습니다 이사진안에 고향의 하늘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숲도 보입니다 잘하면 맑은 공기도 마실수 있을거에요. 어느 선배님이 그러셨어요 수옥아 이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수 있을까?^^ 그 만큼 이번 여헁이 좋으셨다구~^^♧ 저희 1박팀은 손명석 특보님을 가이드로모시고 고향의 유명한곳은 다 둘러본거 같아요 손명석특보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3.13 밀양 만세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중국으로 망명한 을강 전홍표 선생의 휘하
윤세주, 김상윤, 한봉근, 한봉인 형제 등은 먼저 망명하여
남경의 금릉대학에 다니다가 중퇴한 뒤,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있던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창단의 주역이 되었고,
그해 4월 4일에 단장면의 용회동 장터에서 있었던 태룡리 만세운동과
4월 6일의 부북면 춘화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밀양의 청년들도
만주로 건너가 의열단원이 되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윤세복 선생이 지휘하는 대종교(단군교) 계열의 <흥업단>에 가입하거나
황상규 선생과 김대지 선생, 손일민 선생이 후원하는 <의열단>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필자-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땨마다 땀이 많게는 서 말 이상씩 글자와 글자 사이로 흐르는 신비로운 사명대사의 비석이 봉안된 비각
(밀양시 무안면 소재)
<관련 신문 기사>
밀양 3대신비, 사명대사 표충비각 한출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 종소리가 나는 만어사 경석과 함께 밀양의 ‘3대 신비’ 로 알려진 사명대사 표충비각에 18일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경까지 1리터 가량 땀이 흘렀다. 무안면 홍제사(무안리 903-5) 내에 소재한 표충비각은 경남 유형 문화제 제15호로 이 비석은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그 조짐을 미리 알려 준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이 비를 신성시하고 있다. 더욱이 땀방울이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과 받침돌에는 맺히지 않는다 하여, 그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다. 표충비가의 땀흘린 역사를 되짚어 보면 1894년 동학농민 운동을 시작으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무렵에 한출 기록이 있으며, 최근에는 2008년 FTA 소고기협상,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대통령 탄핵심판 시, 한출한 바 있다. 사진=18일,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까지 무안면 사명대사 표충비각이 1리터 가량 땀을 흘렸다. |
*22.7.23 헌법연구소(이사장 이종상)의 행사에 함께하여 밀양 표충사를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경남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신 이종상 교수님께서 효봉스님과 사리탑에 관련된 일화를 알고 계셔서 이 교수님의 말씀을 참조하여 글을 올려봅니다.
표충사(表忠寺)는 사명, 서산, 기허 등 스님들이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의병활동을 했던 유명한 호국사찰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효봉스님은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판사로 법관생활 6년이 되는 해에 조선인(독립투사)에게 어쩔 수 없이 사형선고를 내렸고, 이 일이 마음에 걸려 자책한 나머지 법원을 떠나 스님이 되었고, 수행을 거듭한 그는 1962년 한국불교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었고, 그가 바로 효봉스님이랍니다. 전국 사찰을 두루 순회하시다가 표충사에서 입적하셨답니다.
오늘 새삼 효봉스님의 일화를 들으며 표충사는 신라시대 이후로, 조선시대에도, 일제강점기에도 나라를 위해 일신의 영예를 버린 뛰어난 고승이 계셨던 호국사찰이라는 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는 이 길이 무척 좋았고, 힐링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됩니다. 일주문을 바로 지나니 표충사 영사각(永思閣)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천황산 밀양 표충사 안내 :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호국정신이 깃든 절이다. 신라 무열왕 원년인 654년에 원효대사가 지었는데 원래는 죽림사(竹林寺)라고 하였다. 이 절에서 829년에 인도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다섯 색깔 구름을 본 뒤 3층석탑을 세우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마침 흥덕왕의 왕자가 나병을 치료하려고 신령스러운 산과 약수를 찾아다니다가 죽림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선사의 법력으로 약수를 마시고 완쾌됐다. 이때부터 '신령한 약수'가 있다고 하여 영정사(靈井寺)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 충렬왕 때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국사(一然國師)가 승려 1000여 명을 모아 불교를 크게 일으키기도 했다. [출처] 호국사찰 밀양 표충사, 효봉스님 일화 소개(22.7.23)|작성자 신경남 우삼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