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양귀자는 50대에 '모순'을 썼다.
주인공 안진진의 나이는 25세다.진진의 폭넓은 삶의 성찰이나 인간의 깊은 탐구는 스물 다섯살의 사고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어차피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으니까. '미미(美美)'라는 예쁜 여자이름을 더러 보긴했으나 참眞을 연거푸 구성한 眞眞은 중국 이름 같아 낮설긴하다. 98년 발간 이래 꾸준히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 132쇄나 찍으며 지금껏 회자되고 있으니 가벼이 관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새해 첫 달의 숙제이기도 한 책이었으니까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받았다.
(억척스러운 엄마와 술주정뱅이 아버지, 그 자녀인 안진진과 진모.
아버지와 아들이 만들어내는 근심거리와 경제적 궁핍을 평생 안고 산다.
엄마의 쌍둥이 동생 이모와 성실한 이모부.
그 자녀인 주리와 주혁이 한 가족.
유복하고 감성적이며 평화롭다.
그러나 윤택한 이모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러니.)
환경과 성격이 대비되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귀며 진진이 끊임없이 저울질하던 나영규와 김장우도 비중있는 등장 인물이다.
지성적이며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김장우를 진정 사랑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진진에게 그러나 최후의 선택은 받지못했다.
세상이 제대로 흘러가는것 같지만 도처에 모순은 겹겹이 쌓였고 스스로는 도덕적이라 여기지만 알게 모르게 흠뻑 모순에 젖은 삶인 것을. 예전에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읽어서 무난한 작가라는 기억있지만 그보다 '모순'은 특별히 문장이 세련되고 밑줄을 그어 새겨 두고 싶은 문구도 도처에 있었다.고등학교 학력평가 출제작이기도 한 작품이었다니.
진진의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폭력을 휘두르다 가출한 후 부랑인으로 살았다.뇌출혈과 치매까지 앓는 병든 몸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이 별 원망없이 거두는 모습도 모순이라면 모순이 아닐런지. 아버지와 남편의 책임을 포기한 가장에게 모성애와 가족애라는 이름을 붙인 애증으로 용서가 가능했던 시절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은 단언할 수 없지만 그토록 마음씨 갸륵한 여성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행태를 딸 진진은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나의 아버지가 어느새 소환되어 묵직하게 마음 안에 들앉는다.진진이 나의 어린시절과 흡사한 결핍된 가정의 장녀라는 점 때문인지 책을 덮으면서는 와락 우울감이 몰려왔다. '모순'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이기는 하나 이후에는 진정 산뜻하고 발랄한 연애소설이나 읽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