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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89년 9월 18일 토요법회
□ 참석하신 부처님들
1단: 이제선 김정원 홍은정 이진원 박순명 고혜경 신진솔
2단: 박원진 김도정 이진우 김명성 김형오 노영빈 황은창
3단: 오은진 김선익 김상근 윤효근 박명진 김도진
4단: 박경식 서정혜 김공은 백상진 김인식 김혜향 오정원
5단: 진대성 박윤호 박경인 박세은 이원성 이도제
6단: 서혜원 배성원 허대종 이수원 손명균
□ 서정혜 교우님 교리실천 강연 : 법훈편 69장 치심에 관하여
* 부끄러움에 세 가지가 있나니
(1) 우치 : 알지 못하되 묻기를 부끄러워 함.
(2) 외치 : 나타난 부족과 나타난 과오만을 부끄러워함
(3) 내치 : 양심을 대조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길이 챙김
저는 열 가지 일을 하면 아홉가지는 후회를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넌 항상 후회만 한다"고 하였습닏. 알고 보니, 정말 나를 고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말로만 후회를 하고 산 것 같습니다. 또,강연 때 헝성 부족함을 느껴도 실질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외치의 예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내치의 예.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만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외면하고 피하기만 하면, 나중에 후회만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치심이 생기는 이유 : 분별지혜가 어두울 때, 무명에 가리워서, 원인을 밖에서 찾는 자기 합리화 때문에
* 치심을 공부거리로 삼지 않으면 반복이 되고, 스스로 스트레스만 받는다.
* 치심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 공부삼는다. (2) 교무님, 동지들과 맥을 댄다.
□ 교무님 설법
1. 치심은 무엇인가?
법문에 치심에 대한 내용은 어리석을 치(痴), 부끄러워할 치(恥) 두가지가 있다.
(1) 주로 치심이라 하면 우치(愚痴)를 말한다.
(2) 우(愚)란 무엇인가?
정전의 8조 중 사연사조 중 하나로서 : 대소유무(이치)와 시비이해(일)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하는 것을 이름이다.
(3)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는 무엇인가?
- 이해만 보는 사람을-범인이라 한다.
- 시비까지 보는 사람을 -지성인이라 한다.
- 우리는 대소유무까지 아는 신앙인이다.
보통 사람은 이끝만 보면서 옳은 일을 안 하지만,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함에서 더 나아가서
일체를 시비를 초월한 부처님으로 보고, 시비를 초월한 마음의 힘을 부려쓴다.
(4) 자행자지하는 어리석음을 막는 것은 신(信)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안하고, 스승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2. 탐진치 삼독심이 가장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데, 탐심의 근간은 우치다.
무명과 욕심 때문에 우리가 고해의 길로 간다고 하는데, 사실은 무명 때문에 그렇다.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길은 삼학 팔조 사은 사요라 하겠다. 이를 배우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면서 탐욕에 빠져 있다. 그 원인은 배우기를 싫어하는 무명 때문이다.
배울 때 배우라-가장 전략적인 방법이 바로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인연 속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은 누가 가장 진급의 길로 가는가?
-묻고 배우는 사람이다.
내가 재수할 때 어떤 서울대 법대생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자기는 모르면 초등학생에게라도 묻는다."라고 하였다.
좌산종법사님은 질문거리가 많아서 계속 정산종사님께 물었다. 그랬더니 동지들이 "네가 종법사님 전세냈냐."고 하더란다.
3. 묻고 배우는 불공을 통하여 진급할 수 있다. 그런데 물을 자리에 부끄러워하고 배우는 기회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대종사님의 사은 사요 삼학 팔조도 묻고 배우는 불공을 통하여 가장 자기가 성장할 수 있다.
4 그런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기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나 자신도 모르면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결혼과 출산 이후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지금 이때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서 배우라.
우리 공부는 모르는 사람일 수록 정성이 들어갈 수가 없다.
무명을 밝히려는 믿음과 서원이 있어야 한다. 대종사님 법 만나서 어영부영한다면, 그 사람은 구제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어떤 사람은 배워서 팍팍 진급하는 것이 안 보이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질문과 답변
Q. 박윤호 : 견성 못하는 것이 치심입니까.
A. 교무님 : 반드시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견성 못하면 육도윤회를 자유자재하기 어렵다.
Q.이진우 : 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교무님 : 원불교는 후회를 하는 곳이 아니라,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로서 참회하는 것이다.
원불교는 고민이 아니라 연구를 하는 것이다.
참회는 "앞으로 씩씩하게 나가겠습니다"하고 희망을 가진 마음이다.
불가능한 것은 빨리 떨어버려야지 그것가지고 계속 고민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구란-불가능한 것을 딱 떨쳐버리고 두 번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Q. 서혜원 : 나름대로 어떤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누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하여 힘빠진 적이 있습니다.
A. 교무님 : 원이라는 것은 국한이 없는 것이다.
"이정도면 됐겠지"하고 국한을 두면 스스로 정체되고 후퇴괴게 된다.
그릇이 작고 포부가 작으면 작은 것에 만족하게 된다. 교만하여 넘치고 나태에 빠진다.
법문에 보면, 불보살이 만촉이라면, 범부는 5~10촉이라 한다.
금강경에서는, 수많은 범부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한분 불보살을 공양하는 것이 낫다고 하고, 그러나 그보다도 자기 자성의 지혜를 밝힌 것이 낫다고 하였다.
지자본위에서 대종사님의 본위는 분명히 차별을 두라는 것이다.
분명히 지자와 우자는 보는 눈과 하는 일이 다르다. 돈쓰는 것, 시간쓰는 것도 다르고, 나중에 받을 것도 다르다.
사은사요 삼학팔조가 기가막힌 자타력으로 다 구성이 되어 있다.
이것을 알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자력 50과 타력 50을 합치면 100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병진하면 500 이상이 된다. 여기에서 보은까지 되어져버린다. 그런데 못날수록 자기 힘을 어떻게 해보라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하면 튕겨져 나가니까 아예 말을 못한다. 직장에서는 월급으로도, 인사로도 규제하지만, 여기에서는 오직 본인의 발원이 있어야 제재받고 진급한다. 여기에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 월급 직장보다 가치있다고 판단한다면 여기에서 더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대종사님의 가치관은 나타난 것을 "오토로 따라오게"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금 늦어 보이지만 결국은 빠른 길이다.
보이는 것보다 안보이는 것의 위력과 영향력이 어떻게 보면 터 크다. 나타난 것은 빙산의 일각과 같다. 이것만을 믿고 산다면, 나중에 결국 아쉬울 것이다.
Q. 이진우 : 법회 때, 인정이 있으면 덕이요, 과하면 착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A. 교무님 : 인정이 적당하면 덕이지만, 과하면 책이 되고, 모자라면 냉정한 것이 된다.
수도인들은 자칫 잘못하면 냉정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부처 불(佛) 자는, 비인간이 아니라 참인간이라는 뜻이다.
울 때 울 줄 알고, 기쁠 때 웃으면서 은혜를 나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과불급이 없게, 적당하게 해야 한다. 도를 벗어나 버리면, 덕과 은혜가 상해 버린다.
□ 새로 오신 분
종법사님 연원으로 오신 이도제 교우님입니다.
현재 분당에 있는 한국디자인진흥원에 근무를 하고 계십니다.
환영합니다.
앞으로 성불제중의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
첫댓글 많이 기다리고 궁금하셨죠? 어떤 분은, 법회 후기가 안 올라오면, 그때 무슨 법회를 보았나, 누가 왔나 하고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 법회인데 정성이 부족하였는가 반성을 해 봅니다. 추석 즐겁게 보내시기를..
순명교우가 아니면 이렇게 소중한 법회를 다시금 되새길수 있겠어?! 고마워 순명^^ 순명이도 잘 댕겨와^__________^
감사합니데이 이도제 교우님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