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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이지유, 『처음 읽는 지구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3.
1부 지구는 어디에 있을까?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기는 1500년대, 그가 보기에 2000년 전 그리스 사상가들의 생각은 16세기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파격적이고 혁신적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피타고라스학파와는 다른 길을 걸은 아리스토텔레스학파를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소요학파의 우주관은 감각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밤과 낮이 생기는 원인은 지구를 제외한 모든 천체가 투명하고 커다란 수정구에 박힌 채 끊임없이 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소요학파의 우주관을 그대로 계승한 사람이라서 당연히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았다.
아울러 태양, 달, 행성들은 모두 지구를 중심으로 정확한 원 궤도를 그리며 돌아야 한다고 믿었다. 원이 가장 완벽하고 우아한 도형이었기 때문이다. 17~18
그런데 ‘우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감각적으로는 태양이나 달이나 행성들이 투명한 수정구에 박혀 돌고 있으니 완벽한 원 궤도를 그려야 하지만 실제 관측한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성들은 하늘을 얌전히 가로질러 가지 않았다. 달이고 행성이고 하늘을 달리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천체들은 밤하늘에서 앞뒤로, 또는 위아래로 종횡무진 옮겨 다녔다.(···)
결국 프톨레마이오스와 제자들은 우아한 원을 몇 개 더 붙이기로 했다. 우선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원 궤도를 그리며 도는 것은 맞는데, 그냥 도는 것이 아니라 그 원 궤도상에 있는 한 점을 중심으로 또 다른 작은 원을 그리며 도는 것으로 수정했다.(···) 큰 바퀴 위에 작은 바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작은 바퀴를 ‘주전원’이라고 한다. 19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책을 완성하기 위해 무슬림 천문학자들의 꼼꼼하고 체계적인 관측 기록도 사용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우주 체계를 설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들이었다.
무엇보다 코페르니쿠스가 아라비아 세계에서 물려받은 가장 중요한 유산은 반프톨레마이오스 사상 또는 반아리스토텔레스 사상, 그리고 안개 속에서 꿈틀거리던 지동설에 대한 감각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유럽에 나타나기 전부터 이슬람 세계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복잡한 우주 모형을 단순한 동심원 구조의 우주 모형으로 개선하려는 작업이 이어졌고, 그에 따라 창의적인 수학 모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작업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27
1510년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새로운 우주 모형, 곧 태양이 중심에 있고 행성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도는 지동설의 기본 틀을 완성했다.(···) 우주의 중심은 태양 부금에 있으며 지구는 1년에 한 번 태양 둘레를 돌고 하루에 한 번 내부의 축을 중심으로 스스로 돌며,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구를 비롯한 다섯 개의 행성들이 태양 둘레를 돈다고 되어 있다. 수성과 금성은 지구보다 안쪽에서 돌기 때문에 해가 지거나 뜰 때에만 보이고, 화성과 목성과 토성은 지구보다 바깥에서 돌기 때문에 지구의 공전 방향과 반대인 동에서 서로 움직이는 역행 현상이 보인다고도 썼다. 또 다른 별들이 박혀 있는 수정구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란, 지동설에서도 행성들의 운동 속도가 달라지는 것에 대해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행성이 아닌 별들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별은 태양계의 바로 바깥쪽에 있는 수정구에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별과 지구의 거리가 가깝다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운동을 할 때 별들이 스쳐 지나가듯이 보여야 한다.(···) 그러나 별들은 지구가 전진하기 때문에 뒤로 물러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달리는 기차에서 저 멀리 있는 산이 고정된 것처럼 보이듯이 별들 역시 태양계에서 무한히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태양계와 별 사이에는 그렇게 큰 빈 공간이 필요할까?(···)
‘왜 신은 태양계와 별 사이에 빈 공간을 두었을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지구가 움직인다면 그것 때문에 바람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문제도 생겼다.
‘지구와 다른 행성들은 왜 태양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6세기에 이런 문제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0~32
딕스는 이 책에서 아주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내놓았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와 달리 우주를 무한하다고 보았다. 태양계 바깥에 모든 방향으로 무한히 펼쳐진 수많은 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던 투명한 수정구를 과감히 깨자 우주는 무한한 공간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인간 의식 또한 무한하게 뻗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16세기 인간들의 머릿속에 있는 수정구가 깨진 것은 일종의 도약이었다. 인간들은 무한한 우주에서 빛나는 별 역시 또 다른 태양일 수 있다고 상상하게 된 것이다. 36
지동설에 대한 관측 증거를 찾으려던 그가 뜻하지 않게 엉뚱한 천체를 관측하다 성과를 얻었다. 바로 혜성이었다.
1577년 11월 13일, 벤 섬의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던 브라헤가 하늘에 못 보던 별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여러 날 관측한 결과 그것은 별이 아니라 혜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관측 결과는 놀라웠다. 혜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혜성은 달보다 먼 곳에서 출발해 행성들의 궤도를 용감하게 가로질러 지구가 있는 쪽으로 망설임 없이 곧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것은 큰 충격이었다.
천동설에서 모든 천체는 투명한 수정구에 붙박이로 붙어 구가 도는 것에 따라 하늘에서 움직이고, 모든 천체는 달이 붙어 있는 수정구 안쪽에서만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혜성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수정구 같은 것이 하늘을 둘러싸고 있다면, 혜성은 그 수정구들을 하나하나 깨고 날아와야 한다. 그러나 하늘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혜성은 수정구 따위는 없다는 듯 자유롭게 날아오고 있었다. 46~47
1602년, 케플러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태양과 태양을 돌고 있는 행성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있다면, 이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이것은 훗날 케플러 제2법칙으로 알려진 ‘면적 속도 일정 법칙’이다.
이 법칙은 행성이 태양 가까이 있을 때는 빨리 공전하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느리게 공전한다는 뜻이다. 이 법칙을 발견할 때만 해도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여전히 완벽한 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행성의 궤도가 원이라면 공전 속도가 달라질 수 없으므로 궤도는 원이 아니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계산 결과 궤도는 타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605년, 케플러는 마침내 ‘행성의 궤도는 타원이며 타원이 가지는 두 초점 중 하나에 태양이 있다’는 제1법칙을 발표했다. 56~57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사이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가로를 행성 공전 주기의 제곱, 세로를 행성과 태양 사이 거리의 세제곱으로 놓은 좌표에 행성들의 공전 주기와 태양과 떨어진 거리를 찍으면 각 행성은 원점을 지나는 직선 어딘가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당시 이탈리아에 건재하고 있던 갈릴레이가 마침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터라 케플러는 갈릴레이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에 대해서도 이 관계를 분석해 보았다. 그랬더니 목성을 중심으로 도는 위성들도 마치 작은 태양계처럼 이와 같은 관계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구와 행성들은 목성의 위성이 목성을 돌듯이 태양을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정교한 규칙에 따라! 59
갈릴레이가 살던 16, 17세기에는 과학자라는 말이 없고 과학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럼에도 갈릴레이는 어떤 현상을 설명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한 뒤 이론을 정립하는 과학적 방법을 행동에 옮겼고, 그것을 잘 기록해 누구든 설명서대로 따라 하면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한 최초의 과학자다. 61
망원경은 갈릴레이가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니다. 물건의 기능을 개선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처세에 능하던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원발명자인 리퍼세이를 따돌리고 베네치아 총독과 의회에 자신이 만든 망원경을 보여 준 뒤 대학교수가 되었다. 아울러 목성의 4대 위성을 망원경으로 직접 확인함으로써 지동설에 유리한 증거를 덧붙였다. 66
1610년 초 갈릴레이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을 돌고 있는 위성 네 개를 발견했다. 이 발견은 천동설을 믿는 대다수 지구인들에게는 매우 놀라운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 위성 네 개는 지구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66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은하수가 수많은 별의 집합임을 알아냈고, 달의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수많은 분화구로 덮여 있으며 산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67
흥미로운 사실은 갈릴레이가 가능한 한 모든 가설을 실험해서 증명해 보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갈릴레이는 비탈면을 내려가던 공이 바닥을 지나면 출발했던 높이와 같은 높이까지 반대편 비탈면을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약 올라가는 비탈면의 기울기가 0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갈릴레이는 그 공은 마찰이 없거나 누군가 멈추려고 힘을 주지 않는 한 영원히 굴러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관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이다.(···) 관성이라는 개념은 훗날 뉴턴에게 큰 영향을 주어 그가 과학사에 남을 법칙을 정리하게 했다. 71
왕립학회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던 훅이 1665년에 현미경학을 집대성한 <<마이크로그라피아>>를 출간했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본 우주의 풍경을 <<별들의 소식>>에 담아 인간의 인식을 넓혀 주었다면, 훅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작은 세계를 <<마이크로그라피아>>에 담아 인간의 인식 세계를 넓혀 놓았다. 76
왕립학회에서 왕성히 활동하던 훅은 1660년대에 천체의 인력 또는 중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1674년에 훅이 남긴 강의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모든 천체는 자신의 중심으로 향하는 인력 또는 중력을 지니는데, 이 힘 때문에 천체가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지 않고 몸체를 유지한다. 단순한 운동을 하는 모든 물체는 직선을 따라 계속 운동하려고 하지만 여러 힘이 가해지면 그 영향을 받아 원, 타원, 복잡한 곡선 운동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인력은 그 물체가 자체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그 힘의 작용이 더욱 강해진다.”
같은 해에 출판한 논문에서는 이렇게 썼다.
“원래 달은 직선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으나 지구가 달을 잡아 당기고 있기 때문에 이 두 힘이 합해져서 지구를 돌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훅이 천체와 태양 사이 빈 공간에 중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획기적인 생각인지 알아보려면 당시 뉴턴, 데카르트, 하위헌스 등이 천체의 궤도 운동을 설명하는 방식을 들어 보는 것이 좋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천체는 태양에서 멀어지려는 경향성이 있으나 소용돌이 같은 것이 있어 다시 궤도로 돌려보내 준다.’ 훅은 멀어지려는 경향성을 직선운동으로, 소용돌이를 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었고 행성의 궤도란 중력으로 굽은 직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84~85
훅은 왕립학회 회원으로서 뉴턴의 원고를 미리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 뉴턴의 원고에는 지난날 중력의 개념과 역제곱의 법칙에 관해 훅과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적대적이던 뉴턴은 훅의 주장을 참고한 부분을 모조리 삭제한 뒤 원고를 인쇄소에 넘겼다. 그래서 <<프린키피아>>에는 중력에 관해 핵심적 개념을 끌어낸 훅의 존재가 흔적도 없다. 89
1703년 3월 왕립학회 회장직을 맡던 훅이 죽자 뉴턴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를 이어받으며 슬그머니 정치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듬해 1704년에 기다렸다는 듯이 <<광학>>을 출판했다. 이 책의 내용은 훅과 설전을 벌이던 30여 년 전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나 뉴턴은 출판하지 않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훅이 사라져야 자신의 연구 내용에 토를 달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광학에 관한 모든 성과가 온전히 자신의 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왕립학회 회장이 된 뉴턴은 훅의 모든 흔적을 없애는 데 힘을 쏟았다. 학회 내에 훅이 남긴 논문을 모조리 불태웠고, 훅이 제작한 현미경과 훅의 초상화는 어찌 된 일인지 왕립학회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90~91
책이 나오는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프린키피아>>가 과학자들에게 대환영을 받은 것은 이 세상이 증명이 필요 없는 기본적인 원리로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신들의 장난감이 아니었던 것이다. 훅에게는 없으나 뉴턴에게는 있었던 수학적 재능, 뉴턴은 그 수학적 재능 덕분에 만물을 통합하는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92
뉴턴의 운동 제1법칙은 ‘관성의 법칙’이다. 이것은 갈릴레이의 비탈면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공에 대한 사고 실험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뉴턴의 관성의 법칙은 바로 이것을 정리한 것이다.
“물체에 어떤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 운동하는 물체는 직선을 따라 계속 등속도 운동을 한다.” 94
관성의 법칙이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물체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어떤 물체가 느리게라도 움직이게 하려면 계속 밀거나 당기는 힘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일상생활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인간이 관성의 법칙을 좀 더 빨리 깨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마찰이 너무나도 많아서다. 95~96
관성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여기에서 질량이라는 물리량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우주 공간이라도 멈춰 있는 무거운 수레를 움직이게 하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다. 이와 반대로, 가벼운 수레는 힘을 조금만 줘도 움직인다. 멈춰 있는 것을 움직이거나 움직이고 있는 것을 멈추려고 할 때 힘이 많이 들수록 관성이 크다고 한다. 그 관성의 크기가 바로 질량이다. 물체마다 운동을 시키거나 멈추게 하는 힘은 다르다. 다시 말해, 관성의 크기가 모두 다르다. 또다시 말해, 질량이 다르다. 96~97
뉴턴의 두 번째 법칙은 힘과 가속도에 관한 것이다. 가속도란 운동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다시 말해, 속도가 변한 경우는 반드시 가속도가 있다.(···)
자, 그럼 무엇이 가속도가 생기도록 할까? 속도가 변하도록 만드는 것은 힘이다.(···) 물리적인 사실은 가속도는 힘이 커질수록 커지고, 같은 힘이 작용한다면 질량이 가벼울수록 가속도가 커진다는 점이다. 좀 더 전문적인 말을 쓰자면, 가속도는 힘에 비례하고 질량에 반비례한다. 이것이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이다. 98
뉴턴의 세 번째 법칙은 작용과 반작용에 관한 것이다. 어떤 물체에 힘을 가하는 것이 작용이고, 그 순간 물체가 정확히 같은 세기의 힘으로 반대 방향으로 저절로 가해지는 것이 반작용이다. 작용과 반작용은 동시에 일어나고, 두 물체가 접촉할 경우 같은 점에서 일어나며 힘의 크기도 같다.(···) 세상 모든 것에는 작용하는 힘과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반작용이 있다.(···) 이것이 뉴턴의 운동 제3법칙이다. 98~99
뉴턴의 업적은, 중력을 우리 눈에 보이는 수치와 방정식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태양계의 모습을 구현하고, 그 속에서 지구의 위치가 어디쯤인가를 확실히 밝혔다는 점이다. 100
2부 지구는 몇 살일까?
레이는 화석이 오래전 지구에 살던 동물과 식물의 잔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훅과 스테노도 화석을 생물의 잔해라고 인식했다. 이들은 화석이 어떤 식으로든 생물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을 생물의 흔적이라고 알아본 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당시 볼 수 없는 생물의 화석이 있다는 것은 먼 옛날 살던 생물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높은 산에서 발견되는 어류의 화석을 해석하기도 어려웠다. 상상력이 풍부한 박물학자라면 어떻게 산에 어류 화석이 올라가 앉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다.
산은 원래 바다 밑바닥이었다, 물고기가 죽어 바닥에 떨어졌고 그 위에 육지에서 쓸려 온 갖가지 물질이 내려앉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퇴적물은 눌려 돌이 되었고 물고기 역시 그 속에서 화석으로 변했다, 그 후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바다 밑이 솟아올라 산이 되었다. 산에 있는 어류 화석에 대한 답은 이것밖에 없다.
이렇게 지극히 상식적인 시나리오가 있는데도 레이를 포함한 많은 박물학자들이 이 이론에 강하게 거부했는데, 그것은 강한 종교적 강박 때문이었다.(···) <<성경>>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가 고작 5600년. 그러나 이것은 앞서 말한 지질학적 사건들이 벌어지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112~113
린네는 1717년 프랑스 식물학자 바양이 주장한 꽃의 유성 생식 이론에 강하게 끌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며 식물도 암수가 구분되어 동물처럼 유성 생식을 한다고 생각했다. 순수함의 상징과도 같던 꽃이 사실은 생식기관이며,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이 동물처럼 암수가 만나 자손을 만드는 유성 생식을 한다는 이론은 당시에 무척이나 혁신적이고 놀라울 뿐 아니라 외설적이기까지 했다. 115
1758년 출간된 <<자연의 체계>> 10판은 동물 4400여 종과 식물 7700여 종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자연의 체계>> 10판은 속명 다음에 종명 형용사를 붙여 두 단계로 학명을 표기하는 이명법의 시초가 된 <<식물의 종>> 뒤에 출간된 것으로, 이명법을 확고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린네가 제시한 방법에 따라 새로 발견된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준다. 116
뉴턴은 지구에 있는 물의 근원은 혜성의 꼬리에 있는 수증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지구 자체가 커다란 폐쇄 순환계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구의 물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보았고, 지구의 물이 마르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공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을 먹어 치우는 것은 바로 식물! 식물이 죽어서 썩으면 진흙으로 변한 뒤 그것이 암석이 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물은 줄어들고 암석은 늘어난다고 보았다. 118
린네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가 겪은 홍수와 같이 200일 남짓 내리는 비로는 생물의 사체가 화석이 되기는커녕 사체를 퇴적물로 덮기에도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린네는 지구가 원래 모두 물로 덮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육지가 드러났고, 그렇게 드러난 육지에서는 바다였을 때 살던 물고기의 화석이 묻혀 있다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성경>>을 분석해서 알아 낸 지구의 나이 6000년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했다. 119~120
푸리에는 이렇게 가설을 세웠다.
녹은 돌로 만들어진 불덩어리 지구가 식기 시작한다. 당연히 거죽이 먼저 식을 것이다.(···) 얇고 단단한 바위로 둘러싸인 지구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잘 식지 않을 것이다. 지구 중심에서 밖으로 나오는 열이 단단한 바위 껍질에 막혀 흘러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껍질 아래는 여전히 녹아 흐르는, 유체와 같은 뜨거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가 식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풀려면 지구를 단단한 고체로 보아서는 안 되고 흐르는 유체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수학자였던 푸리에가 생각한 지구 냉각 시나리오다.
이것은 쇠구슬을 달구고 식히는 뷔퐁의 실험과는 차원이 다른 분석이었다. 훨씬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좀 더 과학적이었다. 이런 세심한 시나리오 속에서 푸리에는 자신이 고안한 열류 방정식을 써서 지구가 식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계산 값이 1억 년이 나왔다. 이것은 뷔퐁이 실험한 7만 5000년보다 1000배 이상 긴 시간이다. 푸리에가 생전에 왜 이 계산 값을 발표하지 않았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자신이 계산한 값이 너무 커서 깜짝 놀라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125~126
허턴은 지층이 단절되거나 어류의 화석이 산 위에서 발견되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보다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풍화, 침식 과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동일 과정설로 알려져있다. 이와 달리 퀴비에는 갑작스런 지표의 변화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지층과 화석이 발견된다는 격변설을 내세웠다. 130
퀴비에가 한 일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물뿐 아니라 화석이 되어 버린 동물에도 비교해부학을 적용해 고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아래 지층에서 발견된 동물일수록 현존하는 동물과 닮은 점이 거의 없었다. 더 아래에 있는 것들은 파충류, 양서류처럼 요즘은 동물계의 주류가 아닌 것들이었고 형태와 크기가 요즘 동물과는 많이 달랐다. 이 중 대부분은 지구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지층과 화석에서 나타난 더 놀라운 사실은 지구상에 동물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가 있다는 점이다. 퀴비에는 생물은 생겼다 멸종하기를 반복하고 그 사이에 잠시 생물이 없는 시기가 있다고 주장하며 생물을 창조하는 것은 당연히 신이고 생물이 멸종하는 원인은 갑작스러운 지진, 홍수, 화산 같은 대격변이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지나 대격변설은 연이은 지질학적 증거들로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폐기 처분되었지만 과학계에서 그의 명성과 권력이 너무나 강해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퀴비에의 이론에 반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늘 반대편에는 그것을 만드는 빛이 반드시 있는 법이라서, 그가 이루어 놓은 화석과 지층에 대한 연구 덕에 지구의 역사를 찾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서로 다른 지층에서 나오는 화석들을 정리한 목록과 화석의 형태를 비교한 자료 덕에 지층들을 지질학적 연대순으로 나열할 수 있었다. 아직은 지층의 절대 나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퀴비에 덕분에 지층의 상대적 나이는 알 수 있었다. 132~133
다윈이 대단한 것은 진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다는데 있지 않고 생물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실체를 보여 주었다는 데 있다.(···) 뷔퐁, 허턴, 라이엘이 다져 놓은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토대 위에 <<종의 기원>>을 얹어 놓으며 다윈은 지구의 나이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말을 했다. 라이엘이 아마추어 고생물학자인 맨텔과 답사를 다닌 영국 남부 서식스 지방의 지질 구조는 무려 3억 666만 24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푸리에가 계산하고도 발표하지 않은 1억 년보다 긴 시간이며 무엇보다 시간이 아주 자세하다. 이 주장은 지구의 나이 46억 년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숫자이지만 당시 사람들, 특히 신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성경>>과 전혀 다르다며 다윈을 비난했다. 140
러더퍼드는 방사성 원소로 이루어진 덩어리의 절반이 납으로 변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시간은 아주 정확해서 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는 이것을 반감기라고 불렀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견이다. 지금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의 양과 납의 양,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를 안다면 암석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고, 이 개념을 지구의 나이를 결정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
러더퍼드는 퀴리 부부가 광산에서 얻어 온 것과 같은 우라니나이트를 연구해 이 돌덩어리의 나이가 7억 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것은 그때까지 나온 지구의 나이보다 단연 많았다. 150~151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과학 분야는 방사능과 지구의 나이였다. 방사성 원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이 물질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사람들은 의약품, 미용 재료, 그리고 시계가 밤에 보이도록 숫자를 쓰는 도료에도 섞을 정도로 광범하게 사용했다. 방사성 동위원소의 위험이 알려져 아무나 다룰 수 없게 된 것은 몇 십 년이 지난 뒤고,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조차 이 원소들이 내 놓는 빛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몰랐다.(···)
일반인들이 무시무시한 방사선을 철없이 이용하고 있을 때 버트럼 볼트우드는 암석 속에 든 우랴늄 동위원소와 납의 함량을 비교해 그 암석이 있던 지층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러더퍼드가 한 작업과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정교하고 정확해졌다는 점이다. 이제 지구의 나이를 알아내는 방법은 온 지구에 퍼져 있는 표준 지질층에서 암석을 채취해 실험실로 가져온 다음 그 속에 들어 있는 우랴늄과 납의 양을 정확히 측정해서 암석의 나이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온 지구를 돌아다니며 암석을 구하기도 힘들고, 그것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것도 힘들다. 152~153
1910년에 갓 스무 살이 된 홈스는 노르웨이에서 가져온 데본기 암석의 나이를 측정해 그것이 3억 7000만 년 전 것임을 증명했다. 그 뒤에도 홈스는 기회가 닿는 대로 표준 지질층의 나이를 알아내려고 애썼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154
패터슨은 머리를 싸매고 아이디어를 냈다. 궁리 끝에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운석, 그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까닭은 이렇다. 운석이 태양계를 떠도는 덩어리들이 지구로 떨어진 것이다. 태양계를 떠도는 덩어리라면, 크게는 행성 작게는 위성과 소행성·혜성·기타 이도 저도 아닌 부스러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태양계가 처음 만들어질 때 동시에 생겼다. 따라서 지구 대기로 돌진해 불타다 남은 덩어리인 운석은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생긴 암석이라고 볼 수 있다. 패터슨은 이런 과감한 가정을 한 뒤 실험에 쓸 운석을 찾아 헤맸다.
훗날 패터슨의 가정은 아주 옳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었다. 패터슨은 애리조나 주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는 유명한 캐니언 디아블로 운석을 시료로 삼기로 했다.(···) 드디어 태양계 초기부터 그 속에 갇혀 있던 우라늄과 납의 양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5000만 년으로 7000만 년의 오차 범위 내에 있었다. 에드먼드 핼 리가 바다에 있는 소금의 양을 측정해 지구의 나이를 재려고 시도한 지 200년 만에 지구의 나이가 결정되었다. 155~156
패터슨의 이름이 대중에게 더 잘 알려지게 된 것은 다른 일 때문이다. 패터슨은 왜 실험을 방해할 정도로 공기 중에 납이 많은지 궁금했다.(···) 패터슨은 자동차 배기가스로 배출되는 납을 의심했다.(···) 타임머신이 있어서 과거로 돌아가 공기를 채취할 수도 없는데 이런 가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지구의 나이를 재기 위해 운석을 떠올린 패터슨이 이번에는 그린란드에 있는 얼음을 떠올린 것이다.
빙하는 눈이 오랜 세월 쌓이고 눌려 만들어진 것으로 나이테처럼 겨울에 내린 눈 층과 여름에 내린 눈 층을 구별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눈이 내리면서 공기 중에 있던 분자들을 빗자루로 쓸어 내리듯이 품고 내려온다는 점이다.(···) 패터슨은 얼음 기둥에 나이테처럼 늘어서 있는 빙하 한 층 항 층을 얇게 잘라 녹인 뒤 그 속에 들어 있는 납의 양을 측정했다.(···) 그랬더니 1923년 전에는 공기 중에 납이 거의 없었지만, 그 이후에는 납이 점차 늘어나 패터슨이 연구하던 시기에 이르면 숨을 쉴 때마다 독극물을 들이마시는 수준으로 위험한 양이 들어 있었다.
(···) 미국 정유 회사 에틸사는 정계, 재계 유력 인사들의 인맥을 동원해 패터슨의 연구비를 깎고 대학에서 쫓아내라고 종용했다. 그럼에도 패터슨이 끈질기게 버틴 끝에 1970년에는 유연휘발유를 쓰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고,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가 자동차에 납이 들어가지 않은 무연휘발유를 쓴다. 공기 중의 납 농도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납은 다양한 공업 활동에 쓰이기 때문에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 결과 오늘날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혈액에는 100년 전 이 지구에 살던 동물보다 600배 이상 많은 납이 들어 있다. 물론 그 동물에는 우리 인간도 포함된다. 157~159
3부 지구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진파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 인간이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두 가지다. 두 종류의 지진파는 성질이 전혀 달라, 하나는 빠르고 다른 하나는 느리다.(···) 과학자들은 먼저 도착하는 것은 처음을 뜻하는 영어 프라이머리의 첫 글자를 따 P파, 나중에 도착하는 것은 두 번째를 뜻하는 세컨더리의 첫 글자를 따 S파라고 부른다. P파는 빠르고 고체와 액체, 기체를 모두 통과할 수 있으며 진행하는 방향으로 밀었다 당기기를 반복하는 스프링 같은 형태로 전진한다. S파는 느리고 고체만 통과할 수 있는 진행 방향에 대해 수직으로 진동하는 파동을 만든다. 167~168
지진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P파가 도착한 시간과 S파가 도착한 시간의 차이다. 이것을 PS시라고 하는데, 땅속이 어떤 물질로 채워졌느냐에 따라 PS시는 무한정 달라질 수 있다. 지진학자들이 하는 일은 두 종류의 지진파가 만든 암호 같은 지진파를 분석해서 땅 속 구조를 예상하고, 그 예상이 맞는지 PS시와 맞추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는 않는지라, 이런 작업이 언제나 성공하지는 않는다. P파, S파 말고도 발견자의 이름을 딴 러브파와 레일리파 등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이상한 지진파들이 마구 섞여 있기 때문이다. 168
1906년에 드디어 지진파를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아일랜드의 지질학자 리처드 올덤이 중앙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지진파 기록지를 살피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통 지진파는 진원지에서 구 모양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P파가 예상보다 일찍 관측소에 도착한 것이다. 이 지진파는 어떻게 빨리 갈 수 있었을까? 올덤은 고민 끝에 지구 내부에 어떤 물질이 장벽을 이루고 있어서 지진파를 반사할 뿐만 아니라 장벽을 타고 흐르는 지진파의 속력을 더 빠르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71~172
이와 같은 발견을 한 사람이 또 있다.(···) 이 지진파도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것이다. 모호로비치치는 계곡에서 출발한 지진파가 땅속 어디선가 반사되어 나온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반사층은 올덤이 발견한 것보다 훨씬 얕은 곳에 있었다. 172
지진학자들은, 우리가 딛고 있는 지각이라는 땅이 단단하게 식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이며 평균 두께는 5~35km쯤 된다는 것과 그 아래에는 뜨거운 열기를 간직한 맨틀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각은 대륙을 이루는 대륙 지각과 바다 밑바닥을 이루는 해양 지각으로 나뉘는데, 성분이 서로 약간 달라도 지구를 단단하게 싸고 있다는 점은 같다. 맨틀은 2000~3000도씨의 뜨거운 물질로 지각을 이루는 암석이 한데 엉켜 녹아 있는 상태와 비슷한데, 벌겋게 달아오른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닌 상태로 아주 천천히 흐른다. 지각과 맨틀은 경계가 뚜렷해 지진파가 반사되거나 그 경계면을 타고 흐른다. 모호로비치치가 발견한 것이 바로 지각과 맨틀의 경계선이었다.(···)
그리고 올덤이 발견한 것은 맨틀 아래에 있는 또 다른 물질이 만들어 낸 장벽이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172~173
모호로비치치가 맨틀과 지각의 경계선을 찾은 다음 해인 1910년에 독일의 기상학자 베게너는 대륙의 해안선에 대해 생각하다 대륙은 한때 한 덩어리였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오래전 대륙이 한 덩어리였다면 오늘날과 같이 여러 대륙으로 조각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대륙이 움직여야만 했다. 물론 대륙은 인간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베게너는 전공 분야를 초월한 놀라운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3억 년 전 대륙은 모두 모여 하나였음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 초대륙의 이름을 ‘지구 전체’라는 뜻으로 판게아라고 지었다. 3억 년 전이라면 지구에 파충류와 곤충이 살고 나중에 석탄이 될 거대한 나무들이 방대한 숲을 이루고 있을 때다.
요즘은 누구나 대륙이 이동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지만 20세기 초에는 배게너가 대륙이 움직인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아주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우선 가장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증거는 지도에 나타나 있다. 대륙만 오려 모양 맞추기를 하면 얼추 한 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 안다. 베게너는 지도에 나타난 해안선보다 바다 쪽으로 더 이동해 해구를 따라 자르면 대륙이 더 잘 들어 맞는다는 것도 알았다.
다음 증거는 화석이었다. 메소사우루스의 화석이 남아메리카 동쪽 해안과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파충류는 체구가 아주 작고 담수에서만 사는 종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바다인 대서양을 건너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다른 파충류인 리스트로사우루스는 아프리카 동부 해안과 인도와 남극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파충류 역시 바다를 건널 수 없는 종이다.(···) 베게너는 이 생물들이 살던 시기에는 대륙들이 한데 붙어 생물들이 자유롭게 오갔다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베게너는 기상학자답게 기상관측망이 확립되기 전 기후인 고기후에서도 증거를 찾으려고 했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북극 지방에서 발견된 열대식물 화석과 남아프리카에 있는 빙하의 흔적이다. 176~179
베게너는 거대한 산이 만들어지는 원인도 대륙 이동설로 설명하려고 했다. 두 대륙이 이동하다 만나면 가장자리가 서로 부딪치면서 접히거나 겹치는 부분이 생기고, 시간이 갈수록 대륙은 서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거대한 산맥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베게너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설명하며 지질학자들과 대중을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불행하게도 무엇이 대륙을 밀고 당기는지 설명할 수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181~182
베게너가 또 관심을 둔 곳은 지구대다. 지구대란 땅에 거대한 틈이 생겨 벌어지는 곳으로, 대표적인 예가 동아프리카 지구대다.(···) 지질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쩍’하고 쪼개진 뒤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가 결국 바다가 되고 말 것이라 한다.(···)
지금은 베게너의 이론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어 모든 과학 교과서에 베게너의 이름과 함께 대륙 이동설이 실려 있지만, 이런 날이 오기까지 베게너는 50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다. 182~183
1930년, 홈스는 자신의 주특기인 방사능 붕괴에 대한 이론을 대륙 이동의 원동력에 결합한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지구 내부에 방사능 붕괴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나오는 막대한 열에너지가 지구 내부에 거대한 대류 현상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185
핵이 두 층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은 덴마크 지질학자 잉게 레만이다.(···) 레만은 1929년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지진의 지진파 기록들을 살피다 아주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경쾌한 P파가 가기를 꺼리는 지역이 있었던 것이다.
(···) 레만은 여러 나라에서 기록한 뉴질랜드 지진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지구에서 뉴질랜드의 반대편에 P파가 별로 잡히지 않는 지역이 있었다.(···) 지진파가 거의 도달하지 않는 지역, 레만은 이 지역에 ‘암영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레만은 암영대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핵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중심 부분인 내핵은 고체로, 그 윗부분인 외핵은 액체로 설정했다.(···) 암영대가 있다는 것은 지구의 핵이 균질하지 않다는 증거인 셈이다. 정밀한 분석과 계산 끝에 1936년, 지각 아래에 맨틀이 2900km쯤 뻗어 있고 그 아래에는 액체로 된 외핵이 2200km쯤 뻗어 있으며 또 그 아래에는 고체로 된 내핵이 반지름 1300km 크기의 공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외핵이 액체이므로 S파가 오지 않는다. 이로써 핵은 외핵과 내핵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오늘날 교과서에 쓰이게 되었다. 187~189
대서양을 길게 가로지르는 해령이 그려진 지도를 보고 감동해 ‘해저 확장설’이라는 새 이론을 만든 사람은 미국 지질학자 해리 헤스다.(···) 바다 밑바닥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령이 있는 곳은 해양 지각 아래에 있는 맨틀이 대류 작용으로 올라오는 곳이다. 뜨거운 맨틀이 해양 지각을 벌리며 올라오는 바람에 찢어진 틈으로 녹은 맨틀 물질이 솟아오른다. 이것은 화산에서 분출하는 용암과도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물질이 바닷물을 만나 식으면서 산이 된다. 맨틀의 대류는 끊임없이 계속되므로 해양 지각의 틈은 계속 벌어지고 그 속에서 해령은 양쪽으로 밀리며 해령에 가까울수록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암석이고, 멀수록 생긴 지 오래된 나이 든 암석이다. 이렇게 대서양 바닥은 계속 벌어지고 대서양은 계속 넓어진다. 이것이 해저 확장설이다. 193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자기 남극과 자기 북극은 고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구의 자전축을 기준으로 본 남극과 북극은 자전축이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는 커다란 자석과 같아서 자기 북극과 자기 남극이 생기고 이 자리는 조금씩 변할 뿐 아니라 양 극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한다. 이것을 땅인 지구의 자기장이 거꾸로 되었다는 뜻에서 ‘지자기 역전’ 현상이라고 하는데, 지구가 생긴 이래 이런 일은 수없이 일어났다. 그러니 암석 속에 든 지구자기 방향을 잘 조사하면 그 지질 시대에 지자기가 오늘날과 같았는지 뒤바뀌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만약 헤스의 해저 확장설이 옳다면 해령에서부터 시작해 먼 곳으로 가면서 암석 속에 새겨진 지자기의 흔적을 조사했을 때 지자기 역전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사 끝에 해령과 가까운 곳은 오늘날과 같은 자극을 품고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극이 반대 방향으로 바뀐 암석이 있었으며 조금 더 가서는 다시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7
1965년 바인은 투조 윌슨과 함께 밴쿠버 섬으로 달려가 후안데푸카 해령의 지자기를 분석했다.(···) 그랬더니 해저 지도에는 해령과 수평하게 남북 방향으로 줄이 그어져 마치 바코드처럼 보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해령을 중심으로 양쪽의 지자기 방향이 거울로 보는 것처럼 완전히 대칭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헤스의 생각대로 해령에서 양쪽으로 뿜어져 나온 용암이 바다 밑을 대칭으로 찢으며 넓히고 있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해 주었다. 198~199
해저 확장설을 확고하게 만든 마지막 한 방은 바다 밑 암석의 나이다.(···) 탐사 결과 해령에 가까운 암석일수록 나이가 어리고 해령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암석의 나이가 점차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헤스가 내놓은 해저 확장설의 또 다른 증거가 되었고, 베게너의 말대로 대륙이 어떻게든 움직이는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가 되었다. 199
지금까지 알려진 바다 밑 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억 9000년 된 것으로 쥐라기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보다 더 오래된 암석은 왜 발견되지 않을까? 오래전 베게너가 주장한 대로 해령에서 태어나 반대쪽으로 밀려가는 바다 밑 암석들은 바다와 대륙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해구로 말려들어 맨틀로 돌아가 바다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해양 지각은 평균 수천만 년을 주기로 맨틀에서 올라왔다 다시 맨틀로 돌아간다. 199~200
지구는 커다란 판 여섯 개와 작은 판 열두 개로 덮여 있다.(···) 이 판들은 대륙 지각으로 이루어진 대륙판과 해양 지각으로 이루어진 해양판으로 나눌 수 있다. 유라시아 판처럼 대륙 지각만으로 이루어진 판도 있고, 태평양 판처럼 해양 지각만으로 이루어진 판도 있다. 또 북아메리카 판이나 남아메리카 판처럼 아메리카 대륙을 이루는 대륙판과 대서양을 이루는 해양판이 붙어 하나의 판이 되기도 한다.
한편 판과 판이 만나는 방식에 따라 판의 경계를 구분하는데, 발산형 경계 · 수렴형 경계 · 보존형 경계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서양 밑바닥에 있는 대서양 중앙 해령은 북반구에서는 북아메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이 만나고 남반구에서는 남아메리카 판과 아프리카 판이 만나는 곳이다. 해령의 경우 이곳에서 새로운 해양 지각이 생겨나기 때문에 발산형 경계다. 그래서 대서양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반면, 태평양 판은 전체가 하나의 판이라서 대서양처럼 멋지고 극적인 해령은 없다. 그 대신 남태평양과 남아메리카 사이에 작은 나즈카 판이 있고 이 나즈카 판과 태평양 판 사이에 해령이 있어서 해양 지각이 생긴다.(···) 태평양 판은 새로운 지각이 생기기는커녕 사방에서 판들이 조이기 때문에 점점 좁아져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원래 바다였던 곳이 판과 판 사이에 끼어 사라진 좋은 예는 우랄 산맥이다. 우랄 산맥은 러시아를 가로질러 남으로 카자흐스탄까지 내려오는데, 이곳은 원래 바다였다가 판과 판이 만나는 바람에 바다가 사라지고 땅에 주름이 잡힌 결과 생겼다.
해양 지각이 대륙 지각 밑으로 파고드는 해구는 해양판이 사라지는 수렴형 경계다.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이 만나는데 왜 하필 해양 지각이 밑으로 파고드는지 질문할 것이다.(···) 해양 지각의 밀도가 크기 때문이다. 202~203
판 구조론이 대세를 이루자 과학자들은 자연스럽게 무엇이 판을 움직이는지를 궁금해했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지각 바로 아래에 있는 맨틀의 대류 현상이다. 맨틀이 대류할 수 있는 에너지는 그 아래에 있는 핵에서 나온다. 핵에 있는 방사성 원소들이 끊임없이 내놓는 열이 판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이다.(···) 맨틀 대류가 발생했다 소멸하는 주기는 약 2억 년으로 대류 속도는 평균 1년에 5cm 정도라고 한다.(···) 3억년 전에는 베게너가 판게아라고 부르던 커다란 대륙 하나만 있었다. 그러나 판게아가 쪼개져 지금과 같이 여러 대륙으로 흩어졌으며 앞으로 3억 년 뒤에는 대륙들이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다.(···)
이로써 베게너가 주장한 대륙 이동설은 반세기 만에 해저 확장설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판 구조론으로 승화했다. 땅은 확실히 움직인다! 208~209
판 구조론이 이렇게 많은 것들을 설명해 주는데도 아직까지 과학자들은 어떤 힘이 판을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생각해 낸 것은 맨틀 대류설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해령에서 생긴 해양 지각이 밀어내는 힘만으로는 해양판이 대륙판을 만났을 때 파고 들어가기에 부족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 지구 속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는데, 맨틀 속이 그동안 생각하던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210~211
윌슨은 맨틀의 아주 깊은 곳, 핵과 만나는 지점에 뜨거운 물질이 솟아오르는 기둥이 있으며 이 기둥은 맨틀의 대류와는 아무 관련 없이 늘 고정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보았다. 이 불기둥이 핫스폿, 우리말로 열점이다. 열점은 고정되어 있고, 태평양 판은 남에서 북서쪽으로 움직인다. 열점에서는 계속 뜨거운 마그마가 태평양 판을 뚫고 올라와 화산을 만든다. 이것은 태평양 판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이면서 화산섬을 싣고 북쪽으로 가는 형국이다.(···) 현재 열점의 위치는 로이히 아래로 알려져 있다. 열점에서 분출해 하와이 섬을 만든 용암의 성분과 대서양 중앙 해령을 만든 용암의 성분은 다르다. 이 말은 맨틀이 균일한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211~213
지질학자들은 지진파 연구로 밝혀낸 맨틀의 내부 구조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지진파가 느려지는 부분을 3차원으로 바꾸어 보았더니 잎이 다 떨어진 채 굵고 비틀린 가지만 남은 거대한 고목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주변보다 온도가 월등히 높았다.(···) 과학자들은 이 기둥 모양의 흐름에 ‘플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뜨거운 것이 있으면 당연히 차가운 것도 있다. 맨틀을 통과하는 지진파가 어느 영역에서는 몹시 빨라지는데, 이 부분은 덩어리가 지거나 넓적한 판 같은 모양이로 주변보다 온도는 낮고 밀도는 높다. 이것도 플룸이라고 부른다.(···)
플룸 이론의 목적은 앞서 말한 것처럼 판이 움직이는 원동력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룸 이론에서는 대륙 이동의 원인을 뜨거운 플룸이 아니라 차가운 플룸으로 본다.(···) 해구 아래로 밀려 들어온 해양 지각은 바로 맨틀과 융화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덩어리를 형성한다. 이 덩어리들은 바다에서 왔으니 당연히 맨틀보다 차갑고 밀도가 높다. 그래서 이 덩어리가 몇 나라를 합친 것만큼 엄청나게 커지면 엿이 덩어리져 떨어지듯 해구에서 뚝 끊어져 맨틀 아래로 떨어진다. 이것이 차가운 플룸이다.(···) 이런 일은 거의 4억년에 한 번 일어난다고 한다.
쌓여 있던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자리는 다시 해양 지각이 몰려와 채운다. 해양 지각이 해구로 밀려드는 것은 해령이 생긴 지각이 밀어 붙여서가 아니라 해구에 빈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지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비움’인 셈이다. 214~215
차가운 플룸이 가라앉아 외핵까지 떨어지면 그 근처에 있던 뜨거운 맨틀이 요동한다.(···)
플룸 이론은 지구 규모의 뜨겁고 큰 상승 흐름과 차갑고 무거운 하강 흐름이 맨틀을 가로질러 외핵 바로 위까지 이어진다는 이론으로 판구조론의 문제를 풀기 위해 생겨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정립된 것은 없다.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