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북중 소금뱃길 답사교육자료
마한시대......원양국에서 출발 원양국은 안성천 북부지역과 수원화성을 포함하는 부족국가
남양만과 아산만 의 강역 (남양만바닷물과 아산만 바닷물을 함께 볼 수 있는 곳 광판대기)
고잔리.. 고잔리는 수원군 감미면(개미골)에 속했으나 1914년 화성 양감면과 평택 청북면에 속함.
고잔리는 우리말로 곶안으로 곶의 안쪽이란 말
고잔리에서 보는 남양만의 해로는 멀리 덕적도에서부터 가까이는 풍도 입하도를 거쳐 아산만으로 들어오는 해로의 일부.
남서쪽에 괴태길곶과 수도사(원효.의상의 중국여행길)남쪽의 무성산에서 시작해 아산만 계두봉까지의 산성들이 한눈에 들어옴.(임경업장군설화)
간척의 역사 왕실이나 권력자에 의한 간척1900년 이전
1900년이후 일제 동척회사에 의한 간척과 일부 왕실과 재력가에 의한 간척 (둑을 9m로 축조하는 기술이 도입)
강세둑....이강세란분이 쌓다가 실패한 둑 (현존)
현재의 모습... 1975년 남양만 방조제 축조
남양호에는 지금도 어업면허를 가진 어부가 어로활동
소금창고
장뚝을 쌓고나서 더 이상 배가 신포로 올라오지 못하자 장뚝아래 포구가 생김
거기에 소금을 쌓아두는 창고가 생김... 이는 이후에 쌀창고로 사용.
옹포
삼계1리의 옛 지명. 충청도나 경기도 일원에서 생산된 어염에서부터 베나 항아리들이 모여드는 중요한 항구였음. 그래서 저포나 옹포라고 불렸음. 이후 일본인들의 간척에 의해 뱃길이 막히자 지금의 신포로 항구가 이동. 그 후 지금의 모습으로 간척이 완성되고 남양만에 방조제가 생긴 이후로 뱃길이 끊어짐.
<옹포 대동여지도 - 좌측 하단 사각형 박스를 보면 삼계, 토진리 일대 간척되기 전의 지도로 항아리모양으로 풍랑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포구였음을 알 수 있다.>
생계
삼계2리의 지명. 당목(唐項)이라는 이름의 흔적으로 생각됨.
당항(唐項) 당항성. 당성.
신라의 대당 무역 교통로로 원효와 의상이 찻았던 항구가 옹포라고 가정해 보면 비오는 밤에 수도사가 있는 괴태길곶으로 잘못 찻아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음.
여기서 화성 당항성까지의 길은 60여리가 넘음.
당항의 옛 이름은 닭의 모가지란 뜻임.
옹포를 중심으로 하는 광승마을 뒷산인 덕지산 뒤편이 닭의 모가지형상을 하고 있음.
따라서 상계도는 삼계는 닭과 관련된 지명으로 봄.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한주였던 화성에 당항성을 두었던 것으로 생각됨.
<청북 삼계리 주변 일대가 삼국시대에 당나라 교류 중심지였던, 당성(당항성)이었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개념도>
귀여재에서 한 구 연 략
첫댓글 청북중 소금뱃길 이동경로
1차 집결지: 청북읍 고잔리 1443-2
하자하여 잠시 둘러보고 다시 차량으로 이동
2차 집결지 : 청북읍 삼계리 399-84(삼덕초 삼거리)
삼덕초 삼거리부터 옹포 하천변따라 신포읍사무소까지 걷기(2.5Km)
3차 해산지점: 청북읍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