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
강명수
파밭에서 풀을 뽑으며 팥죽 땀을 닦습니다
주름진 손등 위로 파 고동 진물이 흘러내리던 지난 밤
염장이 터져 새카맣게 타버린 비인 속의 어머니
그게, 눈물의 결정인 걸 이제사 알겠어요
희어버린 당신의 못다 부른 노래
뼛속까지 비어버린 기둥이란 걸
그 깨달음의 마음 한 자락
눈가로 콧잔등으로 눈물 번집니다
내 가슴 속에 흩날리던 파씨
오늘은 하늘의 별처럼 빛납니다
어두운 하늘에 별꽃이 피는 밤이면
돌아가신 어머니는 나를 내려다보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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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몰래 책상밑으로 주고받은 쪽지
詩 속에 나타나는 꽃의 詩論的 의미망은 광범위하다. 대표적인 것이 그 꽃이 지니는 시적 이미지로서의 ‘꽃말’은 어찌 보면 시인들이 놓칠 수 없는 암시적인 함축성을 지닐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통념화 되어 있는 ‘꽃말’에 의존함은 자칫 쉽게 화자의 감정이 독자에게 노출되어버린 우(憂)를 범할 수 도 있어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러한 꽃말이라는 통념화 된 의미망을 배제한 채 오로지 詩人의 눈에 비친 직관적인 통찰에 집중 해보고자한다. 감상 대상 詩로 강명수 시인의 ‘파꽃’을 선정 한 이유다. 즉, 감상을 위해 詩의 소재로써 꽃이 지니는 직관적인 관념의 이미징을 중심으로 범위를 좁혀 集中해 보고자 한다. 결국 詩人은 감정을 노출시키면 안 되므로.
詩 속에서 꽃의 직관적인 이미지는 항상 웃는다. 웃어야만 사는 모태적인 불치병을 앓고 있다. 언제나 웃어야만 하는 꽃이어서 무릇 詩人들은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도 편하게 이미지화 함으로써 본인의 詩 감정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러한 불치병은 詩論的 측면에서 보면 꽃이 지니는 다양한 생명력으로서의 洞察과 본능적인 아름다움을 다양한 이미지로 換置 시킨다. 꽃이라는 관념의 이미지화를 위해 이보다 더 한 소재는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이는 꽃이 시인들이 꿈꾸는 대표적인 시적 隱喩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 대한 방증(傍證)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은 시적 話者의 분신이 되어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통찰의 대상을 자초하며 詩 속으로 다소곳이 들어가 앉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다양한 이미지로 분장한 채 좋은 시로 태어나게 하는 언어의 꽃으로 새롭게 피어나 뮤즈(시적 靈感)를 선사 해 주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詩 속으로 들어 간 꽃들은 화자 자신이든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이미징이던 간에 詩人들의 시적 발상과 장치에 따라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다양한 반사경을 들고 걸어 나온다. 사랑, 幸福, 純潔, 자유, 母情 등 다양한 시적 언어의 이미지화를 통해 구체적 사물로 형상화 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시를 씹을 맛을 느끼게 해 주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詩 속에 사는 꽃들은 항상 웃고 행복해야만 하는 존재일까? 위에서 언급한 ‘웃음’이라는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는 불치병을 앓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꽃이 지니는 詩의 소재로서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본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임에 대한 불타오르는 ‘사랑’인 반면 ‘산유화’는 인간의 孤獨을 표상한다. 영랑의 ‘모란’은 소망을 담아내지만 김춘수는 ‘꽃’을 통해 인간의 진지한 ‘존재의 의미성’을 묻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나태주는 ‘풀꽃’을 통해 인간을 바라 바라보면서 꽃이 지니는 이중적 이미지를 모두 召還한다. 즉 작고 보잘 것 없는 사회적 약자이더라도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보면 ‘소중하고 아름다운’존재로 승화된다는 주지적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직관적 통찰들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꽃말’이 지니는 의미망을 초월하는 시의 소재로서의 꽃에 대한 구체적 형상화에 의한 감정의 실체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명시의 반열(班列)에 오르내린다. 그러한 직관적 통찰이 예사롭지 않은 강명수 시인의 최근 작품 ‘파꽃’ 속으로 꽃 여행을 떠나보자. 프랑스 상징파 시조인 ‘말라르메’의 말처럼 단순한 시상(詩想)이 아닌 화자의 말(言語)에만 집중하면서......<훈>
웃음의 불치병에서 자유로운 꽃이 여기에도 존재한다. 바로 말하는 그림으로서의 ‘파꽃’이다. 다양한 꽃들 중에서도 유독 강명수 시인의 '파꽃'이 들려주는 언어의 울림대가 감정으로 이입되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울림은 바로 ‘파꽃에 대한 직관적 통찰’에 있다.여기가 핵심이요 소위 위스키 한잔이다. 물론 국내에서 기 발표 된 바 있는 파꽃들에 대한 내·외면적 이미지 포착은 詩人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다. 일례로 ‘파꽃’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抒情詩들은 암시적인 ‘母情의 세월’이라는 대 이미지를 행간에 툭 던져 놓으면서 현상을 현미경으로 치밀하게 읽어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린다. 구체성 없는 암시성은 詩에 있어서는 無用之物일진데 말이다.
예를 들어 파꽃은 ‘어머니의 매운 눈물’, ‘하얀 머리 수건’, ‘시린 세월’, ‘속 비운 푸른 줄기’, ‘어머니의 긴 기도’, ‘다리 퉁퉁 부은 어머니’, ‘뼈 속까지 비워 낸 몸’, 등 母胎的으로 가슴 저미는 유사한 이미지로 換置되어 직관과 통찰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강명수 詩人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한다. 그녀의 ‘파꽃’은 저만치에 홀로 외롭게 피어 매운 눈물을 안으로만 싸매두고 스스로 깨어 사는 조용한 어머니로서의 인고의 세월을 보듬어 온 가슴 저민 꽃이다. 그 어미의 눈물 꽃은 당신의 母情의 歲月에 대한 감정을 행간에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오로지 서사로만 감정을 감출뿐이다. 바로 이 詩가 여타 파꽃을 소재로 했던 詩들과 참신한 차별성을 지니는 본질이 아닐까?
詩人의 직관적인 통찰로 피원 낸 파꽃의 모습 ! 그것은 어머니의 염장이 터져 새카맣게 타버린 눈물의 結晶으로 이미지화 되더니 이내 그 結晶은 어미의 못다 부른 경모(景慕)의 노래가 되어 별꽃으로 피어 빛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詩는 오로지 感情이 아니라 사건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플롯(plot)임을 여기서 실감나게 목도(目睹)한다. 대학시절 까다로운 철학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상 밑으로 주고받는 쪽지를 호기심으로 훔쳐보는 느낌이다. 좋은 詩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