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비단 백수 자녀들만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 아니다. 집을 떠나 경제적으로 자립한 성인 자녀도 사업 자금, 대학원 학비 등 성공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다.
워싱턴 소재 재무설계사 규제기관 CFPBS(Certified Financial Planner Board of Standards)에서 소비자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엘리노어 블레이니는 “사람들은 교육을 더 많이 받거나 사업을 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며 “이 때 당연히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바로 ‘부모님 은행’이다”고 말한다.
자녀들이 부탁하면 부모는 들어주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녀가 지금껏 잘 해 온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처음의 좋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정에 큰 불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자녀로부터 원조 요청을 받은 부모들이 가정을 지켜내고, 재정상태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아래에 소개한다.
당신의 미래를 고려하라
우선 자녀에게 돈을 주면 당신의 재정과 미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따져보라.
내슈빌에 소재한 벨몬트 대학의 기업가정신 센터장 제프 콘월에 따르면, 심각한 가정 불화 중 상당수는 부모가 자신의 순자산의 많은 부분을 자녀에게 빌려주거나 자녀의 사업자금으로 투자한 뒤 돌려받지 못해 발생한다고 한다. 그는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경우 순자산의 5% 이내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잠재 이익을 계산하라
자녀가 성공적으로 자립했다고 해서 대학원에 입학한다거나, 혹은 작은 사업체를 운영할 준비가 됐다는 뜻은 아니다.
콘월은 “나 같으면 당신의 자녀를 꼼꼼히 따져본 뒤에 ‘내가 아는 이 사람이 과연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라며 “자녀의 자존심을 높여준다고 무턱대고 돈을 빌려주는 게 자녀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고 경고한다.
CFPBS의 블레이니는 자녀가 사업을 시작하려 하는 경우든, 석사 학위를 얻어 수입을 올리려 하는 경우든, 그로 인한 잠재 이득 및 현실화 가능성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돈을 건네주기 전에 자녀에게 세부사항을 요구하라
뉴욕에 소재한 스포츠 상품 온라인 쇼핑몰 게임데이 구즈의 대표 데이비드 스티어는 쇼핑몰 설립 당시, 수익 창출 방안 등을 담은 25쪽 짜리 비즈니스 플랜을 부모에게 보여 줬다.
결국 스티어의 부모는 일부 자금을 지원해 주었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건물에 사무실 공간도 내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자금은 철저히 사업의 성공 여부에 따라 지원했다. 사업이 성장하자 스티어의 부모는 수천 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경영상의 결정에도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스티어는 “다른 가족들은 저녁 시간이면 낚시 여행에 관한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우리 가족은 늘 사업 얘기만 한다”고 말했다.
사업의 종자돈을 지원하는 경우는 자녀도 함께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놀라 브랜드인 베어 네이키드를 창업한 그렌단 시노트는 2002년 회사를 시작할 당시, 공동창업자와 각각 현금 3,500달러를 내고 2만 달러는 카드대출로 끌어모은 뒤 부족한 자금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부탁했다.
당시 가족과 지인들에게 총 75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회사는 후에 켈로그에게 매각됐다.
시노트는 “우리도 전 재산을 쏟아부었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창업자보다 투자자가 더 많은 리스크를 감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조건을 내걸어라
만약 자녀를 도와주기로 했다면 그 다음 문제는 돈을 그냥 줄 것인지, 아니면 빌려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성인 자녀 키우는 방법(How to Raise Your Adult Children)’의 공동저자이자 심리치료사 수잔 엔데는 그냥 증여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자녀에게 간 돈은 다시 받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빌려주지 않고 증여하면 자녀들은 돈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되므로 보다 독립적이 된다.
하지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조건은 붙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자녀의 사업자금을 대주는 경우 지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업이 잘 되면 부모도 좋고 자녀도 좋고, 사업이 잘 안 되면 자녀에게 빚 부담을 안겨주지 않을 수 있다.
2012년 현재 부모는 자녀에게 최대 1만3,000달러를 비과세로 증여 할 수 있다. 2013년에는 그 한도가 1만4,000달러로 상향조정된다. 등록금 역시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들이 돈을 빌려주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데다 자녀들의 독립심도 유지된다는 생각에서다.
빌려주는 경우 조건을 명시한 대출 서류를 작성하라
상대적으로 간단한 대출이라면 법률 서비스 홈페이지에서 표준 양식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고 콘월은 말한다. 보다 복잡한 경우라면 변호사를 고용할 것.
일반적으로 대출금리는 미 국세청(IRS)의 연방금리 수준을 상회하는 선에서 정해진다. 만약 IRS조사에서 대출금리가 공식이자율보다 낮은 것으로 밝혀지면, IRS는 이자액 차이분을 당신의 소득세에 반영할 수 있다.
실행가능한 대출상환 스케줄을 작성하라
소규모 사업 자금으로 대출을 해주는 경우 상환 계획은 사업체 수익에 따라 작성해야 한다고 콘월은 조언한다. 학비를 빌려주는 경우는 졸업 후 수입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다른 조건을 추가할 수도 있다. 가령 자녀가 학업을 중도에 그만둔다거나 학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대출금을 당장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 등을 명시하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사업에 실패할 확률이 높고, 석사학위 졸업자들의 취업 시장도 치열한 만큼 자녀들이 대출금을 못 갚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대출을 상환하지 못 할 경우 발생할 상황에 대해 가족간에 진솔한 대화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베어 네이키드의 시노트는 “자녀들에게 ‘일이 잘못되더라도 우리 관계가 나빠지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해 줄 것”을 제안하면서 “사업은 일시적인 반면 가족은 영원하다”면서 가족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