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8일 (일) 대회 당일.
대회 출발이 아침 9시지만 7시에 단체로 호텔에서 출발한다기에 6시부터 아침 먹고 대회 준비를 합니다.
한국에서라면 보통 풀 코스 전에 인절미와 보충제를 먹는데, 이 곳에선 호텔 식당에서 밥과 빵으로 간단히(?) 배를 채웁니다.
7시. 사가현 관계자 분들과 택시를 타고 사가현 육상 경기장으로.
관객석이 꽤 많은 종합 운동장인데, 자원봉사자들 교육이 한창입니다. 특이하게 한쪽에서는 거대한 애드벌룬을 준비하고 있어서 물어봤더니, 사가현이 애드벌룬 축제로 유명하다고.. 해서 큰 행사때는 애드벌룬을 띄운다고 합니다.
이번 대회 초청된 한,중 선수단과 사가현 관계자분들 단체 사진 촬영 후 슬슬 달릴 준비를 합니다.
언어가 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주최측에서 통역 요원들 준비에 신경을 많이 쓰셨습니다. 한국 선수단의 경우, 공항에 마중 나왔던 한국인 유학생 (메인 통역)과 한국어를 전공한다는 일본인 여학생 (처음엔 한국 아가씨인줄, 키가 무척 커서 물어봤더니 배구 선수였다고)에다 이 날은 한국어에 영어도 무척 잘 하는 자원 봉사자가 나왔습니다. 통역 뿐만 아니라 가방도 맡아주고, 기록증도 찾아주고... 여러가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8시 30분 무렵, 대회장 옆 도로, 출발지로 이동합니다.
이번 대회 참가자는 풀코스 8500명, 10km 1500명 총 1만명. 도 단위로 치르는 대회치곤 무척 참가자가 많습니다. 참가자가 많은 만큼 동마처럼 출발 그룹을 나누는데, 대회 신청시 제출하는 이전 대회 기록증으로 그룹이 배정됩니다. 남자 기준 3시간 30분 미만은 맨 앞 줄 "S" 그룹. 그 후로 기록순대로 A,B,C... 배정이 되는데 마성민 선수와 난 모두 A 그룹 배정. 마성민 선수야 당연히 "S" 그룹이고 나도 당시엔(라떼는 말야~ㅋㅋ) 나름 330 기록이 있었는데, 초청 선수들이라 A 그룹에 배정된 듯.
출발전 한국 대회랑 다른 점 하나가 있었는데...
마성민 선수와 함께 A 그룹을 찾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 어렵게 찾아 들어가는데, 각 그룹 주변에 철제 펜스가 처져 있어 중간에 끼어 들어갈 수 없는 상황. 할 수 없이 A 그룹 후미로 들어가 합류. 나야 기록에 큰 상관 없지만 마선수는 제대로 된 기록이 나오려면 가능한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 유리한지라 함께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집니다. 주변에서 뭐라 웅성대는데 일본어를 이해 못해도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 나중에 알고 보니, 그룹 내 출발 순서는 순전히 선착순. 그룹 선두에서 출발하고 싶은 사람은 그만큼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건데, 늦게 도착한 우리가 본의 아닌 새치기(?)를 하고 있었으니 분위기가 싸~해질수 밖에.^^;;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질 못하고 그룹 중간에서 대기 합니다. 대기 중 펜스 너머 화장실이 보이길래 잠깐 다녀올까 했는데, 그것도 안된다네요...ㅡ.ㅡ** 나중에 보니 펜스를 넘어갈 경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그룹 맨 뒤로 가는 듯. ^^;; 암튼 아주 좋은(?) 경험을 합니다. ㅎㅎ 암튼 9시 정각에 출발~!
육상경기장 옆 도로에서 사가 현청 방향으로~
2차선 도로임에도 참가 인원이 많아 초반 병목 현상이... 욕심내지 않고 5분 페이스를 유지, 조금씩 페이스를 올립니다. 오늘 목표는 대략 3시간 40분대. 사실 한 달 전 코스가 무지 빡센 정읍에서 3시간 32분 나왔으니 평탄한 이 대회는 330 욕심도 없진 않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건 대회 중간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간다고... 암튼 마음을 비우고 처음 달려보는 일본 시가지와 대회 분위기를 즐기며 무리에 휩쓸려 갑니다.
서울 동마처럼 시내 중심가 교통을 통제하고 마라톤 대회를 위해 오롯이 내준 느낌입니다. 사가현청(도청)을 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대략 10km. 양 길가로 응원 나온 시민들로 가득,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 입니다. 참가자들도 남녀노소 연령도 다양, 복장도 다양. 특히 우리나라에 비해 20~30대 젊은 주자들과 여성 주자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10km 통과: 48:41
계획보단 약간 빠르긴 하지만, 몸 가는데로 따라갑니다. 시내를 빠져나와 이제 도시 외곽 논밭 사이의 도로로 접어 드는데, 아쉽게도 길가의 벚꽃들은 아직 분홍 꽃봉오리만. 대신 군데군데 노란 유채꽃들이 초록 들판과 잘 어울립니다. 꽃들이 만개하면 대회 이름에 어울리는 멋진 코스가 될 듯. 경기 초반이라 몸도 가볍고 마음도 즐거운데,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점점 오르는 기온으로 벌써 반바지까지 흥건해지기 시작. 벌써 젖기 시작하면 안되는데...^^;;
20km 통과: 1:38:59
어제 마신 맥주 때문인지, 더운 날씨 때문인지 심한 갈증으로 물을 자주, 많이 마시게 됩니다. 급수대는 대략 2.5km 마다 비치. 음료수를 준비해 응원 나온 주민들도 간간히 보입니다. 20km 통과 기록은 나쁘지 않은데, 갈수록 페이스 유지하기가 힘들어짐이 느껴집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많이 마신 물 때문에 화장실도 급해지고...;; 20km 막 지나 간이 화장실이 보이길래 잠깐 들르고 다시 주로로 복귀하는데.... 페이스가 5분 이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늦어지더니 22km 지점이였나, 요시노가리 공원 채 못미처 걷고 맙니다.
그 후론 걷.뛰. 요시노가리 공원에 접어드니 가족 단위 놀러온 관광객들이 주로 양 옆으로 가득합니다.
"간바레~!!" "화이또!!" 손에 닿을 듯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주는데, 창피해서 걷지도, 그렇다고 뛰지도 못하는 상황에 얼굴은 오만상 찌푸리고...ㅋㅋ 간신히 공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25km 지점 이후로는 조금 회복이 되었는지, 느리나마 쉬지 않고 뛰어집니다. 다만 코스는 여전히 풍경 변화가 적은 시골길이라 밋밋하고 지루합니다. 30km 지점까지 1키로 1키로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그래도 마라톤이라는 게 계속 뛰다 보면 거리가 줄긴 주나 봅니다.
30km 통과: 2:40:43
330은 물 건너 간지 오래고, 이제 Sub-4라도 함 해보자... 싶은 심정으로 지친 다리를 옮겨 봅니다. 사실 출발전 통역 요원이 골인 할때 사진 찍어준다며 몇 시쯤 들어올거 같냐고 묻길래, 늦어도 4시간 안에는 들어 올 거라 얘기 했는데, 그마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맞추려면 6분 페이스엔 뛰어야 하는데, 이젠 호흡도 엉망에다 다리에 힘도 빠지고, 다시 걷다, 뛰다를 반복합니다.
36km 지점을 들어서니 길가의 응원객들이 많아지는 걸 보니, 이제 시내로 접어드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사가시를 가로지르는 타후세 강의 강둑길에 들어섭니다. 오른쪽으론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아름드리 벚나무들과 왼쪽에는 아기자기한 주택들, 그리고 그 앞엔 그 곳 주민인 듯 응원단들이 바구니와 간이 탁자 위에 간식들과 마실 것들을 바리바리 준비한 채 지치고 지친 주자들을 반깁니다.
응원단들의 열렬한 응원과 강변의 시원한 나무 그늘 덕분에 마지막 남은 힘을 내어 보는데, 그나마 얼마 못가 다시 걷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손으로 "툭" 치고 지나갑니다. 당연히 아는 사람은 아니였을테고....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는 격려의 메세지였을지, 아님 마라톤에서 걷는 건 반칙이야 라는 힐난의 제스처였을까... (그러고 보니, 레이스 후반이였음에도 주변에 걷는 이가 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의미가 전자인지 후자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그 "툭" 이후부터 골인까지 한 번도 걷지 않고 달렸습니다.
골인 3:54:16.
간신히 써브-4 ^^;; 약속대로 통역 요원이 나와서 기다립니다. 골인 기념 사진 한 장. 사가 대회는 신기하게도 완주자에게 커다란 얼음 주머니를 하나씩 나눠 줍니다. 무릎 마사지용인듯 한데, 굿 아이디어입니다. 무릎을 식히고 있으려니, 통역 분(여러모로 도와주셨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이 고맙게도 기록증과 도시락을 가져다 줍니다. 도시락은 완주자들에게 다 주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초청 선수단 점심용으로 제공되는 듯.
대회가 끝나고 숙소로 복귀, 샤워하고 저녁 먹으러 갑니다~!! 장소는 시내 호프집인데, 출장 뷔페식으로 음식을 준비해 두셨네요~ 음식은 눈에 안 들어오고, 오직 생맥주만! 진정한 삐루 맛집입니다~ㅎㅎ
갑자기 드레스 입은 공주님이 등장하나 싶더니, 첫 날 각국 상견례때 같이 사진 찍은 중국 여학생입니다. 오늘 대회에서 2시 53분대로 여자부 2위고 하네요 ㅎㄷㄷ.. 사진 속 옆 친구는 2시간 54분으로 3위. (이번 대회 여자부 1위는 일본 아마추어 선수라는데 2시간 33분. 지방 대회 여자부 기록치곤 대단합니다.)
한국인 선수단 테이블엔 그 동안 함께 도움주신 일본 통역 요원들이 합석, 다들 한국어(와 한국 술문화)에 익숙해서인지 화기 애애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저녁 후 다 함께 이동한 곳은 사가현청 전망대 "성공의 수족관". 일반 관광객들에겐 문을 닫는 일요일 늦은 저녁인데, 이번 초청단을 위해 특별히 문을 열었다고 하네요. 현청 맨 윗층으로 통유리 창을 통해 사가시 야경을 360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인데, 더 멋진 건 그 통유리 창에 3D 영상을 투사하여 마치 형형 색색 물고기들이 사가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멋진 전망대 구경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저녁 행사"는 마무리 되었지만, 한국팀에겐 이제 겨우 "1차"가 끝났을 뿐이고...ㅎㅎ 의기투합한 몇몇 일본인 통역 친구들과 함께 양갈비집에서 2차. 다음 차는 자기네가 산다고 인근 선술집에서 3차, 급기야 노래방에서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는 한일 대항전ㅋ,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잔 더... 희미한 기억으론 새벽 4시쯤 숙소에 복귀. 사가에서의 마지막 밤을 하얗게 불태웠습니다~ㅎ
일정 마지막 날인 월요일.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침 일찍 주최측 버스를 타고, 공항 가는 길 인근의 아웃렛으로 이동. 간단한 쇼핑을 하고 점심은 규슈 지방에서 유명한 돈코츠 라면집에서.
오후 비행기를 타고, 김해 공항으로 귀국. 즐거운 3박 4일간의 일본 마라톤 여행을 마쳤습니다.
첫 해외 풀코스를 좀더 열심히 뛰지 못한게 못내 아쉽긴 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도쿄 대회는 3번이나 신청했지만 추첨에서 모두 낙방. 이 놈의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한일 관계가 다시 예전처럼 좋아진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꼭 도쿄가 아니더라도... 오사카 대회도 좋고 벳부-오이타 대회 코스도 멋지다고 하니~
같이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