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지방자치가 22주년을 맞았다.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여 지역주민의 만족을 극대화한다는 취지의 제도다. 하지만 지방자치의 ‘지역주민 만족 극대화’는 지역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라는 부작용을 만들었다. 위험 또는 혐오 시설을 거부하는 님비 현상과 수익성 있는 사업만 내 지방에 유치하겠다는 핌피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교과서에선 이 같은 지역이기주의를 어떻게 다룰까? 사회제도의 정의로움 그리고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인 배려를 통해 님비와 핌피 현상을 차단할 수 있을지 정리해봤다.
취재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eil.com
도움말 김규태 교사(경기 이목중학교)·진해숙 원장(가온국어) 자료 삼성경제연구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지역이기주의’가 많은 사회 갈등비용을 낳고 있다.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지역 간 대립을 극복하자마자 건설 밑그림을 그릴 기본 계획 수립 용역 착수가 시작되면서 소음 피해 우려가 제기돼 사업 자체에 브레이크가 걸릴 위기에 처했다. 과거 용산 기지의 평택 이전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지연 같은 사회 갈등이 반복되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어 국력 손실이 우려된다는 비난도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지수에서 대한민국의 지난해 ‘사회적 결속 점수’가 2012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의 갈등으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삼성경제연구소는 2013년에 사회 갈등 지수가 10% 하락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1% 증가하고, 한국의 사회 갈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이 되면 1인당 GDP가 27% 늘어나 약 5천 달러 이상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사회적 결속력 약화는 회복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경기 이목중 김규태 교사는 “님비나 핌피 현상 같은 극단적 대립을 먼저 겪은 선진국들은 청소년기 때부터 의사 결정 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중학교 도덕과 사회 교과에도 사회제도 정의를 통해 일부에게만 유리한 제도나 결정은 정의롭지 못하며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할 때 사회 갈등이 해소된다고 실려 있다. 김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지역 간 이기주의를 유발하는 첨예만 사건에만 집중해 토론을 유도하기보다는 사회적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도덕적 잣대가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1987년 3월 초, 미국 화물선 모브로호는 뉴욕 근교 아이슬립항에서 1,168t의 쓰레기를 싣고 출항했다. 아이슬립 주민이 배출한 쓰레기였지만 버릴 곳이 마땅치 않자 받아줄 곳을 찾아 무작정 항해에 나선 것.
플로리다, 텍사스 등 남부 6개 주를 전전했으나 가는 곳마다 ‘No’라는 차가운 대답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남미로 방향을 돌려 멕시코와 바하마까지 갔지만 역시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쓰레기는 6개월 동안 3개국, 6천 마일을 떠도는 항해 끝에 아이슬립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님비(NIMBY)라는 단어는 이때 생겨났다. 우‘ 리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Not In My Back Yard’에서 나온 말이다. 모브로호 사건 이후 님비는 ‘혐오 시설 거부’라는 사회현상을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고, 핌피(PIMFY)는 님비의 반대 개념으로 이득이 되는 시설을 앞장서 유치하겠다는 의미다. 즉 ‘우리 앞마당에 좋은 시설을 지어달라(Please In My Front Yard)’고 요구하는 현상이다.
미국은 아이슬립 사건을 계기로 ‘공평 부담’이란 님비 대책을 만들었다. 특정 지역에 혐오시설을 세울 때 구성원 모두가 공평하게 부담한다는 원칙으로 혐오 시설이 들어설 곳의 주민에게는 반드시 상응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이는 국가·사회적 제도나 결정이 일부에게만 유리해선 안 된다는 교과서 내용과 일치한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바람직한 가치인 ‘공동선’이 실천될 때 님비나 핌피 현상이 정의롭게 귀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α 좀 더 생각하기!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지역이기주의 사례를 통해 님비와 핌피 현상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여러 사례 가운데 토론 주제를 하나 고르고 친구나 부모, 교사 등과 찬성과 반대 관점에서 주장을 펼쳐본다.
님비 현상
■ 북한남동 공원 내 어린이집 건립 반대
■ 신고리 5~6호 건설 반대
■ 고양시 장항동 행복주택 건립 반대
■ 안양교도소 이전 반대
■ 함양 문정댐 건설 반대
CASE STUDY 한남동은 어린이집이 부족한 대표적인 지역. 용산구는 한남동 일대에 어린이집을 지을 수 있는 구청 소유의 땅이 없어서 공원 안에 짓기로 결정. 주민들은 산책로로 쓰는 공원에 어린이집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 중이다. 응봉근린공원지키기 주민연대 한 관계자는 “어린이가 국가의 미래인 건 맞지만, 현재 한남동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장년층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안 된다”며 “안 그래도 도로가 좁은 공원에 어린이집이 생기면 이 일대 교통난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 어린이집은 진정 혐오 시설일까?
핌피 현상
■ 영남권 신공항 유치
■ 대구공항 이전에 따라 공항 유치
■ 호남선 KTX 2단계 무인 공항 경유
■ 국립철도박물관 유치
■ 서울~세종 고속도로 구간 청주 통과 문제
CASE STUDY 2016년에는 동남권 신공항 부지 선정으로 정치권과 해당 지역의 극심한 갈등과 반목이 발생했다. 해당 지역에선 공사비 5조~10조 원에 이르는 신공항을 따낼 경우 일자리 창출과 향후 공항 운영에 따른 지역 발전이 예상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신공항 같은 국책 사업은 100 % 국고로 지원되는 데다 향후 운영 과정에서 적자가 나도 지자체로선 책임질 일이 전혀 없다. 일단 따놓기만 하면 ‘로또’라는 생각이 과열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 과연 공항을 유치하면 해당 지역에 좋은 일만 생길까?
주민 반대 때문에 필요한 시설을 짓지 못하는 님비 현상의 이면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예도 있다. 정부 정책을 따르려는 주민이 대다수여도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님비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의견도 있다.
가온국어의 진해숙 원장은 “중학생들에게 님비 현상을 설명하면 열에 아홉은 무작정 이기심이 만든 나쁜 행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네가 만약 혐오 시설이 들어서는 곳에 사는 주민이라면 어떻겠냐?’ 물으면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전한다. 진 원장은 이런 사안에 대해 정답을 유도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도시 문제의 해결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무엇보다 하수 처리장이나 쓰레기 소각장, 화장터, 핵 폐기물 처리장 등 사람들이 꺼리는 시설물이 늘고 이런 시설로 인해 생활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부분이 사실이라는 점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김 원장은 “님비 현상을 무조건 이기적이고 나쁘게만 볼 수는 없으니 이해관계 당사자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학생들끼리 아이디어 배틀을 시도해보라”고 권한다.
+α 좀 더 생각하기!
김 원장은 “님비 현상을 무조건 이기적이고 나쁘게만 볼 수는 없으니 이해관계 당사자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학생들끼리 아이디어 배틀을 시도해보라”고 권한다.
■ 생각 주제 주택가에 지구대 이전 반대
■ 해결 내용 2014년 강남구 대치동 주택가에 경찰 지구대가 이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근 지역 주민이 반대에 나섰다. 경찰관들이 지역 주민을 일대일로 만나 설득하며 찬성 의견을 이끌었다. 경찰 측은 주민 친화적인 지구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생각 포인트 공무원이 국책이나 정부 사업이 중요하니 무조건 밀어붙이자는 태도에서 벗어나 주민을 설득한 좋은 사례. 주민 관점에서의 혐오 시설인 경찰지구대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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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주제 새로운 님비 등장
■ 해결 내용 우리보다 먼저 님비를 겪은 미국은 님비를 ‘새로운 님비’로 해결하고 있다. 새로운 님비란 주민들의 편을 가른다는 뜻이 아닌 'Now I Must Be Involved (나도 이제 참여해야만 한다)’의 줄임말로, 정부가 기피 시설을 지을 대지를 선정하는 절차에 주민들을 적극 참여시킨다는 뜻이다.
■ 생각 포인트 님비 갈등은 “왜 하필 우리 동네냐”라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주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 결과가 자기에게 불리해도 쉽게 반발하지 못한다는 게 새로운 님비의 이론이다. 정책 결정 참여에 소극적인 주민들을 어떻게 회의 탁자로 불어올 수 있을지 논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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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주제 공공성 각인하는 교육
■ 해결 내용 영국은 2002년부터 중·고교 과정에 ‘시민교육’이라는 과목을 신설해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가르친다. 시민교육 과목은 영어·수학처럼 반드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도 이와 유사한 ‘인성시민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했다. 캐나다 교원 단체인 캐나다교원연합은 학생들이 지역사회와 공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를 실천케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 생각 포인트 학교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선진 국가의 교육정책은 우리 나라 현실과 비교해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도덕이라는 교과목 안에서 시민의식을 강조한 단원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으로 정리됐는지 살펴보자.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