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The Observers 2010-6-14 (번역) 크메르의 세계
[동행취재기] 캄보디아-베트남 국경으로 떠나는 머나먼 여행
Cambodian opposition takes on plight of border villages lost to Vietnam
사진: Philip Skoczkowski.
캄보디아-베트남 국경 현안은 현재까지 장장 25년을 끌고오는 문제이다. 최근 공개된 지도에 따르면, 수십명의 캄보디아 농민들이 잘못된 국경확정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캄보디아 야당이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다 저지당한 사건이 있던 날,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우리 업저버들(외부 관찰자) 중 1명도 함께 동행하여 따라가보았다. 하지만 이 보도문은 "프랑스 24"(FRANCE 24)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이것은 프놈펜에 본부를 둔 한 여성권익보호 NGO의 빅토리아 페티장(Victoria Petitjean: Victo)이 보내온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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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국왕은 일부 섬들만 제외하고는 그 국경선을 명료하게 확정했고, 이는 유엔(UN)으로부터도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1979년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을 몰아낸다며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은, 캄보디아-베트남 국경문제는 프랑스 세력의 철수 이후 한번도 확정된 적이 없다면서 기존의 상황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 새로 수립된 정권(캄푸치아 인민공화국: PRK)은 현재의 캄보디아 총리인 훈 센(Hun Sen) 등을 중심인물로 하여,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캄보디아를 실효적으로 장악한 정권이었다. 이 정권은 1985년에 조인된 협정을 비롯하여 자신들의 동맹국인 베트남과 국경에 관한 여러 조약들을 체결했다.
하지만 PRK 정권은 외세의 위성정권으로 여겨져서 국제적 공인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1991년 <파리평화협정>이 조인되면서, 1985년 조인된 협정을 포함하여 베트남과 체결된 모든 조약들이 파기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훈센 총리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이들과 베트남 사이의 유대관계 역시 건재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05년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여, 다시금 1985년 조약에서 승인됐던 국경확정에 관한 내용들을 재확인했다.
2005년의 협정은 "캄보디아 국회"의 비준을 거쳐 캄보디아 국왕의 승인절차까지 마쳐 현재 효력을 발생시킨 상태이다. 하지만 이 조약은 베트남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토지 전부 혹은 일부를 상실했던 것이다.
지난 5년간 캄보디아의 야당인 "삼랑시당"(Sam Rainsy Party: SRP)은 많은 주민들로부터 토지가 베트남으로 수용됐다는 불만들을 접수했다. 그리하여 SRP는 베트남 국경의 임시 국경표식 설치상황에 관한 조사에 착수하여, 2005년 조인된 조약에 따라 실제로 캄보디아 영토를 잠식당한 사실이 있는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주 SRP 조사단이 따께우(Takeo) 도의 현장으로 실사를 나간 일이다.
야당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헹 삼린(Heng Samrin) 국회의장은 SRP에 서한을 보내, "허용할 수 없으며 책임질 수도 없다"고 밝혔고, 캄보디아 정부 역시 이를 저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SRP 대변인인 유임 소완(Yim Sovann) 의원은 6월 2일 성명서를 발표하여, "우리는 국회의원들이고, 우리에게는 수행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정부의 움직임을 감시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유임 소완 의원은 또한 이번 방문은 평화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단지 국경을 방문하는 일 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SRP 국회의원 22명은 6월 3일 국내외 보도진들과 함께 예정대로 방문을 강행했다. 이들은 이른 아침에 SRP 당사에 모여서 출발했다. 차량 10여대를 이용해 국경으로 이동하면서 이들의 행렬은 점점 더 불어났다. 도중에서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이 합류하면서 약 100명의 인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국경 접근은 저지를 당했다. 조사단이 국경으로 접근하고자 하자, 처음에는 경찰이 막아섰고, 이후 지역주민들 중 친정부 성향의 사람들이 저지에 합류했다.
맨 처음에는 경찰들이 나서서 이 행렬에 포함된 일부 오토바이들이 교통위반을 했다고 구금했다. 하지만 경찰은 더 이상 자신들의 단속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없었다. 그리하여 행렬은 다시금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경표식 270번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약 3~4 km 떨어진 쁘레이 윳까(Prey Yuthka) 마을에 도착했을 때, 또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촌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트럭을 이용하여 교량을 가로막아 행렬의 진입을 방해하면서, 이러한 조사활동이 국회의원들의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역 경찰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면서도, 캄보디아 주권을 수호할 조사활동 의무를 다하기로 마음먹은 SRP 국회의원들은 마침내 또다른 길을 찾아냈다. 조사단 일행 중 한 사람이 무릎 깊이의 강을 걸어서 건너자 일행 전체가 그 뒤를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조사단은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조사단이 2 km 정도를 도보로 행진한 후 안짠(An Chan) 마을에 도착했을 때, 다시금 마지막인 3번째 저지선을 만났다. 이곳에는 경찰과 연관을 지닌 더 많은 주민들이 도로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이들은 또다시 SRP 조사단의 진행을 방해했다. 그들은 국경표식 270번은 임시로 설치된 것이며, 확정되거나 변화가 있을 때까지 절대로 손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임 소완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고 조사단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들이 5시간 동안 행진하면서 경찰 및 여러 방해활동들과 투쟁했다고 강조했다. 유임 소완 의원은 캄보디아 정부가 이 시각까지도 자신들의 진행을 방해함으로써, 국경표식 설치작업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캄보디아의 주권 자체에 대한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양측은 몇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여기서는 논쟁과 토론도 벌어졌다. SRP 조사단은 태국 국경에 대한 정부측의 엄격한 자세에 대해 야당 역시 지지한다면서, 동일한 원칙이 베트남 국경에 대해서도 지켜져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SRP 조사단은 이후 다시금 국경표식을 방문할 것이라 발표하고, 이러한 방문이 캄보디아 국민들을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캄보디아 정부의 국경문제 관련 위원회에 대해, 현재 진행되는 국경확정 작업에 대해 질의할 것이라 말했다.
SRP 조사단이 경찰이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방해를 받기는 처음있는 일이다. SRP 조사단은 주민들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SRP 조사단은 돌아오는 길에서 또다른 몇몇 안짠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번 조사단 방문을 제지한 주민들이 모두 정부측으로부터 사례금을 받았거나 일당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말해주었다.
또한 주민들 중 2명은 자신들의 논이 국경표지로 인해 잠식을 당했고, 만일 그대로 확정될 경우 자신들이 2헥타르(약 6,000평)의 농경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 경우 자신들의 생계가 곤란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20년 이상 농사를 지어온 이 땅에 대한 소유권 인정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 호소했다. 이들 2명 중 1명은 도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프놈펜의 안전한 곳으로 피했으면 하고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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