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푸이스(Tepuis)는 지명이 아닙니다. 남아메리카 북쪽 연안에 자리잡은 나라인 베네수엘라(Venezuela)의 기아나 고원지대(Guiana Highlands)에 있는 넓은 탁자 모양의 특이한 형태의 봉우리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베네수엘라와 주변국가들
20억년전에 융기한 지각이 침식되면서, 화강암이나 사암 등의 단단한 부위는 침식에 저항하여 넓고 편평한 산 정상을 형성하게 되고, 침식이 진행된 부분은 낮은 저지대를 형성하면서 산의 옆면이 깎아지른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탁자와 같은 매우 특이한 형태를 가진 봉우리가 되었습니다. 이를 그 지역 인디언인 페몬(Pemon)족의 말로 '산(mountain)' 또는 '언덕(hill)'이라는 뜻을 가진 테푸이스라고 부릅니다.
특정한 한 봉우리만을 지칭할 때는 '테푸이(Tepui, Tepuy)'라고 하고 일반적으로는 복수형을 사용하여 '테푸이스(Tepuis)'라고 합니다.
테푸이
카나이마 라군에서 바라본 테푸이스
테푸이스는 생긴 모양이 탁자를 닮았다고 하여 영어권에서는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s)이라고 부릅니다.
기아나 고원지대(Guiana Highlands)
기아나 고원지대는 콜롬비아(Colombia) 동부에서부터 베네수엘라 남부 및 가이아나(Guyana)에 걸쳐있는 약 120만평방킬로미터의 고지대로, 브라질(Brazil)과의 국경을 이루며 '파리마 산맥(Sierra Parima)', '파카라이마 산맥(Sierra Pacaraima)', '아카라이 산맥(Sierra Acarai)'을 포함하는 구릉성 산지입니다.
기아나 고원지대의 위치
이 지역에 특징적으로 발달된 테푸이스와 우기만 되면 테푸이스에서 떨어지는 이름도 없는 폭포들, 그리고 저지대의 사바나와 정글지대들이 어울려서 마치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원시 자연환경을 이룹니다.
테푸이스와 저지대의 차이는 1000~2000미터에 이르며, 가장 높은 테푸이스는 파카라이마 산맥에 속하는 로라이마 테푸이(Roraima Tepui, 혹은 로라이마 산(Monte Roraima))로 해발 2772미터에 이릅니다. 로라이마 테푸이의 서쪽에 거의 맞닿아 있는 쿠케난 테푸이(Kukenan Tepui)도 로라이마 보다는 약간 작지만 2650미터에 이르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앙헬 폭포(Solta Angel)가 있는 아우얀 테푸이(Auyan Tepuy) 등 가이나 고원지대에는 이러한 크고 작은 테푸이스가 100개 넘게 존재합니다.
수직으로 깎인 절벽에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테푸이스 정상은 공룡시대부터 기슭의 세계와는 단절된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개의 대륙이 하나로 붙어 있던 곤드와나 대륙 때부터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동식물들이 생식하고 있습니다. 기아나고지의 최고봉인 로라이마산의 지질이나 생물에 관한 조사는 거의 끝난 상태이지만, 기아나 고지 전체로 보아서는 아직도 조사되지 않은 테푸이스가 다수 존재하며, 여기에 미지의 생물이 살고 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아나 고원지대의 테푸이스 분포도 2000m 이상의 테푸이스가 상당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테푸이스의 모식도
기아나 고원지대의 산지에는 열대우림이 무성하고, 베네수엘라 남부에서 콜롬비아에 걸쳐 전개되는 사바나의 대평원과 함께 대부분이 미개발지로 남아 있으며, 아마존(Amazon) 강과 오리노코(Orinoco) 강을 비롯한 강변 지역에는 아직도 미개종족의 취락이 있습니다.
기아나 고원지대에는 고원지대의 중심부에 있는 가장 유명한 카나이마 국립공원(Canaima National Park)을 비롯하여 파리마 산맥 주변의 세계에서 5번째로 큰 파리마-타피라페코 국립공원(Parima Tapirapeco National Park) 등 여러개의 크고 작은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국립공원들
좀 더 자세한 이해를 위해 기아나 고원지대를 형성하는 산맥들을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기아나 고원지대의 산맥과 강
파리마 산맥(Sierra Parima)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의 국경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뻗은 산맥입니다. 기아나 고지의 남쪽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의 로라이마(Roraima) 직할지의 경계지대에 위치하며, 약 320킬로미터 뻗어 있습니다.
이 산맥의 서쪽 비탈면은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Orinoco)강 상류의 발원지이고, 동쪽 비탈면은 브라질의 아마존(Amazone)강의 대지류인 브랑코(Branco)강 상류 서쪽 지류의 발원지여서 두 수계의 분수령이 됩니다.
고생대 선캄브리아기의 암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해발고도 1000∼1400미터로 고원상의 지형을 이루는데, 아직도 탐사하지 못한 곳이 많다고 합니다.
북단에는 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카란사카 산(Caransaca, 1640m)이 있고 남단에는 레돈도 산(redondo)이 솟아 있습니다. 북동부에서 파카라이마 산맥과 연결됩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주변에는 3만9천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큰 파리마-타피라페코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파카라이마 산맥(Sierra Pacaraima)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그리고 가이아나 세 나라에 걸쳐있는 길이 약 800킬로미터의 산맥입니다. 파리나 산맥과 더불어 오리노코 강 줄기와 아마존 강 줄기를 갈라놓으며, 기아나 고지를 흐르는 수 많은 하천과 오리노코 강 수계 및 아마존 강 수계의 발원지입니다.
기아나 고원지대에서 가장 높은 로라이마 산(Monte Roraima)이 이 산맥에 속해있습니다.
아카라이산맥(Sierra Acarai)
가이아나 남부와 브라질 파라주 국경에 걸쳐 있는 산맥입니다. 해발고도는 600미터로 낮은 편이며, 길이는 동서 방향으로 약 130킬로미터 뻗어 있고, 파카라이마산맥과 서쪽으로 인접해 있습니다.
'Acarahy' 또는 'Akarai'로도 표기합니다. 포르투갈어로는 '세라 아카라이'라고 합니다.
아마존강의 북쪽 분수계를 이루며, 전체 지역은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습니다. 1970년 후반에 인공위성으로 지도가 표기되었을 만큼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미개지입니다.
아마존 강과 오리노코 강 사이에 있는, 가이아나에서는 가장 큰 강인 에세퀴보(Essequibo) 강이 이 산맥에서 발원합니다. 이 강은 1010킬로미터를 초원지대와 숲을 지나 북쪽으로 흐르다가 가이아나 국토의 중앙부를 북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유입됩니다.
로라이마 산(Monte Roraima) (로라이마 테푸이(Roraima Tepui))
앞서 설명한 대로 기아나 고지의 파카라이마 산맥의 최고봉으로 해발 2772미터이며 베네수엘라, 브라질, 가이아나 삼국의 국경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대한 테푸이로 정상이 편평하고 남사면은 거의 수직인 절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로라이마(roraima)'는 인근에 사는 인디언인 페몬족의 말로 '물의 어머니(Mother of Water)'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의 편평한 정상부위가 물이 스며들지 않는 단단한 사암지대이기 때문에 우기 때마다 수직의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수 많은 이름 없는 폭포들을 보면서 아마도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로라이마 산이 인근의 수 많은 하천과 강들의 발원지인 점을 볼 때 지극히 어울리는 이름인것 같습니다.
로라이마 테푸이의 수직 절벽
항공기에서 본 로라이마 테푸이의 모습
구름에 쌓인 로라이마 테푸이
1869년에는 이 산을 중심으로 1160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로라이마산 국립공원이 지정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아마존 강과 아레노소 강의 열대림을 경계짓는 대 사바나(그란 사바나, Gran Sabana)에 둘러싸인 광대한 고원입니다.
사바나 지역과 테푸이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은 그의 작품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arld)'를 이 산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1884년에 첫 등정이 이루어졌으며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습니다.
다음은 로라이마 테푸이를 등반했던 한 등반가의 글과 사진입니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다녀온것 같은 느낌..." "...마법에 걸린것 같은..." "...시간이 멈춰버린 곳..." 이 산을 올랐던 사람들에게 흔히 듣는 소리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내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첫날은 싼타엘레나에서 로라이마산에 가장 근접한 원주민 마을 파라이테푸이까지 트럭으로 이동후 첫번째 캠프까지 하이킹. 둘째날은 쿠케난(Kukenan)강을 건너 베이스캠프로 이동. (강의 물살이 얼마나 센가에 따라 하루나 이틀 추가소요될수 있음) 셋째날은 로라이마산 정상으로. 넷째날은 산 정상에서 보내고, 다섯째날에 베이스캠프를 거쳐 첫번째 캠프로 내려감. 마지막날은 다시 파라이테푸이를 거쳐 싼타엘레나로.
특별한 등반기술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쉬운 코스는 절대 아니다. 특히 우기에는... 평소에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별 무리가 없을듯.
쿠케난강을 건너는 광경. 돌아올 때에는 폭우로 강의 물살이 너무 세서 카누를 타야했음.
그란 사바나의 언덕너머로 로라이마산의 암벽이 보인다.
잠시 쉬는중. 오른쪽에는 구름에 휩싸인 쿠케난산이 보인다. 로라이마산 서쪽에 거의 맞닿아 있는 쿠케난산은 로라이마산보다 약간 낮지만 특별한 등반루트가 없기때문에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리고 암벽등반 경험도 필요로 한다.
구름속의 로라이마산. 위로 올라가려면 앞에 보이는 폭포 두개를 가로질러야 한다.
우기엔 이렇게 암벽을 타고 여러개 내지는 수십개의 폭포가 사방에서 흘러내린다. 그에 비해 건기에는 단 한개의 폭포도 볼수 없다고 하니 조금 몸이 고생되기는 해도 우기에 가는것이 더 기억에 남을것 같다.
고요함으로 뒤덮힌 그란 사바나. 비가 오지 않을땐 물소리,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보다 더 조용한 곳에 가본 기억은 없다.
베이스 캠프에 도착해서 바라본 쿠케난산.
쿠케난산 뒤로 붉게 물들고 있는 하늘. 앞쪽엔 로라이마산.
캠프에서 크리스탈 밸리로 가는중.
구름이 잠시 걷힌 틈을타 조심스럽게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버섯모양을 한 바위. 산 전체가 온갖 희안한 모양의 바위로 덮혀있다.
절벽위에 앉아 햇볕쬐기. 아침 7-8시 사이에 약 5분간 내리쬐는 햇빛... 이시간을 잘 활용해야한다. 바로 이 시간에 구름 위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볼수있다.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이는 것이 온통 모래와 바위, 물 뿐이다.
일명 수영장(la piscina), 혹은 자쿠지라 불리는 바위에 구멍이 뻥뻥 뚤린 지역. 물이 엄청 맑고 차갑다. 간혹 물속에서 잽싸게 기어다니는 잠자리 유충을 볼 수 있다.
로라이마산 정상의 생물들은 이 산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새끼 손톱크기의 까만 개구리, 원통형 식물속에 집짓고 사는 독거미 등등... 산이 아니라 섬이라고 부르는게 더 어울릴것 같다. 그란 사바나 초원에 공룡들이 뛰놀던 시절부터 거의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창문(la ventana)이라 불리는 곳으로 향하는중. 수년전에 절벽 끝자락에 벼락이 내려쳐서 집채만한 바위가 벼랑위에 떨어질듯 말듯 매달려있다. 벼랑이 갈라진 틈과 그 위에 걸쳐진 바위 사이로 까마득히 밑이 내려다 보인다.
창문이라 불리는 곳 근처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로라이마 산을 대충 훑어 보는 것 만으로도 그 장엄함과 신비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로라이마 테푸이 정상의 기암괴석들
로라이마 산에만 서식하는 개구리
쿠케난 산(Monte Kukenan) (쿠케난 테푸이(Kukenan Tepuy))
쿠케난 산은 로라이마 테푸이의 서쪽에 거의 맞닿을 듯이 있는 테푸이며, 마타위 테푸이(Matawi Tepui)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앞서 설명된 대로 로라이마 테푸이 보다는 약간 작은 해발 2650미터이지만 등산로가 없기 때문에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산악인이 아니면 오르기가 힘든 곳입니다.
'쿠케난(Kukenan)'은 페몬족 인디언 말로 '죽고 싶다(I Want to Di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쿠케난 테푸이(좌)와 로라이마 테푸이(우)
쿠케난 테푸이와 로라이마 테푸이의 위치
쿠케난 테푸이
로라이마에서 바라본 쿠케난 테푸이의 모습
쿠케난 테푸이에도 우기에만 나타나는 높이 610미터의 쿠케난 폭포(Salto Kukenan)가 있습니다.
쿠케난 폭포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