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처럼
용인 백암면 고안리에 ‘샘물 호스피스 병원’이 있다. 말기 암 환우들이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주로 말기 암 환우의 통증 관리와 죽음에 대한 준비,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케 하고 천국으로 보내드리는 사역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약 35명 정도의 환우들이 입원해 있는데 거의 매일 밤 두세 분이 돌아가시기 때문에 몇 분의 담당 목사님들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곳에 우리 교회의 박 전도사님이 입원하셨고 몇 일전 심방 차 방문하게 되었다. 로비에 들어서니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전하여 지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라는 엘리사 선지자에 관한 말씀이었다. 말기 암의 고통을 받고 있는 환우들의 영혼을 감싸는 포근한 말씀은 모두에게 평안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는 이들에 대한 설교자의 마음을 다소 헤아릴 수 있었다.
휠체어를 의지한 전도사님이 우리 내외를 환하게 맞아 주셨고 병실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거동이 어려운 환우 한 분이 천국 입성을 대기하는 듯 아무 표정 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 말기 암이라 해도 비교적 건강하게 보이는 전도사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에는 많은 심적 부담이 있을 것 같다. 전도사님 역시도 병원치료를 거부하시고 천국을 소망하시며 입원하셨기에 먼저 천국에 들어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삶을 잘 정리하실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은 무료로 운영되는 기독교 복지시설이다.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비신자들까지도 수용한다. 간병인조차도 둘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환우들, 병원 진단서에 ‘호스피스 돌봄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은 환우들이 입원할 수 있다. 다만 모두를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원이 35명 내외로 정해져 있기에 차례를 기다렸다가 들어올 수 있다. 호스피스 훈련을 받은 자원 봉사자들이 정해진 날짜에 들어와서 환우들을 돌보고 상담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평안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이런 곳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굳게 닫힌 마음 문을 열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물론 대부분의 환우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예배하다가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는데, 영접하기까지 끈질긴 줄다리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혼의 완악함은 암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육체의 암이 왔기에, 그것도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암’이기에 강퍅함이 깨어지고 천국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재앙이 아닌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의 백성이 되어 죽음을 진지하고도 평안하게 받아들이는 성도들, 그 모습은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알면서도 십자가를 향해 올라가신 주님의 모습이 그 삶에 배여 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좌정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들이야 말로 택한 백성이요 복된 백성이다.
이곳의 환우들은 결코 불행한 분들이 아니다. 임마누엘 예수님과 함께 하는 환우들이 며칠 후, 아니 몇 시간 후에 이 세상의 삶을 마친다 하여도 먼저 앞서 가신 주님이 저들을 맞이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불쌍한 사람들은 예수를 부인하며 이 땅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모르니 다가오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두려워 떠는 사람들이야 말로 영혼의 암 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육체의 암이 와서 완악한 마음이 녹아버린 호스피스 병동의 환우들이 진정 복 받은 사람인 것은 죽음의 공포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맞아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영원한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눈으로 볼지 모르나 분명한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두려움을 능히 이기게 하실 것을 믿는다. 스데반 집사님처럼….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암을 낫게 하시기도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죽음의 공포를 넘어 평안으로 그리고 미래와 희망으로 인도하신다. 전도사님께, 그리고 함께 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천국에 입성한 에녹’의 말씀을 증거하니 전도사님에게서 평안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가장 오래 살았으나 망했던 ‘므두셀라’보다 짧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주님 품에 안겨 영생을 누리는 ‘에녹’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 우리 전도사님! 에녹처럼 천국에 입성하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