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는 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에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다. 7년간 280여 편에 출연하면서 여우주연상만 20회 넘게 받는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76년 결혼 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활동이 뜸해졌다. ‘시’는 그를 동시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해준 ‘부활’의 작품이었다.
“10월 부산영화제 갔을 때 길거리에서 중고생들이 날 보더니 ‘‘시’에 나오는 선생님!’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사인을 부탁하는 거에요. ‘시’가 아니었다면 제가 아무리 왕년의 스타였더라도 요즘 관객들이 어찌 저를 알겠어요. 관객들이 ‘배우 윤정희’를 새롭게 발견한 거죠. 그게 제가 ‘시’로 얻은 가장 큰 자산이고 기쁨이에요. 나이가 더 들어서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어요.”
그는 16년 동안 “초조함보다 즐거운 마음을 갖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내 나이에 맞는 작품이 언젠가 꼭 찾아올 거라고 믿었어요. 그레타 가르보처럼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만 보여주고 은둔하는 여배우의 마음, 저도 이해해요. 그런데 영화는 삶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삶에 20대, 30대만 있나요. 80대, 90대 넘어서도 표현할 수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주제가 분명 있을 거에요.”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해달라고 청했다. “제가 청룡영화제 심사위원을 오랜 기간 했어요. 해마다 여배우들이 바뀌더군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니 왜 초조하지 않겠어요. 한국은 젊음에 대한 강박감이 너무 심해요. 여배우들, 주름살 는다고 절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이에 걸맞은 좋은 작품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커리어를 아끼세요. 불안하면 절 찾아오세요. 제가 한 잔 살게요.”
신·구의 갈등이 아직 가시지 않은 한국 영화계에 대해서도 원로로서 그는 안타까움을 비쳤다.
“한국영화사는 60, 70년대가 황금기였어요. 신상옥·유현목·김수용·이성구·강대진 감독, 배우 김승호·황정순·복혜숙 등 대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후배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카이로 영화제에서 왜 윤정희한테 평생공로상을 주겠어요. 어려운 시대, 많은 작품을 했고 지금까지 현역으로 있는 그 역사를 인정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후배가 우릴 인정 안 해준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어요. 부산영화제에서 신영균·신성일·남궁원 이런 분들 만났을 때 제가 그랬어요. ‘우리가 먼저 후배들을 안아줍시다’라고요. 우리가 먼저 밥 먹자고 하고, 먼저 안아주는데 마다할 후배가 어디 있겠어요.”
기선민 기자
◆카이로 국제영화제=1976년 시작됐다. 중동권에서 가장 큰 규모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칸·베를린·베니스영화제와 더불어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인정하는 11개 경쟁영화제에 속한다. 2000년 장문일 감독이 ‘행복한 장의사’로 신인감독상을 받았으며, 2003년 한국영화특별전이 마련되기도 했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이집트 출신 배우 오마 샤리프(78)가 명예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