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장마철이라 연 이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제대로 들어맞는다. 숙소 앞에는 닻을 내린 빈 배만 한 척 보인다. 오전 7시부터 아침식사가 예약되어 있다. 아침은 햇빛 펜션 쉼터에 맞춰놓았다. 엥강만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음식점으로 우리 일행이 들어가니 식당이 꽉 찬다. 음식은 해물 된장찌개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도 역시 비는 그치지 않는다.
오늘 답사는 남해의 동남부 상주면, 미조면, 삼동면 지역인데,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우리는 먼저 금산 보리암으로 향한다. 금산은 해발 701m로 상주면의 진산이다. 금산 정상 가까이 보리암이 있는데, 남해안 최고의 관음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이곳 금산 보리암은 동해안 양양 낙산사 홍련암, 서해안 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보리암에 오르기 위해서는 금산 아래 복곡 제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버스를 타고 보리암 입구 복곡 제2주차장에 이르니 안개가 자욱하다. 자신의 모습을 관광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금산의 심술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비는 조금 그쳤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우산을 들고 보리암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한 20분쯤 걸으니 금산 정상과 보리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금산 정상으로 오른 다음 다시 보리암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금산 정상까지는 250m로 10분쯤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활엽수가 무성하고 중간 중간 대나무가 보인다. 그런데 이곳 금산 정상 부근에는 바위가 많다. 금산이 골산임을 말해준다. 또 한 가지 이들 바위에는 글자들이 많이 새겨져 있다. 대개 이름이 많고 직책까지 새겨 넣은 경우도 있다. 김기성, 순찰사(巡察使) 홍재철, 현령(縣令) 등이 보인다. 이들을 지나 금산 정상 가까이 오르니 큰 바위에 유홍문(由虹門) 상금산(上錦山)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홍문을 지나 금산에 올랐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남쪽의 상주고개에서 도선바위와 쌍홍문을 지나 보리암에 올라 기도를 드린 다음 금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홍문을 지나 금산에 오른다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홍문은 무지개처럼 둥근 굴을 말하는데, 굴이 두 개 있어 쌍홍문으로 불린다. 이 중 왼쪽에 나 있는 문을 통해 보리암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큰 글자 옆에 쓰여 있는 작은 글씨가 더 의미 있다. 가정 무술년(1538)에 전 한림학사 주세붕, 상주에 사는 권관 김구성, 진사 오계응, 승려 계하가 함께 올랐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1538년 주세붕(1495-1554)은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봉상시 판관이었던 주세붕은 1537년 4월 모친 봉양을 위해 곤양군수가 된다. 그러나 이듬해인 1538년 6월 파직된다. 그리고 10월 모친상을 당한다. 그렇다면 주세붕의 금산행은 벼슬을 잃은 1538년 6월과 10월 사이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곤양에서 남해 금산이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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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군 칠서면에 있는 주세붕 묘 |
ⓒ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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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은 3년상을 마치고 1541년 다시 관직에 나가 풍기군수가 되고 백운동 서원을 창건한다. 이후 도승지, 호조참판,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성균관 대사성,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1554년 7월 세상을 떠난다. 그의 유해는 11월 선영인 칠원현(漆原縣) 저연(猪淵)에 묻힌다. 이후 주세붕은 백운동 서원에 배향되고, 예조판서에 추증된다. 후에 허목이 찬한 신도비가 세워지고, 문민공(文敏公)이라는 시호를 받는다. '학문에 힘쓰고 물어보길 좋아해' 문이 되고, '일을 처리함에 공이 있어' 민이 되었다. 그의 문집으로는 1895년에 발행된 <무릉잡고>가 있다.
망대로 불리는 봉수
유홍문 상금산 각자(刻字)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남해 금산(명승 제39호) 표지석을 지나 망대에 오르게 되어 있다. 망대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망대는 고려시대 이후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로 사용되었다. 금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 오르면 금산 38경과 남해의 만경창파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런데 어쩌랴,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계단을 통해 망대에 오르니 돌로 망대를 복원해 놓았다. 마치 우물이나 화덕 모양이다. 우리 팀 중 봉수를 잘 아는 최일성 교수와 박상일 박사가 봉수에 대해 설명한다. 이곳 금산의 봉수는 연변봉수로 내지봉수와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직봉이 아닌 간봉으로, 동래에서 한양의 목멱산으로 이어지는 직봉과 연결된다. 그렇지만 봉수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복원이 잘못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봉수 복원 문제는 전국에 있는 모든 봉수에 해당된다고 한다. 서울 남산에 있는 봉수도 잘못 복원되었고, 수안보에 있는 주정산 봉수도 잘못되었고, 이곳 금산의 봉수도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잘못 복원하려면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봉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복원을 안 할 수도 없단다. 안개가 자욱한 망대에 둘러서서 모든 사람이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다. 우리에게 해설을 해 주던 조혜연 해설사도 한 수 배우는 것 같다.
망대를 내려온 우리는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다 화엄봉 쪽으로 접어든다. 화엄봉은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읽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후대에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이다. 화엄봉에서 보리암까지는 150m로 내리막길이다.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비로 인해 미끄러워 조심을 해야 한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니 보리암 암자가 안개에 싸인 채 어슴푸레 보인다.
보리암 이야기
보리암에서 첫 번째 만나는 것이 범종각이다. 범종을 보니 신라양식으로 1976년 6월에 봉안한 것으로 나와 있다. 종의 전면에는 경봉스님이 쓴 원음종(圓音鐘)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남해 금산의 끝 간 데 없는 경치에 南海錦山無限景
하늘가 구름 밖 이 소리 퍼져 가네. 天邊雲外此鐘聲
삼라만상이 모두 다른 것 아닐진대 森羅萬象非他物
한마음 생기지 않아 여전히 미명일세. 一念不生猶未明
이 시를 읽고 보광전(普光殿) 앞으로 간다. 보광전 편액 역시 경봉스님이 썼다. 그러고 보니 경봉스님이 이곳 보리암과 인연이 많은 것 같다. 보광전 안에는 관음보살 좌상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비도 오고 사람도 많아 들어갈 수가 없다. 바닷가 절답게 관음보살의 좌측에는 해상용왕이, 우측에는 남순동자가 호위하고 있다고 한다.
보광전 앞으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성당(禮聖堂)을 만들었다. 나는 예성당과 보광전 사잇길로 해서 보광전 뒤 암벽에 새겨진 그림을 보러 간다. 그런데 그림보다는 정의권, 조용주라는 글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글씨 옆을 자세히 살펴보니 꽃과 나비가 선각되어 있다. 가운데 꽃을 중심으로 양쪽에 나비가 보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이 지점이 보리암에서 기가 집중되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나는 예성당 아래 벼랑 위에 세워진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을 보러 내려간다. 해수관음상은 최근에 만든 것인데, 그 앞에서 사람들이 절을 하며 소원을 빌고 있다. 나는 삼층석탑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구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도 보인다. 두꺼운 지붕돌과 3단의 지붕돌받침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삼층석탑 옆에는 복련 장식의 석재가 눈에 띈다. 그리고 이곳 탑 주변 바위에도 현령 유언신 등 각자가 여럿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옛 사람들의 흔적남기기 취향도 대단했던 것 같다. 이곳을 끝으로 우리는 보리암 답사를 마친다. 그런데 보리암은 여전히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시원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보리암은 여전히 안개에 젖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가 그쳤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올라간 길을 되돌아 버스주차장까지 내려온다.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
버스주차장에 내려와 보니 안개라고는 찾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금산 중턱 이상만 안개에 젖어 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상주해수욕장이다. 상주해수욕장은 은모래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2㎞에 이르는 해변과 솔숲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금산의 절경이 잘 어우러진 명품 해수욕장이다. 바다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수심도 깊지 않다고 한다.
아직 수온이 낮아 해수욕장 개장은 하지 않은 상태다. 멀리서 보니 몇 가족이 모래를 밟으며 놀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해수욕장까지는 내려가지 않고 멀리서 조망만 한다. 솔밭 뒤로는 상주면 소재지가 보이고, 그 뒤로 금산이 보이는데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다. 우리는 다시 미조면에 있는 송정 솔바람 해변을 지나 초전마을에 이른다. 이곳에서 남해의 동남쪽 끝 미조리에 이르면 19번 국도는 끝나고, 3번 국도가 시작된다. 우리는 초전에서 잠시 쉬면서 미조만을 조망한다. [펌: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