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는 유명한 <먹거리> 두 개와 <볼거리> 두 개가 있다. <먹거리> 두 개는 ‘과메기’와 ‘피데기’고, <볼거리> 두 개는 ‘구룡포’와 ‘호미곶’이다.
먼저 <먹거리> 이야기를 하자면, ‘과메기’는 원래 청어를 반건조시켜 만든 먹거리였다. 하지만, 수온의 변화로 청어의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그래서 요즘은 ‘과메기’라고 할 때는 으레 청어가 아닌 꽁치를 떠올리는데 그렇다고 해서 청어 과메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몇몇 집에서는 아직도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고 있다.
꽁치로 만든 과메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꽁치에서 풍기는 그 독특한 비린내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감을 갖게 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도 처음에는 과메기의 비린 맛에 몇 점 먹지 못했지만, 자꾸 먹다보니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어 이제는 즐겨 먹는다.
그럼 두 번째 <먹거리>의 ‘피데기’는 뭘까? “피데기!”하면 어감이 이상해 마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무슨 혐오식품 같지만, 사실 ‘피데기’는 오징어를 반건조시킨 식품이다. 일반적으로, 말린 오징어나 구운 오징어는 가로로 잘라 먹지만, 그러면 이게 결이 있어서 잘 끊어지지 않는다. 입에 물고 한참을 씹어야 겨우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세로로 잘라 먹는 거다. 그러면 씹을 때마다 살이 똑똑 끊어져 먹기에 아주 편하다. 하지만, 이런 획기적인(?) 방법이 있어도 사람들은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방식, 즉 반은 입에 넣고 반은 아직 입 밖에 남아있는 채로 먹는 방식을 좋아하여 여전히 가로로 잘라 먹는다.
이제는 <볼거리> 이야기다.
<볼거리> 두 개 중의 하나가 ‘구룡포’라고 했는데 여기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물론 차를 타고 해안을 따라 가다보면, 군데군데 해수욕장이 있지만, 대부분 규모가 작다. 그런데 ‘구룡포’는 부산의 해운대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래도 나름 규모가 있는 해수욕장이다. 그 이야기는 이제 시작할 것이고, <불거리>의 ‘호미곶’ 역시 다음에 글을 쓸 것이기에 우선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자, 서론이 끝났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호텔에서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죽도파’와 ‘구룡포파’로 갈라졌다. ‘죽도파’는 죽도 시장 쇼핑을 원했고, ‘구룡포파’는 구룡포 해수욕장을 원했다. 원래 수양회 각본에는 죽도 시장 방문은 아예 없었다. 하지만, ‘죽도’ 시장을 ‘죽도’록 사모하는 몇몇 여대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 때문에 각본에도 없는 ‘죽도파’가 구성된 거였다.
‘죽도파’가 죽도 시장 쇼핑을 해야 할 정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서울에서 5시간을 달려 포항까지 왔는데 어시장에 들르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②일가친척들로부터 싱싱한 횟감이나 건어물을 사오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친척들로부터 돌팔매질 당할지도 모른다.
③쇼핑의 즐거움은 여자만이 누릴 수 있는 당당한 특권이다.
결론: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죽도 시장에 가야 한다.
이때 ‘구룡포파’ 김태연 집사님이 한 마디 하셨다.
김: “아, 죽도 시장에는 뭐 하러 가? 구룡포 해수욕장에 가야지!”
백: “하하하. 집사님! 쇼핑이 좋으니까 가겠지요. 재미없으면 가겠어요?”
김: “목사님! 솔직히 말해서 어시장 구경이 뭐가 재미있겠어요? 다 그게 그거지. 노량진이나 자갈치 시장이나 다 똑같은데 뭘...”
백: “어허? 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세요. 우선 가게마다 어떤 생선이 있는지 보고 생선 이름 맞추기를 해도 재미있겠고, 또 어느 집에 생선이 얼마나 많은 지, 생선을 하나하나 세어보면서 이 집 저 집 둘러보면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어요?”
김: “어이구... 목사님! 목사님은 그 많은 생선 세는 게 재미있어요? 그럼 목사님이 가서 재미있게 세어 보세요.”
백: “우하하하! 하지만, 생각해 보면, 생선 세는 것도 나름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ㅋㅋㅋ”
나는 ‘구룡포파’였기 때문에 나중에 죽도 시장에 들른 ‘죽도파’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지 알 길은 없다. 헌데, 후담이지만, ‘죽도파’가 갔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고, 또 시장 안이 찜질방보다 더워 중간에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단다.
원래 동해는 수온이 낮기 때문에 오래 있지 못한다. 조금만 있어도 입술이 파랗게 변하고 몸이 덜덜 떨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구룡포를 향해 가는 ‘구룡포파’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제발 몸 좀 떨려보았으면 좋겠다는... 날이 너무 더우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구룡포로 가는 버스 안은 난리도 아니었다. 너도나도 썬크림(썬블럭...)을 가져와 햇빛에 노출될 수 있는 팔과 목, 얼굴 등을 바르고 자기만이 아니라, 옆 자리에 있는 대원들까지 발라주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선크림의 끈적거림이 싫어 썬크림 바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내와 지영 자매는 썬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큰일 난다며 하도 겁을 주기에 못이기는 척하며 얼굴이니 목이니 팔이니, 하여간 햇빛에 노출될만한 곳은 모조리 빼놓지 않고 덕지덕지(!) 발랐다. 아니 발랐다기보다는 발림을 당했다.
구룡포에 도착한 우리는 미리 도착한 선발대의 도움으로 넓은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썬크림을 발랐으니 이제는 작렬하는 햇빛도 두렵지 않아야 정상인데 여대원들은 도무지 그늘진 평상에서 떠날 생각을 안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무척 궁금하다. ‘햇빛에 나가지 않고 그늘에만 있으려면 뭐하려고 그렇게 비싼 썬크림을 두 겹 세 겹으로 발랐을까?’ 여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남대원들은 물속으로 들어가 놀았는데 생각보다 물이 차지는 않았다. 깊이도 그리 깊지 않고... 나는 오랜만에 태평양 소금물에 목욕할 기회가 생겨 신나게 물장구치며 놀았다. 그런데 물귀신처럼 잠수하여 신나게 노는 사람들 발목을 덥석 잡아 화들짝 놀래키려고 해도 이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꾸 몸이 둥둥 뜨는 통에 도무지 잠수가 되지 않는 거였다. 물의 염분 농도가 높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살이 많이 쪄서 지방질이 많아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물귀신 놀이’는 완전 실패였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