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태생지 성법 마을은
1900년대 초에 기계현, 흥해현, 연일현, 청하현을 합쳐 영일군으로 개편된다.
그 뒤 1931년에 포항면이 포항읍으로 승격되고 1949년에는 포항이 시로 승격된다.
95년에 포항시 영일군을 합쳐 통합,포항시로 남,북구를 설치한다.(성법은 북구에 속함)
<기계현, 흥해현, 청하현, 연일현을 합쳐서 연일군이 아닌 왜 영일군으로 했는지가 궁금했는데
일제가 맞을영자를 넣어 일본을 맞이한다 뜻의 영일로함. 해서 통합때 영일시 아닌 포항시로함>
성법은 원래 기계면에 속했지만 1980년대 초에 기북면으로 승격됐음을, 서울로 이사온 후
혼인신고차 서류를 떼러 갔다가 기북면으로 승격됐슴을 알게 됐다.
(우리가 어릴적엔 성법동이라 했고 "리" 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나중에 정부에서
읍단위 이하는 "리" 로 시단위 이상은 "동"으로 규정할 때 성법동이 성법리로 개정,
그전엔 이장 아닌 동장이라 불렀슴)
<성법은 기북보다 동네가 먼저 생겨 성법교회가 기북교회 보다 먼저 세워짐. 조선시대 땐
성법부곡이라 하여 지금으로 치면 면단위 이상의 행정중심지였던 셈>
지금은 포항시내로 갈 때 기계아래 달성 사거리에서 곧장 연하제 넘어 시내로 진입하지만
옛날엔 항상 안강으로 돌아갔다. 곧장가는 버스도 없었고, 많이 불편한 시절이었다.
(1900년대초 행정개편 때 경주시로 편입 될뻔 했다고 함)
출향인의 분포를 살펴 보면 포항, 경주, 대구권에 많이 거주하고 부산, 울산에 상당히
거주하는 형국이다. 서울, 경기나 여타 지방 거주자는 거의 없었다. 기북중학교 3회
동기회장을 하면서 살펴본 거주지 분포도, 두학급의 130여명도 비슷한 수치였다.
고향 마을을 살펴보면 어릴적엔 사과밭 아래가(천주공장) 덕동과 경계선인줄 알았는데
사과밭 등묘 위 작은 도랑이 경계선인걸 알았다. 못싼도 아랫쪽은 행정상 덕동에 속함.
(우리 고향 마을을 아는 데로 쭉 열거해 보고자한다, 지번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논두렁
밭두렁, 골목길 따라 제작한 것이고, 올해부턴 서양식인 건물위주로 주소가 바꼈다)
{조선시대 땐 지번이 없었으나 박식골, 양지각단, 옥식골, 이런씩으로 구분했슴}
사과밭 아래 부터
왼쪽이 못싼이고, 우측 사과밭 뒤쪽이 싸구장골, 바로위 오른쪽이 새들(일명, 뻔득 부모님
산소있슴) 당나무 왼편이 보살미기, 뒷편 입구는 댕닥골 뒤는 박식골(기호형님 산과 밭이
있는 곳) 보살미기 시냇가 아래 작은 용바우, 큰용바우가 있는데, 내가 중2 때 덕동초등생이
자연학습 나왔다가 큰용바우에 빠진, 사망 사건 이후로 목욕하러 다니지 않음.
<자식 먼저보낸 부모가 얼마나 한스러웠던지 일주일을 그곳에서 통곡하는데 밤엔 무서웠다>
다리건너 우측이 피밭골, 윗쪽이 음지각단, 우측은 외뚜들과 헌못과 앞산, 지금의 마을회관
왼편이 기동형과 기호형님 살던 양지각단, 뒤쪽이 막골과 뒷산임. 뒷산 꼭대가 왕재인데
뒷산 넘어 왕재까지 나무하러 갔고, 추석엔 달보러 갔다. 한해는 기동형이 제일 먼저
보름달 봤다고 기동이 장가 빨리 간다고 어른들이 그러셨던 추억이 새록 새록 하다
(현재 마을회관이 있는 논의 아래 위를 개안 이라고함)
동네 가운데가 앞각단(my house) 순호,상철 형님 거주. 뒷각단, 새각단(두일,석은형거주)
동네 왼편 앞이 티골(넘어가면 신광면 기일리, 일명 터일) 상옥가는 길 우측이 감남두들이고
<상옥은 조선시대의 명칭이고, 고려시대는 "고래" 라고 문헌에 나옴>
쭉 올라가면 무들과 골뱅이골, 안새알, 큰산 밑이 진생골인데 형들도 진생골은 잘 모르실걸.
<골뱅이골 저수지는, 아주 어릴적 축조 때 일하던 어른들이 밀가루 타온 기억이 어렴풋이 남>
상옥행, 우측 산이 하브랍산(이름 특이) 우측 계곡이 굽논이고, 왼편 골짜기는 가는골(잠석,경석)형님밭 있는걸로 앎) 더 들어가면 옥식골(상천형님 논이 있었슴) 왼편이 배나무골 뒷쪽은 절터(옛날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망했다고 들음, 윤회설로 죽이지 못해서)
상옥 길로 쭉 따라 가면 잘가지미가 나오고 더 올라가면 작은 웅덩이 큰웅덩이가 있는데 물웅덩이가 아닌 골짜기가 깊어서 지은 이름. 여기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 했다고 함
(여기까지 리어카로 나무 하러 다녔고, 그 땐 비포장 도로였슴)
오십대 중반 오른지금, 10대 중반까지 고향서 살았고, 그 뒤 40년 넘게 타지에서 살았지만
옛날에 듣고 경험한 고향 마을의 모습들을 추억삼아 떠올려봤습니다.
형님들!
추워지는 초동 날씨에 건강과 가화만사성 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형통& 행복& 기쁨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P,S
고향 마을의 성씨들을 살펴 보면 시골치고 성씨 집성촌이 아닌 것이 특징이다.
파평윤. 밀양박, 경주김, 연일정, 인동장, 여강이씨가 많고 옛날엔 설씨가 살았고
권, 함, 손, 황, 오씨 성도 일부 있었슴.
우리 김씨는 김녕김씨로 친척이 별로 없었슴. 6.25사변전 조부 때 이사온 걸로 들음
시조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고, 김영삼 전대통령과 사육신중 김문기가 있슴.
<김영삼대통령 재임 때 각 지역 문중대표 초청 때 청와대에 가본적이 있슴>
첫댓글 고향을 돌이켜 보게한 글 정말 감사,,,,
어릴적엔 학교 다녀와서 대부분 소 먹이러 가서 소꼴 하거나 농삿일 도왔는데,
소먹이는 곳은 티골은 음지각단,, 피밭골은 피밭골,
옥식골은 양지각단, 앞,뒤각단이 갔고 무들은 새각단이 많이 갔슴.
추석 달구경은 양지, 앞,뒤각단은 뒤산 꼭대 왕재로 갔고,
앞산은 음지각단과 새각단, 피밭골 팀들이 가서
달 먼저 본 팀이 불질러 연기 냈던 기억이 납니다.
아련한 어린시절 호롱불 켜고지내던 추억을 회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