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락 목사가 베이비 박스를 설치한 취지와 내부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스 안쪽에는 실내로 통하는 문이 있어 아이가 놓이면 곧바로 안으로 옮길 수 있다. 안성식 기자
-베이비 박스는 어떤 취지로 설치했나.
“예전부터 공동체 앞 주차장이나 대문 앞에 아이가 심심찮게 놓여졌다. 그런데 2009년 초 새벽에 어떤 아이가 종이박스에 얇은 배냇저고리만 입고 놓여져 있더라. 그 엄마가 전화를 해왔는데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갖다놨다고 하더라. 추운 날씨였던 데다 주변에 산고양이도 있어서 아이를 해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갖다 놓을 장소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외국에서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산부인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e-메일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는데 6개월이 넘도록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날씨도 추워지고 안 되겠다 싶어서 자체 제작을 해 12월에 설치했다.”
-베이비 박스에 첫 아이는 언제 놓여졌나.
“처음엔 정말 여기에 아이를 놓아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달 뒤인 2010년 2월에 첫 아이가 들어왔다. 그땐 우리집이 온통 초상집 분위기였다. 대문 앞에 놓고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였다. 아이 옆에 놓인 편지에는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놓고 간다고 적혀 있더라. 난 여기에서 보호받지 않으면 정말 희생당할 아이들만 들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지금까지 모두 26명이 들어왔다.”
-어떤 부모들이 아이를 놓고 가나.
“중학교 2~3학년, 고 1~3학년 여학생이 출산을 하면 남자친구가 사라진다. 부양능력이 없어서다. 산모도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 그런데 입양기관에 데리고 가면 안 받아 준다. 국내법은 양부모가 포기각서를 써야만 입소가 가능한데 아빠가 없으니 그것도 안 된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금도 10여만원으로 턱없이 적다. 그러다 보니 죽음도 생각하고 하다가 결국 이곳을 찾게 된다. 또 외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곳에 오는 경우가 있다. 돈 벌러 왔는데 아이가 있으면 돈을 벌 수 없어서다. 그렇다고 국적이 달라서 입양기관에 맡길 수도 없다.”
-더 큰 보호시설도 있는데 왜 여기를 찾나.
“무작정 처음부터 여기 갖다 놓는 건 아니다. 오기 전에 여러 기관에서 아이를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상담을 많이 했을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입양기관에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밀려 있다. 여자아이는 그래도 입양이 좀 되는데 사내아이는 잘 안 된다. 입양기관마다 포화다. 그래서 노산(老産) 아이도 안 받아주고 병원 입원기록만 있어도 안 받아준다. 그래서 하다하다 안 되니 지방에서 여기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이 얘기를 듣고는 베이비 박스 설치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버리지 않고 여기까지 갖다 놓는 것만도 다행이다 싶더라.”
이종락 목사와 ‘베이비 박스’둥이인 은총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4월부터는 베이비 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구청에 연락해 바로 보호시설로 옮기고 있다. 여긴 보호시설로 분류되지 않는 미신고시설이다. 현재는 영아부터 18살까지 13명이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6명은 내가 입양했고, 나머지 아이들도 입양절차를 밟고 있다. 운영비는 많은 분의 헌금으로 마련한다. 또 봉사하는 분들이 알음알음 헌금 소개도 해준다. 또 언론 보도를 본 분들이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걸통해서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지낸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다.
“베이비 박스가 알려지니까 복지부에서 아이 유기를 조장한다고 비판하고 구청 직원들이 와서 철거하라고 몇 번 요구하더라. 지금 밖에 버려져 희생당한 아이들이 많은데 정부에서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따졌더니 답을 잘 못하더라.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철거할 수 없다고 했다. 상당히 어려웠다.
실제 베이비 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지, 현 제도가 아이들을 버릴 수밖에 없게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 국내법은 아이가 태어나 보호시설에 버려지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돼 있다. 그러면 경찰이 부모를 찾아내 처벌한다. 부모들은 처벌이 두려워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지도 못한 채 거리에 버린다. 영아 시신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이유다. 법 때문에, 법이 있어도 아이가 버려져서 희생당하는 상황에선 이 법은 악법이 된 것 아닌가. 베이비 박스 때문에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법과 제도가 그걸 조장한다.”
-국내외에 알려지면서 관심도 많이 받았는데 기억에 남는 건.
“LA 타임스에 기사가 나온 뒤 청와대에서 비서관 2명이 찾아와서는 ‘어떤 게 필요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관련 악법을 폐지하고 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뒤론 연락이 없더라.”
-앞으로 계획은.
“난 늘 거리에 버려져 희생당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듣는다. 앞으로 할 수만 있다면 전국적으로 베이비 박스를 몇 군데 더 설치하고 싶다. 하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국가가 베이비 박스를 도입하는 거다. 그리고 법도 고쳐야 한다. 안 되면 임시라도 베이비 박스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버릴 때 911(소방서) 앞에 갖다 놓으면 부모가 처벌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 우리도 119 앞에 놓고 갈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베이비 박스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다. 법과 제도가 바뀌면 이게 필요 없어지지 않겠나.
그리고 가능하면 아이들이 보다 편하게, 불편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시설을 짓고 싶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도 다시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
강갑생 기자, LA지사=정구현 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