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아이들
곽 흥 렬
이따금 역사책을 펼쳐든다. 한 쪽 한 쪽 세심히 살피며 넘겨 간다.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느껴져 오는 것이 배우는 학생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세상에 생겨나고부터 오늘날까지 역사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져 왔으니, 그 사이에 일어난 큼직큼직한 사건들만 해도 오죽 많을 것인가. 아이들은 시험이라는 반강제적 기제에 의해 이것들을 두루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런 아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못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지금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적 사건은 더욱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드는 법은 없을 터이고, 그에 따라 기념할 일도 또 그만큼 점점 많아지게 될 것이 아닌가. 앞으로 태어날 우리의 후손들은, 날이 갈수록 불어날 새로운 역사적 사건들을 익히느라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터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다 달력 앞에만 서면 이러한 염려는 보다 구체화된다. 굵직굵직한 기념일만 챙겨도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이 모자란다. 예전엔 있지 않았다가 근세에 와서 새로이 생겨난 기념일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3.1 만세운동, 제주 4.3사건, 4.19 의거, 5.16 군사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만세운동, 6.25 사변, 7.17 제헌절, 8.15 해방…….
꼭 기념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격동기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만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앞으로 세월이 흘러가면 의미를 갖는 이러한 사건들은 끊임없이 새로 생겨날 것이고, 극단적으로 따지자면 일 년 삼백예순날이 죄 무슨 무슨 기념일로다가 채워지고 말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어떤 날은 두 가지 이상이 겹쳐져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을 터이니, 이것들을 두루 익히지 않으면 아니 되는 학생들로서는 머리가 온전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노릇 아닌가.
비단 이 나라 역사뿐이랴. 그보다 몇 십, 몇 백 배나 방대한 세계사가 또 아이들을 괴롭힌다. 세계사는 끊임없이 변하고 바뀔 것이며, 글로벌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부지런히 따라 익히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새로운 지식이며 이론들의 생성에는 한껏 가속도가 붙어 있으니 아무리 노력을 경주한다 해도 족탈불급이다. 자고 나면 밤새 소복이 내려쌓이는 눈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알 거리들로 뒤덮이는 것이 요즈음의 세상 아닌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아이들은 상대성이론을 몰라도 되었고, 버지니아 울프 이전 세대들은 ‘세월’을 읽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무슨 문인, 무슨 예술가, 무슨 철학자는 끊임없이 배출되어 나오고, 그에 따라 그들의 작품이나 사상은 학생들의 학습량을 날이 갈수록 늘려 가는 것이다.
도서관의 서가 앞에 서면 이러한 생각은 더욱 더 피부에 와 닫는다. 우선 산더미같이 방대한 양의 책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다. 문학, 철학, 종교, 음악, 미술, 건축, 실용 등 그 분야만도 줄잡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일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이다. 내가 어느 하 세월에 이것들을 두루 섭렵한단 말인가. 이 가운데 얼마 정도를 그저 손끝에라도 만져나 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마음이 들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우울해진다.
기성세대들은 요새 아이들이 예전의 학동들에 비해 공부를 안 한다는 불만에 찬 말을 자주 주워섬긴다. 일변 그럴듯한 이야기도 같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요새 아이들은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예전의 아이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컴퓨터도 익혀야 하고, 피아노며 바이올린 같은 악기도 배워야 한다. 게다가 한자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니 슈퍼맨이 아닌 이상 어찌 한문 하나 정도만 달달 외우면 되던 조선시대 아이들보다 더 낫기를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인가. 영어 공부 하고 컴퓨터 익히며 악기 다루는 시간에 그만큼 한문 공부에 매달린다면, 모두가 천재가 되고 남았을지도 모른다.
학습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간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만 해도 그렇다. 예전엔 지금 생존해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작가들의 시나 소설, 수필 작품은 익힐 필요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글들이 학력고사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미리 봐 두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예전의 작품들이 출제 대상에서 빠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다 보니 연구할 거리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셈이다. 그래서 역지사지로 요새 아이들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가다가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부질없는 생각 같지만, 인간의 역사가 있고부터 이러한 현상은 계속되어 왔고 또 이를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라면, 이것은 인간 존재의 숙명과도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밤이 이슥한 시각까지 자율학습에 부대끼느라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피곤으로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아, 저 불쌍한 아이들…….